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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시 가와바타도리 로쿠조(六条) 길가에 있는 순교자 기념 비석을 찾았습니다. 1619년 도쿠가와 히데타다(徳川秀忠, 1579.05~1632.03)의 명령으로 그때 가톨릭교회를 다니며 신앙심을 가진 신자 55명을 처형했습니다.
 
           교토 순교자 기념 비석의 앞뒤 모습입니다.
  교토 순교자 기념 비석의 앞뒤 모습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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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년 일본 기독교인 수는 75만 명쯤 이었다고 합니다. 일본 기독교 역사에서 순교자 수는 4만 명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이름이나 처형된 장소가 알려진 순교자 수는 5천 명 정도입니다.

1981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나가사키를 찾은 것을 기회로 순교자 시복 운동이 시작되어 일본 전국 여러 곳에서 대표하는 순교자 187명을 뽑아서 2008년 11월 24일 시복식을 열었습니다. 시복(諡福, Beatification)은 가톨릭교회에서 성인에 버금가는 지위를 얻는 것입니다.

2008년 시복식에 포함된 187명 가운데 교토에서 순교를 당한 신자 55명이 들어있습니다. 이들이 처형된 가와바타도리에 순교자 비석을 세워서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때 교토 순교자들은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되었으며 어린아이 3명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순교자 기념 비석 앞에서 기원을 하고 있습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순교자 기념 비석 앞에서 기원을 하고 있습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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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역사에서 성경의 가르침을 여러 곳에 전하면서 많은 곳에서 순교자가 나왔습니다. 일본에서도 서양인에게 문호를 개방하여 교류와 무역을 펼치면서 더불어 기독교 선교사들도 들어왔습니다. 선교사들과 당시 정치인들이 서로 이익을 도모하면서 좋은 관계를 맺은 적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고 대립하면서 정치적으로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

나가사키를 비롯한 일본 여러 섬에는 지금도 섬에 숨어서 기독교 신앙을 지킨 많은 유적지가 남아있습니다. 교토 시내에서도 순교자가 나왔다는 것은 교토에도 많은 가톨릭 신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교토 순교자 비석을 찾아가는 데는 오사카 교구에서 일하시는 윤요한 신부의 안내를 받았습니다.)
 
 교토역에서 출발하여 교토 순교자 기념 비석을 찾아가는 길 1280m입니다.
 교토역에서 출발하여 교토 순교자 기념 비석을 찾아가는 길 1280m입니다.
ⓒ 야후제펜 지도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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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박현국 시민기자는 교토에 있는 류코쿠대학 국제학부에서 우리말과 민속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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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2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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