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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 운동가들이 대담을 나누고있다. 왼쪽부터 김도현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권우현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칸노 한나.
 청소년 운동가들이 대담을 나누고있다. 왼쪽부터 김도현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권우현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칸노 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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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환경운동연합과 청소년기후행동의 공동주최로 작은 집담회가 열렸다. 초대된 이야기 손님은 두 명의 여성 청소년 활동가들이었다. 후쿠시마 출신 탈핵 운동가인 칸노 한나와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활동가인 김도현씨였다. 이전까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두 사람이었지만 지속가능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닮아있었다.  

먼저 이야기를 시작한 건 한나였다. 한나씨가 초등학교 1학년 때, 그가 살던 후쿠시마에 큰 재난이 닥쳤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었다. 그날은 한나씨의 생일 전날이기도 했다. 지진은 이어 쓰나미를 몰고 왔고 지상으로 들이닥친 바닷물은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전원 고장을 일으켰다.

이윽고 후쿠시마 핵발전소들이 폭발하기 시작했고 대량의 방사성 물질이 유출됐다. 초등학교 입학 후 처음 맞이한 생일은 축하받을 수 없게 되었다. 도리어 그는 이유도 모른 채 코피를 흘려야 했고, 언니의 머리칼이 빠지는 것에 불안해해야 했다. 한나씨는 그렇게 전례 없던 사고의 이재민이 되었다.

사람이 살아선 안 되는 땅이 되어버린 곳을 떠나 한나씨의 가족은 교토로 이주했다. 동북지방 사투리를 쓰는 한나씨와 후쿠시마 출신 청소년들은 이주한 지역에서 놀림감이 되기 쉬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와 방사능 오염 등이 알려질수록 후쿠시마 출신 이주민들이 겪어야 하는 혐오와 조롱은 심해졌다. 한나씨도 차별과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한나씨는 "지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가 지금 한국에서 '탈핵'을 말하는 이유다.

끔찍한 사고가 일상을 좀먹었지만 한나씨의 아버지는 직업 특성상 후쿠시마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한나씨에게 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 짧은 만남을 끝내는 것이 매번 쉬웠을 리 없다. 한나씨와 그의 언니는 늘 아버지를 붙잡고 울었다. 그곳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그러나 아버지는 가야만 했고, 한나씨 자매는 서서히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아쉬움과 슬픔을 턱밑에 누르고, 자매는 아버지와 몇 번이나 덤덤한 척 이별해야 했다.

후쿠시마 사고는 끝나지 않았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원자로에서는 여전히 핵분열이 일어나고 있고 이를 식히기 위해 냉각수가 지속적으로 투입된다. 당연히 그만큼의 핵폐기물이 발생하고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를 해양에 방출하겠다거나, 폐기물을 건축 자재로 이용하겠다거나, 태풍 하기비스의 도래로 폐기물이 유실됐다는 등의 뉴스에 등장하는 '오염 폐기물'이 그것들이다.

한나씨는 본인의 경험을 넘어 이러한 핵사고 이후 수습 문제나 여전히 지속되는 핵발전의 문제들까지도 지적한다. 그에게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라는 원자력의 신화는 이미 깨진 지 오래다.

"특별하지 않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한나씨가 서 있던 자리에 도현씨가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도현씨는 이미 세 번의 큰 집회와 여러 번의 퍼포먼스를 기획하고 실행한 청소년 기후 운동가다. 도현씨가 소속되어 있는 '청소년기후행동'은 올해에만도 3월 15일, 5월 24일, 9월 27일, 총 세 번의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를 열었고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당국에 전달했다.

서울시 교육감과 환경부 장관 등 책임있는 인사들과 만나기도 했지만, 도현씨의 답답함은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기후변화의 마지노선인 '1.5도 상승'을 막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환경부 장관의 말을 들어야 했다. 청소년이 미래세대니까 기후변화 대응에 앞장서라는 무책임한 대답이자 환경부라는 부처의 존재 근거를 포기한 '어른'의 모습이었다.
  
 청소년기후행동 김도현 활동가
 청소년기후행동 김도현 활동가
ⓒ 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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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현씨를 기후변화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는 활동가로 만든 경험은 2018년 여름 어느 반지하 방에서 일어났다. 관측 이래 최고 기온을 갱신한 그해의 폭염은 도현씨에게 급박한 위기감으로 다가왔다. 그러던 중, 독거노인 등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는 봉사활동을 하던 도현씨는 찜통 같은 반지하 방에 선풍기도 없이 누워있는 어느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그 이후로 더위에 노출된 노동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대형 산불이, 매년 늘어가는 폭염 사망자들이 도현씨 눈에 밟혔다. 사회의 약자들이 기후변화의 피해에 가장 먼저 노출되는 것이었다.

