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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은 체제 전환과 통일·통합을 동시에 이뤄내야 하는 문제이기에 매우 어렵고 복잡하다. 그동안 남북통일은 주로 그 모델을 독일통일 사례에서 찾았고, 최근엔 북아일랜드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전 세계에 '체제 전환'(독재→민주주의)을 이뤄낸 국가는 약 100여 개국에 달하며, 그 가운데 적지 않은 국가가 북한 체제 전환과 국가공동체 회복, 피해자 배·보상, 공존 및 화해 등에 참고 모델이 될 수 있다. 

전체주의에서 민주주의로의 이러한 체제 전환 시기가 다가오면 신속한 경제·정치적 전환이 요구된다. 특히 북한에서 요구되는 것은 시장화 개혁과 사적 소유권의 회복이다. <인권과 경제 전환: 체코 공화국으로부터의 교훈>(지리 코작, 2019)에 따르면, 어떤 체제전환국이건 경제개혁과 이에 따른 국민의 만족도가 매우 중요하다.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에서 시장을 개방하면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데, 이것은 북한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예상된다. 

체코의 경우 과거 사회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전환하면서 정부가 주도하는 '소유권' 변동 조치가 3단계에 걸쳐 진행됐다. 소규모 개인 민영화→대규모 국영기업 민영화→배급제 해체 순서로 일어났다. 특히 정부가 쿠폰을 발행해 국영기업의 지분을 일반 시민이 사도록 했다. 체코에선 1940년대에 국가가 개인 재산을 국유화했는데, 과거 소유자를 찾아 돌려주는 작업이 진행됐다. 

또 새로운 경제체제하에서 정부가 개인의 경제활동을 장려하는 구조를 수립하려 노력했다. 체코 사람들은 스스로 사업이나 장사를 했고, 국가가 이러한 환경을 만들었다. 해당 보고서는 "독재정권하에서 경제발전은 독재정권을 더 강화할 수 있다"면서 "북한이 민주화를 하도록 국제사회가 외부에서 압력을 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얀마의 체제 전환은 이러한 외부 세계의 지속적 압력에 굴복한 경우다. 군사정권이 스스로 국제적 고립감을 느끼고 변화할 때가 됐다고 깨닫게 됐다. 1988~2011년까지 군사정권하에 있었던 미얀마는 현재 체제 전환이 진행 중이다. 국내 민주 세력이 20여 년간 줄기차게 군부에 저항했다는 사실도 체제 변환을 촉발한 주요 원인이다. 군부는 헌법을 개정하고, 정당등록법을 제정해 아웅산 수치가 2012년 선거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군부 중심에서 민간 중심으로 국가예산이 배정됐다. 과거 국민을 억압했던 악법이 철폐되거나 개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무혈 체제 전환 상황에서 민주 세력이 군부를 완전히 대체하긴 어렵다는 한계가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얀마가 현재 군부와 민주 세력이 함께 협력해야 하는 하이브리드 모델로 보고 있다. 이렇듯 분단국 일색의 연구에서 벗어난 여타 체제전환국의 사례는 향후 북한의 미래에도 시사점을 준다.  

정치 및 경제개혁 외에도 '국제인권규범'으로서 최근 그 중요성이 인식되기 시작한 '전환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 실현이 미래 북한 혹은 통일한국에서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전환기 정의란 과거 전체주의 정권이 저지른 체계적인 인권 침해를 새로운 정부가 청산하고 그 희생자에게 보상함으로써 사회정의를 세우고 인권을 확고히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인권 침해란 주로 초법적 살인, 자의적 구금, 고문, 강제실종 등을 가리킨다.
  
<북한 개혁개방 및 체제전환 과정에서의 인권의제>(이영환, 2019)에 따르면, 체제전환을 경험한 나라는 전 세계에 100개국이 넘고, 이 가운데 40여 개국에서 지난 1970~2007년까지 900개 넘는 조치가 행해졌다. 주로 가해자를 피고로 한 형사재판, 진실위원회, 배·보상 등 피해 복구 노력, (수뇌부를 제외한 실무자) 일반사면 등의 조치들이다. 또 내전·소요·대량학살 등이 일어난 약 20개국에 유엔군이 투입돼 탈무장화, 탈동원화, 사회재통합 등의 유엔 임무가 수행됐거나 수행 중이다.

