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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 장애인과 후천적 장애인의 '의지'를 비교한 이해찬 대표의 발언을 두고 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선천적 시각장애인인 김학중 시인은 지난 17일 김진영 시민기자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이해찬 대표님, 저는 후천적 시각장애인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읽고, 자신의 경험담을 보내왔습니다. 김 시인은 "장애인 성공신화가 바로 장애인에 대한 혐오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오마이뉴스>는 김학중 시인의 글을 가감 없이 싣습니다. [편집자말]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15일 당 유튜브 '씀' TV에 나와 장애인 비하 발언을 해 논란이 예상된다. 사진은 해당 내용 유튜브 캡처.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15일 당 유튜브 "씀" TV에 나와 장애인 비하 발언을 해 논란이 예상된다. 사진은 해당 내용 유튜브 캡처.
ⓒ 더불어민주당 "씀"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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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님께서 "선천적인 장애인은 후천적인 장애인보다 의지가 약한 경향이 있다"고 말씀하신 지 며칠이 지났습니다. 발언의 파장은 작지 않았습니다. 여러 언론을 통해 대표님이 발언하신 것에 대한 비판 기사가 나갔고 이에 대응하여 민주당에서는 당 차원의 장애인인식개선 교육을 하겠다는 사후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장애인 인식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들려 오고 있습니다. 19일 민주당 공식 유튜브 <씀>에 올라온, 영입인재 10인과의 대화 <좋은 사람, 좋은 정치>에서도 관련 질문이 나왔습니다. 장애인식 개선과 관련해 당 차원에서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 물었던 것은, 이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고 봅니다.

변화는 있었지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논의가 원론적인 차원에 그치고 있고 이 논란을 일으킨 이해찬 대표의 '책임 있는' 사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직은 이해찬 대표님께 저와 동생의 이야기를 말씀 드리는 것이 유효하다는 생각에 글을 써봅니다.

저와 동생은요

저와 동생은 선천적 저시력 장애인입니다.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저는 유아기 때 기면서 자주 벽이나 가구 등에 부딪혔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안과에서 유아들의 시력을 측정할 수 없었던 터라, 시각에 문제가 생긴 것에 대응할 시기를 놓쳤습니다. 동생의 경우도 유사하게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급격한 시력 저하가 나타났지만 안과에서 원인을 규명하지 못했습니다. 저와 동생은 그렇게 시각장애인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해찬 대표님의 표현에 따르면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살았던 덕인지 현재 저희 형제의 삶은 제법 평범한 편입니다. 저는 대학과 고등학교에서 글쓰기와 문예창작을 강의하는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고 몇 군데 문예지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작품에 대한 평가도 좋아 2017년에 박인환문학상도 받았습니다.

작품과 강의 등의 활동뿐 아니라 사회적 참여에도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강정해군기지 문제, 세월호 추모 등 당시 사회적 문제에 연대하면서 전 정권에서 블랙리스트 작가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세월호 5주기 기념시집에 참여한 인연으로 작년에 이낙연 전 총리와 함께 영화 <생일>을 함께 관람하기도 했고, 그 자리에서 이낙연 총리가 제 시를 언급해주어 기사로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이번에 총리가 되신 정세균 의원에게서 표창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박인환문학상의 공정한 운영에 기여하고 한국문학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받았습니다.

제가 보인 성취는 어떻게 보이십니까? 대표님.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가 지난 2019년 4월 20일 오후 서울 메가박스 강남점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 등 남은 사람들이 서로 간직한 기억을 나누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생일’을 세월호 추모시집인 ‘언제까지고 우리는 너희를 멀리 보낼 수가 없다’의 시인 등 관계자들과 이종언 영화 감독 등과 관람한 후 차를 마시며 대화를 하고 있다.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가 지난 2019년 4월 20일 오후 서울 메가박스 강남점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 등 남은 사람들이 서로 간직한 기억을 나누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생일’을 세월호 추모시집인 ‘언제까지고 우리는 너희를 멀리 보낼 수가 없다’의 시인 등 관계자들과 이종언 영화 감독 등과 관람한 후 차를 마시며 대화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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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 동생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제 동생은 고교시절 저시력이라 할지라도 시각장애인이라면 도전하려고 엄두도 내지 않는 이과를 선택했습니다. 대학에선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컴퓨터그래픽스엔지니어링으로 박사를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SCI논문을 2편 써냈는데, 제가 아는 한 세계에서 저시력을 포함해 시각장애인이 컴퓨터그래픽스 분야에서 국제 수준의 SCI논문을 써낸 최초의 사례입니다. 박사 후 과정을 거쳐 현재는 한 중소기업에서 연구개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동생에게 꿈이 없었다면 다른 이들은 시도도 하지 않는 일을 해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와 동생은 대표님이 보기에 합당한 선천적 장애인입니까?

