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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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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내지 못한 미투의 기억

"언니~ 잘 지냈어? 요즘 TV보다가 언니 생각이 나서 전화했어."

연락이 끊긴 지 한참 오래된 옛 회사 후배의 전화였다. 후배는 서지현 검사의 미투 운동을 보고 내 생각이 났다고 했다. 사연은 이렇다. 신입사원 시절, 그 후배는 당시 임원급이던 사람으로부터 같이 저녁을 먹자는 제안을 받았다. 알고 보니 단둘이 먹자는 것이었고, 술까지 권유했다고 말했다. 무섭다고 했다.

지금은 회사에 성폭력상담센터도 있고, 고발하면 즉시 대처해주는 조직도 생겼지만 당시에 그 후배와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그저 그녀의 고민을 그냥 들어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 후배는 임원의 제안을 계속 거절했다.

결국, 비정규직이던 그녀는 계약 연장을 하지 못하고 퇴사했다. 그리고 그 임원도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했다. 미투 운동을 보면서, 내가 당시 그 후배와 용기 있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나는 왜 좀 더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

오랜만에 전화 통화로 다시 그 이야기를 한참이나 했다. 그 후배는 말했다. "당시에 정말 무서웠다"고. 나도 미안함을 전했다. 한 살이라도 많은 내가, 정규직이었던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었어야 했는데... 사실, 그때 적극적으로 나섰다 한들 사회가 변할 수 있었을까? 과거로 돌아간다 한들 나는 용기 낼 수 있었을까?

그녀와 나는 신입사원이었고, 상대는 임원이었다. 조직 생활 해보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권력을 지닌 사람에게 대항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그런 면에서 나는 지금 미투 고발을 하는 여성들을 박수 치며 응원하고 있다. 이들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이곳이 좀 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미투' 운동에 대항해, 직장인 남성들 사이에서는 '펜스룰'이 유행이라고 한다. 펜스룰은 2002년 미국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아내 외의 여자와는 절대로 단둘이 식사하지 않겠습니다'고 말한 데서 유래한 행동 방식이다.

즉, 여자와 단둘이 있으므로 인해 오해를 살만한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이에 더해, 요즘 펜스룰을 적용한 사례로 회자되는 내용을 보면 여성 직원들과는 출장도 가지 않고, 업무지시는 메일이나 메신저로 하고, 회식도 따로 가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지인 회사의 임원은 여자 부하 직원과 회의를 할 때는 문을 열어놓고 한단다.

 '펜스룰'을 다룬 <조선일보> 기사. 최근 여러 언론이 앞다투어 '펜스룰'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 원칙은 다른 방식으로 여성을 차별하고 소외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펜스룰'을 다룬 <조선일보> 기사. 최근 여러 언론이 앞다투어 '펜스룰'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 원칙은 다른 방식으로 여성을 차별하고 소외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 조선일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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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스룰이 불편한 이유

여자 직원들과 거리를 두려는 펜스룰은 미투 운동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결과다. 미투 운동으로 고발된 남성들이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 '오해를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펜스룰이 생긴 것이라고 본다. 여태까지 고발된 남성들은 오해를 받은 것이 아니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범죄를 저질렀고, 권력에 굴하지 않는 용기 있는 여성들이 어두운 곳에서 행해지던 범죄 행위를 고발하고 있다고 봐야 정확하다.

직장에서 동료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협업을 통해 일을 이루어낼 수도 있고, 의견을 주고 받으며, 때론 동료애를 다지기도 한다. 그리고 동료와는 경쟁도 한다. 고과를 경쟁하며, 승진을 경쟁한다. 이 모든 총체적 인간관계가 동료다. 그런데 대화해서 10분이면 해결할 일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메일을 쓰고, 메신저를 쓰고, 여자라는 이유로 주요한 회의에서 배제된다면 회사 일이 제대로 돌아가겠는가?

여성은 기존에도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을 경험하며 차별을 받아왔다. 임원으로 진출하는 여성이 극히 드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출산과 육아휴직이라는 거대한 이벤트뿐만 아니라 사내정치에서도 여성은 늘 예외다.

문을 열어놓고 회의를 한다는 지인 회사의 임원은 '여자 직원은 키우지 않는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한다. 그 말은 '팀장 혹은 임원까지 승진시켜줄 생각이 없다'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즉,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이 펜스룰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유리천장의 두께는 더 두꺼워지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펜스룰로 인해 유리천장은 더욱 두꺼워질까 염려된다
 펜스룰로 인해 유리천장은 더욱 두꺼워질까 염려된다
ⓒ ⓒ Free-Photos,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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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에 대처하는 근본적인 자세

미투 증언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이 범죄행위가 권력자와 비권력자 사이에서 일어났다는 점이다. 지금 미투 운동으로 고발된 사건들을 보면 평등한 위치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여성들이 용기를 내어 미투 운동을 벌이는 흐름은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직장 내에서의 성폭력이 여성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남성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권력이란 언제 어떤 형태로 나에게 다가올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미투 운동을 통해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계속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응원해야 한다.

직장이라는 곳은 일하는 곳이다. 그리고 평등은 모두에게 의미 있는 가치이다. 회사는 상사가 있고 지위고하가 있는 곳이지만, 평등의 가치로 보자면 각자의 역할이 다른 것이다. 실무자와 관리자의 역할이 다를 뿐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충실히 하고, 협업할 때, 조직은 시너지 효과를 낸다. 권력자라는 지위를 남용해서 아랫사람을 마음대로 하려는 자세는 버려야 한다. 일을 일만으로만 본다면, 동료를 동료로만 대한다면 펜스룰은 필요 없다.

미투 운동이 한참 화두가 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남성들이 두려워할 것은 여성과 같이 일함으로써 미투 대상자로 오해받는 것이 아니다. 권력자의 범죄가 온전히 드러나지 못하고, 그대로 묻히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그래서 미래에 희생이 될지 모를 나와 내 가족의 안위를 걱정해야 한다. 그리고 알아야 한다. 펜스룰로 인해 또 다른 차별을 만들어 낸다면 그 피해자는 우리 후손이라는 사실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틀, 두가지 삶을 담아내다>(http://blog.naver.com/longmami)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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