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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대학교에 가고 싶어서 탈북했어요."

지난 23일 20대 초반의 한 탈북 여성이 모 방송에 출연해 한 말이다. 이날 방송에선 남한 대학에서 공부하려고 탈북했다는 이아무개씨의 사연이 소개됐다. 북한 양강도 혜산에서 3년제 경제전문대학을 다녔던 이씨는 2017년 초,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를 수료하고, 현재 서울 시내 모 대학 호텔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다.

그녀는 방송에서 "(북한의) 대학에 입학해 한 한기를 다녔는데 수업을 일곱 번 들었다"면서 "오전에 1시간 수업하고 교수님들이 오늘 농촌지원 나가야 된다고 하면 작업복도 못 입고 바로 지원을 나간 적도 많았다"고 말했다. 무슨 일을 했냐는 질문에 "도로 깔고, 시멘트로 벽을 쌓고, 돌로 자갈을 만들어 철길을 놨다"고 털어놨다.  

이씨에 따르면, 1500~2000위안(25만~33만 원) 정도를 후원 명목으로 학교에 납부하면 동원에서 빠질 수 있었다고 한다. 이씨는 노동력 징발뿐 아니라 각종 명목으로 현금·현물을 납부해야 하는 학교에 가기가 싫어졌고 고민이 깊어졌다고 한다. 그녀의 고민을 안 부모가 먼저 "한국에 가볼 생각이 없냐"고 제안했다고. 

이씨는 "한국 드라마와 노래를 엄청 보고 들을 때였다"면서 "맨날 농촌지원 갈 거면 차라리 한국 가서 다시 공부 할게라고 해서 탈북하게 됐다"고 밝혔다. 

입학은 하지만... 영어·생활비 마련 등에 어려움 겪어
 
 영화 <48미터>(감독 민백두, 2013)에 나온 시장의 모습.
 영화 <48미터>(감독 민백두, 2013)에 나온 시장의 모습.
ⓒ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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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형' 탈북은 수년 전부터 언론이 탈북 유형의 변화로 지목해온 것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중국으로 식량이나 일자리를 구하러 나왔다가 남한까지 오게 된 '생계형' 탈북이 주를 이루던 종래와 달리 더 나은 삶을 찾아 떠나는 '이민형' 혹은 유학형 탈북으로 탈북 양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진단이 늘었다. 

이렇듯 유학형 탈북이 늘어난 이유를 김정은 정권의 공포 정치, 장마당 등 사경제 발달, 한국 시청물 유입, 당 간부 및 돈주(신흥 부유층)들의 의식 변화와 옅어진 충성심, 남한 못지 않은 자녀 교육열 등 북한 내부에서 찾는 분석이 많았다. 그러나 남한 정부의 탈북민 우대정책 같은 외부 요인도 주요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지난 2016년 남한에 입국한 태영호 공사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의 탈북민 정착지원 정책이 놀라웠다, 한국 아이들은 대학 가려고 어릴 때부터 엄청나게 공부하는데 탈북민 아이들은 한국 애들은 생각도 못하는 혜택을 받는다"면서 "탈북민들이 많이 오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탈북민이 30만, 300만명으로 늘어나면 김정은 정권의 연좌제가 무너지고 싸우지 않고 평화적으로 통일이 이뤄질 수 있다"고 피력하기도 했다.

남한 정부의 탈북민 정책은 북한에도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남한에 가면 집을 무료로 주고 정착지원금(총 800만 원을 분기별로 나눠 지급)도 준다는 풍문이 주민들 사이에 퍼져 있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민이 있는 가정은 주민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탈북민들에게 특히 유리한 부문은 교육 분야다. 탈북민은 보통 수능시험을 치르지 않고, '탈북학생 특별전형'을 통해 대학에 입학한다. 전국 주요 대학이 대부분 해당 전형을 마련해 놓은 경우가 많고, 탈북민들끼리 경쟁을 통해 정원외 특례로 선발하기 때문에 또래의 남한 청소년에 견줘 입학이 수월하다고 알려졌다. 일종의 소수집단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학 등록금도 국가가 전액 지원한다.
             
