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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게임회사 외주 일러스트레이터가 3년 전 페미니즘 지지글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일러스트 작업에서 17일 퇴출됐다. 특히 게임회사 측이 퇴출 사유로 '사회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작가 리스트'를 언급해 게임업계 내에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도 불거졌다.

2016년 넥슨의 성우 김자연씨가 SNS에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올렸다는 이유로 퇴출된 이후 게임 업계가 달라진 게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와 함께 게임 회사가 복수의 일러스트레이터들의 SNS 계정을 단속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확인됐다.

"이런 식이라면 게임 업계는 망할 것"
 
 게임 아르카나 택틱스 관련 이미지
 게임 아르카나 택틱스 관련 이미지
ⓒ T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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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넥슨 사태' 당시 일러스트레이터 A씨는 SNS에 "김자연 성우를 지지합니다. 넥슨 보이콧"이라는 게시글을 올렸다. 이를 3년이 지난 뒤인 최근 모바일 게임 아르카나 택틱스의 유저들이 찾아내 게임회사 T스튜디오 공식 카페 등을 통해서 항의한 것이다.

T스튜디오 측은 17일 오전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려 "외주 전 사회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작가 리스트를 찾고 그 작가들을 제외하고 섭외했는데 민감한 부분에 대해 신중하게 선정이 되지 못했다"며 "대단히 죄송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저들에게 "조금이라도 문제의 여지가 있을 시 해당 일러스트를 교체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대해 T스튜디오는 다시 "소위 '블랙리스트'를 본 적도 만든 적도 없다"며 "'리스트'라는 잘못된 표현을 사용해 오해를 발생시켰음을 인정하고 상처받으신 분들에게 사과드린다"고 재공지를 냈다.

T스튜디오는 <오마이뉴스>에 문자를 보내 "관련 리스트는 본적도 만든 적도 없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어 "문제의 소지가 있었던 작가 분들은 가급적 제외하고 섭외를 진행하려 했다. 부디 오해하지 않아주셨으면 한다"고 밝혔다.

일러스트레이터 A씨는 18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17일 오후 7시경 최종적으로 일러스트를 교체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3년 전부터 여러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부당하게 잘리는 걸 많이 봐왔고 그 차례가 내게도 왔구나 싶었다"고 심경을 밝혔다.

A씨는 "사실상 2016년 넥슨이 만든 관행을 따라간 것"이라며 "(T스튜디오 역시) 다른 사례를 쫓아서 '남들도 하니까 이렇게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A씨는 국내 게임 업계를 우려했다. A씨는 "다들 잘려서 국내에서 밉보이게 되면 프리랜서로 해외 등으로 빠져나가거나 게임업계가 아닌 만화 등 다른 쪽으로 인력이 계속 빠지게 돼 다 죽는 행위다"라고 말했다. 이런 식의 사태가 반복된다면 결국 게임 업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주장이다.

'밥줄' 끊긴 일러스트레이터 "있다"
 
 18일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에 '게임 업계 일러스트레이터/웹툰 작가 페미니스트 사상검증 블랙리스트 피해 복구를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와있다.
 18일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에 "게임 업계 일러스트레이터/웹툰 작가 페미니스트 사상검증 블랙리스트 피해 복구를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와있다.
ⓒ 청와대 국민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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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게임 업계 일러스트레이터/웹툰 작가 페미니스트 사상검증 블랙리스트 피해 복구를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글도 올라왔다.

게시글에 따르면 "2016년 SNS 상에서 페미니즘에 관련해 목소리를 냈던 여성 웹툰 작가/일러스트 작가들은 현재 국내 게임 업계 수주가 전무한 상황"이라고 적시돼 있다.

<오마이뉴스>가 확인한 결과, '넥슨 보이콧'을 했던 일러스트레이터들은 2016년 이후 한국 게임회사로부터 일감을 받은 적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페미니즘을 적대시하는 남성 유저들로부터 항의를 받기 싫은 게임회사들이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러스트레이터 B씨는 2016년 김자연 성우가 페미니즘 티셔츠 인증으로 게임 내 목소리가 삭제되자 이에 반발해 SNS 상에서 김자연 성우를 응원하면서 넥슨 보이콧을 시작했다.

이를 '괘씸하게' 생각한 유저들은 해당 B씨의 자음만 따서 "이 작가 웹툰 내려주세요" "이 작가 작품 보기 싫어요"라고 게임회사 게시판 등에 요구했다. B씨의 SNS에도 '항의 악플(악성댓글)'이 쏟아졌다.

