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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도 '아버지'란 말보다는 '아빠'라는 말이 좋다. 친근하고 정감 있는 단어 '아빠'. 나에게 '아빠'하면 가장 처음으로 떠오르는 기억은 햇살이 밝았던 어린 날의 한 장면이다.

아침에 출근한 아빠를 하루 종일 기다리며 '아빠는 언제 오나, 언제 오나' 목을 빼고 기다리던 여섯 살의 나는 문 밖에서 들리는 남자 목소리에 "아빠다"를 외치며 쏜살같이 뛰어나곤 했다. 그저 집 앞을 지나가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인 것을 알고 잔뜩 실망하여 입을 삐쭉거린 채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날 아빠와 어떤 식으로 감동의 상봉을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하지만 빼곡히 들어찬 수많은 보통의 날 중에서도 그 순간의 기억은 단단하고도 켜켜이 쌓인 시간이 무색하리만큼 선명하게 내 기억에 새겨져있다. 여섯 살짜리 막내딸이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태산같이 크고 젊은 아빠는 이제 일흔 넷이, 멋모르고 쪼르르 아빠 뒤만 쫓아다니던 작은 아이는 어느덧 마흔을 넘겼다.

무릎이 아픈 엄마는 오래 걷는 것이 힘들어서 안 되고, 35년간 살았던 동네를 떠나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매일 만날 동네친구가 있으신 것도 아니라, 아빠는 혼자서 매일 한 시간씩 동네를 걸으며 운동을 하신다.

여기 저기 구경을 한다 해도 혼자 하는 운동이 무료하셨는지 오늘 탁구와 당구를 배울 수 있는 동네학원에 구경을 다녀오셨다고 한다. 몸이 불편하신지라 탁구와 당구는 치실 수 있는지, 같이 배우실 만한 또래 어르신들은 있는지 걱정도 되고 궁금하기도 하다.

그런데 왠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빠의 목소리가 영 신통치 않다. 나이도 많은데 혼자 배우러 다니는 겸연쩍음은 둘째 치고, 병을 앓고 계셔 젊을 때처럼 팔을 자유자재로 휙휙 움직이기가 불편하시니, 다니고는 싶은데 용기가 나지 않으시는 모양이다.

"당구는 몸을 많이 쓰지 않으니 괜찮을 거 같기는 한데 해야 할지 말아야할지 마음이 갈팡질팡해."

한껏 풀이 죽은 아빠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저릿하다. 내가 대학 새내기이던 1990년대만 해도 대학에 입학한 남학생들은 당구를 배우는 것이 스무 살의 통과의례라도 되는 양, 십중팔구 당구장에 출석도장을 찍곤 했다.

수업료는 학교가 아니라 당구장에 내야하는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돌던 시절, 문득 대학에 다녔던 아빠는 왜 당구를 치지 않았는지 궁금해졌다.
 
 읍내에서도 한참이나 들어가야 나오는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란 아빠가 대학에 다니는 건 마을의 경사였지만, 가난한 형편에 당구 같은 취미는 호사스러운 일이었단다.
 읍내에서도 한참이나 들어가야 나오는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란 아빠가 대학에 다니는 건 마을의 경사였지만, 가난한 형편에 당구 같은 취미는 호사스러운 일이었단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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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대학 때 왜 당구 안 배웠어요?" 간단명료한 아빠의 대답은 "돈이 없어서"였다. 읍내에서도 한참이나 들어가야 나오는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란 아빠가 대학에 다니는 건 마을의 경사였지만, 가난한 형편에 당구 같은 취미는 호사스러운 일이었단다.

돈이 없어 당구를 못 쳤다니, 그 말을 들었을 당시에는 꽤나 충격적이었지만 다들 어려운 시절이니 그랬겠거니 하고 가볍게 넘겨버렸는데... 이제는 생활에 여유도 생기고 시간도 많아졌건만 당구 앞에서 또다시 아빠를 주춤거리게 만드는 무심한 세월이 야속하다.

'아빠도 나이를 드셨구나'를 깨닫기 시작하면서 아빠를 생각하면 괜스레 짠해지곤 한다. 내가 아빠의 보호자가 되어 병원을 가야할 때, 얼마 전에 알려준 핸드폰의 기본적인 기능을 잊어버리셨다며 몇 번이고 다시 알려드려야 할 때, 친구분들과 여행을 다녀오신다는 말에 다치지 않고 잘 다녀오셔야 될 텐데 걱정부터 앞설 때, 어느덧 자식들이 아빠를 지켜드리는 울타리가 되어야 함을 실감할 때 왠지 모르게 서글프고 마음이 시리다.

한때는 꼬마 아이의 세상 전부와 같았던 슈퍼맨 아빠는 당신의 청춘을 전부 자식에게, 가족에게 쏟아 붓고 이제는 노년의 삶을 살고 계신다. 그리고 장성한 자식들은 젊은 아빠가 우리를 지켜줬듯이, 아빠의 건강과 안부를 걱정하며 아빠를 지켜드린다.

하지만 노년의 삶을 살고 계셔도 아빠는 아빠다. 나에게 아빠는 영원히 내 뒤에서 나를 든든히 지켜주는 태산 같은 존재이다. 그렇게 아빠와 나는 서로에게 기둥이 되어 흔들리거나 쓰러지지 않게 서로를 받쳐주고 있다.

한평생 한 가정의 가장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오시다 아이들은 제각기 제 인생을 찾아 떠나고, 이제는 엄마와 단출히 황혼의 삶을 살아가는 일흔 넷 아빠의 마음이 어떠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마흔이 된 후에야 마흔이던 부모의 마음을 조금 알 것도 같으니, 내가 일흔이 되면 지금 아빠의 마음을 그때는 알 수 있을까. 다만 치열하게 살던 젊은 날보다 편안하고 행복하게 일흔의 삶을 즐기셨으면 한다. 혹여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이 드신다면 우리 3남매의 사랑으로 그 마음을 메워드리고도 싶다.

젊은 날의 아빠가 좋아하던 '아빠의 청춘'이라는 노래처럼, 아빠는 오늘 이 순간에도 청춘을 살고 계신다고, 난 믿는다. 비록 새싹의 싱그러움은 아니어도, 한창 푸른빛이 절정에 오른 8월의 녹음은 아니어도, 아빠만의 색깔로 만들어낸 짙고 농익은 푸른 청춘의 오늘을 아빠는 살고 있다.

느지막이 당구를 시작하든, 걷기 운동에 더욱 박차를 가하든 난 언제나 아빠 편이다. 아빠가 평생 나의 인생을 응원해줬듯, 나도 아빠의 살아온 청춘을, 앞으로 살아갈 청춘을 열렬히 응원할 거다. 아빠가 부르시던 '아빠의 청춘'이 자꾸 귓가에 맴돈다.

나에게도 아직까지
청춘은 있다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
브라보 브라보
아빠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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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꿈을 꾸는, 철없는 어른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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