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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처방'이라는 말은 생소했다. 기사를 쓰든, 인터뷰 원고를 작성하든, 글쓰기 때 꼭 관련 책한 두 권씩 옆에 비치하는 나로서는 책은 '치유'보다 '압박'에 가까운 것이었다. 마감을 압박하는 국장이나 편집장과 동급인 '가깝지만 당장은 피하고 싶은' 물건이었다. 책은 그렇게 의무적으로 장착하고 읽어 왔다.

지난 6월 17일 오후, 서울 마포 망원역 인근에서 만난 정지혜 사적인서점 대표·북디렉터는 그런 책을 사람들에게 권하고 연결해 주는 일을 한다. 책 손님들에게 "이거 읽어 보세요"라고 말만 던지는 게 아니었다. 책 손님이 처한 상황에 공감하기 위해 자기 노동을 투입하고, 오래 시간을 할애해 손님과 딱 맞는 맞춤책을 찾아낸다. '처방'이라는 의학 용어를 덧붙인 이유를 알게 됐다. '나도 책으로 이참에 마음을 치유해 보자'란 기대를 갖고 그를 만났다. 그는 '번 아웃'에 삶이 무미건조해진 내 마음, 우리 현대인 마음에 무슨 책을 처방했을까.

700명에게 책 처방전 발행... 교감 만족도 높아
 
 사적인서점 정지혜 대표
 사적인서점 정지혜 대표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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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적인서점 시즌1'을 마무리하고 시즌2를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서울 마포구에서 2016년 10월~2018년 9월까지 2년 동안 '사적인서점 시즌1'을 운영했다. 오프라인 서점 운영에 잠시 휴식기를 가졌다. 시즌2를 모색하는 중 좋은 제안을 받고 지금은 전북 군산 '마리서사'라는 동네서점을 내년 말까지 위탁 운영하게 되었다. 서점 주인이 안식년을 갖게 되어 맡아줄 사람이 필요했고 그곳에서 배울 것이 있지 않을까 싶어 운영을 맡게 됐다."

- 책을 권하고 소개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12년~2015년 말 홍대에 위치한 '땡스북스'라는 동네서점에서 서점원으로 근무했다. 책을 권하고 추천해 주는 일이 너무 재밌었다. 그러다 직접 서점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차린 게 '사적인서점'이었다. '사적인서점'은 예약제로 운영했다. '책 처방'이라는 프로그램이 중심이었다. 조만간 '마리서사'에서 여행자를 위한 책 처방 프로그램을 운영해 보려고 계획 중이다."

- '북 디렉터'라는 직업에 대해 설명해 달라.
"'북 디렉터'라는 명칭은 스스로 붙인 것인데, 작게는 책과 관련된 행사를 진행하는 것부터 크게는 신간 서점을 만드는 일까지, 책과 사람을 연결하는 다양한 일을 한다. 창업이 아니라 '창직'을 한 셈이다.(웃음) '사적인서점'은 책을 소개하고 파는 공간적인 의미의 가게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 자체가 움직이는 서점이라고 생각한다. 책 처방을 하기도 하고, 신문 지면에 책을 소개하는 칼럼을 연재할 수도 있다. 이벤트 기획을 통해 책 소개를 할 수도 있고, 모두 책과 사람의 만남을 만드는 일이라 생각한다."

- '책 처방'이라는 말이 아직 익숙하진 않다. 처방 과정을 설명해 준다면?
"우선 사전 신청서를 받는다. 신청서에 나이, 성별, 직업, 신청 이유, 가장 좋아하는 책 등을 기입해 접수하고 상담 시간을 예약한다. 서점을 방문하면 한 사람을 위해 준비된 공간에서 약 한 시간 동안 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20분 정도는 독서 차트를 작성한다. 어떤 책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작가를 좋아하고 인상 깊게 읽은 책은 무엇인지 등등. 그 뒤 30~40분 자유롭게 대화를 나눈다. 손님이 돌아가시면 한 시간의 대화를 떠올리며 손님에게 필요한 책,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처방한다. 왜 이 책을 골랐는지 편지를 쓰고 편지와 책을 포장해 손님에게 전달한다. 처방하고 10일 후면 책을 선물처럼 받게 된다."

