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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식주의자 전범선(예비군)씨와 정태현(입영 예정자)씨.
 "군대 내 채식선택권 보장"을 위한 행동을 함께하는 채식주의자 전범선(좌)씨와 정태현(우)씨.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시 종로구의 한 채식 식당을 찾아 식사를 함께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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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즐겨 먹는다. 누군가 '오늘 뭐 먹지'라고 물으면 고기를 떠올린다. 삼겹살을 먹을 때는 상추에 싸 먹지 않는다. 치킨에 딸려오는 무도 안 먹는다. 볼록한 배를 매만질 때도 고기를 탓하기보단 '운동 부족이야'라며 혼잣말로 한탄한다. 누가 뭐래도 '고기는 나의 힘'이기 때문이다. 육식주의자는 아니다. 고기를 좋아하는 정도다.

하지만 최근 이런 마음에 틈이 생겼다. 지난 12일 입대를 앞둔 채식주의자를 만나고 나서부터다. 이날 그는 국가인권위원회에 군대 내 채식 선택권 보장을 요구하며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가 궁금했다. 채식을 한다니 저 멀리 우주에 사는 외계인처럼 느껴졌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고기를 안 먹고 생존할 수 있단 게 신기했다. 특별한(?) 삶을 사는 그에게 연락했다. 그가 또 다른 채식주의자를 데려왔다. 입대 예정자와 예비군 채식주의자와 한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됐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필원 센터포인트 회의실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채식] 동물 학살에 반대하다

정태현(나이를 밝히지 않았다)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군대 내 채식 선택권 보장'을 진정한 입대 예정자다. 지난 2017년 그는 서울 성수동에서 열린 채식주의자 파티에서 예비군 전범선(28)씨를 만났다. 밴드 '양반들'의 리더인 전씨는 이날 파티서 노래를 불렀다.

그 후 동물권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두 사람은 친분을 쌓았다. 이렇게 둘은 '동지'가 됐다. 그리고 '군대 내 채식 선택권 보장'을 위해 함께 싸우고 있다.

잡식주의자. 두 사람은 기자를 이렇게 불렀다. 채식주의자들이 채식과 육식을 겸하는 사람을 부르는 말이라고 했다. 찝찝했다. '잡스러운 사람'을 지칭하는 듯한 어감이라 기분을 '잡쳤다'.

생소한 단어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동물'을 '동물'이라 부르지 않았다. 앞에 '비인간'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전씨는 "종 차별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인간도 동물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동물'이라 부르는 이들은 '비인간 동물'이 정확한 표현이다"라며 "다윈주의 세계관에 입각해 종 평등을 이룩하고 동물의 고통을 줄이자는 취지가 녹아있는 말이다"라고 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을 '비건(vegan)'이라 소개했다. 고기와 생선은 물론이고 달걀과 우유, 꿀처럼 동물에서 비롯된 모든 음식을 섭취하지 않는 채식주의자다. 이들은 "두유와 두부, 과일, 견과류 등을 먹는다"라고 했다.

먼저 채식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전범선(이하 전)= "대학교 2학년 때 피터 싱어가 쓴 책 <동물해방>을 읽고 나서 채식을 하게 됐다. 생각해 보자. 사람은 사람을 때리거나 죽여선 안 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사람이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과 똑같은 고통을 느끼는 동물에게 고통을 가해도 될까? 그럴 자격과 권리가 인간에게 있을까? 피터 싱어는 이를 '종 차별주의'로 설명했다.

사람은 동물이다. '인간'이란 종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다른 종(동물)을 착취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인간이 동물에게 가하는 폭력과 학살, 착취도 정당화할 수 없다. 여기서 '동물해방'이란 개념이 비롯됐다. 이 말에 동감해 채식을 시작했다. 소고기에서 돼지고기 순으로 끊으며 단계를 높여 나갔다."
 
