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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중에서도 어린이 학대에 관한 소식은 많은 이의 치를 떨게 만든다. 폭언과 폭행, 성추행과 성폭력, 방치와 유기 등 어린이 학대는 죽음으로도 이어지는 끔찍한 고리다. 사회의 가장 약자인 어린이에게 가하는 학대는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이 저지르는, 용서 받지 못할 범죄다.

지난 연말 많은 이를 분노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그 가해자에게 법이 정한 양형 권고 기준을 넘겨서 선고했다는 뉴스를 지난 주에 접했다. 맡아 기르던 아이를 굶기고 때려 결국은 숨지게 한 위탁모에게 징역 17년이 선고됐다는 뉴스. 재판부는 가해자의 행위를 "고문 같은 학대"라며 법에서 정한 "양형 기준은 세상의 법감정과는 맞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중형으로 선고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어른답지 않은 어른들이 많은 현실에서 동화의 역할을 돌아보게 된다. 동화는 이런 시대에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가? "아름다운 동화의 세계"처럼 착하고 아름답고 재미있게만 그려야 할까 하는.

동화도 시대와 역사를 담는 작품이 많다. 물론 아동 학대의 현장을 어린이의 시각으로 고발한 작품도 있다. 그중 눈에 띄는 두 편을 소개한다. 

한혜선 '소리를 삼킨 벽'
 
제9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단편 부문 수상작 모음 <나와 제이> 한혜선의 <소리를 삼킨 벽>이 실려있다.
▲ 제9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단편 부문 수상작 모음 <나와 제이> 한혜선의 <소리를 삼킨 벽>이 실려있다.
ⓒ 웅진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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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선의 '소리를 삼킨 벽'은 제9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단편 부문 수상작 모음집인 <나와 제이>에 실렸다. 작가 한혜선은 "어린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세상이 되기를 희망하며 이 동화를 썼다"고 했다.

작가가 원하는 세상이 되려면 어린이들의 목소리를 잘 들어주고 보호해 주어야 하는데 '소리를 삼킨 벽'에서는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아빠 폭력에 희생된 아이의 목소리는 누가 들어주었을까?

주인공 아이와 아빠는 낡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는데 벽에서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된다. 폭행당하고 학대받는 아이의 목소리였다. 두 부자는 어떤 집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내려 하지만 이웃들은 모두 아니라고 부인한다.

그렇지만 어떤 할머니가 찾아와선 죄책감에 털어놓은 이야기. 두 부자가 이사한 집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고 아이는 결국 죽었다.

그 집에 살았던 그 아이는 오랜 시간 아빠에게 폭행당하고 학대를 당했다. 그 아이가 맞는 소리와 비명을 그 이웃들은, 어른들은, 못 들은 척, 못 본 척, 외면했다. 다만 벽만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어주었다.
 
"모두들 아이가 소리쳐도 모른 체하고 도와주지 않으니까 이 집 벽이 그 소리를 들어 준 거야. 모두들 아이의 고통을 외면할 때 벽만은 아이의 고통을 품어 준 거야." (99쪽)
 
그렇다면 그런 끔찍한 일을 듣고 본 이웃들은 왜 외면을 했고 모른다고 했을까?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쉬쉬 했지요. 아파트값 떨어지니까 아무 말 말라고요. 그래서 며칠 전에 아저씨가 꼬치꼬치 물어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거예요." (98쪽)
 
아이에게 직접 가해지는 폭행만 폭력이 아니고 못 들은 체, 못 본 체하는 것도 폭력이란 걸 알려주는 동화다. 그리고 아무리 가려도 가려지지 않는 진실이 있다는 걸 들려주는 동화이기도, 어른들에게 아이들의 눈과 귀가 되어 주라고 외치는 동화이기도 하다.

