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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남편과의 불화를 토로했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녀는 남편을 죽일 수는 없지만 확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 섬뜩한 말에 놀라 애써 농담처럼 흘려 넘기려 하니, 그녀는 다시금 진지하게 말했다.

"나 진심이야. 남편 퇴근이 늦어지면 생각해. 사고라도 나서 못 오는 거면 좋겠다고."

부부간의 일을 타인이 어찌 알 수 있으랴. 하물며 일년에 한 두번 만날까 말까 한 내가 그들 일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정말 그러하다면, 그 정도로 파괴적인 생각에 사로잡힐 정도라면, 다른 길을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녀는 단호했다. 

"아이 때문에 지금은 절대 못 헤어져. 내 아이를 결손가정에서 자라게 할 순 없잖아." 

결손가정이라니. 알지만 사용해본 적 없는 그 단어에 심장이 덜컹했다. 결혼도, 이혼도 당연히 신중할 일이다. 그러나 편견으로 인생의 선택지를 축소시키고 스스로를 옭아매는 것이 현명한 걸까. 또한 그 편견은 과연 그녀 자신에게만 향할까. 나는 그녀를 좋아하지만, 조금의 의구심이 생겼다.

친정 식구들마저 이혼을 고려해보라고 조언했음에도 그녀는 흔들림 없이 확고했다. 하루하루가 지옥이라는 그녀에게 나는 위로만 건넬 뿐 다른 말은 할 수 없었다. 건강한 조언과 지나친 오지랖, 나는 그 경계가 어려워 종종 혼란스럽다. 

아이의 성장이 끝난 뒤, 먼 훗날의 이혼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버렸다는 그녀. 무엇이 이토록 그녀를 가두고 있는가. 그녀의 결심을 순수하게 응원할 수만은 없어서 내내 마음이 착잡했다. 
 
 <이상한 정상가족> 책표지
 <이상한 정상가족> 책표지
ⓒ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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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정상가족>의 저자 김희경은 한국사회에 굳건히 뿌리내리고 있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주목한다. 책에 따르면, 이는 결혼제도 안에서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을 이상적 가족의 형태로 간주하는 사회문화적 구조와 사고방식을 말한다. 

정상성이 너무도 강조된 나머지 그에 벗어난 가족 형태는 '비정상'으로 간주되어 차별의 대상이 되고 만다. 저자는 한국의 많은 사회 문제를 연결하는 하나의 단어로 '가족'을 꼽는다. 
 
"늘어나는 비혼과 저출산으로 가족 해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나는 가족 해체보다 여전히 더 큰 문제는 가부장적 질서를 근간으로 한 완강한 가족주의라고 생각한다. 가족의 형태가 급변하는 현실과 달리 사람들의 의식과 제도에는 여전히 가족주의와 그것의 강력한 작동방식인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깊게 스며들어 있다."(9쪽, 프롤로그)

2016년 한국의 출생아 수는 인구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고 한다. 너나 할 것 없이 저출산을 걱정하는 것이 놀라운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놀라야 할 사실은 이것이 아닐까. 

같은 기간 동안 302명의 갓난아기가 길바닥과 베이비박스에 버려졌다고 한다. 그 기간 동안 해외로 입양된 아이는 334명. 2016년까지 한국에서 태어나 해외로 입양된 사람은 총 16만 6,512명에 이르며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아이를 해외로 입양 보내는 유일한 나라다.

영유아에 국한하지 않고 18세 미만의 아이들로 확장시켜 보면, 그해 부모에게 버림받아 시설 및 위탁가정 등으로 간 아이들이 4,503명으로 하루 평균 12명 이상이었으며, 학대를 당해 숨진 아이는 한 달 평균 세 명 꼴이고, 아동학대 판정을 받은 경우만 해도 하루 평균 51건이라고 한다.

아동학대의 80% 이상은 집에서 일어났다. 즉,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보호자, 아이의 친권을 가진 사람이 가장 아이를 학대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라는 것. 이것이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한국의 또 다른 얼굴이다. 그 안에서 가장 억압받는 것은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인 것이다. 

영아 유기 사건을 알리는 기사에서는 입을 모아 '비정한 모정' 운운하지만, 이것이 과연 각 개인의 문제일까. 2016년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국민의 절반이 혼전동거에 찬성하면서도 혼외출산에 대해서는 75.8%가 반대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회 정서 속에서 미혼모는 가족규범의 일탈자로 낙인찍히기 쉽다. 2016년 국내외 입양된 아이들의 92%가 미혼모의 아이들이라는 것은 놀랍지 않은 결과다. 이것이 진정 저출산, 심지어 국가 소멸마저 우려하는 한국의 바람직한 모습일까. 

출산율이 높은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가장 큰 차이는 혼외출산의 비율이라고 한다. 프랑스, 스웨덴 등은 혼외출산이 전체 출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한국은 겨우 1.9%. 조사 대상 42개국 가운데 제일 낮은 수치이며 세계 최하위권이다. 이 엄청난 격차에 나는 숫자를 재차 확인해야 했다.

혼외출산에 대한 차별과 멸시가 없고 양육을 지원하는 정부 정책이 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할까. 저자는 아이가 반드시 친엄마, 혹은 원가족에게서 자라야 행복하다는 것이 아니라 여성 스스로 출산과 양육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함을 주장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미혼모는 어머니일 수 있는 기회를 박탈 당했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근대화 과정에서 대개 집단주의가 약화된 데 반해, 한국에서는 직계가족 중심의 배타적 가족주의가 더 강력해졌다고 한다. 저자는 그 원인으로 한국이 압축적 근대화를 진행하는 동안 내내 유지해 온 '선 성장, 후 분배' 정책 기조를 지적한다.

사회 안전망이 없는 상황에서 개인이 기댈 유일한 언덕은 가족이었다는 것. 오직 살아남기 위해 가족은 더욱 뭉쳐야 했다. 국가는 생로병사의 모든 사회적 책임을 가족에게 떠넘겼다. 당장 생존이 목표가 되어버린 가족 안에서 구성원의 개별성은 고려되지 않았고, 밖으로는 가족의 다양성이 존중되지 못했다. 

그렇게 강화된 가족주의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그 범위 밖에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로 나아갔다. '2016 OECD 사회지표' 중 사회통합성을 보여주는 타인 신뢰도, 정부 신뢰도, 사회 관계는 35개국 중 24-29위를 오가는 바닥 수준이었다고 한다. 타인과 사회에 대한 불신과 배타적 태도가 공공의 행복을 저해할 것이라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주력해야 할 과제로 공공성의 강화를 주장한다. 가장 작은 사회 공동체인 가족, 그 안에서도 제일 약자인 아이들을 제도적으로 보호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 이로써 개인과 공동체의 평화로운 공존의 길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 같아서는 책의 모든 내용을 옮기고 싶을 정도였다. 지금의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제언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저출산이 우려된다면 여성을 출산 도구로 바라보는 시각일랑 이제라도 집어던지고 자발적으로 아이를 낳고 키우고 싶어지는 사회, 아이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야만 한다.

공공성의 강화와 함께 각 개인은 자신의 편견을 돌아볼 일이다. 그 편견이 나 자신과 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는 친구들이 어떠한 삶의 모습을 선택하든 지지할 것이다. 이것이 내 삶을 존중받을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곁엔 확실하고 실질적인 지원군으로서 국가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려고 만든 게 국가 아니었던가. 그리하면 '자율적 개인들의 열린 공동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상한 정상가족 -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김희경 지음, 동아시아(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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