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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에, 귀한 달래를 보았다. 많이 담은 건 이천 원, 적은 건 천 원이라는 
할머니 말씀에 달래 천 원어치를 샀다.
 가을에, 귀한 달래를 보았다. 많이 담은 건 이천 원, 적은 건 천 원이라는 할머니 말씀에 달래 천 원어치를 샀다.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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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가까운 시골오일장에 갔다. 장구경을 좋아하는 나는 딱히 살게 없어도 종종 시골장에 간다. 아침저녁으로 부쩍 쌀쌀해졌지만 한낮의 도타운 햇살이 내려앉은 시골장은 건강하고 푸근하다.

상인들의 걸쭉한 입담에도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일상이 묻어 있다. 그들의 얼굴과 손에는 신산한 삶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 있지만 잰 몸놀림에서는 힘겨움보다 고단한 삶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여유로움마저 느껴진다.

반짝반짝 윤기가 나는 고등어를 파는 아저씨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섰다. 나도 잠시
멈춰서서 익숙하게 고등어를 다듬는 아저씨의 재빠른 손놀림을 구경한다. 한쪽에서는 부추전과 호박전이 노릇노릇 익어가고 더운 김이 솔솔 오르는 손두부와 어묵도
한껏 식욕을 돋운다.

어디선가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펑' 터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가까이 가보니 할아버지 한 분이 기계에서 꺼낸 튀밥을 봉지에 담는 중이다. 봉지를 건네받은 할머니께서 바짝 붙어 구경하는 내게 맛을 보라며 옥수수 튀밥을 한주먹 주신다. 따끈하고 고소하다. 사람 냄새 나는 시골장의 넉넉함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저만큼 푸성귀를 앞에 두고 앉아 계시는 할머니들이 보인다. 할머니들께서는 푸성귀를 열심히 다듬기도 하고 앞에 놓아 두었던 바구니를 끌어당겨 다시 보기 좋게 담기도 하며 손님들의 눈길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것저것 천천히 구경하며 가는데 뜻밖에 달래가 눈에 띄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다가가서 할머니께 값을 물어보았다. 양이 좀 많은 건 이천 원, 적은 건 천 원에 판다고 하신다. 천 원어치만 사도 된장찌개 끓이고 달래장도 해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천 원어치를 샀다. 이 계절에 귀한 달래 한무더기가 천 원이라니... 내게서 돈을 받아쥐며 고맙다고 하시는 할머니를 보며 왠지 미안해졌다.

내딛는 발걸음이 자꾸 가벼워진다. 몇 걸음 더 가니 겉절이를 해먹으면 맛있을 것같은 여리고 작은 배추잎도 있다. 한바구니 가득 담아놓고 이천 원에 사가라는 할머니 앞으로 다가가 돈을 건네고 배추잎을 샀다.

바구니에 담긴 배추잎을 한 봉지 담아주신 할머니는 곁에 놓아둔 꾸러미를 들추시더니 작고 예쁜 배추 한 포기를 꺼낸다. 그리고는 쌈 싸먹으면 맛나다며 덤으로 주신다. 가슴 깊은 곳까지 한 줄기 밝은 햇살이 들어와 비추는 것같다.

먹고 싶었던 호박전 한 장을 이천 원에 사고, 미끈하게 잘 생긴 오이도 두 개 천 원을 주고 샀다. 장에 온 김에 넉넉히 사두고 싶어서 아까 달래를 팔던 할머니께 다시 가니 다 팔리고 한 바구니만 남아 있었다.

할머니는, 이천 원에 팔던 건데 떨이니까 천오백 원만 달라고 하신다. 그리고는 내가 건넨 돈을 받고 허리춤에서 주머니를 꺼내 동전 다섯 개를 찾아 주신다. 장에서 산 것들을 양 손에 드니 부자가 된 기분이다. 앞으로 열흘 정도는 반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같다.
 
 시골장에서 산 달래로 된장찌개를 끓이고 사천 서포에서 사온 통통한 굴로 
굴전을 구웠다. 그리고 통영에서 사온 곱창김을 구워 저녁밥상을 차렸다. 
고슬고슬 지은 밥을 김에 싸서 달래장을 얹어 먹으면 그저 행복하다.
 시골장에서 산 달래로 된장찌개를 끓이고 사천 서포에서 사온 통통한 굴로 굴전을 구웠다. 그리고 통영에서 사온 곱창김을 구워 저녁밥상을 차렸다. 고슬고슬 지은 밥을 김에 싸서 달래장을 얹어 먹으면 그저 행복하다.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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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달래된장찌개를 끓이고 달래장도 만들어야겠다. 며칠 전 통영에 가서 이맘때만 반짝 나오는 곱창김을 사왔다. 고슬고슬 밥을 지어 김에 싸고 방앗간에서 짜온 참기름을 넉넉하게 넣은 달래장을 얹어 먹으면 마냥 행복해진다. 벌써부터 향긋한 달래향이 입안에 번져나간다.

시골오일장에서 칠천 오백 원으로 여유로운 마음과 넉넉한 인심을 얻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정직하게 열심히 살아간다. 사는게 힘들다고 느껴질 때면, 그리고 아무짝에도 쓰잘 데 없는 욕심이 마음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를 때면 딱히 살 게 없어도 가끔 장에 간다.

팍팍하고 힘들지만 담담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축 처져있던 온몸의 세포들이 시나브로 되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오히려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나를 찌를지도 모르는 쓸데없는 욕심일랑 장바닥에 내려놓고 장의 소박하고 건강한 일상 한 조각을 얻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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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나를 살아있게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과 객창감을 글로 풀어낼 때 나는 행복하다. 꽃잎에 매달린 이슬 한 방울, 삽상한 가을바람 한 자락, 허리를 굽혀야 보이는 한 송이 들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날마다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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