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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드 샌드백 전' 열리는 '갤러리현대' 앞 대형 전시홍보 포스터
 "프레드 샌드백 전" 열리는 "갤러리현대" 앞 대형 전시홍보 포스터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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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현대는 내년 50주년을 앞두고 '프레드 샌드백 오방색' 전을 연다. 프레드 샌드백(Fred Sandback 1943~2003)은 브롱즈빌에서 태어난 미국작가로 예일대 철학과를 마치고 대학원에서 조각을 공부했다. 독일어에 능통한 조각가라니 흥미롭다. 상업미술가인 부친과 어려서 여러 곳을 다닌 영향인지 그는 북극 여행까지 감행한 탐험가다.


그의 이번 서울전이 특별한 건 한국에서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서울에서 그의 작품과 판화가 일부 소개됐으나 이번처럼 초기작부터 후기작까지 고루 작품을 소개하기는 처음이다. 그래서 회고전 성격을 띤다. 게다가 그의 전성기 시절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조각에 대해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그의 예술은 '최소의 것으로 최대의 것'을 표현하는 '미니멀리즘' 계열로 볼 수 있다. 이런 배경에는 당시 미국에서 이 분야의 창시자인 1928년생 '도널드 저드', 1931년생 '로버트 모리스', 1933년생 '댄 플래빈' 같은 내로라하는 선배작가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를 단지 미니멀한 작가로만 볼 수는 없다. 독보적 세계를 갖춘 개념미술가로 봐야 타당하다. 그러나 관객이 그의 천재성을 예술품으로 보는 게 쉽지는 않다. 1950년대 말 이런 작품이 발표된 건 유례가 없다. 유명미술관에는 그의 작품이 두루 소장되는 이유다.

최소의 선으로 최대의 공간 창출
 
 프레드 샌드백 I '무제(조각연구, Two-part Cornered Construction)' 아크릴 황실, 적실 1982-2006
 프레드 샌드백 I "무제(조각연구, Two-part Cornered Construction)" 아크릴 황실, 적실 1982-2006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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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이 그의 작품을 잘 감상하려면 우선 '허공에 선으로 드로잉하는 작가'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전시의 보이지 않는 이면까지 꿰뚫어 볼 수 있는 심미안이 필요하다. 그의 작품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하프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왜 그런가 했더니 그는 작품에는 무엇보다 울림이 있다. 실제로 그는 음악에 조예가 깊어 현악기를 만들어 연주할 정도였다.

이번 샌드백의 한국전 전시 제목이 '오방색'이다. 흥미롭다. 갤러리 측의 설명을 들어보니 '샌드백 재단(Estate)'은 한국에서 그의 개인전을 역사적으로 기념하고 축하한다는 의미로 이런 제목을 붙였단다.

샌드백의 '실(原絲) 조각'을 보다가 우연히 읽은 화담 '서경덕'의 글이 떠올랐다. 16세기 한국의 사상가 서경덕과 20세기 미국의 조각가 샌드백이 시대와 시공을 넘어 서로 만날 수 있다니 실로 놀랍다. 화담의 말이 잘 이해가 안 됐는데, 이를 시각화한 샌드백의 이미지를 보니 이해가 된다. 그러면 여기에서 화담의 원문을 옮겨본다.
 
"비어있으면서 비어있지 않다. 아무것도 없는 듯하지만 보이지 않는 우주의 기로 충만하다. 이는 공간적으로 무한하고 시간적으로 영원하다. 그 '작용(用)'은 내적 필연과 상황의 영향에 따라 때로 응집하고 때로 분산된다. 그런 점에서 태허는 결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진공이나 허무가 아니다." -서경덕의 태허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프레드 샌드백 I '무제' 백 고무줄 1971
 프레드 샌드백 I "무제" 백 고무줄 1971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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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백은 일반 전시장에서는 소홀히 할 수 있는 코너를 중시한다. 거기서는 벽과 벽이 만나는 곳이다. 구석이라는 면이 주는 재미는 그림자 효과를 낸다는 점이다. 공간 속에 또 하나의 공간이 만들어진다고 할까. 신비한 시적 분위기와 확장된 미적 환영도 느낄 수 있다,

샌드백을 보면서 떠오르는 작가가 또 있다. 바로 지금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한국의 '이우환'이다. 이우환은 최소의 개입으로 최대의 공간을 연출한다면. 샌드백도 역시 최소의 선으로 최대의 공간을 창출한다. 그런 면에서 통한다. 또한, 두 작가는 개념미술적이고 미니멀리즘 측면에서도 비슷하다. 또 자연과 문명 대한 성찰과 사유가 깊다는 면에서도 같다. 
 
