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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4월 8일, 석가탄신일은 흔히 '5월 중 하루 쉬는 날' 정도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올해는 석가탄신일이 지나 갔는지도 모른 채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석가탄신일이 일요일인 탓이다.

하지만 어차피 매주 찾아오는 주말이니 이번 주는 세계 4대 성인, 부처님의 탄생을 기억하며 보내 보는 건 어떨까. 다가오는 석가탄신일을 맞이하여, 두 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헤르만 헤세'의 중편 소설, <싯다르타>를 소개한다.

종교 도서가 아닌, 작가 '헤르만 헤세'의 성장 소설

사실 책 제목을 본 뒤 저자를 봤을 때 다소 낯섦이 느껴졌다. 저자가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으로 유명한 독일계 스위스인 작가 헤르만 헤세라니, '싯다르타'란 제목과 언뜻 매치가 안 되는 듯했기 때문이다. 허나 유년 시절부터 인도 및 불교 사상에 친숙한 부모님과 외삼촌의 영향으로 불교는 헤세의 작품에서 빠뜨릴 수 없는 정수다.
 
 소설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1922)
 소설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1922)
ⓒ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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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다 해서 <싯다르타>가 불교 철학 및 역사를 치밀하게 반영한 종교 소설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제목에서부터 '이건 불교에 관한 책'이라는 강력한 포스를 내뿜고 있지만. 불교에 귀의하라며 독자에게 포교하는 소설은 더더욱 아니다.

이 책은 지친, 혹은 방황하는 이들을 헤세만의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성장 소설에 가깝다. 내가 불교 신자도 아니면서 석가탄신일에 굳이 이 책을 추천하겠다며 나선 이유다.

도박에 빠진 싯다르타?

'대체 가르침에서, 스승에게서, 네가 배우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냐? 너에게 그토록 많은 것을 가르쳐준 그들이 지금까지 네게 가르쳐줄 수 없었던 것이란 대체 무엇이냐?'

작품에선 우리가 흔히 아는 석가모니, 즉 '고타마 싯다르타(석가모니의 출가 전 이름)'가 두 명의 다른 인물로 등장한다. 금욕과 고행, 속세와의 절연을 통해 붓다의 경지에 오른 '고타마'와 끊임없이 방황하고 고뇌하는 구도자 '싯다르타'가 그들이다. 이때 헤세의 초점은 '고타마 붓다'가 아닌 위 인용구를 읊조리며 괴로워하는 싯다르타에게 있다.

내로라하는 왕궁의 스승들에게서도, 출가하여 찾아간 사문들에게서도, 심지어 고타마 붓다에게서도 깨달음을 얻지 못한 싯다르타는 함께 출가했던 친구 고빈다와도 헤어진 후 다시 속세로 향한다.

여인 카마라와 상인 카마스바시를 통해 속세에 적응해가는 싯다르타의 모습은 우리가 아는 부처님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도박에 빠지고 채무자에게 빚을 독촉하고, 허망함을 느낀 후 자살을 결심하는 싯다르타다.

독자에게 '싯다르타'라는 거대한 역사적/종교적 인물이 "낯선 친숙함"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싯다르타'와 '욕망'의 연결은 낯설지만, '욕망'과 '현재의 우리'가 연결되면서 돌연 '싯다르타와 우리'라는 친숙한 관계성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어느새 그의 고뇌를 위대한 성인 혹은 구도자의 고뇌가 아닌 주변에 있을 법한 한 인간의 고민으로도 느낄 수 있게 된다.

관계하는 삶

이때 불교적 세계관이 소설의 바탕이기에 싯다르타 역시 깨달음의 경지에 오르리란 결말은 어렵잖게 예측할 수 있다. 그는 흐르는 강물(자연)을 바라보며, 강물의 소리를 들으며 세계의 합일이란 깨달음을 얻는다. 허나 이 글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바로 '관계성'이다.

싯다르타의 깨달음은 모든 것과 관계를 끊음으로써가 아닌 수많은 관계 맺음을 통해 만들어진다. 속세에서 만난 연뿐만 아니라, 그 이후 다시 만난 친구 고빈다, 뱃사공 바수데바, 결국 자신을 떠난 아들 모두가 그 인연이다.

씨실과 날실이 얽히고설켜 비단이 되듯 인연과 인연이 만나 또 다른 인연을 낳고, 그렇게 끊임없이 관계하는 삶 속에서 깨달음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다. 이러한 싯다르타의 모습에서 우리는 어쩌면 작은 위로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많은 관계 속에서 우리는 이미 지쳐 있다. 관계의 의미를 찾고 동시에 스스로를 발전시키기는커녕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고 끊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이때 헤세의 <싯다르타>는 그 안에 분명 의미 있는 것이 있을 거라고, 힘들면 잠시 끊어도 되지만 연결됨을 너무 무서워도 말라고 다독이는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다가오는 주말,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무심코 펼쳐 든 소설을 통해 누군가는 다시 또 한 주를 살아낼 힘을 얻을 수 있길 바란다.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지음, 박병덕 옮김, 민음사(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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