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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썬 사건'이 아니라 '버닝썬 사태'라고 해야 될 정도다. 한동안 불법 동영상 문제로 번지더니 이제는 마약 문제로 건너가고 있다. 남양유업 외손녀 황하나씨가 "연예인 지인의 권유로 마약을 투약했다"고 진술함에 따라 연예계 마약 문제로 확산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곤 하는 연예계 마약 문제가 이번 사건을 통해서도 터질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검찰과 경찰이 마약 혐의자들을 잡아들일 때마다, 이 문제와 관련된 국가권력의 모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국가가 과연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중독성 강한 담배 문제만 해도 그렇다. 국가권력은 한쪽으로는 금연 캠페인을 벌이면서도, 또 한쪽으로는 담배 판매를 오랫동안 독점했다. 이 사업이 민영화된 지금도, 정부는 대주주인 국민연금과 국책은행 등을 통해 KT&G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3월 29일 현재 KT&G의 최대 주주는 9.95%를 보유한 국민연금이고, 제2대 주주는 6.93%를 보유한 IBK기업은행(중소기업은행)이다. IBK기업은행도 공공기관 성격을 띠고 있다.

마약 못지않게 폐해가 많은 담배 판매에 국가가 직간접으로 관련돼 있다는 점은, 이런 문제에 대해 국가가 도덕적 정당성을 갖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가가 윤리적 자신감을 갖고 국민들을 당당하게 처벌하기가 곤란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같은 공권력의 모순이 일제강점기 때는 한층 더 적나라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담배 판매로 이익을 챙기거나 담배 판매에 영향력을 미치는 선에서 그치고 있지만, 일본제국주의는 아예 노골적으로 한국인들의 마약 흡입을 조장하는 일까지 저질렀다.

양귀비에서 추출한 아편 문제로 중국대륙이 골머리를 앓던 1800년대에도 한반도는 마약 청정지대였다. 1840년에 아편전쟁이 발발한 뒤로도 조선은 아편으로부터 자유로웠다. 1885년에 조선정부의 외교 고문인 독일인 묄렌도르프(목인덕)가 '조선 사람은 아편을 모른다'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다. 바로 옆 중국에서 아편이 창궐하는 데도 조선 땅이 이 문제로 고생하지 않은 것은 경이로운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광저우시의 해전박물관에서 찍은 아편전쟁 그림.
 광저우시의 해전박물관에서 찍은 아편전쟁 그림.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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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조선에도 중독자가 있기는 했지만, 극소수 상류층의 문제에 불과했다. 일부 상류층이 아편을 정제한 모르핀을 흥분제로 이용하는 일은 있었다. 하지만, 사회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이랬던 한반도가 마약 문제로 홍역을 앓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때였다. 일본의 마약정책이 한국인들을 아편에 멍들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한국 마약의 역사: 왜 한국은 마약 청정국인가'라는 논문에서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일제는 아편 전매정책으로 식민지 유지에 필요한 재원을 보충하였다"라고 말한 뒤 일본의 마약 정책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아래 글 속의 '관동주'는 1905년 러일전쟁 종전의 결과로 일본이 지배한 랴오동(요동)반도 남부 지역을 말한다.
 
"일제는 소비지와 생산지를 분리시키는 정책을 썼다. 식민지 가운데 아편 소비인구가 거의 없는 조선과 이란·터키 등지로부터 아편을 수입하여 아편 소비 지역인 대만·관동주·만주국 등 중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인물과사상사가 2008년 발행한 <인물과 사상> 2008년 10월호.
 
일본이 이란·터키로부터 수입하는 것과 별도로 식민지 조선에서 아편을 생산한 이유가 있다. 중국 본토처럼 아편 문제가 심각했던 식민지 대만에서 생산해도 되는데, 굳이 아편 청정지대인 조선에서 생산한 이유가 따로 있었다. 전봉관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의 칼럼 '모르핀 권하는 사회: 1930년대 조선에 들어온 백색가루 열풍'은 이렇게 설명한다.
 