 프레드 샌드백 I '무제(조각연구 Leaning construction)' 1974-2019, 아크릴 적실. 벽에 기대는 이 작품은 초기작 다음에 나온 것이다
 프레드 샌드백 I "무제(조각연구 Leaning construction)" 1974-2019, 아크릴 적실. 벽에 기대는 이 작품은 초기작 다음에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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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샌드백의 초기전시를 보자. 68년 예일대 미대 재학 중 독일 뒤셀도르프 '콘라드피셔갤러리'에서 첫 전시가 열었다. 다음 해는 대학원 학위전으로 뉴욕 '드완갤러리'에서 그리고 같은 해 독일 '하우스랑게'에서 전시가 있었다. 그는 밥을 잘 뜸 들여 익혀 먹듯 이틀이나 사흘간 침묵 속 조용히 의자가 앉아있다가 갑자기 일어나 작업하는 방식이란다.

그리고 그는 운 좋게 1969년 그해 서양미술사에서 전설이 된 '하랄트 제만'이 기획한 '태도가 형식이 될 때(When Attitudes Become Form)'전에도 참가했다.

당시 '베른 쿤스트할레' 관장이었던 제만은 전시에서 완성된 작품을 모아놓는 관행을 벗어나 미술의 경계를 허무는 획기적인 전시를 주도했다. 작업에서 결과보다는 그 과정과 개념을 중시했다. 그러다 보니 회화보다는 신개념의 설치, 개념, 사진, 퍼포먼스 등을 많이 소개했다. 샌드백은 그런 개념에 맞는 작가였다. 이 전시가 그에게도 좋은 자극제가 됐으리라. 

한옥과 잘 어울리는 샌드백의 '실 조각'
 
 갤러리현대 한옥 레스트랑 두가헌에 설치한 샌드백의 '선 조각' Courtesy of Fred Sandback Estate and Gallery Hyundai
 갤러리현대 한옥 레스트랑 두가헌에 설치한 샌드백의 "선 조각" Courtesy of Fred Sandback Estate and Gallery Hyundai
ⓒ Fred Sandback Es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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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번에 유족 측 제안으로 현대 두가헌에 야외작품으로 8월 31일까지 선보인다. 장소특정적인 작품이라고 할까.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우아하고 아름답고 황홀하다. 심금을 울린다. 한옥이 가진 미니멀한 선과 샌드백의 실 조각이 주는 아득함이 돋보인다. 고풍스런 한옥과 고아한 삼색 실색의 기막힌 앙상블이다. 그의 작품은 한국건축과도 잘 어울린다.

그의 이런 실 조각은 어린 시절 우리가 남녀 구별 없이 소꿉놀이 친구들이 다양한 실뜨기 놀이를 하며 놀던 시절의 판타지와 노스탤지어도 연상시킨다 .
 
 프레드 샌드백 I '무제(Vertical Corner Piece)' 1/32인치 지름의 스피링강과 고무줄 1968
 프레드 샌드백 I "무제(Vertical Corner Piece)" 1/32인치 지름의 스피링강과 고무줄 1968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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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의 몇 작품을 감상해 보자. 1968년 초기작은 코너를 활용한 것이다. 이 작품은 멀리 보면 선처럼 보이는 데 가까이 가서 보면 정사면체다. 'ㅁ'자형으로 길게 늘어져 있다. 선의 윤곽은 생각 외로 뚜렷하다. 기존 전시에서 강조하는 숭고함이나 고귀함을 생략하고 작품을 바닥에 놓아 눈높이를 관객에 맞췄다. 좌대에 작품을 올리는 기존방식과는 다르다.