 채식주의자 정태현(입영 예정자)씨와 전범선(예비군)씨.
 채식주의자 정태현(입영 예정자)씨와 전범선(예비군)씨.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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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현(이하 정)= "6년 전 유튜브(Youtube)에서 동물권 활동가의 강연을 보게 됐다.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동물들이 어떻게 사육되고 죽임을 당하는지 이전에는 몰랐는데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가령, 우리가 먹는 우유를 보자. 억지로 젖소를 임신시켜 우유를 짜낸다. 송아지는 태어나자마자 인간의 손에 사육된다. 엄마 젖소는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다가 죽는다. 인간 때문에 고통당하는 동물을 보면서 혼란스러웠다.

그전까지 나름 다른 존재한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고기를 선택하면서 동물들이 고통을 당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때부터 육식을 그만두고도 살 수 있다면 끊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부터 채식을 시작했다."

두 사람은 '건강' 때문에 채식을 선택한 게 아니다. 사람이 아닌 동물 역시 인권에 비견되는 생명권을 지니며, 고통을 피하고 학대당하지 않을 권리 등을 지니고 있다는 '동물권' 때문에 채식주의자가 됐다. 그럴싸한 말에 속아 넘어간 것은 아닐까. 실천이 어렵지는 않았는지 물었다.

전= "미국에서 대학 다닐 때 채식을 시작했다. 채식 인구가 워낙 많은 나라라 식생활이 어렵진 않았다. 채식 후 체중이 10kg 빠졌으나 곧 정상 몸무게로 회복됐다."

정= "채식을 하면서 만성 비염이 거의 낫게 됐다. 피부도 좋아졌다. 체중도 관리하기 쉬워지고 배변도 훨씬 수월해졌다. 단백질이 부족할까 걱정했는데, 인바디(Inbody 체성분 분석) 측정하면 몸을 써서 먹고사는 동생보다 단백질 수치가 더 높게 나왔다."

가족과 친구 등 주변 반응이 궁금했다. 무엇보다 채식주의자로 사회생활을 하는 게 녹록지 않았을 것 같았다. 이번엔 예상한 답변이 나왔다.

전= "한국에 돌아와 법무부에서 인턴을 했다. 그때는 매일 좌불안석이었다. 한국은 미국과 달리 공동체 식문화라 그런지 불편한 상황이 많았다. 가령, 회식으로 고기를 먹으러 가서도 내 눈치를 봤다. '왜 고기를 안 먹느냐'로 시작해 '그럼 내가 고기 먹는 거는 어떻게 생각하냐'라는 질문이 쏟아졌다. 밥 먹으면서 토론할 생각도 없는데 그랬다. 서로 불편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럴 때면 밥 먹다가 배알이 꼴린다. 하하"

정= "집단주의가 강한 일터에서 사회생활을 해본 경험이 없다. 다만, 한 번은 식당에서 볶음밥을 주문하면서 달걀을 빼달라고 했다. 그런데 함께 간 상사가 '달걀 안 먹으면 나 줘'라고 말했다. 달걀 빼달라는 말을 취소했다. 근데, 프라이가 나올 줄 알았는데 달걀에 밥을 비벼서 나왔다. 나도, 상사도 난감했다."

전= "한국엔 고기를 먹어야 정력에 좋다는 근거 없는 미신이 있다. 한번은 김밥천국에 가서 김밥을 시키면서 '햄은 빼주세요'라고 했더니 이모님이 '무슨 남자가 햄을 빼'라며 마음대로 햄을 넣어주셨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인 적도 있었다. 전범선씨는 "명절에 사촌 형들과 밥을 먹다가 '여기 있는 고기가 어떻게 올라왔는지 알고 먹냐"라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다가 대판 싸웠다. 정태현씨는 "대학 때 교수님과 친구들 앞에서 동물권 발표를 한 적이 있다"라며 "직설적인 말에 듣던 사람들이 화를 냈다"라고 했다.

이번엔 좀더 예민한 질문을 던졌다.

- 편식하면 건강에 안 좋다. 채식도 편식 아닌가?

