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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은 불가능해 보인다. 특히 검찰과는 더 이상은. 민주적 기본질서나 시민을 지키는 행위는 애초부터 그들의 몫이 아닌 듯하다. 미네르바, PD수첩, 용산 참사 … '언소주'를 공갈 혐의로 기소했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법마저 '불도저'가 됐다, 대한민국 검사들에게 희망은 없다, 그렇게 단정하고 싶다.

그런데 아직은 이르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검사를 뒤늦게 알게 됐다. 지하철로 통근하고, 막걸리를 좋아했던 사람. 그런가하면 동료들에게 쓴 소리를 서슴없이 하고, '석궁 테러' 사건의 본질을 사법부의 오만에서 찾았던 검사. 강영권 검사는 이렇게 적었다.

"보이는 완장이든 보이지 않는 완장이든, 큰 완장이든 작은 완장이든, 완장 찼습네 하고 검사들만이라도 폼잡으면 안 된다. 검사들은 자기 편하다고 쉽게 사건을 처리해서는 안 된다. 작은 사건이라고 대충 처리한 결과가 소록소록 쌓여서 국민들이 우리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고 강영권 검사
 고 강영권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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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로 흔적 없이 사라진 옛 동네 아쉬워 제과점 찾은 검사

그의 글을 모은 <그의 글에 기대어 웃고 울다>(넥서스북스)의 한 대목이다. 이런 '문학검사'가 있는 줄 짐작도 하지 못했다. 얼추 세어봐도 강 검사가 인용하거나 언급한 시와 책이 60편을 넘었다. <목민심서>부터 <시크릿>, 소동파에서부터 신경림, 그의 독서는 깊고도 넓었다.

신경림의 시를 좋아해서 사무실을 옮길 때도 누렇게 변색된 시집 <농무>를 꼭 갖고 다녔다고 했고, 서울역에서 노숙자들을 바라볼 때는 김사인의 시 '노숙'이 생각났다고 했다. "대구지검에서 의정부지검으로 올 때까지 한 권씩 사서 읽은 책이 100여 권"이란 말에는 결코 '거품'이 없는 듯했다.

그렇게 인문학을 사랑했으니 남다른 감성을 갖고 있는 것도 당연했다. 옛날 살던 동네가 재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아쉬워하며,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제과점에 들어가 대화를 나눴다는 이야기는 '검사답지 않았다'. 나이 듦을 담백하게 풀어낸 다음 대목은 특히 인상적이다.

"내 얼굴을 거울을 통해서 봅니다. 청춘의 얼굴은 가고, 어느새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고 주름도 늘었습니다. 간혹 지하철을 타면, 젊은 사람이 제게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 하면서 자리를 양보합니다. 처음엔 당황했습니다만 지금은 익숙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슬프지만 어느새 저는 많이 늙었습니다."

그 흔한 '골프 이야기'는 없고... 지하철 이야기 그리고 '막걸리 검사'

허나 이런 문학 이야기만 반복됐다면, 아마 진작에 책을 접었을 것이다. 풍류를 알고 인문학을 사랑한, '글 좀 쓰는 검사'의 자랑 정도로 치부했을지 모른다. '스폰서 검사' 이야기에 그만큼 익숙해졌기 때문이리라.

그렇지만 그의 책에서는 그 흔한 골프 이야기 한 대목 나오지 않았다. 그 자리는 고속버스 터미널 지하철역에서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평소 사고 싶었던 책을 샀다는 '자랑'이 대신했고, 감기에 걸려 어느 날 택시를 탔다가 택시기사와 주고받은 대화가 자세하게 소개돼 있었다.

막걸리 냄새도 상큼했다. 북한산 두부집에서 모듬 두부와 녹두전을 안주 삼아 서울장수 막걸리를 마신 이야기나, 대구에서 근무할 때 퇴근 후 단골 돼지국밥집에 들러 불로막걸리 두 병을 시켜놓고 주인 아줌마와 나눈 대화 한 자락은 서민의 모습 그대로였다.