- 그동안 몇 명이 처방을 받았나?
"차트를 정리해 보니 700여 명이었다. 처방을 중복으로 받으신 분들까지 포함한 수치다."

- 700여 명의 만족도는? 
"'책이 마음에 안 든다'는 불만이나 항의는 없었다. 책 처방이 끝나고 문자나 메일, 재방문으로 피드백 주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다. 내가 책을 탁월하게 잘 골라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단지 책 한 권을 얻고 싶어 오시는 것만은 아니었다. 한 시간 동안 주고받는 대화와 교감에 만족도가 높았다. 재방문하시는 분 비율도 전체 이용객의 10%에 달한다. 친구 분 소개를 받아 오는 경우도 있고 회사에서 한 분이 이용하시고 동료에게 추천해서 나중에는 한 부서 분들이 돌아가며 오신 적도 있었다."

- 책 처방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은 것인가?
"오마이북에서 펴낸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책은 덴마크의 행복 비결을 취재한 책이다. 그 가운데 덴마크 주치의 제도가 소개된 대목이 있었다. 덴마크는 모든 국민에게 주치의가 있다고 한다. 주치의가 한 곳에 자리잡으면 은퇴할 때까지 거기서만 진료하기 때문에 3대가 한 의사에게 진료 받는 경우도 있었다. 건강 체크만 하는 게 아니라 결혼과 회사 생활 등에 대해 주치의와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 지수가 높다는 내용이었다. '책 주치의가 있으면 어떨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 고민 있는 손님에게 맞는 책을 권하고 추천하는 서점이 있다면 책이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주치의 같은 서점 주인이 되면 좋겠다 싶었다."
  
- 비용 문제도 궁금하다. 책 처방 1회 얼마인가?(웃음)
"상담하고 책을 전달받는 과정까지 포함해 1회 5만 원이다."

- 운영이 가능한가? 비용이 적은 듯하다.
"책 처방 프로그램만으로는 운영이 안 된다. 오해가 많았던 것 역시 가격이었다. 5만 원이면 책 서너 권을 구매할 수 있는 금액이니까. 그것보다는 준비하는 과정에 품이 많이 든다. 한 시간 동안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보고 편지 쓰고 배송하는 과정까지 못해도 적어도 다섯 시간이 소요된다. '내가 직접 읽고 권할 수 있는 책만 처방한다'는 스스로의 원칙 때문에 새롭게 책을 읽어야 할 때도 많다. 책값과 배송비 등을 제하면 최저임금도 안 나왔다. 이 프로그램으로 수익을 낸다기보다 책 처방을 매개로 기고라든지 부가적 책 판매 등으로 서점을 운영했다."

- 아무래도 독서량이 많아야 할 것 같다. 
"저보다 독서량이 더 많은 손님들이 책 처방을 찾을 때가 있다. 이를 테면 인터넷 서점 MD(merchandiser)들이 오는 경우다. 책이라는 게 너무 방대해서 아무리 많이 읽어도 모든 책을 다 읽진 못한다. 나도 취향이라는 게 있기도 하고. 고민이 없던 건 아니었다. 나중에 든 생각은 '내가 읽었던 책 범위 안에서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책을 소개하자'는 것이었다. 손님 100명이 찾는다고 각기 다른 책 100권을 처방하진 않는다. 손님 100명에게 책 한 권을 처방할 수 있다. 같은 책을 처방하더라도 각기 다르게 처방할 수 있다."

