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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희 I '연속성의 마무리' 캔버스에 아크릴 182×291cm 1995
 신성희 I "연속성의 마무리" 캔버스에 아크릴 182×291cm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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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희 연속성의 마무리'전이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본관)에서 10월 31일까지 열린다. 이번이 7번째다. 신성희(1948-2009) 작가하면 우리는 '누아주(nouage, 프랑스어 동사 nouer·엮다에서 왔다)'를 연상한다. '누아주'는 그냥 캔버스에 그리는 게 아니라 캔버스를 '찢고 꿰매고 엮어' 그리는 걸 말한다. 그래서 더 역동적이고 창의적이고 실험적이다.

이번 전시는 <누아주> 회화의 전 중간 단계인 <박음질> 회화를 보여준다. 신 작가는 회화적이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 한계성을 넘어서려는 시도이다. 그런 두 가지 요소를 다 해결하고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박음질> 회화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미술에 관심이 높았고 또 예술가에 대한 열망과 호기심으로 넘쳤다. 그래서 서울예고와 홍익대 미술대 회화과에서 공부했다. 1971년 초현실주의 화풍의 <공심(空心)> 3부작으로 한국미술대상전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서 능력도 인정받는다. 
 
 신성희 I 90년대 '연속성의 마무리' 작업하는 작가의 모습
 신성희 I 90년대 "연속성의 마무리" 작업하는 작가의 모습
ⓒ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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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학부 시절 한때 휴학을 할 정도로 연극에 깊이 빠지기도 했다. 미대 졸업 후 동구여상에서 교사도 했다. 그는 1974년엔 홍익대 동창과 결혼해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그때부터 마대에 그리는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1970년대 한국화단의 '단색조' 화풍이 주류였다. 그러나 신 작가는 채색화를 하고 싶어 했다. 그 시절이 그에게는 숨이 막히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마침내 1979년 예고시절 스승인 김창열 선생의 도움으로 프랑스 미대에 입학허가서를 받는다. 다음 해인 32살의 나이로 회화의 신대륙에 발을 내딛기 위해 파리로 갔다. 처음 3년간 있겠다고 한 게 30년을 살았다. 

신성희 작품은 제1기 마대 시대, 제2기 콜라주 시대, 제3기 박음질 시대, 제4기 누아주 시대로 나눠진다. 그 시대별 특징에 대해서 간단하게나마 알아보자.

제1기 마대 회화 시대. 당시 한국화단에서 마대에 그리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단색화의 대가인 하종현 작가는 마대회화로 유명하다. 씨줄과 날줄이 그리드로 그려지기 때문에 극사실적이면서도 미니멀한 작품을 하기에 좋다. 재료의 차별성 또한 큰 경쟁력이 된다.
 
 신성희 I '연속성의 마무리' 캔버스에 아크릴 90×130cm 1996. '박음질' 시대 작품
 신성희 I "연속성의 마무리" 캔버스에 아크릴 90×130cm 1996. "박음질" 시대 작품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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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 작가는 파리시대를 시작되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는다. 이때부터 제2기에 채색한 판지를 찢어 화면에 붙이는 '콜라주'시대(1983-1992)을 시작하고, 추상화되면서 색이 강조되었다. 그리고 제3기 콜라주시대보다 더 입체감이 주는 '박음질'시대(1993-1996)를 선보였다. 마침내 콜라주와 박음질이 합쳐진 제4기 '누아주'(1997-2009)를 맞는다.
  
간담회에 같이 참가한 부인 정이녹씨 말에 따르면, 신 작가는 회화란 결국 실상이 아니고 시뮬라크르'와 같은 허상으로 봤단다. 르네 마그리트의 '이건 파이프가 아니다'와 같은 실제 파이프를 그린 게 아닌데 사람들은 그걸 파이프로 본다. 그렇게 볼 때 신 작가는 세상의 모든 물체가 3차원인데 회화만이 2차원이라 이 간극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고민이 많았단다.

이번에 전시되는 대부분 작품은 '박음질' 시대의 것이다. 캔버스에 연속적으로 가위로 자른 색 띠들이 이어 붙인다. 그곳을 재봉질하면 띠의 솔깃이 자연스럽게 솟아올라 화가의 손길이 없이도 또 하나의 공간이 형성된다. 결과적으로 누워있기만 회화가 스스로 일어서는 회화가 된다. 마치 죽음의 세력을 딛고 일어서는 부활의 사건과 같은 종교적 이미지도 연상된다.

이번 전시는 박음질에서 누아주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래서 시기를 잇는다는 '연속성의 마무리(Solution de continuité)'이라는 함축적 단어가 등장한다. 이 어휘는 1994년 프랑스 저명한 미술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P. Restany)'가 신성희 전시 서문에 쓴 말이다. 이걸 '이일(1932-1997)' 미술평론가가 번역한 것이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 되었다. 
 