한국 사회에서 '전환기 정의'가 중요한 이유

<전환기정의 규범의 확산과 그 효과: 한국의 사례를 중심으로>(김헌준, 2017)에 따르면, 전환기 정의는 과거 아르헨티나·칠레 등 남미 국가에서 1980년대 민주화 이후 국내규범으로 등장했고, 1990년대에 국제적으로 확산, 국제규범으로 자리잡았다. 전환기 정의는 앞서 언급한 형사재판, 진실위원회, 배상의 형태로 실현된다. 더 나아가 공식사과, 역사교과서 및 정부 공식 문서의 수정, 재심을 통한 명예회복·배상, 희생자 유해 발굴 및 추모사업, 기념재단의 설립, 희생자·유가족에 대한 경제·사회적 지원, 국가추념일 지정 등이 포함된다.

국내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현재까지 10개 이상의 과거사 관련 위원회가 설립돼 활동한 것이다. 해방 직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4·3위원회), 대통령직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화위) 등의 설립과 활동이 대표적이다. 가까이는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도 동일한 범주로 볼 수 있다.

국제규범으로 자리잡은 전환기 정의가 한국 사회에 중요한 것은, 이것이 향후 북한의 민주화와 주민 피해 복구에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경우 (정권의 정당성을 훼손하거나 의심하는) 사소한 말실수, 외국 영화 시청, 탈북(비법월경죄) 등을 이유로 강제실종, 체포·구금, 공개처형에 처해지는 예가 매우 많이 관찰된다. 교화소·교양소·노동단련대·집결소·정치범수용소 등 각종 구금시설에서 행해지는 강제노동, 고문, 초법적 살인에 대한 수많은 증언이 존재한다. 공개처형을 한 번 보고 나면 며칠씩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심한 충격을 받는다. 주민들 사이에 암암리에 퍼져 있는 정치범수용소에 대한 풍문은 대단한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저항 의지를 꺾는다.

실제로 "통일이 되면 내 아버지를 공개처형한 보안원(경찰)을 찾아서 복수하겠다"고 말하는 탈북민도 있다. 북한의 경우 일반 주민이 정권에 협조하지 않을 방법은 거의 없다. 상부의 잘못된 지시에 항명할 힘도 없다. 그러나 정권의 반인도적 행위에 편승해 주민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관료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남한 정착 이후 '법치주의'와 '사법제도'를 경험한 탈북민은 자신이 북한에서 겪은 인권유린과 억울함을 사적 복수로 해결하기 보단 정부가 나서서 단죄해 주길 기대하게 된다.

이러한 이들의 요구에 민주체제로의 전환을 표방하는 미래 북한의 새 정부(대체권력) 혹은 남북한 통일정부 및 국제사회가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정부가 자체적으로 독립기구를 만들어 과거 피해사실 증거 수집 및 조사, 자료 공개, 피해 회복을 요구하거나(남아공, 아르헨티나, 칠레 등), 유엔 안보리가 주도하는 국제 임시 재판소를 설치하거나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해 책임자를 처벌할 수도 있다(유고, 르완다, 캄보디아 등).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이 이러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과 이 단체를 이끄는 이영환 대표는 국내에서 이 분야 연구와 실천을 주도해온 대표적인 이론가·활동가 집단이다. TJWG는 캄보디아기록보존센터, 캘리포니아 데이터 과학자 그룹, 스위스 휴리독스 등 해외 4개 전문기관 및 9개국 47명의 전문가와 연계·협력해 활동 중이다. 체제전환국에서 일어난 전환기 정의 실현 사례를 북한 인권개선에 적용하는 연구 및 탈북민 대면조사, 인권 유린 관련 증거수집 활동 등을 하고 있다. 해당 단체가 지난 2017년 구글어스 위성사진 분석과 탈북민 375명의 심층 인터뷰를 3년간 진행한 결과를 발표한 희생자 암매장 맵핑(mapping) 보고서는 22개 언어로 130회 이상 보도되는 등 국제사회의 주목을 이끌어냈다. 

일부에선 통일 뒤 북한 정권 책임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해 처벌하는 등의 전환기 정의 실현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진단을 내놓기도 한다. ▲여타 체제전환국에 비해 정권이 70년간 길게 지속되면서 정권에 협조하거나 부역한 이들의 수가 매우 많다는 점 ▲체제전환기가 오면 정권과 자신을 '공동운명체'라고 생각하는 수많은 협조자(억압기구의 간부들)들이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주민을 상대로 저지른 인권유린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 ▲일부에서 국내 안정과 민족화합·화해를 이유를 정의실현을 반대할 가능성 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 정권에 협조한 간부 중 중간급 이하 간부에겐 광범위한 '사면'을 단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북한 정권 유지에 직접적 책임이 있는 수뇌부의 형사처벌, 증거수집 및 조사, 관련 자료의 일반 공개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하고 있다. 무엇보다 수뇌부 조사와 기소·처벌은 통일한국의 미래와 남북통합·갈등 봉합, 희생자 명예회복, 역사 바로세우기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처로 인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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