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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쩍 시력이 약해져 책을 오래 보기 어렵다. 난청으로 사람들의 말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겨우 60대에 하루가 다르게 느껴지는 노화 현상에 씁쓸해진다. 고령화 사회가 되다보니 사실 60대는 노인축에도 들지 못하는 낀세대이긴 하다.

고령화 사회라 지하철마다 노인들이 넘쳐난다. 노인이 되면 나이를 벼슬이나 완장처럼 여기며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내 모습은 과연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은근히 걱정이 된다. 자기성찰 없이 나이만 들면, 나이를 어른의 권위나 대접 받음의 표지로 삼는 것 같다.

꼰대가 되어 잔소리가 많고 귀가 둔해지고 사리분별 없이 자기 주장이 강하고 권위주의적이다. 나이만큼 연륜을 쌓으며 기품있게 나이를 먹으면 좋을텐데 현실은 반대다.

왜 인간은 나이테가 더해 질수록 기품을 더해가는 나무처럼 늙어갈 수 없는 것일까? 이수호 전태일 재단 이사장은 나이듦을 자각한 일흔 즈음, 나이듦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으로 자기성찰과 실천, 글로 기록하는 방법을 택한다.
 
하루를 더 살기로 했다. 이수호 전태일 재단 이사장 에세이집
▲ 하루를 더 살기로 했다. 이수호 전태일 재단 이사장 에세이집
ⓒ 걷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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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더 살기로 했다>는 일흔 즈음 기록한 나이듦에 대한 일상적 자기성찰을 85편의 시와 산문으로 엮어낸 것이다. 후회없이 오늘을 살고 나이테를 더해 갈수록 너른 품과 향기를 더하는 거목의 삶이 되려면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한 정신 벼르기에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플라타너스나 500년 이상 된 은행나무 등 거목에 대한 글을 쓴 것은 저자가 거목에서 힘을 받은 것처럼 그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쉼이 되고 위로가 되는 삶을 살고 싶어서 일 것이다.

지나온 삶에 대한 자랑이 아니라 나이듦을 인정하는 솔직하고 일상적인 글이라 친근하고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이수호 이사장을 처음 보면 과묵하고 위엄이 있어 쉽게 다가서기 어렵다.

그가 맡아 온 직책, 교육운동과 노동운동가로 살아 온 그의 이력을 아는 사람들은 더욱 다가서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책을 읽고 나면 선입견을 걷어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게 될 것 같다.
 
새로운 다짐으로 나를 더욱 긴장시키고 단련시켜서 다시 칼날 위에 세우고 싶다. 내가 살아온 지난 세월, 내가 받았던 사랑과 누렸던 영광에 내가 답하지 않고 갚지 않는다면, 나는 염치없는 놈에 비겁자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그렇게 바꾸려고 애썼던 우리의 삶이 아직도 질곡과 고통 속에 있음을 인정하고, 그 개선을 위해 지금도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음을 확인하는 아픈 통과의례의 노년식을 나는 진행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나에게 끊임없이 속삭인다. 좋은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말 것. 부디 지쳐서 넘어지지 않을 것. 반드시 그날은 오리니, 부지런히 살고 최선을 다하고 있느냐?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 오늘이 바로 그날

나는 늘 남을 칭찬하거나 따뜻한 위로나 감사의 말을 건네는 데 인색하다. 내가 남에게 받은 따뜻한 위로의 말에서 얻는 에너지를 잊고 따뜻한 말 대신 날선 말로 상대를 비판하곤 후회한다.

내가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껄끄러워하듯 남을 일으켜 세우는 건 따뜻한 말 한 마디다. 사람에 대한 깊은 연민과 진실한 공명의 가슴이 필요하다. 이수호 이사장이나 백전노장 백기완 선생이 고공 농성 현장이나 단식 현장에서 건네는 말이 그 누구의 말보다 큰 힘과 위로가 되는 이유다.

한상균 위원장이 조계사에 피신해 있을 때 백기완 선생님이 격려차 가신 적이 있다. 그때 나도 곁에 서서 백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백 선생님이 한상균 위원장에게 건넨 말은 뭉클한 감동만이 아니라 결의를 새롭게 다지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따뜻한 그 한 마디였다.
 
백기완 선생님이 격려 차 왔다는 소식을 듣고 한상균이 작은 창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백 선생님이 나섰다. 주변에 있던 우리나 절 안에 있던 경찰 등 수많은 사람들은 긴장했다. 과연 백 선생님의 입에서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 것인가에, 온통 관심이 가 있었다. 조금 뜸을 들이던 백 선생님이 드디어 한마디 하셨다.
"이봐! 한상균위원장! 여기는 절집이야. 절집은 말이야, 밥 굶는 사람 밥 먹여주고, 잠잘 곳 없는 사람 재워주는 곳이야! 아무 염려 말고 편안하게 있어! 알았지!"
우리는 피식 웃었다. 너무나 평범하고 당연한 얘기였기 때문이었다. 겉으로 보면 그냥 고달픈 신세에 대한 위로였다. 한상균도 편안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선생님.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서 말꼬리에 시퍼런 날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백 선생님의 말 속에는 '조계사는 한상균 위원장을 내보내서는 안 되고, 한 위원장도 나가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음을 한상균은 잘 알고 있었다.
조금 어색하고 긴장된 분위기를 눈치챈 백 선생님께서 한마디 보태셨다.
" 야! 한 위원장! 혹시 조계사에서 쌀 떨어졌다면, 나한테 연락하라 해. 내가 보내 줄게!"
한상균을 비롯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빵 터졌다'. 백전노장 백기완 선생님의 씹을수록 따뜻하면서도 따끔한 한마디였다. - 따뜻한 그 한마디 중
 
한때 사는 것이 힘들고 지쳐서 잠드는 순간 다시는 깨어 아침을 맞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곤했다. 저자는 의식 없이 하루하루를 흘려버리거나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지 못하는 내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만들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하루의 삶은 값지고 소중한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자기 자신과 가족, 지인들과 값진 하루의 삶을 나누는 일은 의외로 간단하다. 하루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는 것이면 족하다.

그정도면 누구나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누군가에게 환한 미소와 따뜻한 한마디로 힘을 주는 사람으로, 나잇값으로 꼰대 노릇하지 않는 사람으로 그렇게 나이를 먹고 싶다.
 
돌아보면 나는 늘 오늘 하루를 살았던 것 같다. 일흔 즈음 요즘도 그렇다. 내게는 오늘밖에 없다. 어제는 가버렸으니까 없고 내일은 오지 않았으니 당연히 없다. 나의 오늘은 내가 아침잠에서 깨면서 시작한다. 의식이 생기는 것이니 정신의 죽음에서 부활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새 삶이 시작된다. 그리고 저녁에 잠들 때까지 삶은 이어진다. 잠이 들면서 기억은 사라지고 내 정신세계는 죽음의 상태가 된다. 아침, 잠에서 깨어 부활할 때까지 내게서 나는 없다. (중략)
아침에 잠에서 깨어 다시 살아난 사실을 확인하며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무얼 하며 어떻게 보낼까 생각해본다. 구체적으로 할 일과 만날 사람을 떠올려보고 가장 편안하고 부드러운 방법과 관계를 가늠해본다. 그리고 오늘 하루를 축복한다.
" 내 인생의 오늘. 오, 멋진 날이여!" - 언제나 오늘 중
  

덧붙이는 글 | 하루를 더 살기로 했다/이수호 에세이/걷는사람/12,000원


하루를 더 살기로 했다

이수호 지음, 최연택 그림, 걷는사람(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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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