"일본은 대만과 조선을 병합한 이후 본격적으로 아편 산업에 뛰어들었다. 대만은 아편연 흡연이 심각한 사회 문제였던 반면, 조선은 아편연 흡연 풍속 자체가 없었다. 일본이 국가적 차원에서 아편 산업을 일으키려 한다면 양귀비 재배지로 대만이 선택되는 것이 정상이었겠지만, 실제로 선택된 곳은 조선이었다. 조선에는 아편연 흡연 풍속이 없어 양귀비를 도난당할 우려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행한 <나라경제> 2009년 8월호.
  
 광저우시의 화성 방성포 유적지에서 찍은 청나라 때의 아편 흡입 기구.
 광저우시의 화성 방성포 유적지에서 찍은 청나라 때의 아편 흡입 기구.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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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이 땅을 아편 생산기지로 활용하다 보니, 한국인들 사이로 마약이 흘러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퍼져나간 아편의 양이 어찌나 많은지, 1924년 12월 24일자 <기독신보>가 아래와 같이 보도했을 정도다.
 
"전북 전주는 아편이 어찌 많이 유행하는지, 부인들이 일할 때는 그 어린아이에게 아편 주사를 하여 잠이 들게 하고 일을 한다."
 
아편 주사를 맞아야 잠이 드는 아이가 있을 정도로 1920년대 한반도는 아편이 널리 퍼진 땅이 되어 있었다. '조선 사람은 아편을 모른다'는 말이 옛날이야기가 돼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에 대처하는 조선총독부의 태도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마약 폐해가 늘어가는 데도 적극 대처하기보다는 오히려 양산을 조장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위의 전봉관 칼럼은 이렇게 말한다.
 
"1930년 4월 총독부는 '모르핀 중독자 등록제'를 실시해, 모르핀 중독자로 등록하면 치료 명목으로 저렴한 가격에 모르핀을 공급하기까지 했다. 총독부의 해괴한 아편 정책 덕분에 아편연 흡연 풍속이 없던 조선에 모르핀 중독자가 급속히 증가했다. 1920년 1만여 명 정도로 추산되던 모르핀 중독자는 1930년 7만여 명으로 늘었다. 가끔식 모르핀 주사를 맞는 사람은 그보다 10배는 많았다."
 
 아편에 중독된 1890년대 청나라 사람들. 아편 흡입 장소인 아편굴의 모습.
 아편에 중독된 1890년대 청나라 사람들. 아편 흡입 장소인 아편굴의 모습.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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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마약이 확산되자 '모르핀 중독자 등록제'까지 만들어 마약 사용을 부추겼던 것이다. 이로 인해 발생한 딱한 세태를 전봉관 칼럼은 이렇게 묘사한다.
"모르핀 중독자들은 모르핀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논을 팔고 밭을 팔고 딸과 아내까지 팔아넘겼다. 깡통을 차고 좁쌀부대를 두르고 '한푼 줍쇼' 동냥을 하다가 그마저 신통치 않으면 도둑질을 해서라도 모르핀 값을 벌었다. 모르핀 중독자들은 1원을 구하면 90전은 모르핀을 사고, 10전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이처럼 조선인들을 멍들게 한 일제의 마약정책에 분개한 인물 중 하나가, 2017년에 배우 이제훈 주연의 영화 <박열>로 조명된 바 있는 독립투사 박열이다.

1923년 일왕 암살 계획을 세웠다가 거사 직전 체포된 박열은 경찰 조사에서 "일본 정부는 아편의 매매를 금지하고 있지만 그것은 표면상이며, 내실은 그 매매를 공인하고 있다"며 조선에 대한 일본의 마약 정책을 비판하면서 "그러면서도 일본에서의 아편 매매는 엄중히 단속하고 있다"고 일본 정부의 모순을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것 등은 일본 정부가 정책상 조선인의 멸망을 꾀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박열> 메인포스터
 <박열> 메인포스터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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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당국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한반도에 마약이 퍼진 것은 이 땅을 지배하는 공권력 때문에 생긴 문제였다. 마약 수준에는 이르지 않지만 건강과 재산을 침해하는 담배 흡연 문제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공권력도 상당한 책임을 지고 있다.

마약이나 담배는 언뜻 봐서는 개인의 문제 같지만, 실상은 공권력의 문제인 측면이 매우 강하다. 국가가 중독성 물질에 관한 문제로 국민을 처벌할 때는 국가 자신의 모순과 책임도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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