B씨가 그려놨던 일러스트까지 다른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으로 교체됐고 곧 공개될 예정이었던 그림은 공개되지 못했다. B씨는 악플에 시달리다가 유저들 70명 정도를 고소하는 것으로 사태를 잠시나마 일단락지었다.

이른바 '넥슨 사태' 이후 B씨는 한국 게임 회사로부터 단 한 번도 외주 요청을 받지 못했다. 현재 B씨는 중국 업체의 일러스트 일을 받고 있다. B씨는 현재 피해를 입은 다른 일러스트레이터들과 함께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은 상태다.

B씨는 "중국 쪽에서도 일이 들어오지 않는 분들은 다른 직업을 찾고 계신다. 그 당시('넥슨 사태') 게임업계 쪽의 일이 끊긴 분들은 내 주변만 해도 10명 가량 된다"고 말했다.

"문제 생기면 우리는 보호 못한다" 충고 듣기도
 
 컴퓨터 게임을 하는 이미지(기사와는 상관 없습니다)
 컴퓨터 게임을 하는 이미지(기사와는 상관 없습니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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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정도의 경력을 갖고 있는 한 일러스트레이터 C씨는 <오마이뉴스>에 "그때 그때 일을 받아서 하는데 10건이면 8건 정도 계약서를 쓰기 전에 '공개 트위터 계정이 있느냐'고 묻는다"라고 말했다.

C씨는 "'요즘 문제가 많아서 확인해야 한다'고 하길래 예전에 만들었던 유령 계정을 보여줬고 계약서를 쓸 수 있었다"며 "이후로도 'SNS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든가 '앞으로 이 업계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사담계(사사로운 이야기를 하는 SNS 계정)'를 만들지 말라'거나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충고를 듣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어 C씨는 "SNS 자체를 하지 않는다면서 처신하고 있지만 공개적으로 계정을 밝힌 분들이 얼마나 많은 불이익을 받고 있을지 느낄 수 있었다"고 토로했다.

게임 업계는 이른바 '퇴사자 관리'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 게임개발회사에서 퇴사한 디자이너 D씨는 회사로부터 "(SNS 게시글을) 지우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말했다.  D씨는 '넥슨 사태' 때 이미 퇴사한 상태였지만 이 게임회사는 남성 유저들의 항의를 받고 D씨에게 연락했다.

D씨에 따르면, 해당 회사는 "동료들을 위한 예우"를 언급하면서 성우 교체 언급 게시글을 삭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D씨는 이러한 압력에 못 이겨 결국 글을 삭제했다. 그는 "내가 글을 삭제한 걸 두고 남성 유저들이 커뮤니티 내부에서 자축했다"고 말했다.

"안티 페미니즘 유저들에 휘둘려서는 안 돼"
 
 넥슨이 성우 교체 사유로 든 김자연 성우의 트윗
 넥슨이 성우 교체 사유로 든 김자연 성우의 트윗
ⓒ 김자연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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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일하는 한 종사자는 "애니, 만화, 게임 등 콘텐츠 업계에서 유독 '사상검증'이라는 이유로 일자리를 잃는 여성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 종사자는 "아르카나 택틱스의 교체된 이미지를 보면 어떤 일러스트레이터가 교체됐는지 파악이 가능하다. 특히 콘텐츠 업계는 좁아서 한두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이기 때문에 다른 회사의 일을 받기는 어렵고 직접 유저들이 작가들 SNS에 악플을 달기도 한다"고 말했다.

결국 게임 업계가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게임개발자연대 김환민 대표는 "안티 페미니즘 유저들의 블랙 컨슈밍(악성 소비자)에 휘둘려서 얻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걸 게임회사들도 알고 있다. 이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글로벌 트렌드에 따라 다른 지향점을 찾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환민 대표는 "(T스튜디오의 경우) 빨리 대응을 했지만 그럼에도 논란이 가라앉지 않았다. 3년 전만 해도 빨리 대응을 하면 유저가 유입되고 매출이 반등했는데 이제는 악재가 된 것"이라며 "넥슨이 선택을 잘못한 뒤 유저들에게 승리의 경험이 생기고 말았다"고 진단했다.

(관련 기사: "페미니즘 지지하지 않는다 말해달라" 21세기 한국 게임회사들의 요구사항 http://omn.kr/r9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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