특히 친구와 북한산에 놀러갔던 이야기는 그의 성품을 짐작케 만드는 '백미'다. 담배를 피우던 친구가 국립공원관리사무소 직원에게 걸렸다고 했다. "한 번만 봐달라"며 "비 오는데 무슨 산불이 난다고 단속을 하느냐"고 사정했다고 한다. "법에도 눈물이 있지 않느냐"는 말까지 했지만, "조만간 (그 친구는)과태료 20만원을 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아내와 함께 간 단란주점에서. 그는 블로그를 통해 "담배를 끊었는데 술집에서 담배가 피워지고 싶으면 담배 냄새라도 맡기 위해 필터를 떼어내고 코에 담배를 걸어둔다"고 소탈하게 적고 있다. 이 사진을 본 방문자들과의 '주고받음'은 참 정겨웠다
 아내와 함께 간 단란주점에서. 그는 블로그를 통해 "담배를 끊었는데 술집에서 담배가 피워지고 싶으면 담배 냄새라도 맡기 위해 필터를 떼어내고 코에 담배를 걸어둔다"고 소탈하게 적고 있다. 이 사진을 본 방문자들과의 '주고받음'은 참 정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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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 찼습네, 검사들이 폼 잡으면 안 된다"는 그의 말처럼

검사라는 '완장'을 드러냈으면 겪지 않았을 '수모'였을 게다. 허나 강 검사는 불쾌함을 드러내는 대신, 관리사무소 직원을 통해 '완장'을 돌아보는 길을 선택했다. "완장 찼습네 하고 검사들만이라도 폼잡으면 안 된다"고 했다. 석궁 테러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비슷했다.

그는 우선 사건 당사자인 김모 교수 입장을 헤아렸다. "학교에서 해직된 이후 무보수 연구교수로 10년 간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왔던 사람"이라고 했다. "복직을 위해 형사투쟁과 함께 민사소송을 제기했던 사람"이라며 "인권 보호의 최후 보루인 법원에 기댔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사람에게 '교육자로서 자질이라는 기준에 현저하게 미달한다'거나 '더 이상 살펴 볼 필요 없이 아무 이유 없다'는 표현을 판결문에 무심코 쓴다는 것 자체가 판사뿐 아니라 검사가 고압적이고 오만하고 냉정하며 정나미 떨어지게 살고 있다는 반증 아니겠냐고 적시했다.

석궁 테러 사건을 불러일으킨 것이 법조계의 '오만'에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적어도 "당사자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며 석궁 테러 사건을 타산지석 또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했던 강 검사였으니, '내부'를 향해서도 쓴 소리를 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정의로움이 지나치면 그것이 발전해 잔인한 사람을 만든다"

"국민이 제일 먼저 접하게 되는 민생사건에서부터 수사 지휘를 제대로 해야 하고 그게 우리가 먼저 신경 써야 할 일인데, 보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인지수사나 특별수사를 잘 하고 단속을 잘 하면 능력을 인정받게 되는, 그야말로 경찰과 다름없는 수사기관 중의 하나로 스스로 자리 매김하면서 국민들로부터 '분권화되어도 무방한 것 아닙니까?'라는 소리나 듣도록 우리의 현재 위치를 자초하지 않았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검경 수사권 독립 논란이 한창일 때도 그는 먼저 '자신'을 돌아보자고 했다. 택시기사와의 대화에서 재확인한 법조계에 대한 불신을 소개하는 과정에서도 그랬다. "항상 사건 당사자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사건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검찰 신뢰의 '제 1조건'으로 꼽은 강 검사는 이렇게 글을 잇는다.

"그 다음의 돌파구는 정직이며 성의라고 생각합니다. 검사나 판사가 힘쓰고 애써서 땀을 흘리며 뭔가를 밝히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야만 나같이 하찮은 서민의 작은 사건도 많이 배우고 잘난(?) 검사가 해결해주려고 애를 쓰는구나 하고 안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그런 척이라도 하는가요?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는 내 일처럼 하고, 결론을 내릴 때는 판단에 사(邪) 또는 사(私)가 끼지 않도록 남의 일처럼 해야 하지 않을까요 (반대로 조사는 남의 일처럼 하고 결론은 내 일처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듯합니다만)!"

 강영권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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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대인간? "잘 달리려면 가진 것이 적어야 한다"

책을 읽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힘, 결국 '바깥과의 소통'을 위한 끊임없이 노력한 것에서 비롯됐다는 생각. 폭 넓은 독서나 평소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서민들과 의견을 나눴던 것 역시 그러한 노력의 일부분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지금 더욱 귀한 이야기가 참 많다.

"공정성이야말로 검사가 가져야 할 제1의 덕목임이 틀림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가만이 물리적 폭력을 합법적으로 독점하고 있는데, 그 형벌의 사용이 공정하지 못하면 정당성을 잃게 되기 때문"이란 글을 고 김원치 검사장의 저서 <법과 인생> 중에서 검사들이 명심해야 할 대목으로 강조한 것이나.