 신성희 I '연속성의 마무리' 캔버스에 아크릴 55.52×162cm 1995 이번 기자간담회 참석한 정이녹 여사 가족들과 박음질하던 시대를 회고하다
 신성희 I "연속성의 마무리" 캔버스에 아크릴 55.52×162cm 1995 이번 기자간담회 참석한 정이녹 여사 가족들과 박음질하던 시대를 회고하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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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기 회화작업의 큰 특징은 작가 혼자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캔버스 천을 가위로 자르고, 거기에 색을 칠한 띠 작업을 한 후 재봉틀로 박는다. 사전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치밀하게 계산을 해야 한다. 중간에 1㎜라도 틀리면 작품이 제 모양이 안 나온다. 그래서 온 가족이 초긴장 속에 손을 맞잡아야 했단다. 우리가 미쳐 몰랐던 일이다.

누아주의 시작은 박음질 작품을 하다 보면 수북이 쌓이는 천 조각이 그게 아까워 리본처럼 묶어보다가 탄생한 것이다. 폐품을 활용하다 현대미술이 시작된 것과 그 원리와 같다.

이런 묶고 엮는 방식은 그런 발상은 확실히 한국인에게 익숙한 것인지 모른다. 어려서 우리가 시골에서 우리가 흔히 보는 짚풀문화가 아니던가. 그는 결국 한국적 생활문화를 최고급 예술로 승화시킨 셈이다. 그 과정은 절대 쉽지 않다. 이것은 한국인의 섬세한 손길 어떤 면에서 여성적이기까지 하다. 거기에 서구인의 세련된 조형미의 절묘하게 잘 어우러졌다.

여기서 신성희 작가가 갤러리현대와 인연이 있는 것은 1987년 갤러리현대 창립자인 박명자 회장이 파리에 갔다가 신 작가를 알게 되면서부터다. 또 간담회에 참가한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는 자신이 1989년 파리에 유학 갔는데 신 작가 가족과 친하게 지내면서 이 작업에 한몫 끼게 되었단다. 가끔 신 작가가 좋아하는 와인을 들고 집으로 가 응원했단다. 
 
 신성희 I '연속성의 마무리' 캔버스에 아크릴 73×61.5cm 1993 뒤면도 한치의 오차가 없도록 꼼꼼하게 계산하다.
 신성희 I "연속성의 마무리" 캔버스에 아크릴 73×61.5cm 1993 뒤면도 한치의 오차가 없도록 꼼꼼하게 계산하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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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도 인연으로 서로 얽히고설켜 있다는 말을 하지만 이 누아주의 작업이 바로 그런 속성을 보여주는 작업이 아닌가 싶다. 화엄경의 '인드라망'이라는 말이 나오지만 사실 오늘날 '인터넷망'과도 같은 것이다. 여기서도 긴밀하게 연결되는 연속성이 작동하고 있다. 신 작가가 평소 강조했던 "캔버스에 활력을 주고 싶다"는 말이 그래도 이뤄진 것이리라.

앞에서 소개한 프랑스 미술평론가 '레스타니'는 신성희의 이런 일련의 연작을 보고 "놀라운 개혁! 혁신! 고백하건대 나는 이 진동(tremblement)하는 캔버스의 천 가장자리를 바라보며 어루만지고 싶은 충동의 커다란 설렘을 갖게 한다"(1994)라며 높이 평가했다.

콜라주와 대등한 누아주 발명

결국, 이런 찢고 꿰매서 엮는 누아주 회화는 20세기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콜라주 기법의 한 단계 더 끌어올린 기법으로 높이 평가될 만하다. 이런 기법은 피카소와 브라크가 시도한 '파피에 콜레(종이붙이기)'나 잘라 붙이는 콜라주와 차별화된다. 제3의 회화라고 할까. 여기서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과 그 해결점(solution)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신성희 I '평면의 진동' 캔버스에 아크릴 132×196.5cm 2008. 이 작품은 누아주의 경향의 일면을 잘 보여주다.
 신성희 I "평면의 진동" 캔버스에 아크릴 132×196.5cm 2008. 이 작품은 누아주의 경향의 일면을 잘 보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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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회화를 시도한 신 작가는 파리에서 각광을 받았다. 그래서 파리의 엘랑꾸르트 화랑(1983), 그랑 팔레(1981, 1980), 보두앙 르봉(1997, 2000, 2016)에서 초대전을 가졌다.

이 밖에도 미국 시그마 갤러리(1993), 앤드류 샤이어 갤러리(1999, 2002)와 스위스 갤러리 프로아르타(2000, 2003, 2006, 2009, 2013)에서 5번이나 전시를 열었다. 일본 도쿄도 미술관(1976), INAX 갤러리(2002)에서도 전시가 이어졌다. 한국에서는 갤러리현대 외 환기미술관(1994), 소마미술관(2009), 단원미술관(2015) 등에서 전시를 했다.

신 작가는 마치 유언을 남기듯 "해체와 건설, 혼돈과 질서, 압축과 긴장, 당김과 뭉쳐짐의 실험은 평면에서 입체의 현실로 변화되어 우리는 바람이 오가는 공간의 문을 열었다" 또 "내 작업은 찢어지기 위해서 그려진다. 그리고 찢어지는 건 이 시대의 예술에 대한 질문이며, 그게 접히고 묶이는 건 곧 나의 답변이다"라는 명언을 남기고 2009년에 타계했다.

덧붙이는 글 | 갤러리 현대 홈페이지 http://www.galleryhyundai.com/
오마이뉴스관련기사 http://bit.ly/bQtjw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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