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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현관에 붙은 대자보. 학생들이 의견을 써 붙인 쪽지로 덮이고 있다.
 학교 현관에 붙은 대자보. 학생들이 의견을 써 붙인 쪽지로 덮이고 있다.
ⓒ 추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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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학교 복도에서 '일본 너무 치사하다'며 일본 제품을 사야 할지 고민이라는 학생들 대화를 듣게 되었다. 이 말에 필자는 일본의 경제 보복 부당성을 학생들에게 알리고 싶어 무작정 펜을 들었다. 곧 방학이기에 학생들은 막바지 학생부 정리 및 발표를 하느라 바쁘고, 동료 교원들도 학생부 정리를 하느라 메신저를 볼 시간도 없다.

필자가 속한 학교의 학생회는 어느 학교보다도 자치활동이 활발해 교문 앞에서 1인 시위도 하고 다양한 주제로 대자보를 붙이며 활동한다. '일본 경제 보복의 부당함을 가만히 보고 있을 학생회가 아닌데'라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학생회에 대자보 초안을 내밀었다.

15대 학생회장 및 부회장이 모레(19일)면 방학이라 할 일이 많아 너무 바쁘다며 주저 없이 학생회 단톡에 초안을 올리고 반장 등을 통해 학생회 입장을 말해 주겠노라고 했다. 필자는 교직원들에게 초안을 회람하며 동참 여부 및 수정, 보완할 부분이 있는지 물었다.
  
교장 선생님이 얼마 지나지 않아 메신저로 '동참합니다' 답신이 왔고 대부분의 동료 교직원들도 동참한다는 뜻을 알려 왔다. 대자보 초안을 유심히 본 이선옥 교사(역사, 행복연구부장)가 일본의 과오와 식민지 시대 역사적 의미를 담아 왜 행동해야 하는지를 논리정연하게 수정, 보완해 격문이 완성되었다. 

비록 필자가 초안을 썼지만 대부분 이선옥 선생님이 수정하고 보충하여 좋은 글이 탄생했다. 학생회는 선생님들과 공동으로 논의해 같이 쓰면 좋겠지만 이번에는 선생님들이 먼저 나서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전해 왔다. 대자보의 중심은 일본의 경제 보복 규탄과 불매운동에 있지만, 선생님들과 학생회가 짧은 시간에 방학을 앞두고 긴밀하게 소통해 이룬 일이라 더욱 뜻이 깊다.

자신의 생각을 적어 대자보 옆에 붙이는 학생들
 
 15대 학생회와 교직원이 함께 만든 대자보. 아울러 일본 제품 불매운동 동참을 호소하는 글을 담았다.
 15대 학생회와 교직원이 함께 만든 대자보. 아울러 일본 제품 불매운동 동참을 호소하는 글을 담았다.
ⓒ 추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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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베 정권이 자행한 경제 보복의 부당함은 한국인이라면 부정할 여지가 거의 없다. 그러나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글쎄' 하는 의견은 있을 수 있다. 그런 부분까지 배려해 동참 의사를 묻고 교내에 대자보를 붙이게 되었다. 

시험 치느라, 공부 하느라,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에 벌어지는 무역 분쟁(실상은 일본의 경제 보복)을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 단 이틀이지만 대자보를 통해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가 강대국의 횡포임을 알게 하고 이를 통해 학생들은 생각하며 비판적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대자보를 붙인 행복인권부차장(하지현)은 "인권, 세월호 사건 등에 관심이 많아 교내행사를 많이 기획했는데 상대적으로 잘 몰랐던 역사적 사실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어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를 수 있었다"며 "일본이 진정 위안부 할머니에게 사과하고 경제 보복을 스스로 거둬들여야 선진국이지 않으냐"고 말했다.

일본 여행을 가거나 일본 물건을 샀다고 해서 매국노로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 선택도 우리 국민이 하는 것이다. 마녀사냥 하지 말아야 한다. 그 행동을 우리나라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반민족행위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불매운동 동참 글에 대해 조롱하거나 욕설하는 행위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대자보에도 그것을 비판하는 글이 은연중에 녹아 있다. 그 선택과 동참 여부는 오롯이 국민(학생)의 몫이기 때문이다. 내일이 지나면 방학이라 못 볼 대자보이지만 끝까지 읽어 내려가는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학생들이 작은 종이에 한 자씩 자신의 생각을 적어 대자보 옆에 고이 붙인다. 대자보를 붙인 현관 앞 소녀상 할머니들이 '기특하다'며 학생들을 바라보는 듯하다. 우리 학생들이 장년이 되었을 때 대한민국이 일본을 능가하는 나라가 되어 있으리라!
 
 2년 전 교직원과 학부모, 학생들의 자발적 모금으로 양지바른 현관 앞에 세운 소녀상
 2년 전 교직원과 학부모, 학생들의 자발적 모금으로 양지바른 현관 앞에 세운 소녀상
ⓒ 추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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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사입니다.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나누며 지식뿐만 아니라 문학적 감수성을 쑥쑥 자라게 물을 뿌려 주고 싶습니다. 세상을 비판적으로 또는 따뜻하게 볼 수 있는 학생으로 성장하는데 오늘도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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