"잘 달리려면 가진 것이 적어야 한다"면서 "명예나, 부, 권력을 가지면 변화하기를 싫어한다. 그야말로 빨대 인간이 되는 것"이란 그의 지적에 이르면, 뜨끔할 '검사'가 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특히 그가 여러 번 인용한 "인자함은 지나쳐도 군자에게는 문제가 없지만, 정의로움이 지나치면 그것이 발전해 잔인한 사람을 만든다"는 소동파의 구절은 마치 '노무현의 비극'을 예고했던 것 같다.

"한때 우리 사회에는 정의사회 구현이니 하면서 정의를 특히 강조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구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억울함과 분함이 만들어졌던가요! 소동파의 그 구절은 파사현정(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냄)을 기치로 삼고 실체적 진실을 밝히겠다고 하는 검사들이 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과도한 정의감이 주는 참혹감에 대해서..."

강 검사와 소통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지만...

강 검사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불통 시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미네르바, PD수첩, 용산 참사 등을 수사하는 검사들이 바로 '빨대 인간'이 아니냐고 대놓고 따지고도 싶다. 더 여유가 허락된다면, 현직 고검장이 미인대회 심사위원장을 한 것이 적절한 처신인지도 묻고 싶다.

너무 늦었다. 그는 지금 이 세상에 없다. 지난 1월, 강 검사는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한 권의 책으로 그를 평하기 더욱 조심스러운 '안타까움'이다. 허나 그의 유고에서는 적어도 확실한 한 가지를 알 수 있다. 스스로 지키는 '무엇'이 많았을 사람이라고.

그래서 동료들은 지하철 검사, 막걸리 검사, 만년 부장검사라고 기꺼이 불러줬을 것이다. 강영권 검사가 사랑한 자신의 인생만큼, 그의 인생은 아름다웠을 것이 분명하다. '가짜 보수'가 횡행하는 요즘, 소통하고 싶은 검사를 알게 된 것은 기쁨이었다. 또 그런 '검사님'은 아마 강 검사만은 아닐 것이란 희망도 발견하게 됐다. 늦게나마 고인의 명복을 빈다.

지극히 주관적인 평점

사법고시 준비하는 사람들 ★★★★★☆
공무원 ★★★★★
진짜 보수에게는 마음을 열고 싶은 사람들 ★★★★
변호사 개업을 준비하는 검사님들 ★★★
앞에 폴리(politics)를 붙이고 싶어하는 해바라기들 ☆

"삼등 완행열차 같은 사람" "권력 앞에서 자유로운 영혼"

 '그의 글에 기대어 웃고 살다'와 '그의 길에 기대어 웃고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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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검찰을 떠났지만, 군산지청을 거쳐 의정부, 전주, 광주, 서울북부, 부산고검, 순천부장, 다시 광주, 인천, 다시 광주, 서울동부, 서울고검, 다시 광주고검, 서울서부, 대구 전문부장을 거쳐 20년 만에 의정부로 다시 돌아와 전문부장검사로 지하철로 통근하면서 근무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사법연수원 동기 최영호 변호사가 추모의 글을 통해 밝힌 고인의 이력이다. 강영권 검사. 1958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여수중학교, 순천고등학교를 거쳐 동국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했다. 1981년 대학을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 부산 지검 검사로 임명돼 법조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강영권은 삼등 완행열차 같은 사람"이란 홍하상 작가의 표현처럼, 검사로서 '외길'을 묵묵하게, 꿋꿋하게 걸어왔다는 것이 지인들의 평가다. 홍 작가는 "그의 열차에는 참 많은 사람이 몸을 싣고 있다"면서 "그는 그들과 막걸리와 소주를 마시면서 슬픔과 괴로움을 함께 했다"고 적고 있다.

최 변호사는 "인사 발령에 불만을 품고 변호사 개업을 하려는 사람을 늘 토닥거리고 같이 아파해 주면서도 자신의 앞날에 대해서는 아무런 속내도 드러내지 않았다"고, 손풍삼 순천향대학교 총장은 "특별히 내가 그를 존경한 것은 그가 권력 앞에서 자유로운 영혼이었기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이번에 나온 <그의 글에 기대어 웃고 울다>는 오랫동안 강 검사가 자신의 블로그(blog.naver.com/everpower108)에 올린 글을 엮은 것으로, 그를 사랑했던 지인들이 '강영권 검사'를 추모하고 오랫동안 기억하고자 출간한 유고집이다. 그가 살아 생전 쓴 기록을 모아 만든 '그의 글에 기대어 웃고 울다'와 기행문만을 모아 만든 '그의 길에 기대어 웃고 울다' 등 2권으로 나뉘어 있다.



그의 길에 기대어 웃고 울다 - 강영권 검사가 사랑한 세상

강영권 지음, 넥서스BOOKS(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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