- '각기 다르게 처방'이라는 말은 무엇인가?
"예를 들면 <츠바키 문구점>은 할머니와 손녀의 갈등을 풀어가는 가족 소설이다. 나는 가족 갈등을 푸는 것보다 대필 일을 하는 손녀가 자세하게 자기 일을 설명하고 어떤 방식으로 일을 대하는지 서술하는 구절이 인상 깊었다. 일하는 태도에 고민이 많은 분들이 오시면 이 책을 처방하며 '주인공이 일하는 방식을 참고하시라'고 제안 드린다. 나만의 읽기 방식이다. 출판사 보도 자료에도 없는 해독 방법이랄까.(웃음)"

가장 많이 처방한 책은 <글쓰기의 최전선>
 
 번아웃된 영혼들을 위한 정지혜의 책처방
 번아웃된 영혼들을 위한 정지혜의 책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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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면?
"정말 많다. 손님들은 10대~60대까지 다양했다. 직업도 그랬다. 초파리연구원도 있었고, 공항 출입국 관리사무소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제 삶의 바운더리에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났던 것 같다. 이틀 전에 편지 하나를 받았다. 일하고 있는 '마리서사'로 택배가 왔다.

열어 봤더니 책 한 권이 있었다. 제목이 <오늘도 쓸데없는 것을 만들었습니다>라는 책이었다. 작가는 세 번째로 책 처방을 받은 손님이었다. 40대 여성 디자이너였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하는 고민을 끊임없이 하는 분이었다. 재밌게 일하고 싶은데 회사에서 일하는 건 안 맞는 것 같고 프리랜서로 일하기엔 삶이 너무 불안정하다는 말씀도 했다.

그분에게 제가 처방해 드린 책은 일본 작가 이토 히로시의 <작고 소박한 나만의 생업 만들기>였다. 작은 시도를 통해 즐겁게 일하는 방식을 소개한 책이다. 작가님이 편지에 '처방해준 책을 읽고 새롭게 일하는 방식에 눈을 떴고 그때부터 열심히 준비한 과정을 책으로 기록했다'고 하셨다. 책을 전하는 행위는 씨앗을 뿌리는 일과 같다. 작은 도움을 드렸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꼈다."

- 지금까지 가장 많이 처방한 책은 무엇일까?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이다. 생각이나 고민이 많은 분들에게 처방한다. 자존감이 낮거나 자기 삶에 확신이 없으신 분들에게 처방을 드리기도 했다. 글로 자기 생각을 언어화하는 작업이 필요한 분들이다. 세계 여성 시인선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속에 이런 구절이 있다. "슬픔에게 언어를 주오. 말하지 않는 큰 슬픔은 무거운 가슴에게 무너지라고 속삭인다오." 이 문구를 인용하면서 '감정에 언어를 붙여보세요'라고 처방전을 전달해 드리기도 했다. 같은 책도 어떤 방식으로 처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책 한 권을 읽더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읽어내려 한다. 또 같은 책 속 다양한 문장을 정리해 소개하고자 했다."

- 책을 읽으면서 기록을 많이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책을 어떻게 읽나?
"도서관에서 책을 못 빌린다. 연필이랑 포스트잇이 없으면 책을 못 읽는다.(웃음) 인상 깊은 구절이 있으면 밑줄 긋고 포스트잇을 붙여 기록한다. 메모를 굉장히 많이 한다. 또 하나 다른 방법은 특별한 사건이 나오면 책 첫 페이지에 해시태그처럼 기록한다. 책 내용 중 엄마와 딸이 싸우는 장면이 나오면 그 사건이 줄거리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거나 중요하지 않더라도 '#엄마와딸'처럼 해시태그를 붙여 첫 페이지에 기록한다. 나중에 손님이 오셔서 엄마랑 싸웠다는 말씀을 하시면 그 대목을 처방할 수 있다."

- 책을 잘 읽지 않는 분이 처방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을 텐데?
"그럴 때 신경 쓰는 것은 손님과 같은 나이·직업·상황에 놓인 저자가 쓰거나 주인공이 등장하는 책을 권한다. '나와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책이 있네' 하면서 보다 깊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그런 처방을 위해 주인공 직업, 나이, 살고 있는 나라 등 디테일한 정보를 기록한다. 인터넷 검색한다고 나오는 정보는 아니다. 일본 소설을 싫어하시는 분이 있다면 왜 읽어 보지 않으셨는지, 왜 싫어하시는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편견을 깰 수 있는 일본 책들을 처방할 때도 있었다."

