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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편하기 짝이 없는 여학생 여름 교복
 학생들 자료사진.
ⓒ 충북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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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맛탱(일명 JMT, 너무 맛있다는 비속어)"이 딸애 입에서 툭 튀어나왔다. 뭐라... '존맛탱'이라고? 마침내 딸애의 입에서 십대의 거친 관용어를 처음 듣던 날, 강렬한 아이 레이저 빔을 쏘고 따끔한 훈계를 하는 외, 달리 대처할 방도가 없었다. '요즘 아이들'을 키우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경험했을 난감함일 터다.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욕과 비속어를 많이 써?'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언어 능력이 떨어져?' '요즘 애들은 높임말도 잘 못하고 싸가지가 없어' 등의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다면, '꼰대'일 가능성이 높다고 신지영 교수는 넌지시 점친다. 어떤가, 나는 꼰대인가, 아닌가?

신지영 교수는 언어의 주도권 싸움을 주제로 <언어의 줄다리기>를 썼다. 이 중 한 꼭지가 '요즘 애들'과 '요즘 어른들'의 줄다리긴데, 이를 주제로 최근 파주 한빛 도서관에서 강연이 있었다. 신 교수는 요즘 애들의 욕, 언어능력, 높임말이 요즘 어른들의 주장처럼 그렇게 심각한 상태인지를 확인해 보자고 제안한다. 신 교수는 신문 기사, 국내외 연구 논문들을 제시하며, 요즘 어른들의 걱정이 어쩌면 노파심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요즘 애들'의 욕, 이대로 괜찮은가?
 

우선, '요즘 애들'의 욕에 대해 살펴보자. 욕을 많이 쓰는 연령이 10, 20대인 것은 사실이다. 10, 20대가 주로 말 상대하는 대상은 학교라는 공간의 동급생이거나 또래 집단이기에, 이 시기에는 말조심을 크게 하지 않아도,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 현상은 나이가 듦에 따라, 즉 10대와 20대가 사회로 진출하는 시기와 맞물리면서, 점차 감소하는 추이를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학교 밖 사회생활을 하면서 10, 20대처럼 욕을 했다간 엄청난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10, 20대가 벌이던 욕의 향연은 30~40대에서 현격히 줄어든다.

그럼 이 현상은 요즘 애들에게만 해당될까. 신 교수가 제시한 50년대 신문기사를 훑어보면, 그 시대에도 당시 '요즘 애들'의 언어를 마땅치 않아 하는 언설이 줄곧 있어왔다. 20~30년 전 신문 기사도 마찬가지인데, 당시 어른들도 당시 애들이 욕을 많이 한다고 질타했다. 20~30년 전 욕을 많이 한다고 질타 받았던 '요즘 애들'은 누구? 민망하게도 '요즘 어른'이지 않은가. 이를 살펴보면, 요즘 애들의 욕에 대한 경계는 시대마다 꾸준히 제기되어온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어른들은 늘 애들이 향유하는 언어를 삿되게 보아 왔다는 추론을 어렵지 않게 끌어낼 수 있다. 이는 또한 각 세대마다 '꼰대성'은 사라지지 않고 발휘되고 있다는 방증일 터...

이 부분의 신 교수의 논조는 합리적이다. 하지만 10, 20대의 비속어 사용이 전 세대에 비해 빈번하고 강도가 세다는 측면을 일소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요즘 애들의 욕은 정말 굉장하다. 초 중 고교실 현장에서 애들의 언어를 날로 직접 들어 보라. 기함하지 않을 자, 누구일까?

신 교수의 제안대로 필자의 청소년 시절을 솔직히 돌아보건대, 물론 욕을 하긴 했다. 그러나 강도 높은 욕은 '좀 논다'는 애들의 전유물이었지, 지금처럼 거의 모든 애들이 입에 달고 사는 정도는 아니었다. 요즘 애들이 욕의 강도와 빈도가 과거 세대에 비해 괄목할만한 수준이라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욕이 일상어가 되다 보니, 이제 교사들조차 교정은 포기한 채, 교사들 앞에게 쓰지 않기를 바라는 정도에 그칠 정도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욕하지 말라고 해봤자 먹히지도 않으니, 아예 욕을 문화로 인정하자는 이들도 꽤 있다.

그렇다면 욕은 나쁜 걸까? 주지하다시피 욕이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다. 살다 보면 욕이 딱! 튀어나와야만 하는 순간이 있지 않던가. 욕을 마땅히 먹어야 할 대상에게, 주로는 못 듣게 하지만, 때로는 저항으로 때로는 체념의 수단으로서, 획 뱉어내는 욕엔 분명 카타르시스라는 순기능이 있다. 다만, 반드시 적절하게 구사해야 하는 절제의 미학이 수반된다. 그렇다면 일상어가 돼버린 요즘 애들의 비속어는 욕인가, 아닌가?

