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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때로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경우가 있다. 1980년 5월 광주가 그렇다.

당시 나는 여의도에 있는 작은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횃불선교회라는, 성경공부와 선교활동을 하던 작은 교회였다. 청년들이 주축을 이뤄 매주 수요일에 모여 3시간씩 열띤 토론을 벌이며 성경공부를 했다. 해방신학이며 민중신학을 접하던 시기였다.

1980년 5월 21일 같이 성경공부를 하던 한 여성이 초췌한 모습으로 '광주 집과 연락이 두절됐다'고 울면서 달려왔다. 광주가 고립돼 오고갈 수 없을 뿐 아니라 가족의 생사조차 알 길이 없다며 근심에 잠겨 울었다. 우리는 그저 광주를 위해 함께 기도하며 별일 없을 거라고 그녀를 위로할 수 밖에 없었다. 언론과 교통이 통제된 때라 도대체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가슴을 졸이던 그녀는 이후 교회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광주의 딸 그녀를 까맣게 잊었다.

1980년 5월 18일 일요일. '화려한 휴가'로 명명된 그날의 진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광주는 더 이상 광주의 딸 그녀만의 역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 모두의 민주주의를 위해 광주 시민과 학생이 피로 쓴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라는 사실을 알고 가슴에 늘 부채감으로 자리했다. 세월호 참사가 그런 것처럼.
 
 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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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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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동윤 장편소설 <5월 18일생>은 1980년 5월 18일 광주 학살 사건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소설은 1980년 5월 18일에 전남대 병원에서 태어난 딸, 아내의 출산을 보려 육아용품을 들고 오다 실종된 남편, 광주 살인 진압에 투입된 공수부대원을 주인공의 일기와 가해자의 회상 형식으로 풀어낸다. 주제는 끔찍한 범죄 속에 용서와 사랑이 만들어내는 기적과 희망이다.
 
"약속해줄 수 있지? 내가 사라지면 나를 꼭 찾아주기로."

주인공 이서연은 광주, 남편 김영훈은 영광에 거주하는 주말 부부다. 1980년 5월 18일 새벽 심한 통증을 느낀 이서연은 출산 수발을 들려고 온 시어머니와 택시를 타고 전남대 병원으로 향한다.

연락을 받고 전남대 병원으로 오던 남편 김영훈은 18일에 실종된 채 연락이 두절된다. 남편이 1980년 5월 18일 행방불명이 되자, 20일부터 남편을 찾아 헤매다 13년 만에 남편과의 약속을 지켜 남편의 유골을 수습했지만 1980년 5월 18일에 태어나 할머니 손에 자란 딸과의 거리는 너무 멀어져 있었다. 더구나 깊은 충격으로 일찍 알츠하이머에 걸린 주인공은 점점 기억을 잃어간다. 

진압 중 서연을 살려 준 공수부대원은 코마 상태로 요양원에 입원 중이다. 코마 상태인 가해자에게 읽어주는 엄마의 일기를 읽어주는 딸은 영화배우로 5.18을 주제로 한 영화의 주인공으로 캐스팅 된 상태다.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주제인 사랑이 또 한 번의 기적을 일으키게 될까?
 
그 애에게는 내가 풀어낼 수 없는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5.18이었다.

"그니까 엄만 왜 하필이면 그날 날 낳았냐고. 그날 5.18에!"

그렇게 쏘아붙이고, 내 앞에서 일부러 문을 꽝 닫고 나가버리는 그 애를 볼때는 가슴이 너무 아팠다. 날마다 "5.18, 5.18" 하면서 밖으로 돌아다니는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그 애 곁에 있어줘야 했는데 그것은 남편과의 약속을 지키기 전까지는 불가능에 가까운 과제였다. 이제 13년 만에 남편을 집으로 데려왔으니 그 애한테도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편지를 썼다. (200쪽)
 
나도 사춘기에 부모 마음대로 나를 낳아 내가 원치 않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부모를 원망한 적이 있다. 냉정한 엄마도 싫었고, 술을 좋아하고 평생 당신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사셨던 아버지도 싫었다. 특히 내가 선생의 딸이라는 사실이 부담스럽고 싫었다. 엄마한테 호되게 야단이라도 맞는 날이면 난 철없이 대들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러니까 누가 날 맘대로 낳으리고 했어?"
 

살아가는 것이 내맘같지 않아서 그저 내 앞의 삶이 벅차서 내 말이 부모님께 얼마나 상처가 됐을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돌아가신 아버지 얼굴을 떠올릴 때면 두고두고 죄송하다.

주인공 이서연은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시아버지를 고문으로 잃고 사랑하는 남편을 5.18에 잃고 5월 18일에 태어나 모녀간의 깊은 골을 안고 사는 딸 지혜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혹시 당시 공수부대원으로 활동하던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겠지만 발포를 직접 명령하고 학살하고도 반성없는 전두환을 우리가 과연 용서할 수 있을까.
저는 알츠하이머 환자입니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두렵습니다.
행방불명된 남편을 찾아 헤맬 때도 버리지 않았던 희망을 지금은 품지 않습니다.
제가 여기나온 이유는 제 기억이 다 지워지기 전에 할 말이 있어서입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저는 제 남편을 사랑합니다.
1980년 5월 18일에 태어나서 엄마 아빠의 사랑을 받지 못한 제 딸을 사랑합니다.
저를 이곳에 데려온 엄마를 사랑합니다.
시아버지와 남편을 잃었지만 민주주의를 사랑합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일하시는 시민단체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226쪽)

만 19세의 앳된 청년으로 1980년 5월 광주에서 가두 방송을 했던 차명숙은 고문을 받았던 광주를 떠나 16년이 지나도록 한번도 광주를 찾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안동에서 전라도 음식의 상징인 홍탁집을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다. 5월 광주 다큐멘터리 감독이 그녀에게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가두방송을 할 수 있었나'라고 질문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당시 광주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눈앞에서 사람이 끌려가고 죽음이 되어 나오고..."

5.18 광주의 뿌리는 125년 전 동학농민혁명이다.  동학은 100년 전 3.1 만세 혁명에 불길을 붙였으며, 4.19를 거쳐, 6.10 민주화 항쟁과 2017년의 촛불로 이어지며 민주주의에 불꽃을 피워냈다. 

그동안 우리는 모두 피의 역사의 주인공으로 직·간접 피해자이자 가해자, 참여자 또는 방관자로 살아왔다. 오랜세월 민중의 역사는 왜곡됐다. 이제는 미완의 민중 혁명 역사를 바로잡아야만 한다. 5.18 세대든 촛불 세대든 더 이상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 언제든 다시 촛불을 들어야만 하는 이유다.
 
"영화제목이 5.18인데, 김지혜씨는 5.18 정신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 5.18 정신이요? 그건... 기자님은 광화문의 촛불시위에 나가보셨나요? 5.18정신은 거기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안했다. 그것은, 엄마 아빠에게 5.18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시작이자 전부였고, 결국 2016년 광화문의 촛불로 타올랐다고. 이제는 5.18과 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내가 5.18의 희망으로 서보려고 한다고. (246쪽)

5월 18일생

송동윤 지음, 스타북스(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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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