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읽기 전부터 사랑에 빠지는 책들이 있다. 표지가 예뻐서, 제목이 뭉클해서 등등. 독일아동청소년문학상 60주년 기념 작품집 <나는 네가 보지 못하는 것을 봐>는 표지와 제목으로 나를 유혹하더니 머리말로 홀딱 반하게 했다. 본문을 펼치기도 전에, 난 이 책을 사랑할 준비를 마쳤다.  
 
"독일아동청소년문학상은 처음부터 분명하게 국제적인 상으로 출범했다. 국가 사회주의 시대에 독일의 야만적인 행위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목도하며 의식적으로 국제적인 상을 구상한 것이다. (중략) 여러 다른 삶과 사회를 알게 될 때 비로소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자신의 삶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 스스로 결정하는 법을 배운다." (5~6쪽)

독일아동청소년문학협회 회장인 주자네 헬레네 베커 박사는 머리말에서 과거 독일의 행위를 직접 언급하고 이를 경계할 것을 말한다. 역사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돌아보게 한다. 또한 요즘 우리가 처한 현실을 생각하면, 이웃 국가의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솔직한 심정. 

그에 따르면, 독일아동청소년문학상은 1960년대 독일의 '손님 노동자' 시대를, 1980년대 이후 '다문화' 가치를 말하는데 선도적이었다고 한다. 이번 책 역시 다양한 사회 문제를 조명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문학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의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이념이 책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이 사랑스러운 점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국적과 배경을 지닌 작가들이 쓴 20편의 소설은 어느 것 하나 뺄 것 없이 흥미진진하다. 아동과 청소년을 위해 쓰였지만 나의 소중한 벗들에게 당당하게 권하고 싶다.
 
 <나는 네가 보지 못하는 것을 봐> 책표지
 <나는 네가 보지 못하는 것을 봐> 책표지
ⓒ 사계절

관련사진보기

 
'나의 여섯 번째 감각'에는 오감이 너무나 발달해 고통스러운 소녀가 등장한다. 냄새를 잘 맡고, 남달리 잘 보고, 유난히 잘 듣고, 격렬하게 느끼는 등 지나치게 민감한 감각 때문에 일상이 힘들다. 

엎친데 덮친 걸까. 살고 있는 건물에 공짜 식당, 소위 빈민 식당이 생기는 바람에 더 고통스럽다. 아빠는 식당 때문에 떨어질지 모르는 집값을 걱정하고, 엄마 역시 늘어나는 부랑자들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다. 엄마와 아빠는 마을 회의를 열어 이 식당과 부랑자들을 쫓는 법을 논의한다. 

그러던 와중, 여섯 번째 감각을 발견한 소녀. 늘상 고성으로 외치는 엄마의 어린시절이 보인다. 청각장애인인 조부모님 때문에 소리 높일 수밖에 없었던 엄마. 또한, 부랑자들에게 지나치리만큼 적대적인 이웃의 과거가 보인다. 아이들에게 놀림 받아서 고통받았던 소녀의 모습이. 

모두에게는 그만한 사정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소녀. 늘 공원도 아닌, 소녀의 집 바로 앞 벤치에서 자는 노숙인의 어린시절을 보게 된다. 소녀는 그가 어둠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그래서 밤에도 환한 가로등 밑을 찾아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소녀는 민감한 감각이 주는 고통을 무릅쓰고 그를 찾아가 손전등을 건넨다. 그가 어두움 속에서도 잠들 수 있도록. 어찌된 일일까. 소녀는 그를 돕는 동안 어떠한 냄새도, 감각이 주는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 선천적인 감각도 물리칠 만큼 기분이 좋았기 때문에. 

'분노의 땅'의 데이비드는 아빠와 함께 자유의 나라에 도착한다. 24시간, 언제나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나라, 정의의 땅으로도 불리는 그곳. 엄마와 누나는 선발대로 출발했고, 아빠는 이미 전재산을 엄마에게 보냈다.

그런데 웬일인가. 도착하자마자 가야하는 곳은 군인들이 에워싸고 있는 수용소다. 괴로움의 땅, 고집의 땅, 궁핍의 땅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하염없이 입국 절차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릴 뿐이다. 그 기다림 끝에, 심지어 데이비드와 아빠에게는 입국 불가 결정이 내려진다. 데이비드는 외친다.
 
"우리는 돈과 재산, 희망과 사랑을 엄마에게 보내도 되는데, 우리 자신은 오면 안 되잖아요. 그건 공정하지 않아요! (중략) 돈과 재산과 만질 수 없는 것들이 인간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면, 그것이 자유의 땅이라고 할 수 있나요?" (111쪽)

'태양은 여전히 거기 있다'의 아를리요는 추운 새 나라가 싫다. 따뜻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러나 알고 있다. 영원히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곳에서 벌어진 핏빛 가득한 끔찍한 일을 잊을 순 없다. 아를리요는 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고, 적응할 수 없는 이곳을 힘들어할 수밖에 없을까.

아를리요는 새 친구를 사귀고, 익숙한 태양을 본다.
 
"썰매를 언덕으로 끌고 올라가는데, 회색 구름이 갈라졌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아를리요는 그 뒤의 하늘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 거기 태양이 있었다! 태양은 흐릿하고 작고 아주 멀리 있었다. 아무튼 아주 강렬하게 빛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거기 있었다. 태양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122쪽)

내 감상을 자제하는 것은 이 작지만 거대한 책을 행여나 축소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각각의 단편은 매우 짧다. 그러니 모쪼록 서점이든, 도서관이든, 잠시 시간을 내어 한편만 읽어볼 것을 권한다. 그럼 분명 집에 데려오지 않고는 못 배길 테다.  

생각 같아서는 스무 편의 모든 소설을 소개하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그 욕심 꾹꾹 참고, '마법의 힘'을 마지막으로 소개하려 한다. 

뱅자맹은 평범한 나라의 평범한 아이로, 평범한 침대에서 일어나 평범한 식사를 한다. 모든 것이 평범해 슬퍼질 지경.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모든 것이 특별했다. 아빠는 거인, 엄마는 요정, 동생은 작은 마법사와 같았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평범해져버린 것이다.

그렇게 지치도록 평범한 어느 날, '마법의 힘'이란 주제로 글짓기를 하게 된 뱅자맹. 상상 속에서 웃고 말할 줄 아는 빨간 개를 만난 소년은, 글짓기의 힘을 발견한다. 소년에게 더이상 평범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내 마법의 힘을 발견했던 것이다. 나는 이야기를 하게 될 거다. 그날부터 그 어느 것도 평범한 것은 없을 거다."(59쪽)

이야기를 하고, 듣고, 쓰고, 읽는 순간, 세상에 평범한 건 아무것도 없다. 따지고 보면 평범하다는 말 자체가 얼마나 어렵고 모호하던가. 특별함은 우열의 개념이 아니다. 단지 우리 모두 그 자체로서 받아들여져 마땅한 고유한 존재라는 깨달음일 테다. 그 특별하다는 감각은 내 삶과 내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게 만들지 않던가. 

어린 조카들에게 몇 년 뒤 건넬 책으로 당첨이다. 우선 지금은, 어른들에게 권하고 싶다. 평범한 나날에 평범한 권태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면 특히. 

, ()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