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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민족, 단일 혈통을 주장하는 남성 중심 사회였던 우리 사회 안의 갈등과 혐오의 역사는 깊다. 오랜 분단은 이념을 정치적 도구로 삼아 서로의 갈등을 부추겼다. 광화문 한복판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나와 '좌파 빨갱이 가짜 대통령'이라는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게 만들었다.

과거 버스나 택시 안에서 '박정희가 잘한 게 뭐냐?'라고 했다가 국가원수 모독죄로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그도 아니면, 국가 전복죄를 뒤집어 씌우거나 사상이 불온한 자가 되어 간첩으로 둔갑되던 시절도 있었다. 

'공산당은 박멸해야 한다'는 현수막을 광화문 네거리에 걸고 여성, 이주민, 장애인, 성소수자를 무시하고 혐오하는 사회를 부추기는데 기득권 정치 세력과 일부 개신교들이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시대 혐오를 읽다 종교, 차별, 여성, 법으로 살펴본 혐오 이야기
▲ 우리 시대 혐오를 읽다 종교, 차별, 여성, 법으로 살펴본 혐오 이야기
ⓒ 철수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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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혐오를 읽다>(철수와영희)는 종교, 차별, 여성, 법으로 살펴본 혐오에 관한 인권연대의 기획물이다.

혐오를 짚어보고 화해와 조정 갈등 해결법을 찾는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혐오사회가 되어 혐오를 통해 갈등을 조장하고 편을 가르며 약자와 소수자를 차별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만연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권연대 오창익은 책을 내게 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우리는 한국 사회의 혐오 문화가 어디서비롯된 것인지, 또 이 심각한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고민했습니다. 각계 전문가릃 모시고 혐오 문제를 살펴보는 좋은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우리 시대 혐오를 읽다」란 이름으로 강좌를 실행했습니다. 초대받은 강사들이 제시하는 문제와 해법은 주목할 만한 것이었고, 강좌에 참여한 분들의 호응과 공감을 이끌어 냈습니다. -6쪽
 
강사들이 분야별 주제로 삼은 종교, 여성, 법으로 살펴 본 차별로 보면, 나는 늘 차별의 대상이었다. 나는 차별의 대상인 여성 장애인이고 하층 노동자인 주변인이다.

나는 오랫동안 여성과 약자를 성적 대상화하면서 비하하고 차별하는 사회에서 성장했다. 학교는 체벌이 일상적이었고, 성희롱을 문제조차 삼지 못하는 환경이었다. 일상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거나 비하하는 혐오 표현이 넘쳐 났지만 이의제기를 하며 바로잡아 달라는 이들이나 항의하는 이들은 없었다.

늘 여성을 성별화하고 성적대상화하고 비하하고 혐오하는 표현을 하던 이들은 대부분 남성이다. 김홍미리는 2015년 그런 남성들을 성별화한 '한남: 한국남성의 줄임말' 혹은 '한남충'이라는 남성들을 대상화 시킨 용어가 등장하면서 미러링 놀이(거울비추기)'가 시작됐다고 말한다.
 
그전에는 호명하는 주체는 늘 남성이었어요. 여성은 항시 성별 딱지가 붙여지는 대상이었습니다. 여성들은 거꾸로 남성에게도 성별 딱지를 붙여 호명하면서, '이렇게 대상화되어 보니 기분이 어때? 이제까지 우리가 어떤 기분인지 알겠어?'하는 맥락이었는데, 여기에 많은 남성들이 분노합니다. 성별로서 대상화되어 본 적 없는 남성들이 미러링에 반응하기 시작한 거예요. 호명하는 특권을 누리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랍니다. 흥미로운 점은 미러링이 시작된  2015년부터  '여성 폭력, 반성폭력' 집회에 남성들이 동참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에요. 이 변화는 정말 놀라웠어요. 왜냐하면 여성 단체에서 집회를 그렇게 해도 시큰둥하던 남성들이 이 문제를 '여성' 문제가 아닌 성에 기반한 사회 문제로 느끼고 움직이기 시작한 거예요. -119쪽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증오의 대상이 되어 묻지마 살인을 당한 '강남역 살인 사건'은 우리 시대 여성 극혐의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이 사건은 남녀 모두에게 충격을 준 사건이다.

이 사건은 남성들이 여성에 대한 남성의 범죄를 여자들 문제나 개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의 문제로 자각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깨닫고 성별을 뛰어넘은 연대를 이루게 한 것이다,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근처 건물 공용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오로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한 남성에게 살해당합니다. 이전에도 비슷한 사건들이 많았죠. 여성을 대상으로 한 살인은 그날 최초로 일어난 게 아니었죠. 그런데 이때 사람들 반응이 전에 없이 폭발적이었어요. 매일처럼 사람들이 모이고 수많은 남자들도 함께 추모의 행렬에 참여했습니다.무엇이 차이를 만든 걸까요? 무엇이 우리를 달라지게 한 걸까요? -119쪽
 
장애인, 이주민,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바라보는 차별적인 시선이 견고해지면 나와 그들간에 경계를 긋고 다름을 혐오하는 일이 생겨난다. 다름은 열등함이 나 혐오의 요건이 아닌데 말이다. 

한때 장애인들이 지하철역에 장애인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달라는 요구를 할 때 많은 이들이 불평하던 것이 생각난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교통 약자를 위한 시설이나 저상 버스는 교통약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편리함과 편안함을 준다.

약자에 대한 혐오 표현이나 행동에 대해 법적 처벌을 통한 공정함과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가해자는 표현의 자유를 들어 반기를 들기 때문에 대부분 법적 응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약자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그대로 두고 봐야만 할까?

법의 측면에서 해법을 제시한 박미숙씨는 '회복적 정의'와 조정, 끊임없는 대화와 교육을 통해 변화를 도모하는 상생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수사 기관이나 법원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형량을 따지는 것에 집중합니다. 국가와 가해자의 관계가 중심이예요. 공동체의 평화가 목적이라면 이런 식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화해하고, 필요하다면 피해자를 위로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피해자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그가 손을 내밀었을 때 따뜻하게 잡아주는 것, 그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정의다." 요즘은 이렇듯 회복적 정의를 많이 이야기해요. -190쪽

혐오를 넘어서는 성숙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진정한 공동체적 삶 속에서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소통을 통해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내가 느끼는 희로애락을 상대방도 느끼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객관적 상황이 보이기 시작할테니 말이다. 분명한 사실은 다름이나 차이는 절대로 혐오의 요건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덧붙이는 글 | 우리 시대 혐오를 읽다 글: 김진호. 이찬수. 김홍미리. 박미숙 / 철수와영희/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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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