전= "편식은 영양적인 불균형을 말한다. 채식한다고 하면 밥과 김, 샐러드만 먹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건강 식단을 꾸려서 먹으면 잡식(육식+채식)보다 훨씬 건강에 좋고, 균형 잡힌 영양식을 먹을 수 있다. 물론, 한국에선 채식주의자가 편식을 하게 되는 경향은 있다. 하하"

정= "따져보면 잡식주의자도 굉장히 좁은 범위에서 골고루(?) 먹고 있다. 동물 중에서도 주로 3종류(소, 돼지, 닭)밖에 안 먹는다. 골고루 먹는다고 할 수 없다. 이런 것도 편식이다. 하하"

- 동물해방이 가능할까
 
 채식주의자 정태현(입영 예정자)씨와 전범선(예비군)씨.
 채식주의자 정태현(입영 예정자)씨와 전범선(예비군)씨.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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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곰곰이 생각해보자. 동물해방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이 운동을 흔히 노예해방에 빗댄다. 한때 미국에 노예제도가 있었다. 당시 노예는 인간이 아니었다. 착취하고 고문해도 아무런 문제가 안 되는 존재였다. 그때도 노예제 폐지를 외치는 사람들은 손가락질당했다. 비인간적이고, 잔혹한 제도라고 말하면 욕을 먹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그런 인식이 바뀌지 않았나. 노예제가 굉장히 야만적인 제도였다는 데 수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미국인들조차 추잡한 과거라고 생각한다.

현대의 동물권 운동도 마찬가지다. 인간 때문에 동물이 겪는 고통을 줄이고자 채식한다면 웃을 것이다. 불편하게 들리고 못마땅한 소리일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진보한다. 인간 종을 넘어서 비인간 동물도 폭력과 학살 착취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분명히 그때가 온다."

정= "범선씨 말이 맞다. 인간 때문에 비인간 동물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인간에겐 그럴 권리가 없다."

[군대] 채식 선택권을 요구하다

잡식과 채식의 사이는 멀었다. 서로 다름을 확인하는 대화만 오갔다. 공감하는 주제가 필요했다. 남자들이 모이면 꼭 등장하는 이야깃거리를 주제로 꺼냈다. 군대다.

내년 봄, 입대를 희망하는 정태현씨에게 먼저 국가인권위원회에 '군대 내 채식 선택권 보장'을 진정한 이유를 물었다.

정= "채식을 시작하면서 언젠가 입대하는 걸 상상했다. 그때마다 억지로 고기 먹을 생각을 하니 너무 싫었다. 그래서 '무엇이라도 해봐야겠다'라는 절박한 심정에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다. 

군대에서 채식주의자로 살아가는 방법을 알고 싶어 예비군 채식주의자 4명에게 물었다. 대답은 비슷했다. 논산 훈련소에서 한 끼를 제대로 먹은 이가 없었다. 다들 맨밥에 김만 먹었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했다. 이렇게 얻은 생존 전략이 '군대 내 채식 선택권 보장'에 대한 진정이었다."
 
 12일, 입대를 앞둔 채식주의자들이 양심의 자유와 건강권 침해 등을 내세워 국가인권위에 '군대 내 채식선택권 보장'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12일 입대를 앞둔 채식주의자들이 양심의 자유와 건강권 침해 등을 내세워 국가인권위에 "군대 내 채식선택권 보장"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정태현씨.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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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사실 입대 전 양심적 병역거부를 생각했다. 군에 가는 게 싫었다. 사람 죽이러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실제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재판을 여러 차례 방청했다. 근데 재판 과정을 보니 너무 힘들어 보여 도저히 못 하겠더라. 그래서 카투사(KATUSA 주한미군 부대에 배속된 한국군 병력)를 지원했다. 하하

논산 훈련소에 입소하면서 현실과 타협했다. 사람 죽이러 가면서 채식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비건을 포기하고 유제품과 계란은 먹는 베지테리언이 됐다. 이런데도 훈련받는 5주는 끔찍했다. 잡식주의자로 들어와도 논산 훈련소에 입소하면 배고프다. 그런데 고기 빼고, 뭐 빼고 하니 빵과 유제품 같은 부식만 먹게 됐다. 무엇보다 내가 채식을 선택한 이유가 동물 학살 반대인데 내가 고기를 먹든 안 먹든 배급량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에 무기력했다.

