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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마트에 갔다가 맥주 4캔에 9800원에 혹해 충동구매를 하고 말았다. 다른 짐까지 더해져 묵직한 장바구니를 어깨에 메자 바로 후회가 밀려왔다. 집앞 편의점에서는 4캔에 만원. 단돈 이백원 아끼자고 이게 무슨 짓인가.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를 걸어가야 하거늘. 

이왕 샀으니 시원하게 마실 생각으로 기분좋게 5분쯤 걸었는데, 이게 웬 걸. 슬쩍 본 영수증에 찍힌 금액은 1만2500원. 할인이 되지 않은 것이다. 어깨는 이미 아파오는데 마트로 되돌아가기에도, 잘못된 걸 알면서 집으로 그냥 가기에도, 이도저도 미련하게 느껴질 뿐. 

에라, 전신운동하는 셈 치자 하며 마트에 다시 갔다. 계산대의 직원에게 '맥주 할인이 안 된 것 같아요' 딱 한 마디 드렸을 뿐인데, 이걸 어쩌나. 직원이 노골적으로 신경질을 내셨다. 

"제가 그걸 일일이 어떻게 확인해요? 맥주 보면 할인이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는데, 손님이 직접 확인하고 사셨어야죠!" 

이건 또 웬 날벼락. 맥주 진열대로 가자 내 실수가 보인다. 할인이 되지 않는 맥주 하나가 포함되었던 모양이다. 할인품목과 비할인품목을 굳이 이렇게 섞어서 진열해야 하는가 싶지만, 내가 어쩔 수 있나. 할인되는 맥주로 바꿔 담고 계산도 다시 하고 나왔다. 

실은 너무 무거워서 환불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직원이 행여 더 역정을 내실까 염려돼 말도 꺼내지 못했다. 찰랑거리는 맥주캔들을 양쪽 어깨에 번갈아 짊어지고 돌아오는데, 이 상황이 우스워 쿡쿡 웃음이 나왔다. 집에선 세상 똑똑한 척 다 하는 내가 어찌나 어리바리한가 말이다.

예전 같았으면 웃지 못했을 거다. 자다 말고 이불 킥 백 번 당첨이다. 충동구매를 후회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영수증 미확인을 반성하고, 직원이 역정 부분에 이르면 내 자학은 정점에 이르렀을 게 분명하다. 

내 말투가 좋지 않았나? 혹시 내 태도가 무례했던 건 아닐까? 아니면, 내가 만만해 보인 것은 아닐까? 환불을 못할 것은 또 뭐람. 대체 뭐가 무서워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답 없는 고민들로 잠 못 이뤘을 게 뻔하다. 

다행히 지금의 나는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별 일 아니라고 말하며 흘려 넘긴다. 이 변화에 스스로를 토닥이며 칭찬도 한다. 이게 뭐라고 칭찬까지 하는지 좀 우습긴 하지만, 내 스스로 칭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변화다. 

내가 아는 한, 타고나길 예민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변엔 예민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만 가득했고 좀처럼 이해받을 수 없었다. 예민함이 소심함으로 해석되는 것까진 괜찮은데, 소심함은 곧 옹졸함으로,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일쑤였다. 

타인의 평가도 억울했지만, 무엇보다 내 삶이 피로했다. 그래서 변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 중이다.  다른 사람의 표정이나 기분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굴지 말 것. 매일 같이 반성하고 자학할 일을 찾아내는 것도 그만할 것. 

오늘도 헬스장에서 락카키를 주고 받는 찰나의 시간, 직원 분의 표정을 살피고 말았지만, 뭐. 그래도 발전 중이라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불안하다고 불안해하면 더 불안해지니까> 책표지
 <불안하다고 불안해하면 더 불안해지니까> 책표지
ⓒ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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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에게 매우 유효한 책을 만났다. 인지행동요법을 쉽게 설명하고 안내하는 책, <불안하다고 불안해하면 더 불안해지니까>. 아래에 해당하는 사람들, 예민한 나의 동지들에게 딱이다.
 
"-오늘 하루 상대에게 했던 말들을 자기 전에 곱씹는 사람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끙끙대며 고민에 빠지기 쉬운 사람
 -불안이나 공포, 분노와 같은 감정에 휘둘리기 쉬운 사람"

책에 따르면, 인지행동요법은 과거의 트라우마나 성장배경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고 한다. 현재 개인이 어떻게 '인지'하고 '행동'하는지에 주목해서 감정이나 기분을 개선시키거나 고민을 해소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위험이 적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쉽다는 것. 

가장 먼저 설명되는 것은 '인지 왜곡'이다. 만약 당신이 사소한 일로 엄청 고민하거나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는 등 유난히 사건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인지를 왜곡하는 것이라는 것. 이 인지 왜곡을 어떻게 수정할지 생각하는 것이 인지행동 치료법의 원리라고 한다. 
 
"우리는 사건으로 인해 상처받는 것이 아니라 이를 어떻게 인지하느냐에 따라 상처받거나 침울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일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다른 사람에게 강요된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요."(p22)

즉, 쉽게 상처받거나 침울해지는 사람은 수많은 인지 종류 가운데 부정적인 방식을 제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를 괴롭히고, 심한 경우 병으로 발전되기도 한다. 

물론 명백한 고통 때문에 괴로운 사람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본인의 인지가 왜곡된 것은 아닌지 한번쯤 의심해보고, 문제가 있다면 바꿔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인지 왜곡이 계속된다면 사건이 해결되거나 환경이 바뀌어도 괴롭거나 우울한 상태가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추론의 오류'는 들을 때마다 뜨끔한다. 지나친 일반화, 개인화, 근거 없는 추론, 감정적 추론, 이분법적 사고, 해야 한다 사고, 과대평가와 과소 평가 등. 저자는 이 부정적 사고 패턴을 자각하고 개선할 것을 권하고, 나아가 효과적인 인지 왜곡 수정법을 설명한다. 

실생활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예가 등장해 책을 읽으며 몇 번씩 맞장구를 쳤다. 덕분에 자칫 어렵게 들릴 수 있는 인지행동요법이 비교적 편안하게 다가오고, 당장에 실천하고 싶어진다.

저자가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렇다. '복잡하게 고민하기보다 심플하게 생각하자'. 고민해도 괜찮고, 침울해져도 괜찮지만, 단순하게 고민하자는 것.
 
"과거는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스스로 선택하는 인지와 행동은 바꿀 수 있다."(p47)

명심할 일이다. 세상 모든 것을 고민하며 끙끙댈 필요는 없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막 나가자는 말이 아니라 내가 최선을 다했고 잘못한 것이 없다면 그것으로 됐다고, 나는 그렇게 받아들인다. 지나친 근심걱정은 필요없다.

오늘도 하루를 곱씹으며 잠못 이루는 모든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꼭 같은 주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자 샌드의 <센서티브> 역시 함께 추천한다. 민감한 성격으로 고통받아온 나의 동지들이 있다면, 닮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불안하다고 불안해하면 더 불안해지니까 - 인지행동 심리학이 말하는 몸에 좋은 생각법

나카시마 미스즈 (지은이), 김지희 (옮긴이), 부키(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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