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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 남을 대하기에 떳떳한 도리나 얼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뜻한다. 이 단어는 주로 '없다'와 만나 분노로 이어지곤 한다. '염치 있는' 사람들을 만나본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염치'란 단어가 원래 갖고 있는 사회적 의미를 조명하고자 한다.[편집자말]
 
 1996년 9월 6일자 <매일경제>에 실린 백종원 대표 인터뷰 기사. 당시 그는 목조주택 자재 공급부터 시공까지 모두 진행하는 회사 '다인'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1996년 9월 6일자 <매일경제>에 실린 백종원 대표 인터뷰 기사. 당시 그는 목조주택 자재 공급부터 시공까지 모두 진행하는 회사 "다인"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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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왼손에 선글라스가 들려 있었다.

한 경제 일간지에 실린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의 24년 전 모습, 당당해 보였다. 그 때도 그의 직함은 사장이었다. "강남 논현동에서 유명한 '원조쌈밥집' 창업자"이자, 한 해 50억 원가량 매출액을 올리는 회사의 대표이기도 했다. 자재 공급부터 설계와 시공까지 모두 하는 주택회사 사장임을 상징하듯, 그는 오른손으로 설계 도면과 펜을 함께 쥐고 있었다.

당시 그의 나이 서른. 무척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백 대표가 "우리 회사가 시공하고 있던 목조 주택 지붕 위에서 근사하게 사진도 찍었다"며 그때를 아직도 잊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그 기자가 지나가는 말로 '설마 망하시는 건 아니죠? 취재만 하면 망하는 분들이 꼭 있어서요'하며 농담을 던졌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나는 아직도 그 기자의 말만 생각하면 속이 쓰리다. 물론 내가 망한 것은 절대 그의 탓이 아니지만." (2010, 백종원, <무조건 성공하는 작은 식당> 중에)

그의 책들에서 꼭, 그것도 여러 차례 등장하는 단어
  
그 후, 백 대표가 운영했던 주택회사는 IMF 시절 그야말로 폭삭 망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책 <백종원의 장사 이야기>란 책에서 "그 때 망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며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전한다. "아, 식당이라는 게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내가 가게에 있는 게 재밌어야 되는구나." 그리고 쌈밥집 운영에만 '올인'했다고 한다.

앞서는 "식당 사장이라는 게 부끄러웠다"고 했다. "식당을 한다고 알게 모르게 천대를 받고 만만하게 보이던 시절"이었고, "사회에서 인정할 만한 번듯한 일이 아니라는 자격지심에 자존심이 상했다"고 했다. 백 대표는 "(목조주택) 사업이 잘 되자 그 식당을 유지한다는 현실도 부끄럽게만 여겨졌다"며 "그때부터 눈에 띄게 식당 일을 등한시했다"고도 회고한다. 그런 마음을 <무조건 성공하는 작은 식당>이란 책에서는 일종의 최면으로 표현했다.

"그동안 '나는 특별한 인간'이라는 최면에 걸려 살아왔는데, 그 최면이 한순간에 풀리면서 '역시 나도 별 수 없는 평범한 인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살아갈 일이 너무나 막막했다. 그렇지만 도를 닦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품었던 모든 욕심을 버리고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보자고 결심했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 그 깨달음이 곧 그의 식당 운영 철학이다.

실제 백 대표 책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 단어가 욕심이다. 그는 "식당을 만들면서 모든 소비층에게 만족을 주려고 하면 안 된다"며 "길거리에 있는 모든 사람을 손님으로 잡겠다는 것은 욕심"이라고 했다. 식당 분위기를 만들 때도 "절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건 욕심"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돈 욕심을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백종원의 장사 이야기>에서도 그는 "식당 일을 즐기면서 내 인건비 정도 벌겠다는 생각으로 해야 한다, 처음부터 그보다 더 욕심을 부리면 꼬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백 대표는 "식당이 잘 되고 손님들도 많이 들어오면 안정적으로 식당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면서 가장 좋은 방법으로 "마진율을 줄이고 재투자를 해서 손님들에게 이익을 돌리라"고도 권한다.
 
 2019년 1월 6일에 방영됐던 SBS <골목식당> '청파동 하숙집 골목 편' 중 한 장면.
 2019년 1월 6일에 방영됐던 SBS <골목식당> "청파동 하숙집 골목 편" 중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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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대표가 '거미새 라면집'에 가장 실망했던 이유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통해 줄곧 그가 강조하는 조언의 핵심 역시 그렇다. 2019년 1월 방영됐던 '청파동 하숙집 골목편'에 등장했던 회냉면 집 사장 부부와 나눴던 대화가 그 예다. 백 대표의 극찬으로 첫 방송 후 관심이 집중된 그 곳에 손님이 길게 줄을 서 있는 상황을 목격하고 "손님 욕심을 안 내니까 서서히 (매출이) 올라가더라"는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한다.