생각 끝에 '고기 주는 형'이 됐다. 짬밥에 고기가 나오면 거래했다. 가령, 닭백숙이 나오는 날이면, 동기들에게 닭백숙을 주고 맨밥을 받았다. 이게 알려지면서 동기들이 나를 엄청나게 좋아했다. 끼니 때마다 내 옆에 앉으려고 했다. 이때 붙은 별명이 '고기 주는 형'이다.

배가 고파 딱 한 번 고기를 먹은 적이 있다. 제육볶음이었다. 5년 만이었는데 먹고 바로 체했다. 구토하다가 의무실에 가서 누워 있었다. 몸이 아팠다. 그 이후엔 카투사에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카투사엔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단이 있었다. 계란과 우유, 과일, 땅콩버터, 샐러드바 등 밖(사회)에 있는 웬만한 베지테리언보다 잘 먹었다. 그렇게 베지테리언으로 나름 만족해하며 군 생활을 하던 어느날이었다. 
 
 29일 오전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열린 주한미군사령부 개관식에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이 참석해 내빈을 향해 경례하고 있다.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고기와 생선은 물론이고 달걀과 우유, 꿀처럼 동물에서 비롯된 모든 음식을 섭취하지 않는 "비건"이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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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총사령관 브룩스 장군이 내가 있던 부대를 방문했다. 당시 부대 여단장 통역사를 겸했다. 브룩스 장군을 맞을 준비를 하다가 여단장에게서 브룩스 장군이 비건이라는 말을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부대 사단장도 비건이었다. 

반성했다. 장군도 비건인데 현실에 타협해 베지테리언 된 나를 되돌아봤다. 군대의 목적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다. 채식의 정신과 똑같았다. 내적 갈등이 해결되니 전에 없던 애국심이 생겼다. 군 생활에 힘이 났다. 우람한 브룩스 장군을 만난 다음날 다시 비건이 됐다. 카투사에선 그게 가능했다."

[비판] 식물은 안 불쌍하다?

하지만 한국 군대는 다르다. 전범선씨의 말대로 그건 '카투사'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도발적인 질문을 했다.

- 우리는 상황이 다르다. 군대 내 채식 선택권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다. 왜 채식주의자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특별한 혜택을 줘야 하나?"

정= "나에겐 생존이 달린 문제다. 오이를 싫어하니 '오이를 군대 급식에서 빼달라'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양심과 신념으로 선택한 채식이다. 편의를 받고 특별한 혜택을 누리자고 하는 게 아니라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을 제공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전= "물론 한국 군대에선 아직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선 비건인 장군이나 국회의원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을 봐라. 같은 징집제인데, 그 나라 참모총장은 비건이다. 대한민국도 준비해야 한다. 앞으로 태현씨처럼 입대하는 비건이 늘어날 것이다. 군에서 채식 식단을 제공하지 않으면, 젊은 비건들은 굶을 것이다. 그러면 비건 군인들에게 애국심을 바라지 말아야 한다. 전투력도 떨어질 것이다. 국방부가 곧 마주해야 할 현실이다."

- 군인은 전시를 대비해 훈련한다. 전쟁이 발발해도 채식을 찾을 텐가?

정= "전쟁은 극단적인 상황이다. 전쟁이 나면 폭행과 폭언, 심지어 살인도 일어나는데 왜 평상시 군대에서는 이걸 허용하지 않나. 극한 상황을 거론하면서 따지는 건 옳지 않다."

전= "모르긴 몰라도 전쟁이 나도 미군은 채식할 수 있다. 전투식량에 채식이 있다."

- 군대는 단체생활을 하는 공간이다.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닌가? 
 
 카투사 시절의 전범선(오른쪽)
 카투사 시절의 전범선(오른쪽)
ⓒ 전범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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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방의 의무를 하기 위해 입대하는데 밥은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양심에 따라서 지키고 싶은 게 있어 채식 하겠다는데 이건 나라에서 배려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양심적 거부자도 대법원이 무죄 판결한 마당에 채식 제공이 어려운가. 인권 감수성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나라가 아니길 바란다.

