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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북평촌 마을의 4인묘 호가장 전투에서 사망한 조선의용대원 4인의 시신이 추후 일본인들에게 훼손될 것을 우려해 호가장 주민들은 밤을 새워 100리를 가서 황북평촌이라는 마을에 안장하였다
▲ 황북평촌 마을의 4인묘 호가장 전투에서 사망한 조선의용대원 4인의 시신이 추후 일본인들에게 훼손될 것을 우려해 호가장 주민들은 밤을 새워 100리를 가서 황북평촌이라는 마을에 안장하였다
ⓒ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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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용대가 출범할 때 김성숙은 군사위원회 정치부원 외에 대원들의 사상과 교육을 담당하는 '정치조장(政治組長)'과 기관지 『조선의용대통신』의 편집에 관여하였다.

대원들은 민족주의, 마르크스ㆍ레닌주의, 자본주의 등 다양한 이념에 경도되고 있어서 이들에 대한 사상교육이 필요했던 것이다. 
운두저촌 남문 마을 남문에 조선의용대원들이 강제 징집된 조선의 청년들에게 '일본 부대를 이탈하여 조선의용대로 찾아 오라'는 문구가 남아있다. 이곳 주민들이 매년 덧칠 작업을 해 당시의 우리글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 운두저촌 남문 마을 남문에 조선의용대원들이 강제 징집된 조선의 청년들에게 "일본 부대를 이탈하여 조선의용대로 찾아 오라"는 문구가 남아있다. 이곳 주민들이 매년 덧칠 작업을 해 당시의 우리글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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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용대는 창설 후(10월 25일) 무한이 일본군에 점령되면서 광시성의 계림으로 본부를 이동하였다. 김성숙도 본부를 따라 계림으로 갔다. 계림에서 그는 일이 많았다.

"1938년 12월 3일 계림에 도착한 김성숙은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즉 대원들의 사상교육을 담당하는 한편 의용대의 기관지에 한국독립운동을 알리고 중국인의 항전의식을 고취하는 글들을 게재하였다. 그리고 계림에 주둔하고 있던 중국 각계의 요청으로 항일적인 내용의 강연을 하기도 하였다."  (주석 10)

김성숙이 '조선의용대통신'에 게재한 논설 (주석 11)
 
김성숙이 ‘조선의용대통신’에 게재한 논설 김성숙이 ‘조선의용대통신’에 게재한 논설
▲ 김성숙이 ‘조선의용대통신’에 게재한 논설 김성숙이 ‘조선의용대통신’에 게재한 논설
ⓒ 김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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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숙은 해방 후 이정식 교수와 대담에서 말한다.

△ 조선의용대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가 조선민족전선연맹을 조직했잖아요? 이 연맹을 만들고 나서 이 연맹 소속 맹원들을 전부 모아 의용대를 만들기로 했지요. 우선 중국국민당 중경지부에서 나오는 3~4명과 우리 쪽에서의 4~5명이 합쳐 10여 명으로 의용대 지도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 의용대 경비는 역시 국민당 쪽에서 나왔겠지요.

- 맞아요. 의용대의 비용은 국민당 쪽에서 내놓았지요. 그래서 제1, 제2, 제3지대까지 만들었습니다. 조선의용대는 그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밀양 벽화거리에 걸린 조선의용대 기념사진 : 사진 중 노란색으로 표시된 이가 밀양 출신 윤세주와 김원봉이다.
 밀양 벽화거리에 걸린 조선의용대 기념사진 : 사진 중 노란색으로 표시된 이가 밀양 출신 윤세주와 김원봉이다.
ⓒ 여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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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해 주시지요.

- 글쎄 뭐 자세히 말 할 것이 있나? 내 얘기는, 원래 조선의용대는 주로 국민당 강택의 돈을 얻어 쓰고 그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까 그쪽으로 가까운 세력이 있어서 우파를 이뤘다고 치면, 그 반대 세력이 좌파를 이뤘다는 뜻이지. 의용대 안의 좌파들은, 대개 그 사람들은 극단분자들로 중국공산당의 본거지인 연안(延安)과 가까웠지. 그 사람들은 임시정부라든가 하는 우익 단체는 여지없는 것으로 생각을 했어요. (주석 12)


주석
10> 『조선의용대통신』, 제3기, 20쪽.
11> 김광재, 앞의 책, 84~85쪽.
12> 『이정식 면담』, 102~103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운암 김성숙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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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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