아래 작품은 전시장 맨 아래층에서 2층까지 연결되어 있다. 전시장을 통째로 소통시키는 방식이다. 그러나 설치는 쉽지 않아 보인다. 여기에 쓰이는 건 삼색 실뿐이다. 이런 가느다란 실로 공간을 압도하다니 놀랍다. 이번 전시는 특별히 이탈리아 기술팀이 와서 작업했단다.
 
 프레드 샌드백 I '무제(조각연구 Three-part construction)' 아크릴 실 3색 1986
 프레드 샌드백 I "무제(조각연구 Three-part construction)" 아크릴 실 3색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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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또한 미덕은 재료의 독창성이다. 회화에서 쓰는 아크릴 물감이 아니라 여기 선 색채를 가미한 아크릴 끈을 사용한다. 물론 장소의 상황과 특성에 따라서 철사, 고무줄, 밧줄 등도 쓰인다. 설치장소에 따라 작품의 크기가 변해 '상황특정적(Situational)'이라 부른다.

이런 샌드백의 실 조각은 공간에 리듬을 준다는 점에서 음악적이다. 시각적 환각을 준다는 점에서는 미술적이다. 그만큼 공감각적이다. 가는 선이 아슬아슬하게 연결되면서 탄탄한 긴장감과 짜릿한 현기증마저 일으킨다. 그러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유쾌하게 잡아당긴다.

그리고 작가는 기존의 회화나 드로잉이나 판화라는 고정된 틀을 벗어난 대칭과 비대칭을 오가는 다각형 수직과 수평을 활용한다. 이런 조각을 작가는 인간의 몸동작과 일치한다고 봤다. 1차원의 선도 있고, 2차원의 물질적 실재감도 있고 3차원의 입체감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작동한다. 게다가 관객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면도 기존조각과는 다른 점이다.

작품에 '보행자 공간'을 만들다
 
 프레드 샌드백 I '무제(조각연구, Five-part Freestanding Piece)' 아크릴 흑실 1975-2015 상황특정적. 작품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프레드 샌드백 I "무제(조각연구, Five-part Freestanding Piece)" 아크릴 흑실 1975-2015 상황특정적. 작품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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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의 작품은 현대미술에서 강조하는 관객참여적 요소가 많다. 무엇보다 관객이 작품으로 들어가 보행이나 산책을 할 수 있다. 작가는 이걸 '보행자 공간(pedestrian space)'이라고 칭한다. 작가 아카이브를 보면 이런 아이디어를 1968년 친구와 함께 만들었단다. 조각 공간은 독점적 공간이 아니라 공유적 공간이어야 한다는 데서 착안한 것이다.

관객이 작가의 작품 안으로 들어가 걸어보면 작품과 공간, 작품과 관객, 관객과 공간 사이에서 상호 작용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런 우발적 만남이 관객을 흥분시킨다. 이런 작품이 독창적인 건 기본의 방식과 다르게 그 무게감은 줄여주면서 그 부피감을 늘려주기 때문이다.
 
 프레드 샌드백 I '무제(조각연구, Seven-part Construction)' 아크릴 흑실, 황실, 백실 1993-2019
 프레드 샌드백 I "무제(조각연구, Seven-part Construction)" 아크릴 흑실, 황실, 백실 1993-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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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작품의 선과 면과 형이 겹치질 때 묘한 구성미가 형성된다. 작가는 이에 대해 "한 줄의 실은 선 이상이다. 단순히 하나의 면을 이룰 뿐 아니라 그 경계 밖의 모든 걸 규정한다"라고 설명한다. 하긴 그게 현대적 작품이 되려면 현장에서 뭔가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

위 지하에 설치된 작품 '7개 파트 구조(Seven-part Construction)'는 유희적이고 우연적으로 공간에 침투하는 요소가 많다. 작품은 얇은 나무 막대기를 바닥에 흩트려놓은 후 한 명씩 돌아가며 다른 막대기를 건드리지 않고 그걸 빼는 픽업스틱(pick-up stick) 게임을 응용한 것이다. 아무튼, 실 하나가 이렇게 조각이 되어 공간을 무한정 확장하다니 경이롭다.

덧붙이는 글 | 갤러리 현대 http://www.galleryhyundai.com/
샌드백 아카이브 https://www.fredsandbackarchiv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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