정말 많이 들은 말 "장애인인데, 어차피 공부해 봐야 안 된다"

현재 저희의 삶을 간단하게 글로 다듬어 내면 나름대로의 성과가 보이지만, 하나하나 살펴보면 상처와 눈물 자욱이 가득합니다. 돌이켜보면 하루하루가 도전과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잠깐만 생각해 보셔도 아시겠지만 저희들은 학교 교실에서, 대학 강의실에서 교수자가 판서하는 것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고 강의를 녹취해서 공부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저희들이 공부할 때는 그런 기술이 보급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경제적 지원이나 사교육을 통한 보충학습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교수자들이 볼 때 저희들의 노력은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것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저와 동생은 "장애인인데, 어차피 공부해 봐야 안 된다"는 뉘앙스의 말을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동생은 이과로 진학해 컴퓨터공학으로 진로를 정했기에 "장애인이 이공계에서 공부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무모한 일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장애인이면 장애인답게 살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장애인이 배우는 직업기술이나 장애인들이 주로 선택하는 학문을 공부하라는 이야기 말입니다. 학교뿐만 아니라 친지들에게서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너무도 당연하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어른들을 보면서 저와 동생은 오히려 의문을 가졌습니다. 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의 제한된 영역에서만 갇히게 되면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장애인들이 한정된 영역을 넘어 세상에 기여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대학 진학에 성공하면 차별적 발언을 덜 들을까 했는데,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하는 모습에 안타까워하며 돕는 교수님들도 있었으나 차별적 발언을 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저시력이라 인사를 못하는 것 때문에 어디에서나 오해를 받았고, 차별적 발언을 마주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학원도 똑같았습니다. 그쯤되니 사회에서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에게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매번 저희들의 장애가 지닌 특수성을 설명해야 하는 것에도 신물이 나서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그 시력으로 공부를 하겠다는 것은 내가 가르치는 이 학문을 우습게 아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듣고도 그냥 넘길 수 있게 됐습니다.

종종 동료들과 선후배들이 뒤에서 차별적 발언을 한다는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신경쓰지 않고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말에 신경써봐야 상처받는 사람은 우리뿐이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회문화적 시스템의 보호를 받지 못했지만 우리는 꿈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노력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혐오를 키우는 '성공신화'

그런 노력들 때문이었을까요. 좋은 동료들이 생겼고 응원해주는 선생님을 만나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열정을 가진 사람만이 수난을 감내한다"고 격려해주신 선생님도 계셨으니까요. 동생의 경우, 해외 학회에서 세계적인 석학들이 동생의 연구에 높은 평가를 해주면서 크게 고무되었습니다. 한 학회에서 체어(의장)를 보는 스위스공과대학의 교수님이 동생의 발표를 듣고 "What is your Goal?"(당신의 목표가 무엇입니까?)이란 질문만 할 정도였으니까요.

동생은 지금도 그날의 기억을 종종 얘기합니다. 당시 외국인 교수들은 자신의 연구 성취를 편견없이 봐줄 뿐만 아니라, 장애를 가지고도 이런 연구를 하는 것이 대단하다고 격려해주었다고 합니다. 동생은 이 일화를 떠올릴 때, 왜 한국에서는 그런 평가를 받지 못했는지 의아해 합니다. 아무튼 저와 동생은 도전과 노력을 통해 적어도 일의 영역에 있어서 '장애인 시인'이라거나 '장애인 연구원'이란 말이 아닌, 시인, 연구원이라 불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저와 동생이 우리를 지지해주는 작은 응원들에 기대어 무언가를 성취해내자 차별적 발언을 하던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 학생 그럴 줄 알았다, 좌절을 안 하더라" 등등의 말을 하면서 "그 학생 내가 가르쳤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생색내기에 동참해주지 않으면 은혜를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사람들이 장애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논할 때 놓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장애인 성공신화가 바로 장애인에 대한 혐오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점 말입니다. 장애극복서사는 이 사회가 구별짓기를 수행하는 데 기준점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저와 동생은 이 위선적인 구별짓기에 포섭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저항하기 위해 싸워야 했습니다.
 