송미경 '일 분에 한 번씩 엄마를 기다린다'
 
송미경의 <복수의 여신> 표지  단편 <일 분에 한 번씩 엄마를 기다린다>가 실려 있다.
▲ 송미경의 <복수의 여신> 표지  단편 <일 분에 한 번씩 엄마를 기다린다>가 실려 있다.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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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경 작가는 어느 집에 가족들도 모르는 어떤 아이가 산다든지, 어느 마을 아버지들은 가방에서 산다든지 하는 신비한 상황으로 세상을 풍자하며 생각 거리도 던져주는 동화를 쓴다. 특히 동화를 좋아하는 어른들이 환호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일 분에 한 번씩 엄마를 기다린다'는 송미경의 동화집 <복수의 여신>에 실린 단편 동화다. 이 작품에서는 변해가는 아이를 그렸다. 부모의 방치로 점점 변해가는 열한 살 여자아이가 주인공이다.

주인공 아이의 집은 가난하다. 장마 때문에 반지하 집에 빗물이 넘쳐 근처 중학교로 대피했을 때가 가장 행복했을 정도다. 끼니마다 도시락과 컵라면을 맘대로 먹을 수 있었고 새 이불을 덮고 텔레비전까지 볼 수 있었으니까.
 
누군가 내게 태어나서 가장 행복했던 일주일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이 동네에 물난리가 났던 그때를 댈 것이다. (95쪽)
 
회사에서 해직되고 정신장애로 사회 생활이 어려운 아빠 대신 엄마가 돈을 벌러 일 년 동안 집을 떠나게 된다. 결국, 주인공 여자아이는 어른의 보살핌에서 멀어지게 된다. 아빠는 밥만 할 줄 알고 딸을 챙기지 않는다. 엄마는 집에 오지는 않고 일주일에 한 번 먹을 것을 택배로 보낸다. 사람이 밥으로만 사는 건 아닌데 말이다.

아이는 하루하루를 그냥 넘길 뿐이다. 아이는 엄마에게 원망 아닌 원망을 한다. 일 년만, 딱 일 년만 요리나 청소나 빨래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떠났다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그러다 아빠의 실수로 집에 불을 내고, 아이와 아빠는 밖으로 대피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웃 어른들의 시선이 아빠와 아이가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
 
동네 사람들은 아빠와 내가 맨발로 빌라 앞에 서 있는 것을 마치 거대한 두 마리의 쥐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관찰했다. (111쪽)
 
아이는 지하실에 숨어든 쥐처럼 하루하루를 그냥 보낼 뿐이다. 이미 씻은 지도 오래됐고 학교에 안 간 지도 오래다. 그러다 정신을 놓고 아빠처럼 이상한 행동을 하고 소리도 낸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스윽, 히익, 엄마'라는 소리가 1분에 한 번씩 울린다. (중략) 나는 매일, 1분에 한 번은 엄마를 기다리면서 아빠와 '스윽, 히익, 엄마'를 하고 있다 (112쪽)
 
아이는 일 년 있다가 온다는 엄마를 그렇게 일 분에 한 번씩 간절히 기다린다.

어린이는 온전한 한 사람이지만 아직 어린 사람이기에 어른의 손길이 필요하다. 방치도 직접 가해지는 폭행 못지않은 폭력이란 걸 보여주는 동화다.

어린이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약속

곧 어린이날이다. 나 어릴 때는 생일과 크리스마스 못지않게 기다려지던 날이었다. 내 아이가 다 자란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어린이들에게 이 날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선물을 받는다거나 좋은 곳에 간다거나 맛집에 간다거나 하는 이벤트로만 받아들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게 하는 어른들 때문이겠지만.

어린이들이 어린 것이 아닌 온전한 한 사람으로, 아직 다 자라지는 않았지만 어엿한 사람으로 대우받길 바랐던 어린이날의 원래 취지를 5월 5일만큼은 돌아봤으면 좋겠다. 어린이들이 우리의 미래라고 진심으로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런 마음에서 학대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그린 동화를 골랐는지 모르겠다.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 부끄러운 어른들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려고. '어린이도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약 100년 전 방정환이 선언한 '어린이날의 약속'이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되새겨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복수의 여신

송미경 지음, 장정인 그림, 창비(2012)


나와 제이 - 제9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단편 부문 우수상

최유래 외 지음, 서인선 그림, 웅진주니어(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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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영화, 에니메이션 등 콘텐츠 회사와 투자회사에서 프로젝트 기획과 프로젝트 펀딩을 담당했다. 오피니언 뉴스에 북에세이와 문화 컬럼을 게재하고 있으며 전문 문예지에도 글을 싣고 있다.

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