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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2019년 달력은 마지막 장만이 남았고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송년회‧신년회에 모인 이들 사이에서 매 해마다 어김없이 언급되는 문제가 있다. 바로 '빠른년생'이다. 단 몇 개월의 출생 시기 차이로 호칭 문제가 불거질 만큼 우리나라는 나이의 위계를 중시한다. 그런데 여기 무려 학생들과 반말을 사용하는 교사가 있다.

수능과 함께 찾아온 추위에 입김이 나오던 11월 18일, 노원구의 한 카페에서 이윤승 교사를 만났다. 스냅백을 쓰고 통 넓은 청바지와 컨버스 하이탑을 신은 그의 손톱에는 봉숭아물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그의 모습은 그동안 봐온 교사들과는 사뭇 달랐다.

언어는 사실 시작점
 
 < SBS 스페셜-왜 반말하세요? >의 이윤승 교사 인터뷰 장면. 이 프로그램 방송 이후 SNS에선 사제 간 반발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 SBS 스페셜-왜 반말하세요? >의 이윤승 교사 인터뷰 장면. 이 프로그램 방송 이후 SNS에선 사제 간 반발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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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여러분이 저한테 반말해주면 저도 반말할게요."

이윤승 교사가 새 학기 첫 수업시간마다 꺼내는 말이다. 이화여대병설미디어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그는 학생들과 상호 반말을 사용한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틀 안에서 학생들이 지내는 문화를 함께 바꿔나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와 학생이 같은 위치에 있어야 했다.

"학생도, 교사도, 똑같은 인간이잖아요. 함께 생활하는 순간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과 동등한 존재로 만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 중 하나로 언어를 생각한 거죠."  

관계는 언어로 쉽게 규정된다. 이 교사는 우리 귀에 가장 많이 들리는 말과 호칭에서부터 변화를 시도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존댓말이든 반말이든 서로 '같은 말'을 사용함으로써 권위를 없애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다. 반말은 학생과 교사의 동등한 관계를 지향하자는 일종의 메시지인 셈이다. 이에 대해 윤예진(19) 학생은 "다른 교사와 달리 '이윤승'은 부담감 없이 만날 수 있어 좋다"며 "거리낌 없이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학교 안팎에선 이 교사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들이 존재한다. 그는 지난 4월 우리 사회의 서열 문화를 조명한 <SBS 스페셜- '왜, 반말하세요?'>편에 출연했다. 방송 전 당시 교사들은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에 대한 회의를 거쳐 SBS에 공문을 보냈다. 방송 이후에도 SNS에선 사제 간 상호 반말에 대해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교무실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한 학생이 이 교사에게 "윤승아"라고 부르면 다른 교사들이 꾸짖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학생에게 "너가 (이 교사와 반말하는) 그런 애인지 몰랐어"라며 높임말을 가르치겠다는 교사도 있었다. 
  
 < SBS 스페셜-왜 반말하세요? >의 한 장면
 < SBS 스페셜-왜 반말하세요? >의 한 장면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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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교사가 학생들과 반말을 사용하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특히 그가 엄격한 규율로 유명했던 방송반을 담당하면서 선후배간 위계질서가 사라졌다. 과거에는 후배들의 실수에 선배들이 벌을 세우기 일쑤였지만, 지금은 선후배 사이에서도 서로 '같은 말'을 사용하고, 방송 중에는 서로 존댓말을 쓰고 있다.

이제 학생들은 실수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한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마음껏 토론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된 것이다. 이전에는 위계질서에 지쳐 반 이상의 학생들이 중간에 그만두었지만, 그가 방송반을 맡은 이후 그만둔 학생은 단 한명도 없었다.

"사실 언어는 시작점이나 마찬가지죠. 언어만 같다고 해서 동등한 관계가 되진 않잖아요. 결국 관계가 핵심입니다. 저랑 지낸 학생들이 이렇게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기도 해요. 다른 학생에게 존중의 태도를 보여줄 때가 가장 좋은 것 같아요."

학생을 '온전한 존재'로 인정하는 학교

"학생들이 생활하는 순간순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가 뒷받침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교사가 꿈꾸는 교실은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맘껏 얘기하고 대화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학교가 하나의 입시 기관이 아니라 삶의 터전으로 존재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는 학교가 학생이라는 존재의 변화를 모르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고 했다. 학교가 '학생' 자체를 대상화된 존재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 학생과 요즘 학생은 같은 '학생'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인간임을 인지하고, 교사들 역시 그들에 맞게 시도하고 바꾸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윤승 교사가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이윤승 교사가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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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는 학교의 구성원인 학생에게 더 많은 권한이 주어져야한다고 강조한다. 교사와 학생이 같은 지위로 결정에 참여해 학생들 스스로 원하는 학교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에게 의사결정권을 줌으로 학교가 그들을 인간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가 다른 교사들과의 충돌에도 '학교에서 알아서 정하자'는 대부분의 사안에 반대하는 이유다.

"뭐든지 첫발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학생을 '전인간'의 존재로 바라보는 태도부터 바뀌어야죠. 저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이게 당연한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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