 노력으로 무언갈 성취해도 저와 동생은 사회문화적으로 여러 겹의 차별 구조가 반복되는 것을 경험해왔습니다.
 노력으로 무언갈 성취해도 저와 동생은 사회문화적으로 여러 겹의 차별 구조가 반복되는 것을 경험해왔습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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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꿈을 가지고, 의지를 가지고 성취하면서 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노력으로 무언갈 성취해도 저와 동생은 사회문화적으로 여러 겹의 차별 구조가 반복되는 것을 경험해 왔습니다.

종종 사람들은 '그래도 시대가 많이 변하지 않았냐'고 묻곤 합니다. 하지만 저와 동생은 차별의 구조가 끝나는 지점을 아직 마주하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깜짝 놀랄 정도의 차별적 발언을 마주하곤 합니다. 동생은 SCI논문을 2편이나 쓰고 그 논문으로 프로젝트 연구비를 받고 있음에도 연구실에서 "불구인 거 잘 알지 않냐"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이 짧은 지면에서 다 말하기 어려운 차별의 사례들이 지금도 저와 동생, 우리 가족 주변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드리는 것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그가 성취를 이루고 있든 아직 그 가능성을 탐구하는 도정에 있든 간에, 장애인이라면 누구나 이 끝없는 차별의 장벽을 매일 체감하면서도 삶을 개진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기 위함입니다. 이런 장벽을 개인의 "의지"로 뚫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판타지입니다.

이 글의 서두에 저와 동생이 이룬 것을 약술했지만 현실에서 저와 동생은 아직 늘 시작 지점에 서 있다고 느낍니다. 이제는 우리가 무엇을 더 뚫고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다시 시작점에 설 용기를 내는 것은 우리의 삶이 삶 그 자체로 의미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 형제는 우리의 삶이 대표님이 말씀하진 그 "의지"라는 말로 단순화되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정치는 미래로 향해야 합니다

대표님의 발언으로 인해 우리는 장애인 혐오사회인 한국에서 차별의 구조를 어떻게 해체할 수 있을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 것 같습니다. 저는 발달장애인 청소년 오케스트라 리플리히 자문위원으로 위촉되던 자리에서 짧은 연설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날 저는 여러분들 주변에서 만나게 되는 장애인들을 보고 "안 된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별 대단하지 않은 것을 장애인들이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이 자신의 삶을 모두 바쳐 개진하는 자신의 삶이라는 것을 알아달라고 말입니다. 우리의 기준이 아니라 삶 자체를 기준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는 제가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것과도 맥락을 같이 합니다. 우리는 서로 서로의 존재를 줄세우고 그로 인해 삶 그 자체의 가치를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에게나 삶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산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강의합니다. 누군가의 기준으로 자신의 삶을 재단하지 말고 그로 인해 상처받지 말라고 말입니다.

삶을 기준에 두고 보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삶이 서로 통하는 지점이 생길 것입니다. 그 예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요즘 4차 산업혁명의 동력으로 생각하는 로봇이나 인공지능은 그 뿌리가 장애인에 대한 연구에 닿아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를 우리 신체의 확장으로 인지합니다. 휠체어나 흰 지팡이를 우리 신체의 확장으로 인식하듯이 우리는 자동차와 스마트폰을 그렇게 인식합니다. 바로 뇌의 이런 특성에 대한 이해가 인공지능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로봇의 이족보행이 가능해진 것도 장애인 연구를 통해 신체의 무게중심 이동의 비밀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비장애인의 삶의 질도 높일 수 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혜택을 줄 수 있다는 겁니다. 만약 이 가능성에 눈을 돌리게 된다면 우리는 서로 구별짓는 것에서 벗어나 협력하면서 삶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대표님, 우리의 정치가 이렇게 미래 지향적이면 안 되겠습니까? 이 질문을 드리면서 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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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대표님, 저는 후천적 시각장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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