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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연 학생
 김수연 학생
ⓒ 꿈틀리인생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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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리 인생학교에 오는 것을 고민하는 중, 초등학교 때 선생님과 메일을 주고받았다. '결정은 제가 하겠지만 조언을 구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사실 꿈틀리에 가고싶다는 내 생각에 확신을 갖고 싶었다. 선생님은 내 고민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씀하셨다.

"새로운 것을 실천해보는 사람은 참 멋지지. 새로운 길이 열릴 때 그냥 해봐. 선생님에게 만약 아이가 있다면 학교에서 생각 없이 경쟁하고 의미 없이 암기시키고 싶지 않아. 꼭 학교가 아니어도 좋은 강의는 이미 사회에 널렸으니까.

사회에서 1등급 노예가 되는 거, 스스로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아. 말 잘 듣고 생각 없고 성실하고 불평불만 없이 사는 거. 나는 칭찬에 이끌려서 남이 만족하는 사람으로 커버린 것 같아. 그냥 성적에 연연해서 바보같이 살았어. 여행 다니면서 그걸 깨달았지.

너는 세상을 많이 보고 다니면 좋겠다. 우물 안 개구리들이랑 아웅다웅하지 말고. 우물로 돌아와서 사다리를 놓는 개구리가 되는 거야. 결론은 꼭 학교에서 배울 필요는 없다는 거. 배움은 어디에나 있으니 너가 충분히 고를 수 있다는 거."

 
 꿈틀리인생학교에서는 자신의 관심분야에 대해서는 모든곳이 캠퍼스이다. 비건페스티벌에서 친구들과 함께
 꿈틀리인생학교에서는 자신의 관심분야에 대해서는 모든곳이 캠퍼스이다. 비건페스티벌에서 친구들과 함께
ⓒ 꿈틀리인생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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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을 읽고 '나는 꿈틀리 인생학교에 가야겠어!' 라고 결심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꿈틀리 인생학교 졸업소감문을 쓴다니. 자기소개서도 예비학교 소감문도 아닌 졸업소감문을. 이제는 진짜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 되었나보다.

무엇을 쓸지 고민하다가 다시 읽어본 자기소개서에는 내가 하고 싶은 걸 찾겠다는, 내 항로를 정하고 싶다는 결심이 적혀져 있었다. 지금 다시 읽어본 내 소감은, '나 자신을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아?'다.

나를 안다는 게 뭔지 몰랐고, 그래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 그저 '평범한 중학교의 한 학생'이 나의 정체성이었다. 김수연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한 중학교에 속한 김수연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같은 옷을 입고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똑같이 생긴 교실에서 뒷모습이 모두 똑같은 채로, 신발이나 안경, 양말, 겉옷이 무채색이 아닌 경우 눈에 띄게 되고, 갈 곳이라고는 교실과 학원, 집이 반복되는 세상이었으니.
  
하늘이 예쁘다는 말을 하면 '감성충'이라는 말을 들었고, 안경 벗고 화장하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내가 마음에 드는 신발을 신고 학교에 가는 날이면 친구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내가 살던 세상은 내가 나로서 존재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나답게 살 용기가 없었다.

꿈틀리의 사람들은 나의 감성과 로망들을 사랑해주었고(웃을 때도 있었지만ㅎ) 나의 조용한 모습을 불편해하지 않았으며, 내 모습 있는 그대로를 아껴주었다. 나다운 것들을 마음껏 분출해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 나의 나다움을 존중해주는 사람들이었다.

좋아하는 옷을 입고, 끌리는 걸 보러 다니고 찾아다니는 나의 '옆을 볼 자유'는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계속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가고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실천하면서 나다움을 찾아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렇게 1년을 지내다 보니 '다른 것의 일부로써'가 아닌 나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꿈틀리 인생학교에서의 1년은 가장 나답게 살 수 있는 시간이었다.  
 꿈틀리인생학교에서는 날씨 좋은 날에는 야외로 나가지요.
 꿈틀리인생학교에서는 날씨 좋은 날에는 야외로 나가지요.
ⓒ 꿈틀리인생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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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리친구가 나에게 '나는 이제 나를 제일 사랑할 거야'라고 말했다.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먼저 그 사람을 잘 알아야 하듯이, 우리도 우리를 잘 알았으니 이제 우리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되어 사랑받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미움받는 게 낫다는걸 우리는 깨달았다.

내가 처음 꿈틀리에 올 때 계획했던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걸 정확하게 결정하지 않았지만 아쉬운 게 없다. 아마도 그 이유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았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살아갈지 알았더니 무엇을 하고 살지는 그때그때 하나씩 정하면 될 것 같아서 큰 부담감이 없다.

이 모든 건 꿈틀리라는 공간과, 꿈틀리의 사람들이 아니라면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1년동안 꿈틀리 사람들에게 받은 작은 쪽지와 편지들을 정리하다가 정말 사랑을 많이 받은 1년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2019년에서 2020년으로 넘어간 순간 꿈틀리 친구들의 인스타그램에 자기 인생에서 가장 따뜻하고 행복한 1년을 보냈다, 고맙다는 글들이 많이 올라왔다. 그 글들을 볼 때마다 '그래도 아름다운 공동체에서 1년을 보냈구나'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졸업을 앞둔 지금은 허전하고 아쉽다. 전신성형에 신분세탁을 하고 꿈틀리에 다시 오고 싶다는 친구도, 선생님이 되어서 꿈틀리에 다시 오겠다는 친구도 있다.

2층침대에서는 잠들기 전에 천장의 쥐들이 타다다닥 뛰어다니는 소리가 생생히 들려도, 2층 애들이 밤에 뛰어다닐 때마다 '제발 오늘 밤은 안 무너지게 해주세요. 그래도 난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어'라는 생각을 해야함에도 친구들과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나뿐만 아니라 우리가 함께 따뜻한 1년을 보내서가 아닐까?
  
 안녕!! 꿈틀리 4기들
 안녕!! 꿈틀리 4기들
ⓒ 꿈틀리인생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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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일반 고등학교로 돌아간다. 하지만 걱정이 크지는 않다.

뒷모습이 똑같은 사람들 속에 다시 섞이겠지만, 이제는 함께도 존재하고 나 혼자서도 존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 힘들면 가서 위로받고 서로 의지할 꿈틀리라는 연대가 있고 언제나 나다울 자신이 있으니까,

우물로 돌아가 사다리를 놓는 개구리가 되기 위해.


☞ 꿈틀리인생학교 5기 모집 안내 (https://ggumtlefterskole.blog.me/)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수연씨는 꿈틀리 인생학교 4기 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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