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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가 쓴 우화집

한 달쯤 전 아침에 일어난 뒤 습관대로 손 전화를 열자 몇 개의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어느 택배 기사의 메시지로 늦은 밤에 택배 물건을 문 앞에 두고 간다는 것이었다. 이즈음에는 배달 물량이 많은 관계로 늦은 밤까지, 심지어는 다음날 이른 아침까지도 배달하는 모양이다.

그 택배는 다름아닌, '손주들에게 들려주는 삶의 지혜 우화'(Fables for Grandchildren) <넷째 나무와 열한 가지 이야기>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글 이영 / 그림 우나경'으로, 저자 이영(Young Lee, MBA)은 꼭 40년 전 교실에서 만났던 제자였다.

그는 미국 시키고 일리노이 대학에서 어카운팅 디렉터(Director of Accounting and Administration)로 봉직하고 있는, 여섯 자녀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는 미국에서 살면서도 연말이면 크리스마스카드를, 때때로 긴 손 편지를 이따금 보내주는 제자였다. 그래서 나는 '가연(佳緣)'이라는 연재에 그를 소개한 바도 있었다.

[관련기사 : 성자가 된 어느 제자의 이야기]
 
 <넷째 나무와 열한 가지 이야기> 겉 표지
 <넷째 나무와 열한 가지 이야기> 겉 표지
ⓒ 꿈과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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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어린이를 위한 우화다. 글 반, 그림 반으로 모두 열한 가지의 우화를 담고 있었다. 이런 우화는 한꺼번에 읽기보다는 여러 날을 두고 하나하나 되삭임질 하면서 읽는 게 좋다. 게다가 이 여름 나는 새 작품을 집필하고 있었다. 그 작품의 초고를 며칠 전에 탈고한 뒤부터 틈틈이 책을 편 뒤 오늘 아침에야 이 우화집을 다 읽었다.

나는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랐다. 그때는 6.25전쟁 직후로 책이 무척 귀했다. 심지어 교과서마저 없는 아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 시절이다 보니 대부분 시골 어린이들은 사실 우화나 동화 같은 책은 읽지 못하고 자랐다.

나는 어른이 된 다음 뒤늦게 이솝우화나 안데르센의 동화를 읽었다. 나는 그때마다 이런 책을 어린 시절에 읽었더라면 내 인생이 훨씬 달라졌을 거라는 그런 아쉬움이 엄청 컸었다.

사실 좋은 우화나 동화는 아무나 쓸 수가 없다. 최소한 쉰은 넘긴 작가, 인생의 산전수전 및 공중전까지 다 치른 이만이 쓸 수 있을 테다. 내가 아는 이영 박사는 한국에서 어렵게 대학교를 마친 다음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30여 년 시카고에서 대학생 선교활동을 하면서 틈틈이 어린이 주일학교 선생님으로, 설교자로 하나님을 섬겨왔다.

나는 그의 우화집을 읽으면서 여기에 실린 이 우화들은 저자의 그동안 삶이 농축된 이야기들이라는 사실을 금세 알 수가 있었다. 그래서 이 우화들은 더 강한 울림을 주었다.

이 책의 특징은 한글과 영문으로 이야기를 쓴 뒤 거기에 그림을 곁들여 국내 어린이뿐 아니라, 세계 각지 동포들의 자녀들에게도 들려주려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 아마도 언젠가 이 책은 아주 귀한 하나님의 복음과 같은 우화로 자리매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이 우화를 읽는 내내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낫다는 '청출어람'이라는 말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내가 한때 그를 가르쳤다는 게 이렇게 뿌듯할 수가.

서론이 길었다. 그의 책에 실린 열한 가지 우화 가운데 맨 마지막 우화인 '나뭇잎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열하나 나뭇잎 이야기(Story of Leaves)

땅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나뭇잎들

아름다운 나뭇잎들을 지닌 한 그루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나뭇잎은 서로 얘기했습니다.
자기들의 꿈과 소원들을 얘기했습니다.
모두가 땅을 내려다보며
그들은 저 밑으로 떨어지고 싶지는 않다고 얘기했습니다.

어느 날 한 소녀가 첫 번째 나뭇잎을 따서는
책갈피 속에 간직했습니다.
첫 번째 나뭇잎은 행복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나는 내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을 거야."

두 번째 나뭇잎은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온갖 것들을 보고 즐기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바람이 심하게 불 때,
두 번째 나뭇잎은 힘차게 날아서
달리는 자동차 지붕에 내려앉았습니다.


"야호, 신난다!"
두 번째 나뭇잎은 넓은 세상을 돌아다닐 일이
너무나 흥분되었습니다.
차가 움직일 때마다, 두 번째 나뭇잎은 차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온 힘으로 차를 붙들었습니다.

지붕 위로 올라간 나뭇잎
  
세 번째 나뭇잎도 땅에 떨어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나무를 붙잡았습니다.

눈이 내립니다.
하지만, 세 번째 나뭇잎은 여전히 나무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나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거야."
세 번째 나뭇잎이 거듭 다짐했습니다.

강한 바람이 불어와 세 번째 나뭇잎을
훌쩍 지붕 위로 올려버렸습니다.
세 번째 나뭇잎은 땅에는 떨어지지 않았지만
지붕 위에 갇혀서 꼼짝달싹도 못 하게 되었습니다.

네 번째 나뭇잎이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땅은 더럽고 지저분해 보였습니다.
"저곳에 떨어지고 싶지 않아."
네 번째 나뭇잎이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땅에 있는 다른 나뭇잎들이 말했습니다.
"친구야, 걱정하지 말고 이리로 내려와."

 
 저자 이영 부부
 저자 이영 부부
ⓒ 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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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통해 새로 피어난 많은 나뭇잎

나무 엄마가 말씀하십니다.
"아이야, 땅에 떨어져도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
마침내, 네 번째 나뭇잎이 용기를 내어 땅으로 뛰어내렸습니다.

땅은 위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따뜻하고 푹신했습니다.
땅은 네 번째 나뭇잎을 환영했습니다.
그곳에서 네 번째 나뭇잎은 많은 친구도 만났습니다.


네 번째 나뭇잎은 자기 몸이 점점 땅속으로
파묻히는 것을 느꼈습니다.
날이 갈수록, 네 번째 나뭇잎의 모양이 변해갔습니다.
"아, 이제 내 마지막이 가까워졌나 보다."
네 번째 나뭇잎이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띵 깊은 곳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뿌리의 목소리였습니다.

뿌리가 말했습니다.
"새 생명으로 돌아온 것을 환영해."
그리고 뿌리는 네 번째 나뭇잎을 부드럽게 안아주었습니다.
곧 나무는 다시 아름다운 나뭇잎들을
많이 만들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네 번째 나뭇잎은 자기를 통해 새로 피어난
많은 새로운 나뭇잎을 보았습니다.

넷째 나무와 열한 가지 이야기 - 손주들에게 들려주는 삶의 지혜 우화 그림책 Fables for Grandchildren

이영 (지은이), 꿈과비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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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