"방송 나가면 사람이 엄청 올 건데, 그러지 말고 테이블 차라리 빼시는 게 낫다. 이 집의 회냉면은 정말 맛있어요, 제대로 숙성돼서 잘 익은 회 무침에 제대로 하면. 딱 두 분이 정하세요. 50그릇이면 50그릇, 60그릇이면 60그릇, 그렇게 해서 써 붙이세요. 당분간 몇 그릇만 팔겠다고 해서, 딱 두 분이 정말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딱 그거까지만."

지난 1일 방영된 '거제도 지세포항 골목 긴급 점검 편'에서 백 대표는 '도시락집'에 가서 "세 가게 중 제일 실망감을 준 가게"라고 말했다. 과거 방송에서 '거미새 라면'이란 메뉴로 화제가 됐지만, 방송 이후 '만원 이하는 현금 결제를 요구한다'거나 '1인 1라면 주문을 원칙으로 하더라'는 방문 후기가 많았던 곳이었다. 긴급 점검에 나선 백 대표는 사실 관계부터 확인한 후 이렇게 묻는다.

"그게 말이나 되냐고. 욕심 때문에?"

그는 "진짜로, 누누이 말씀드렸지 않았냐"면서 다시 강조한다. "진짜로, 제발, 욕심부리지 마시고, 초심 잃지 마시고, 좀 멀리 내다보시라"고. "오는 사람들 6개월, 7개월, 길어야 1년이면 다 바닥 드러나니까, 그 때부터 진짜라고 그러지 않았냐"고 백 대표는 거듭 말한다.

이렇듯 욕심에 대한 절제가 '백종원 솔루션'의 기본 바탕이다. 그 바탕이 단단하지 않으면, 욕심을 줄이고도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게끔 하는 그의 시스템이 훼손될 가능성 또한 높아지기 때문이다. 

고마움을 느낄 줄 아는 마음가짐... 염치
 
 지난 1월 1일 방영된 SBS <골목식당>  '거제도 지세포항 골목 긴급 점검 편'의 한 장면.
 지난 1월 1일 방영된 SBS <골목식당> "거제도 지세포항 골목 긴급 점검 편"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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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백 대표가 강조하는 대로 욕심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쉽지 않은 일에 대한 답의 일부가 <백종원의 장사 이야기> 머리말에 나와 있다. 백 대표는 "사회적 변화에 따라 대중들의 취향도 달라지기 마련이고, 식당 경영 방식도 그에 따라 달라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이렇게 강조한다.

"'한결같이 내 가게에 와 준 손님에 대한 고마움을 느낄 줄 아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가짐은 '염치'와도 통한다.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마음에 욕심을 누르는 힘이 있어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염치를 갈고 닦으면 욕망을 절제할 수 있다는 대목이 수 차례 등장한다.

남의 신세를 지고도 고마움을 모르는 경우를 일컬어 흔히 '파렴치(破廉恥)하다'고 한다. 욕심을 누르면 보이는 마음이 또한 고마움이다. 그래서 백 대표가 강조하는 '솔루션'의 기본은 이렇게도 요약할 수 있다.

염치가 있으면 흥하고 염치가 없으면 망한다.

[염치주의 연재 기사들]
01. 트위터리안 요시키, "프로매국노" 일본인을 만나다 http://omn.kr/1l32w
02. 수의사 김정호, '북극곰 없는 동물원' 꿈꾸는 동물원 수의사 http://omn.kr/1lgin
03. 판사 박주영①, 동사무소에서 판사는 부끄러웠다 "법에 무지하여..." http://omn.kr/1llj7
04. 판사 박주영②, "역사는 디스코 팡팡 같아... 진보와 염치는 한 몸" http://omn.kr/1llmq
05. 배우 김남길, "이젠 저도 건물주 됐으면 좋겠어요" http://omn.kr/1lnfz
06. 가수 아이유, 이것은 팬레터입니다, 수신자는 '아이유' http://omn.kr/1lp5s
07. 심리학자의 분석, 조국-나경원 욕먹는 각각의 이유 http://omn.kr/1lpop
08. 대학생이 꼽은 '염치없는 교수', 세 가지 유형 http://omn.kr/1lqfx
09. "전두환, 황금 가면 쓴 최고 철면피 3위" http://omn.kr/1lvpk
10. 염치는 전염된다... 친일인명사전으로 옮아간 부자의 염치 http://omn.kr/1m10c
11. 조선왕조실록 2067번 등장하는 염치, 역사학자 이덕일의 해석 http://omn.kr/1m9m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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