그리고 '군대=단체생활'이란 생각은 북한식 사고다. 북한군처럼 집단주의 의식을 갖고 군 생활을 하라는 것이냐. 미군은 안 그런다. 채식주의자들의 신념을 지켜주면서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다. 이라크에 파병 가서 싸우는데, 나라에서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단이 공급된다고 상상해봐라. 애국심이 저절로 솟아날 것이다."

정= "범선씨 말에 동의한다. 거듭 말하지만 군대 내 채식 선택권은 내겐 생존 문제다. 한 사람의 양심과 신념을 지켜달라는 것이다."

- 풀떼기만 먹고 힘든 훈련을 제대로 받을 수 있겠나?

정= "평창 올림픽 때 피겨스케이팅 금메달과 동메달을 딴 메건 두하멜(Meagan Duhamel)은 비건이었다. 마이클 타이슨도 비건이었다. UFC(미국 이종격투기) 선수 중에도 비건이 있다. 이렇게 운동 선주 중엔 채식주의자가 많다. 아놀드 슈왈제네거도 비건이다."

전= "인간보다 힘센 고릴라와 황소, 말, 코끼리 등은 모두 채식을 한다. 채식한다면 샐러드만 먹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육식을 거부하는 것이다. 해산물을 먹어도 채식주의자다."

- 채식까지 하려면 국방 예산이 늘어난다.

정= "나라가 불렀으면, 나라가 책임져야 한다. 몇십억 원의 예산을 투입할 정도로 현재 채식주의자 군인이 많은 게 아니다." 

전= "고기보다 두부가 비싼가? 예산으로만 말하자면 지금처럼 잡식 식단을 모두 채식으로 바꾸면 예산을 훨씬 아낄 수 있다."

- 식물은 안 불쌍한가?
 

전= "자주 듣는 말이다. 그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다시 한번 이야기 한다. 채식하는 이유는 동물들이 인간과 똑같이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식물은 고통을 느낄 수 없다고 한다. 고통을 느끼는 건 인간과 동물뿐이라고 한다."

정= "인간이 삶을 유지하기 위해선 다른 종의 희생이 무조건 필요하다. 채식은 절대 선을 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에 의한 다른 종의 고통을 최소화 하겠다는 것이다. 식물이 고통을 느낀다고 해도 채식하는 게 맞다. 

구제역과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등으로 생매장 당하는 돼지들이 많다. 이들을 생매장 하는 인간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발버둥 치는 돼지가 아니라 토마토와 참외를 묻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적어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범선씨, 지금 입고 있는 재킷과 신발 모두 가죽 아닌가?

전= 다들 그렇게 오해하는데 모두 비건 제품들이다. 
 
 채식주의자 정태현(입영 예정자)씨와 전범선(예비군)씨.
 채식주의자 정태현(입영 예정자)씨와 전범선(예비군)씨.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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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 채식을 약속하다

두 사람을 탈탈 털려고 했던 인터뷰는 반대로 기자가 탈탈 털리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 두 사람에게 '채식은 OO이다'라고 한다면?

전= "축산업 불매운동이다. 먹느냐, 안 먹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소비의 문제다. 고깃집에 가서 고기를 사왔다. 그리고 이걸 안 먹는다고 채식한다고 말할 수 없다. 고기를 소비하는 그 자체가 공장식 축산업을 지지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채식은 공장식 축산에 대한 거부다."

정= "생존과 건강 그리고 권리다. 먹지 못하면 죽는다. 건강도 안 좋아진다. 군에서도 죽지 않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 그걸 요구할 권리가 나에겐 있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 "군대 가서 채식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하"
전= "태현 동지가 건강하게 제대했으면 좋겠다. 나처럼 타협하지 말고, 신념과 양심에 따라 채식주의자 군인으로 건강하게 제대하길 바란다. 하하"

이날 저녁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이슬람권 국가 출신 한 다문화가정 부모가 "아들이 군대 갔을 때 차별당할까 걱정된다"고 하자 이렇게 답했다.

"이슬람의 경우에 음식이 특별하다든지, 불교 국가의 경우 채식 하는 경우… 그 분들에 맞는 식단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그분들을 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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