OECD 24개국 중 4위... 요즘 어른의 기우 

둘째로 신 교수가 논의를 제기한 부분은, 과연 요즘 애들의 어휘력 표현력이 과거에 비해 정말 형편없어졌는가다. 그는 이에 대한 반증으로 PIAAC(국제 성인 역량 조사)의 언어능력 지표를 제시한다. OECD 24개국이 참여한 이 연구에서, 한국 요즘 애들은 놀라운 성과를 보여준다. 16세에서 24세 언어능력은 당당히 4위였다. 반면 16세에서 65세를 대상으로 한 언어능력은 12위로 중간이었다. 이 순위의 차이가 시사하는 바는 자명하다. 24세 이후의 언어능력이 24세 이전 언어능력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 결론적으로 한국 사회의 요즘 어른이 우려하는 요즘 애들의 언어능력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지점에서 요즘 어른들은 또 한 번 고개가 숙여지면서, 어느 정도 설득 당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글쓰기를 담당하는 학교 현장의 목소리는 좀 다르다. 요즘 애들의 작문 실력이 과거에 비해 저하되고 있다는 우려가 실재한다. 청소년의 카톡 방을 본 일이 있다면 이 걱정에 공감할 수 있는데, 이들의 대화엔 문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SNS 상 벌어지는 소통에 실상 문장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인데, 그나마 소통이 된다는 게 다행이라고나 할까?

청소년들은 짧은 시간에 대화를 마쳐야 하기 때문에, 문장은 매우 거추장스러운 도구가 돼버린다. 비속어, 줄임말, 감탄사 등이 더 효과적이고 임팩트 있는 소통의 도구가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온전한 문장과 멀어지게 되고, 어휘력 표현력이 의심받게 되는 것도 그리 납득 못할 일은 아니다.

요즘 애들의 글쓰기에 대한 걱정은 독서의 부재와도 연동된다. 청소년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데이터와 학교 현장에서의 교사들의 체감이 이를 뒷받침한다. 학교 도서관에 종일 있어 봐도, 책 보는 아이를 발견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디지털 네이티브'거나 '디지털 친화 세대'인 요즘 애들에게 책은 지루한 대상이다. 이들에게 책 읽기란 이미 능력이 돼버렸다.

영상으로 거의 모든 정보를 접하는 요즘 애들에게 언어란 이미지로 존재한다. 활자로 된 글을 읽고 해독하고 이를 통해 잘 쓰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고 믿었던 요즘 어른들과는 언어를 습득, 활용하는 방법도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요즘 애들의 글쓰기나 말하기에 대한 능력을 의심하는 여론이 형성되기 쉬었을 터다. 하지만 이것이 반드시 요즘 애들의 언어능력 부재로 이어지는지는 보다 면밀한 연구로 밝혀봐야 하지 않을까.

게다 요즘 애들 세대 작가들의 글을 접하면(물론 이들은 글을 잘 구사하는 특정한 집단이긴 하겠지만), 어쩜 이렇게 잘 쓸까 싶은 문장들을 자주 접한다. 이럴 땐 요즘 애들이 언어능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잃는다. 다만 나는 한 가지 경계해야 할 점을 지적하고 싶다. 특히 10대에 만연한 일명 '패드립'(엄마를 성적 대상화해 비하하는 비속어), '섹드립'(여성을 성적 대상화해 비하하는 비속어) 등의 문제는 부적절한 '혐오'를 생산 유통시키기에 자성이 절실히 필요하다. 어릴 때 하고 마는 통과의례로 받아들이기에 위태로운 수준이다.

'요즘 어른들'의 책임은 없을까?

다음은 요즘 애들의 높임말에 대한 우려다. 신 교수는 요즘 애들이 높임말을 잘 쓰지 못한다는 요즘 어른들의 지적을 되짚어보자고 제안한다. 높임말이란 본래 듣는 사람에겐 쉽고 하는 사람에겐 어려운 법이다. 권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해서 높임말을 써야 하는 사람은 쓰면서도 검열을 하게 되지만, 듣는 사람은 쉽게 지적하기 마련이다. 게다 우리말의 높임말이 까다로운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신 교수는 높임말이 과거 5단계에서 지금은 3단계만 남아 있고, 이마저도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언어는 사회의 구성물이기에, 높임말이 일거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변화하며 간소화될 것은 자명하지 않을까. 높임말에 예민한 것이 실상 어른들의 '꼰대성'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고 인정한다면, 요즘 어른들이 요즘 애들의 높임말에 좀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고 신 교수는 덧붙였다.

높임말에 과민하다 보니 높임말을 하지 않아야 할 때 높임말이 쓰이는 현상을 자주 접하게 된다. 카페에서 주문한 음료를 알릴 때, 고객님.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가 이젠 자연스럽게 통용되지 않는가. 이 현상을 요즘 애들의 무지한 높임말 사용이라고 나무라기 앞서, 왜 이런 부적절한 높임말을 쓰게 됐을까를 살펴보는 것이 어른다움 아닐까.

높임말을 쓰지 않을 때 날아드는 비수 같은 어른들의 힐난에 베이다 보니, 요즘 애들이 높임말을 부적절하게 생산해내게 된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볼 일이다. 높임말을 과하게 쓰면 적어도, 싸가지 없다는 말은 듣지 않을 테니, 부적절한 높임말은 어쩌면 매서운 갑들에게서 생존하기 위한 요즘 애들의 고육책이었을지 모를 일이니.

언어는 사회적 산물인 유기체다. 그 구성원이 처한 환경, 젠더, 계급, 사회적 조건, 제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분기 변화한다. 요즘 어른들이 요즘 애들에 대한 언어를 아무리 개탄한다 하더라도, 변화의 물길을 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 물길을 위태롭게만 바라보는 것도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주도권 다툼인 언어의 줄다리기에, 요즘 어른들의 보다 유연하고 영리한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 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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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화를 좋아하고 그에 관한 글쓰기를 합니다. 세상을 낯설고 예민하게 보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익숙함에 길들여지지 않으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