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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명절에 가족들이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초등학생 조카가 하루종일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혼났냐고 물었더니 아니란다. 왜 그러냐고 다시 물어봤다. 조카는 잠깐 생각을 하더니 "학원 숙제를 도와달라"고 말했다. 논술학원 숙제인데 도저히 잘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초등학생부터 벌써 논술이야?'라고 생각하니 먹었던 떡이 얹혀 체한 기분이 들었다. 흔쾌히 알았다고 하면서 조카 방에 들어가 숙제 내용을 봤다. 어른의 눈에 보았을 때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속담 2개를 보여주면서 각자의 생각을 적어보라는 것. 

1)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2) 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


두 속담을 보니 두 문장으로 중심 주제를 잡으면 좋을 것 같았다. 하나는 말을 조심해서 해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말을 잘하면 힘든 일도 해결 할 수 있다 정도. 글쎄, 주제는 '말이 가진 힘'이라고 하면 좋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알려주면 교육상 안 좋을 것 같아 조카에게 속담의 의미는 아는지 확인해 봤다. 다행이 조카가 속담의 뜻을 잘 알고 있어서 알려주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삼촌이 보니까 '말을 조심해서 해야 한다, 그리고 말을 잘하면 힘든 일도 할 수 있다'를 내용으로 쓰면 그렇게 안 어렵겠는데? 한번 써 보자."

뭔가 해결됐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조카가 연필을 잡았다. 그런데 전혀 시작을 못 했다. '얘가 설마 한글을 모르나'라는 말도 안 되는 걱정을 시작했는데... 엉뚱한 대답이 돌아오는 것이었다.

"삼촌, 도저히 어떻게 써야 할 지 모르겠어."

서서히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카는 오죽할까. 막상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도 아이가 상처받을까 걱정이었다. 잠깐 생각하다가 머리 속에서 스치는 생각이 있어 한번 물어봤다. 혹시 요즘 일기 쓰냐는 질문. 돌아온 답은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일기? 한 달에 한 번 쓰는데요?"
 
 일상에서 사라진 글쓰기.
 일상에서 사라진 글쓰기.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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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 사고를 돈 주고 심어야 하는 세상

사실 글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창작이다. 창작이란 세상에 없는 '무엇'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등학교 정규 교과 과정에 '쓰기' 과정이 있다. 창작도 어느 정도 교육을 거쳐야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글쓰기'가 어렵다면 쉽고 부담 없이 접근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여러 종류의 글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산문, 수필, 일기가 여기에 해당한다. 특히 일기는 단 한 줄을 쓰더라도 누구나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써 내려갈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소재가 무궁무진하고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가족들과 함께 놀러 간 것, 새 학년이 돼서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것, 엄마 아빠한테 혼난 것 등 모두 소재가 될 수 있다. 심지어 어른들에게는 회식도 소재다. 게다가 대단한 논리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써 내려가도 글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만약에 한 아이가 가족들과 야구장에 처음 갔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이렇게 써 볼 수 있다.

'아침부터 놀러 갈 생각에 신났다. 야구장에 도착하니 사람이 많았다. 실제로 처음 보니 야구장이 굉장히 넓고 컸다.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나왔다. 열심히 응원했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오늘 이겼다. 기분이 좋았다. 또 오고 싶다.'

이것이 일기이다. 대단한 것 없는 문장들이 이어지지만 아이들이 이렇게 세 줄, 네 줄 글을 써내려가면 쓸 말도 늘어난다.

이번에는 친구와 학교에서 싸운 이야기를 일기로 써 본다고 가정 해 보자.

'오늘 학교에서 친구와 싸웠다. 친구가 내 별명을 부르면서 놀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냥 참았다. 그런데 친구가 계속 놀렸다. 기분이 안 좋아 그만 하라고 화를 냈다. 그래도 계속 놀렸다. 나는 화가 나 친구를 때렸다. 그 친구도 나를 때렸다. 내가 잘못하지 않았는데 맞아서 더 화가 났다. 결국 크게 싸웠다. 기분이 나빴다.'

별것 없는 문장의 연속이지만 이 문장 속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바로 '원인과 결과' 그리고 '주장과 근거'이다.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왜 친구를 때렸는지, 왜 그만 놀리라고 화를 냈는지 '주장'과 '근거'가 제시되기 때문이다.

유감스럽지만 아이들과 학부모 그리고 지금의 경쟁 교육 체제가 학원·과외 등에 몰입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는 기회를 모두 가져갔다. 속성으로 알려주고 받아 먹을 수 있는 학원과 과외가 더 중요하니까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기는 자연스럽게 '눈에 가시'다.

그리고 지금 아이들에게 놓인 상황에서는 일기를 쓸 수가 없다. 학원 과제를 처리하기도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지금의 초등학생들이 밤에 몇 시에 잠드는지 한 번 물어보자. 오히려 주 52시간을 법적으로 명시 해 놓은 어른들이 더 행복하다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도 일기가 싫다. 우선 너무 피곤하고 쉬고 싶다. 게다가 시간도 많이 걸리고 쓰려니까 팔도 아프고 힘들다. 영어 단어 외우는 것이 편하고 수학 문제 푸는 것을 차라리 훨씬 쉽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국어는 읽고 풀고 답을 잘 맞추면 최고다.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일기는 점수로 제대로 반영하는 것 같지도 않는 그저 '귀찮은 작업'이다.

결국 이 과정이 쌓이고 쌓여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결과는 참혹하다. 생각의 과정이 점점 짧아지니까 조금만 문장이 길어지고 어려워지면 스마트폰 검색에 의존한다. 직접 만들고 써 보는 경험이 너무 없다 보니 다른 사람이 쓴 글도 이해하려면 스마트폰에 요약본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길고 긴 지문을 읽은 후 '100% 완벽하게' 답을 찾으라고 강조한다. 여기서 이미 딜레마는 시작한다. 문제는 저렇게 시간이 걸리고 힘들여 완성하는 것을 점점 경시하는 분위기다. 결국 어설프더라도 저런 과정을 거쳐서 논리라는 것을 머리 속에 만들지 못 하니까 논리력도 돈을 주고 사서 심어야 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내 조카도 결국 '희생양'인 것이다.

어쩌면 일기가 논술 교육 아닐까

나는 지금의 교육체제를 바꿀 수 있는 힘도, 능력도 없다. 하지만 조카의 숙제를 보면서 느꼈던 것은 일기가 교육적인 효과가 전혀 없는 '귀찮은 허드렛일'에 불과할까다. 국·영·수가 중요하다고 온 나라의 교육이 강조한다. 실제 학생의 인생을 좌우 할 수 있는 대학 입시에서도 가장 큰 축을 차지하는 세 과목이다. 인정한다. 그리고 꽤 오래 전부터 논술 역시 중요한 입시 전형으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생활 속에서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글쓰기' 교육이 무너져버린 것은 (비단 글쓰기 교육뿐일까)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한 줄 한 줄의 문장이 모여 일기를 완성하고 그 과정에서 인과관계, 논리라는 것이 심어진다.

지금이라도 '단 한 줄'이라도 좋으니 매일 써보라고 했으면 좋겠다. 여담이지만 조카의 학원 숙제를 도와주고 방에서 빠져 나오면서 뭔가 복잡한 심경의 한숨이 길게 나왔다. 이유는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일까 하는' 자책과 '조카가 너무 불쌍하다'는 마음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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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EBALL KID. 옳고 그름을 떠나서 다양한 이야기를 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