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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사교육계에서 일 하는 친구와 술 한 잔 하면서 사는 이야기를 했다. 아이를 정말 좋아하는 친구인데 평소 자신이 데리고 있는 아이들 칭찬을 많이 했다. 그런데 소주만 들이키면서 조소를 날리면서 해 준 이야기가 있었다.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이날 따라 자괴감이 묻어났다. 

"간혹 생각하는데, 어쩌면 거절 '당하는 것'도 중요한 교육인 것 같아."
"왜? 너 애들이라면 귀엽다고 광대승천하잖아? 아이한테 거절당한 적 있어?"
"그것보다 얼마 전 학부모와 상담을 했는데...."


이야기는 이랬다. 학원에서 80점이 커트라인인 영어단어시험을 봤는데 한 초등학교 5학년이 79점을 받아 재시험 대상이 됐다. 그런데 한 번만 봐달라고 본인도 사정하고, 친구들도 한 번만 눈 감아달라고 했다. 친구는 해주고도 싶었지만 별 것 아닌 것도 규칙은 규칙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계속 버텼다(실제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아무튼 기회는 공정하게 줬고, 결과 역시 공정한 평가대로 진행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잠시 친구와 학생들은 옥신각신했지만, 수업은 잘 마무리됐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학원 데스크에서 대형 클레임이 터졌다고 연락이 왔다. 바로 79점 받은 학생의 엄마였다. 안 그래도 유명(?)한 학부모였는데, 예상대로 폭언만 없었을 뿐 그는 친구에게 무조건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대략 이렇게 말하면서.

"아니 그깟 1점 차이가 뭐 대수로운 것이라고 애를 남겨요? 뭐 대단한 것 가르쳐요? 집에 보내요. 학원이 거기만 있는 줄 알아? 당신 서울대 교수라도 돼요? 기껏 영어 좀 알아서 가르치는 주제에. 애한테 사과 안 해요?"

"어머니, 자식이 커트라인에 부족해서 떨어진 것은 속상하시겠지만 제가 데리고 있는 아이들뿐 아니라 모든 학생들 똑같이 커트라인 통과 못 하면 학원에 남아서 재시험 봅니다. 만약 자제분이 남지 않고 그냥 가 버리면 주변 학생들은 서로 자기도 봐 달라고 하지 않을까요? 그건 결국 자제분도, 다른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은 것입니다. 애들이 대충 생각하기 때문에 실력이 모두 무너져요."

그런데 이 엄마의 '기막힌' 대꾸가 이어졌다. 

"되게 꽉 막히게 사네. 뭐 대단한 것이라고 철학을 심으려 들어. 이봐요. 학원 거기만 있는 줄 알아요? 원장 전화 돌려요. 다음 수업부터 애 안 보낼 테니 잘 해 봐요. 건방지게 지가 뭐 되는 줄 알아. 그렇게 빡빡하게 사는데 그 바닥에서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네." 

다행히 원장은 친구 대신 학부모와 싸우며 '학원비 차액분 돌려드릴 테니 결재 다시 하러 오시라'고 강하게 얘기했다. 원장도 마음 한 켠에서는 소문 안 좋게 나면 어떻게 하나 전전긍긍했는데 학원 잘못이 아니어서 각오하고 크게 싸웠던 것. '우리는 떳떳하니 마음대로 소문 내보시라'고 놓은 엄포(?)가 효과가 있었나 보다. 결국 학생은 아무 말 없이 다시 학원에 다닌다고 한다. 하지만 친구는 끝까지 사과 한마디 듣지 못했다.
 
 답이 없다는 말은 모든 것이 정답일 수도 있다는 말이지만 내 아이에게 맞는 답을 찾기까지는 길을 하염없이 헤매야 한다.
 "되게 꽉 막히게 사네. 뭐 대단한 것이라고 철학을 심으려 들어. 이봐요. 학원 거기만 있는 줄 알아요?" 원장이 대신 싸워줬고, 결국 학생은 아무 말 없이 다시 학원에 다니지만 친구는 끝까지 사과를 듣지 못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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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이렇게 하는 행동이 잘못됐다'고 의사표시하기 부담스럽다. 혹시나 자식부터 무조건 지키고 보는 부모를 만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결국 꾹 참고 하던 일을 하거나 아예 자리를 조용히 피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도대체 우리 사회는 어쩌다가 이렇게 변했을까.

나는 부모도, 어린아이들도 '거절당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뛰고 소리 지르는 아이에게 누군가 '하지 마라'고 할 때 무조건 기분 나빠하는 부모들이 있다. 거절을 공격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왜 애를 기 죽이냐'라고 맞받아 소리치고 싸우는 것이 최고라 여긴다.

이런 상황은 대중목욕탕에서도 꽤 자주 벌어진다. 아이들이 뛰어다니거나 욕탕에 들어가 물장구라도 치면, 누가 나서서 말을 못 한다. '죄송하다, 사과하라'는 것보다 '네가 피할 것이지 네가 뭔데 감히 내 새끼를 가르치려 들어'라는 반응이 먼저 나올 것 같아서다. 만약 아이가 뛰어다니다 미끄러져 넘어지는 대형사고가 터진다면, 이런 부모들이 조용히 넘어갈까?  

대형 쇼핑몰도 예외가 아니다. 킥보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왔다 갔다 하면 사고가 날 수 있는데도 누가 나서서 막지를 못한다. 심지어 안전요원도 쉽게 말을 못 한다. 당연하다. 상대방이 분명 싫다는 거절을 표현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이 '죄송합니다'라는 부모의 교육이 아니라 '왜 우리 아이 기 죽이느냐'라는 보호뿐이기 때문이다.

한 번은 대형쇼핑몰에서 어떤 아이가 상품인 축구공을 차며 통로를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봤다. 그 부모는 아이를 나무라기는커녕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점원은 상품이 상할까 말도 못 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제품이 망가지면 팔지 못할뿐더러 손실로 처리해야 한다. 결국 다른 고객은 물론 쇼핑몰에도 피해를 주는 행동임에도 아무도,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아이의 '축구 쇼'가 끝나기만 바라고만 있었다.

출산이 점점 줄어드는 요즘, 많이 낳아야 하나둘이라 아이가 정말 귀하고 귀여울 것이다. 뭐든 다 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란 점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상대방이 싫어서 또는 불쾌하게 느껴 거절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교육도 그만큼 필요하고 중요하다.

아이들은 자신의 요구를 대부분 받아주는 부모 품에서 자란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도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올바르게 사회에 정착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모든 부모들이 그렇지 않다. 하지만 일부 부모들은 분명 생각해볼 문제다.

영화 <베테랑>에서 재벌 3세 조태호(유아인 분)은 괴물이었다. 그가 그렇게 변한 것은 세상 사람들의 거절을 겪어보지 않고 모든 것을 돈과 자신의 배경으로 해결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범죄와 아닌 것을 구별조차 못 하는 지경이 됐다. 대부분 조태호를 비판하며 영화를 보지 않았을까? 어쩌면 당신의 자녀가 조태호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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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EBALL KID. 옳고 그름을 떠나서 다양한 이야기를 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