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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회 도슨트 양성교육을 마치고  10명이 수료를 했다.
▲ 제 1회 도슨트 양성교육을 마치고  10명이 수료를 했다.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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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6회에 걸친 이한열기념관 도슨트 양성 교육이 5월 7일 시연과 수료식으로 끝났습니다.
마지막 교육에서 10명의 예비도슨트들은 각각 10빛깔의 시연으로 주최즉의 놀라움을 자아냈습니다.

어린시절, 87년을 겪었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각자의 스토리텔링을 이어가는가 하면 ppt 자료등을 토대로 이한열, 유월항쟁, 운동화에 대한 미식적 거시적 해석을 하고 기억의 문구들을 되새겼습니다.

이제까지 없었던 준비된 도슨트들의 생기발랄하고 다양한 컨셉으로 다음주부터 (5월 18일) 7월까지 토요일(1시~5시)마다 도슨트들이 여러분들을 기다립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교육에 참석해 준 예비 도슨트 여러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수료 축하드립니다. -홈페이지 글 펌


6월 10일 민주화 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한열 열사를 기억한다면 주말에 신촌에 자리한 이한열기념관을 둘러보면 어떨까.

이한열기념관(관장: 이경란)은 5월부터 토요일에도 기념관 문을 열기 위해 제 1회 도슨트 양성교육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지난 5월 7일(화) 6번의 교육을 마친 열 명의 교육생이 수료해 주말 도슨트로 활동하게 된다.

기념관측은 '원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문을 여는데 주말에도 개방해주면 좋겠다는 요구가 많아 주말 개방을 위해 도슨트 양성교육을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교육생들은 5주에 걸쳐 '도슨트의 역할, 관객을 대하는 자세, 인권 교육, 이한열 열사의 삶, 당시 항쟁에 함께 했던 선배 이야기 듣고 1회, 미술관 현장 견학, 등 총 6주 교육을 통해 도슨트로 갖춰야 할 기본 사항을 배웠다.

마지막 주에는 그동안 배운 것을 바탕으로 각자 이한열 열사에 대해 설명하고 싶은 주제를 정해 시연하는 과정을 거쳤다. 문영미 학예연구실장은 시연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세심하게 듣고 보며 좋은 점을 격려하고 발음 등 좀더 신경을 쓸 부분에 대해 조언을 해 주었다.

도슨트 교육에 참여한 교육생은 젊은이들이 많아 87년 민주화 항쟁을 영화나 역사로만 알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도슨트 교육을 통해 잘 알지 못했던 87년 치열했던 민주화 항쟁에 대해 잘 알게 되면서 더 일찍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것을 부끄러워 했다.

영화 <1987>을 통해 이한열의 운동화를 알게 된 후 특별히 관심있는 주제로 선택한 한 교육생은 2015년 28년 만에 복원되어 기념관에 전시된 한짝의 운동화가 가족에게 전해진 과정, 신발 끈을 묶은 데서 드러나는 이한열 열사의 꼼꼼한 성격, 복원 과정, 김숨의 <L의 운동화>까지 영화와 비교하며 차분하고 심도있게 풀어내기도 했다.

교육생은 '도슨트 양성 교육을 통해 과거 민주화 항쟁부터 현재의 촛불집회까지 역사를 성찰하며 새롭게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2017년 촛불 집회로 정권교체를 이뤄내기까지 수많은 민주 열사들의 피와 땀이었음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한다. 동학 민중혁명, 3.1 혁명, 광주 민중 항쟁, 6. 10 민주화 항쟁이 2017년 촛불의 밑거름이 되어  우리는 한걸음씩 나아갈 수 있었다.

이한열 기념관은 1990년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국가 배상금으로 작은 집을 마련해 기념관으로 만들면서 시작됐다. 그 곳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이한열열사가 다니던 연세대학교와 가까운 곳에 작은 집을 마련했다. 2003년부터 시민 모금을 시작해 건물을 짓게 되었다, 이한열기념관은 유일하게 순수 시민 모금으로 지어진 개인기념관이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말이 기념관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터전은 한열이 목숨 값이고, 건물은 사람들의 마음이다."
 

이한열 기념관은 지하 1층 지상 4층의 건물로 3층에 87년 6월항쟁 관련 자료들, 4층에 이한열의 유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2015년부터 '보고 싶은 얼굴'전을 통해 다른 열사들도 기억하고 있으며 다양한 방법으로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건물 옥상에는 '이한열 열사의 꿈'을 상징하는 솟대가 관객을 맞이한다. 전시실 입구 계단 벽에는 작은 타일에 새겨진 그림과 글들, 영정 그림 배경으로 쓰인 최루탄을 상징하는 구름다리와 장미꽃이 심겨져 있다.

계단 위 '시'라는 글자와 6월 민주주의에 물을 주고 있는 이한열 열사 그림이 관객을 맞이한다.

6. 9일 그날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이한열 열사를 잡고 있는 학생, 100만이 운집한 장례식 사진 등의 기록물과 이한열 열사가 그날 입었던 바지와 반티, 복원된 운동화 등 유품등을 찬찬히  둘러볼 수 있으며 입장료는 없다.
 
이한열 열사는~
이한열은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86학번으로 1987년 6월 9일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고 쓰러져 6. 10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27일간 세브란스 병원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다 7월 5일 세상과 이별했다 그의 나이 스물 두 살이었다. 그는 정의롭고 선하며 만화그리기를 좋아하고 시를 쓰는 청년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한열 기념관 가는 길
지하철 2호선 신촌역 8번 출구, 동교동 방향으로 70m 정도 직진, 신촌 한의원에서 좌회전, 70m 정도 직진, 신촌갈비굼터에서 우회전, 70m 정도 직진, 왼쪽 하얀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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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