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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인 김진석 사진작가가 지난달 26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로 떠났다. 올해 10월까지 진행할 '고려인의 길' 프로젝트 취재를 하러 간 첫 방문지다. 현재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고려인은 대략 80만명으로 추정한다. 1937년 강제 이주로 러시아 본토와 중앙아시아로 흩어진 고려인 등을 합친 숫자다. 5세대까지 이르렀다.

김진석 작가는 지난해 8월까지 청와대 행정관을 지내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의 전속 사진가로 일했다. 지난 2016년 3개월 동안 카자흐스탄의 고려인을 취재하며, 80년이 넘은 시간을 거꾸로 흘러보내듯 고려인 한 명 한 명의 삶을 기록했다.

그리고 올해 2월말 다시 길을 떠났다. 우즈베키스탄을 시작으로 타지키스탄, 키르기즈스탄, 카자흐스탄을 거쳐 고려인의 기차 이동 경로를 거꾸로 달려 블라디보스토크로 갈 예정이다. 이후 모스크바를 거쳐 동유럽의 우크라이나, 조지아, 벨라루스 등을 거친 뒤 마지막으로 러시아 사할린과 캄차카의 고려인을 만날 예정이다.

김진석 작가의 '고려인의 길' 연재기사는 <오마이뉴스>에 단독으로 게재된다.[편집자말]
한 블라디슬라브 선생은 두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못내 아쉬워했다. 큰 할아버지 한창걸 선생에 대해서는 많은 자료는 아니지만 여러 자료를 수집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인 한성걸 선생의 경우 사진 한 장과 재판 관련 자료 몇 개밖에 찾을 수 없었다.ⓒ 김진석
 
한 블라디슬라브 선생이 한창걸 선생의 처형과 관련된 재판 기록을 들고 있다. ⓒ 김진석

2월 28일 오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소련 시절 지은 아파트. 다소 어두운 집안에 가지런히 진열돼 있는 책들과 장식품들, 그리고 벽에는 가족 사진들이 나란히 걸려 있다. 책상 앞에서 컴퓨터를 바라보고 있는 이 주인공이 한 블라디슬라브(67) 선생이다.

그의 직업은 '고려 사람'이라는 사이트(https://koryo-saram.ru/) 운영자다.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해 중앙아시아, 동유럽, 러시아 등 고려인들의 소식들을 모아 홈페이지에 업데이트를 한다. 하루 1500여 명의 방문자들이 찾아온다. '고려 사람'은 고려인에 관한 정보 사이트로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한 블라디슬라브 선생은 독립유공자의 후손이기도 하다. 홍범도, 김경천 장군 등과 함께 연해주 일대에서 항일 운동을 하던 빨치산이었던 한창걸 선생(큰 할아버지)과 형제 한성걸 선생(할아버지). 두 분 모두 1937~1938년 당시 스탈린에 의해 처형 당했다.

한창걸 선생의 경우, 소련군에 징집돼 독일 전선에 참전한다. 그 뒤 군사학교를 거쳐 장교로 임관한다. 1918년 제대해 80여 명의 한인들로 구성된 빨치산 부대를 창설하고,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전과를 거두기 시작한다. 

1921년에는 만주에서 연해주로 옮긴 독립군의 임시 군사위원회 군정위원을 지내기도 한다. 이와 더불어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 항일 운동을 하던 김경천 장군을 사령관으로 하는, 800여 명 규모의 항일 부대를 창설하고 사관학교를 만들었다.

이후 한창걸 선생의 부대는 1922년 '올가만 해방 전투' 등에서 전과를 올리고, 일본군이 연해주에서 완전 철수 할 때까지 활동했다. 하지만 고려인 강제 이주의 해였던 1937년 수많은 인사들과 함께 숙청을 당한다. 유해조차 찾을 수 없는 추운 동토의 땅에 묻혔다.

한성걸 선생의 경우,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2007년 대한민국 정부는 한창걸, 한성걸 형제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한성걸 선생의 경우 직계 가족이 있어 훈장을 수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창걸 선생은 직계 가족을 10년 동안 찾을 수 없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더 이상 훈장 수여를 미룰 수 없어 올해 초 방계 손자인 한 블라디슬라브에게 대신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그의 손에는 큰 할아버지의 훈장이 들려 있었다. 
 
독립운동가 한창걸 선생의 훈장증을 들고 있는 한 블라디슬라브. 훈장증을 들고 있는 한 선생의 표정이 무겁고 어두웠다. 작가는 선생님에게 가능한 좋은 생각과 웃음을 보여달라고 주문했다. 훈장은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이름이 들어가있다. 12년 동안 직계 가족을 찾지 못해 훈장은 그 누구에게도 전달 되지 못했다. 올해 보훈처는 더이상 훈장을 방치할 수 없어 방계 가족인 한 블라디슬라브에게 훈장을 전달했다. ⓒ 김진석
  
독립운동가 한창걸 선생의 모습.ⓒ 김진석
 
독립운동가 한성걸 선생의 모습.ⓒ 김진석

- '고려 사람' 사이트를 어떻게 운영하게 되었나.
"지난 2006년 한국 정부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당시 많은 분들의 환영과 감사 인사를 받았다. 독립운동가인 할아버지와 큰할아버지 두 분의 손자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사실 당시만 해도 두 분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다. 

1937년 돌아가신 큰할아버지 한창걸 선생의 경우 총살을 당했다. 시신도 찾을 수 없었고 함께 총살 당했던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매장되었기에 시신도 찾을 수 없었다. 내 아버지는 무서웠던 그 당시 분위기에 대해 나에게 말을 아꼈다. 

독립운동을 했던 할아버지들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나에게 환대를 해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부끄러웠다. 할아버지들의 자료를 찾기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서 후손들에게 지금이라도 고려인의 역사를 알 수 있게 자료를 모으고,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듣고 기록해 올리기 시작했다. 그게 벌써 10년 전 이야기다."

- 한 선생님이 생각하는 '고려인'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들은 당시 강제로 이주 당했다. 그리고 살기 위해 일하고 공부해 지금에 이른 것이다. 고려인을 러시아 말로 '카레예츠'라고 부른다. 또 한국 사람들도 '카레예츠'라고 부른다. 북한 사람들도 '카레예츠'라고 부른다.

중국에 사는 조선족도 '카레예츠'라고 부른다. 일본에 사는 조선인도 '카레예츠'라고 부른다. 우리는 모두 '카레예츠'다. 그것이 바로 고려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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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한창걸 선생에게 대한민국 정부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김진석
  
독립운동가 한성걸 선생의 손자인 한 블라디슬라브.ⓒ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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