8.5년. 도현씨가 절박하게 말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남은 시간이었다. 실제로 전 세계가 지금처럼 온실가스를 배출할 경우, 8년 뒤에는 남은 탄소 예산을 다 쓰게 된다. 그 이후엔 기후변화가 얼마나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될지, 생태계가 얼마나 심각하게 무너질지 누구도 섣불리 말할 수 없는, 눈덩이가 구르는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기후변화에 대해 침묵하다가 탄소 예산이 다 소진된다면 그때 도현씨의 나이는 25살이다.

책임과 권한을 모두 가졌으면서도 무책임하게 구는 기성세대는 청소년들의 미래를 가지고 아찔한 도박을 벌이고 있다. 지금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지구는 끔찍한 불확실성의 장에 던져질 것이다. 도현씨가 "학교에서 미래를 꿈꾸고, 진로를 계획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를 받는데, 정작 그 미래가 불안하다는 것은 굉장히 모순적"이라고 지적하는 까닭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청소년들이 기후변화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 특별하거나 이례적인 일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싶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담보로 오늘을 누려온 것이다

기후변화를 막으려면 도현씨와 한나씨는 그들의 조부모가 배출했던 것보다 이산화탄소를 6분의 1 수준으로 배출해야 한다. 이는 그만큼 젊은 세대가 그 이전 세대에 비해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미 시작되어버린 지구 온도 상승의 부담을 더 많이 지게 되는 것 역시 후배 세대들이다. 후배 세대가 쓸 수 있는 재원 중 상당 부분을 기후변화 대응 및 적응 프로그램에 투입해야 할 것이다. 때로는 기후변화로 인한 대규모 재해 때문에 '생명'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모든 위험부담이 후배세대에게 떠넘겨지는 무책임함은 끝나질 않는다. 주요 온실가스 배출원인 석탄화력발전소는 국내에 60기. 아직도 7기가 신규 건설 중이다. 미세먼지를 이유로 조기 폐쇄 결정이 내려진 노후석탄화력발전소 6기가 다 문을 닫아도 온실가스는 줄지 않는다. 신규 7기 발전소의 발전용량으로 미뤄볼 때, 폐쇄 예정인 6기보다 3배가량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고, 정부가 내놓은 감축 목표치는 매년 틀리고 있다. 세계적으로 불충분하다는 지적을 받는 소극적인 감축 목표마저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탈핵'을 선언했다고 하지만 원전의 위험 역시 전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국내엔 24기의 원전이 여전히 살아있고, 신고리 5·6호기까지 건설되고 있다. 한빛 원전은 격납 시설에 커다란 공극이 발견되어 발전소의 안전 자체가 심히 우려되고 있고, 곧 발전소 내에 저장할 수 없게 되는 핵폐기물들을 어디에 묻어야 할지에 대해서 누구도 선뜻 답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위협적인 원전이 계속 가동되는 것이나 수만 년 지속되는 오염물질을 관리하는 문제도 후배세대에게 전가될 것이다.

비단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월성 원전 인근 주민들은 '월성원전 인접 지역 이주대책위원회'를 만들고 투쟁하고 있다. 원전 주변 주민들의 건강을 많은 사람들은 잊고 산다. 석탄화력발전소 인근 주민들이 호소하는 고통도 마찬가지다. 또 신고리 5·6호기의 전기를 보낼 765KV 송전탑이 밀양을 지나가기로 결정된 이후 지역 주민들의 삶이 어떻게 파괴되는지도 우리 사회는 경험하였다.

그리고 한나씨의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의 일상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위험이 '문명의 혜택' 아래 상존한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위험은 소위 '중앙'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먼 지역들에 미뤄져 있다.

학교가 아닌 거리에 서서 지속가능하고 안전한 사회를 위해 활동하는 청소년 활동가들은 그러나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 문제 해결을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한다. 기후변화도, 핵발전의 위험도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문제에, 위기의 당사자들이 나서고 있다.

우리는 오늘도 누군가의 삶을 담보로 많은 것을 누린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담보 잡아두고 있던 것 중에 '나'의 삶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걸 확인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더는 누구도 '위기'와 '위험'의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은 채 살아선 안 된다. 불안과 폭력의 경험을 박차고 나온 청소년 운동가들의 지혜와 용기에 응답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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