- 왜 '책' 처방일까? 노래, 영화도 있을 텐데?
"책의 가능성 때문이다. 노래나 영화 등 다른 매체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다. 책에서 시작해 퍼져나갈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한 문장에도 울림이 있을 수 있다. 작가의 삶이나 주인공 이야기,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등장하는 조연 이야기로도 울림을 준다. 책은 친구도, 회초리를 든 선생님도 될 수도 있다. 책은 또 능동성이 중요한 매체다. 영화나 노래는 틀어져 있으면 보거나 듣게 되지만 책은 아무리 좋은 내용이어도 본인이 읽지 않으면 그만이다. 본인이 그만큼 적극 개입해야 한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얻어가는 게 다르다는 점도 매력이다."

- 책 처방도 감정 노동일 텐데 힘들지는 않았나?
"힘들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것 같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스스로의 편협함을 깨우치기도 했다. 큰 자극이었다. 다만 날 힘들게 한 것은 책 파는 일에 대한 회의감이었다. 서점원으로 일할 때는 책 소개 일이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할 수 있는 즐거움이었는데 서점을 차리고 운영해 보니 혼란스러운 부분이 적지 않았다.

사람들이 우리 서점에 와서 책을 사지 않더라도 좋은 책 정보를 갖고 가신다면 그 자체로 보람된 일인데, 한편으로는 계속 이 서점을 할 수 있을까 스트레스가 있었다. 한마디 말에 보람을 느끼다가도 어떨 땐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더라. 책 처방만으로 서점 운영이 가능했다면 그렇게 지치지 않았을 것이다. 드는 품에 비해 돌아오는 수익이 너무 작은 탓이다. 책을 이처럼 '물질'적으로 보는 것에 대한 고민도 있다."

- 책 처방에는 '자격증'이 필요 없다.
"실제 책 처방을 하면서 전문가 심리 상담을 받은 적 있다. 전문 상담사들은 어떨까 호기심이 컸다. 한편으로는 고민도 있었다. 깊은 우울증을 앓고 계신 분들이 서점에 오실 때가 있다. 상담 전문가에게 '지금이라도 상담 공부를 전문적으로 해야 할까'라고 물으니 '오히려 공부를 해 버리면 사안을 케이스로 판단하게 된다'고 하시더라. 지금 방식이 손님들에게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었다. 지금은 내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 서점이 하나의 공동체로 기능하는 것 같다. 
"대형서점과 달리 작은 서점은 '취향 공동체'가 될 수 있다. 서점은 주인의 성향과 취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어떤 책을 진열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책을 매개로 굉장히 다양한 문화 소비가 이뤄지고 있다. 워크숍 행사, 북콘서트 등 책을 매개로 여러 문화 활동이 가능하다.

책 처방을 소개할 때 '적당한 타인'이라는 말을 쓴다. 너무 가까운 사람에게는 자기 이야기를 도리어 쉽게 꺼내기 어려울 수 있다. 책을 매개로 서점이 적당한 타인으로서 독자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다. 회사와 집 외의 공간에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참여사회 독자 분들도 작은 서점을 많이 이용하셨으면 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독자나 손님 분들이 '투표적 소비'를 해주셨으면 좋겠다. 투표적 소비는 합리적 소비의 반대 개념이다. 내가 지지하는 공간과 상품에 돈으로 한 표 행사하자는 의미다. 작은 서점 서비스가 마음에 들면 투표하듯 그 공간에 돈을 써주셨으면 좋겠다. 모든 소상공인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작은 가게들은 돈으로 경쟁할 수 없다. 하지만 작은 서점이나 가게는 주인의 개성으로 차별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서비스에 들어가는 시간과 지적 능력을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한다."  

  
 김도연 기자의 사적인 질문
 김도연 기자의 사적인 질문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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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도연 님은 <미디어오늘> 기자 입니다. 사진은 참여연대 미디어홍보팀 이한나 간사가 촬영했습니다. 이 기사는 <월간참여사회> 2019년 7-8월 합본호와 <미디어오늘>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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