서울 시내의 한 대학 교수는 기자에게 "내가 하는 수업에도 탈북민 학생들이 가끔 있다"며 "영어 때문에 공부를 못 따라가서 휴학했다가 학교로 안 돌아오는 비율이 꽤 된다, 탈북민 아이들은 입학은 비교적 수월한데 졸업이 어렵다"고 귀띔했다. 

탈북민에게 영어교습을 무료로 지원하는 시민단체 북한이탈주민 글로벌 교육센터(TNKR)에 따르면, 탈북민 대학생 가운데 약 40%가 대화 시 외래어로 인해 어려움을 느끼며, 약 28%가 대학을 중도 포기한다. 44%의 학생이 수업에 들어오지 않고, 32.7%의 학생들이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휴학을 한 적이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수업에 안 들어오는 학생의 33%는 영어를 주된 이유로 꼽았다. 

탈북 대학생이 휴학을 하는 이유로는 '생활비 마련' '영어 공부' '수업내용을 따라가기 어려워서' '취업 준비를 위해' '대학을 계속 다녀야 할지 고민이라서' 등 다양한 응답이 나왔다. 이렇듯 탈북 대학생들은 공부와 생활의 이중고를 짊어지다 보니 대학을 중도 포기하는 비율(28%)이 비교적 높게 나타난 것으로 분석된다. 사실상 탈북학생 특별전형은 탈북민에게 매우 유리한 제도임에도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탈북민이 아직까지 많지 않은 실정이다. 

"북한 성분제, 미래에 대한 희망 상실한 집단 만들어"
 
 영화 <크로싱>(감독 김태균, 2008)에 나오는 북중 국경지대 마을 모습.
 영화 <크로싱>(감독 김태균, 2008)에 나오는 북중 국경지대 마을 모습.
ⓒ 캠프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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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북한 내부에서 대학교육을 받을 기회가 적고, 공교육의 질도 높지 않기 때문에 유학형 탈북은 향후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북한 사회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CIA 북한보고서'(원제 Kim ilsong's North Korea, 2000, 한송)에 따르면, 무상교육 11년(2012년에 12년간으로 개정)을 완전히 마친 고등중학교 졸업생 가운데 10% 미만이 대학에 진학한다. 책에 따르면, 대학 입학 여부는 거의 전적으로 '성분제도'에 의해 결정된다. 

성분제도란, 북한이 모든 주민을 핵심·동요·적대 계층의 3대 계층, 51개 부류로 분류하는 계급제도다. 탈북민들은 "그 사람은 성분 (혹은 토대)이 좋다, 나쁘다"는 말들을 흔히 한다. 북한 사람들은 성분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개인의 노력으로 그것을 바꿀 수 없다고 체념하곤 한다. 앞서 책에선 '성분제도'와 '김일성주의'를 북한 사회의 두 가지 주요 특징으로 규정하고, 이것이 북한과 타 국가를 구분짓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밝혔다. 
       
개인의 능력보다 성분에 우선해 입학한 대학에서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가 어렵다. 앞서 탈북여성 이씨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 청소년과 대학생은 연평균 145~190일간 노동력을 징발당하기 때문이다. 모내기·추수철·방과후·방학 등에 농촌이나 건설·토목공사장에 동원되는 것이다. 그 외 시간도 정치학습, 군사훈련, 생활총화(자아 및 타인 비판 모임) 등에 할애되는 경우가 많다. 

북한 출신 청소년은 탈북 후에도 홀로 혹은 부모를 따라 수년간 중국을 떠돌다가 남한에 입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기간에 학교를 다니긴 어렵다. 따라서 남한의 또래에 비해 학습능력이 뒤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앞서의 책은 "현실적으로 인구의 4분의 1을 차별하는 성분제는 정권에 계속 부담을 주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상실한 집단을 만들어냈다"고 전했다. 또 "가장 심각한 것은 북한의 지식체계 중 비교적 진정한 고등교육과 좋은 교육을 받은 이가 없다는 것"이라며 "북한은 주된 문화유산을 잃었기 때문에 이를 다시 얻기 위해선 한 세대가 다 지나야 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정치제도 자체에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김일성의 가르침이 살아 있는 한 실제로 개선될 희망이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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