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69년전 8월 18일, 태극기를 들고 덕적도에 상륙하는 국군을 환영했던 장소에서 다시 한번 태극기를 펼친 송은호씨. 뒤에 보이는 조그만 섬이 묵도이다
 69년전 8월 18일, 태극기를 들고 덕적도에 상륙하는 국군을 환영했던 장소에서 다시 한번 태극기를 펼친 송은호씨. 뒤에 보이는 조그만 섬이 묵도이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1950년 8월 18일 여명이 밝아오는 순간, 바다에서 거무스름한 유엔군 배들이 이 밧지름해변에 함포사격을 한 후 상륙용 보트에 올라탄 국군이 해변에 상륙하자 임배영씨가 품속에서 태극기를 꺼내 들고 환영을 나갔어요.

임배영 선배가 태극기를 들고 국군을 환영하다가도 함포 소리가 나면 바닥에 바짝 엎드리길래 내가 대신 태극기를 들고 해안에 상륙한 국군을 환영하자 지휘관인 문석수 소위가 너희들 수상하다며 군화발로 정강이를 걷어 찼습니다. 하지만 빡빡 깎은 제 머리를 보며 안심하더라고요. 그 자리에는 신분이 확실한 덕적면 어업조합전무 한상혁씨도 있었거든요."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되기 직전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국군 1개 소대가 서해 덕적도 '밧지름 해변'에 상륙한 현장을 목격했던 송은호씨의 얘기다. 필자가 송은호씨를 만난건 우연이었다.

필자는 지난 14일 서해5도를 방문하기 전 아름답다는 덕적도 구경에 나섰다. 덕적도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선착장에 내려 "어디로 갈까?" 궁리하던 차에 선착장에서 청소하는 분이 "송은호씨는 덕적도의 산 증인이니까 그분을 찾아가라"고 안내해 진리에 사는 송은호(87세)씨 댁을 방문했다.

문화해설사 이광식씨의 도움을 받아 진리에 사는 송은호씨 댁을 방문해 방문목적을 말하자 반갑게 맞이해주는 부부. 거실에는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해 받은 훈장이 걸려있었다.

덕적도를 아시나요

송은호씨는 87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기억력이 또렷해 한국전쟁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말씀해 주셨다. 당시 대한민국은 대구와 부산, 경남북을 제외한 대부분이 인민군에 점령당했기 때문에 시국은 뒤숭숭했다.

7월 30일 밤 12시경 총성 3발이 심야의 정적을 깼다. 인민군이 덕적도에 들어온 것이다. 그들은 면내 각기관을 점령하고 소위 말하는 혁명과업을 착착 진행했다. 불안한 주민들은 산에 올라가 숨기도 했다. 걱정이 된 3명(임배영, 한상혁, 송은호)은 집을 나와 '밧지름해변' 모래사장에서 잠을 잤다. 밧지름해변은 송은호씨 집에서 가깝다. 당시 유엔군 비행기와 해군 경비정들은 섬 주변을 주야로 경계하고 있었다.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맨처음 상륙한 곳은 덕적도 밧지름해변이다. 해변가에는 1950년 8월 18일 해병대가 상륙했다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표지석에서 5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자고  있었던 송은호 일행은 국군을 환영하기 위해 태극기를 들고 나갔다.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맨처음 상륙한 곳은 덕적도 밧지름해변이다. 해변가에는 1950년 8월 18일 해병대가 상륙했다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표지석에서 5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자고 있었던 송은호 일행은 국군을 환영하기 위해 태극기를 들고 나갔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1950년 8월 18일 새벽, 국군이 덕적도 상륙작전을 펼치며 함포사격을 펼칠 때 일행( 임배영, 한상혁, 송은호)과 함께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있었던 장소에서 태극기를 들고 서있는 송은호씨 모습
 1950년 8월 18일 새벽, 국군이 덕적도 상륙작전을 펼치며 함포사격을 펼칠 때 일행( 임배영, 한상혁, 송은호)과 함께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있었던 장소에서 태극기를 들고 서있는 송은호씨 모습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8월 18일 동틀 무렵. 해변 모래밭에서 잠자던 이들에게 낯선 모습이 나타났다. 거무스레한 배들이 해안에 나타나 함포사격을 시작했다. 함포 소리가 무서운 그들은 모래언덕 뒤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함포 소리가 잦아들고 국군이 모래 해변에 상륙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중학생이던 임배영씨가 품에서 태극기를 꺼내 국군을 향해 달려가며 흔들었다. 태극기를 흔들던 그는 함포소리가 나면 땅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옆에서 이 모습을 보던 중학생 송은호씨가 임배영씨의 태극기를 들고 국군을 향해 흔들었고 신원을 확인한 국군은 이들을 동네 안내자로 인정해줬다.

1개 소대를 이끌고 덕적도에 상륙한 문석수 해군 소위는 수비사령관에 취임했다. 그는 시국대책위원회를 조직하여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차상동을 위원장에 임명시켜 면의 당면문제를 협의하고 임시행정을 취급하도록 했다.
  
 덕적도 선착장 인근에 서있는 안내판에 덕적도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다.
 덕적도 선착장 인근에 서있는 안내판에 덕적도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수비사령부에서는 적들에 부역했던 자들을 색출해 심문 처형하고 산중에 피난했던 좌익 악질분자들을 면민이 총동원되어 포위 검거했다. 당시 대구와 부산방면만 국군의 수중에 있을 때 덕적도만은 국군 점령하에 있었다.

9월 16일 대망의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되었고 덕적도는 전초작전기지로 국제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인천상륙작전시 덕적도 근해는 3백여 척의 유엔군 선박들로 뒤덮여 있었다.

학도병으로 전쟁에 참가한 송은호씨는 한국전쟁 당시 벌어졌던 안타까운 상황도 전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어요. 국군이 덕적도에 상륙해 마을을 지날 때 만삭의 산모가 진통을 시작해 소리를 지르자 국군이 총을 쏴 죽여버렸어요. 나는 지리산 빨치산 토벌작전에 두 번이나 참가했지만 손들고 나오는 빨치산들을 포로로 대우했었지 죽이지는 않았어요.

전쟁 중이라고 해도 양민을 죽이는 법이 어디있어요. 모래해변 저쪽에 보이는 묵도에는 1.4후퇴 때 총살당해 죽은 사람들이 많았어요. 재판받았으면 아무렇지 않을 억울한 사람들이죠. 친일파를 기용해 우리나라 질서 잡는데 실패한 겁니다."
 

태극기부대 때문에 요즘 젋은이들이 태극기 사랑 정신이 약해졌다고 한다. '태극기 사랑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모범을 보여준 송은호씨에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라고 인사드리며 돌아오는 내 발걸음이 가벼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뉴스에도 실립니다.


태그:#송은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교육과 인권, 여행에 관심이 많다.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랐을까?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