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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미술사'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미술계의 숨은 이야기들, 유명한 미술가들의 흥미진진한 일화, 그리고 역사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재능있는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편집자말]
베아트리체 첸치 엘리사베타 시라니,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 1662
▲ 베아트리체 첸치 엘리사베타 시라니,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 1662
ⓒ 김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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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17세기 이탈리아 여성 화가 엘리사베타 시라니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의 주인공은 절세미인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르네상스 시대 로마의 귀족 여인 베아트리체 첸치 Beatrice Cenci이다. 그녀는 17세의 어린 나이에 친부 살해로 기소되어 참혹하게 목이 베어졌다.

1818년, 19세기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셸리는 로마에서 이 그림을 보고, 첸치의 얼굴을 "자연의 작업장에서 만든 가장 사랑스러운 표본"이라고 묘사했다. 셸리에게 그녀는 근친상간과 존속살해 사이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고뇌하는 낭만 드라마의  헤로인이었다. "그녀의 모습에는 확고하고 창백한 평정이 있다. 그녀는 슬프고 상처 입은 영혼으로 보이지만, 그녀의 눈에 표현된 절망은 부드러운 인내로 빛난다. 생기 있는 그녀의 눈은 울어서 부어 있지만, 부드럽고 고요한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전체적인 표정에서, 그녀의 아름다움은 깊은 슬픔과 결합되어 말할 수 없이 애처로운 고귀함과 단순성을 보여준다." 미인에 대한 시인의 최고의 찬사가 아닌가!    

쉘리의 상상력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첸치에 대해 많은 다른 문학가들도 비슷한 감흥을 공유했다. 찰스 디킨스, 나타니엘 호돈 등 당대의 저명한 작가들도 이 사건을 슬프고 애처로운 어린 소녀의 비극으로 가슴 아파하며 한마디씩 했다.
  
그렇다면 이 소녀의 사연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알려진 스토리는 이렇다.

첸치의 아버지 프란체스코 첸치 백작은 가족들을 학대하고 딸을 여러 차례 성폭행하는 등 매우 폭력적이었고, 못된 행실로 감옥까지 드나들던 사람이었다. 가족들이 법에도 호소를 해봤지만, 귀족에게 관대했던 당시 사법체제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었고, 마침내 견디다 못한 첸치는 계모와 오빠, 남동생, 그녀와 연인관계에 있던 하인 등과 함께 공모해 아버지를 살해한 뒤 발코니 밖으로 던졌다.

그러나 이미 이 가족의 상황을 알고 있는 로마인들은 아무도 그가 실족사했다는 것을 믿지 않았고, 마침내 살인죄로 재판에 넘겨지게 된다. 장남 자코모는 망치로 머리가 으깨지고 달군 펜치로 사지가 4등분되었고, 계모 루크레티아와 베아트리체는 도끼로 목이 베어졌다.

로마 시민들이 그녀를 동정하여 탄원서를 냈지만, 교황 클레멘트 8세는 이 존속살인사건에 대해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당시 많은 로마 사람들이 이 17세의 소녀의 죽음을 애도하였고, 이후 이 가족의 비극적인 사건은 수많은 문학, 미술, 음악작품들의 소재가 되었다. 이 사건이 워낙 비극적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많은 예술가들의 관심을 끈 것은 그녀의 초상화가 보여주는 매우 아름답고 어린 소녀의 시각적인 이미지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보기에도 그림 속의 그녀의 처연한 아름다움의 매력에 저항하기 어렵다.

청순가련한 소녀의 비밀

19세기 후반, 몇몇 학자들이 이 사건을 다시 면밀하게 조사한다.  한 빅토리아 시대 골동품 전문가가 로마 기록보관소에서 첸치의 자필 편지를 발견하고, 정기 학술간행지에 편지를 얼룩지게 한 첸치의 눈물 자국에 대한 글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그 편지 사본 사진으로 볼 때 종이가 많이 상했지만, 그것이 첸치의 눈물 자국이라는 어떤 증거도 보여주지 않는다. 아마도 감상적인 선입견이 오래된 얼룩을 눈물의 자취로 보게 했는지도. 그리고 뜻밖에도, 이제까지의 거짓 전설을 반박하는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되었다.
  
가장 도전적인 기록의 발견은  집요한 고문서 탐색가 안토니오 베르톨로티 박사가 1879년, 로마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기념관의 도서관에서 발견한 문서이다. 첸치가 신임하는 과부 친구였던 카타리나 데 산티스에게 재산을 물려준다는 유언서이다. 그런데 유언서에는 카타리나가 사망한 후에 이름을 밝히지 않은 누군가에게 재산이 유증된다는 조건이 있었는데, 그 상속인이 누군지는 첸치가 구두로 카타리나에게 말했다는 언급이 있었다. 또한, 첸치가 카타리나에게 증여한 재산의 일부는 어떤 불쌍한 소년의 양육을 위한 것이며, 그 소년이 20세가 되면 그녀의 전 재산을 소유할 수 있다는 조건이 명시되어 있다.

베르톨로티 박사는 이 문서를 통해 그녀가 그토록 비밀리에 재산을 주려 했던 그 소년이 그녀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아이의 아버지는 그녀의 연인이었던 집안의 하인 올림피오 칼베티였고, 첸치의 임신이 그녀의 아버지로 하여금 격노하여 그녀를 성에 감금하게 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여성의 성적 순결이 매우 중시되던 시기였고, 귀족 여인이 하인과의 사이에 사생아까지 낳았다는 사실은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처벌로 궁지에 몰린 딸과 그녀의 애인이 살인범죄를 저지르게 된 결정적인 동기일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이 문서들로 볼 때,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첸치의  모습이 드러난다. 19세기 낭만주의자들의 마음을 울렸던 청순하고 여린 초상화의 소녀는 사실은 아버지를 잔혹하게 살해한, 성격이 강한 젊은 여인이었던 것이 아닌가.

당시 하녀의 증언에 따르면, 프란체스코 백작의 가정사는 매우 야만적이고 폭력적이어서, 그가 셔츠와 팬티 바람으로 집을 돌아다녔으며 소변을 볼 때 소변기를 그의 밑에서 잡아줘야 했는데, 가끔 베아트리체가 그 일을 했다. 또한 그는 피부병을 갖고 있어 젖은 천으로 닦아줘야 했는데 역시 때로 베아트리체가 그 일을 했고 고환까지 닦아내야 했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이 백작의 사적인 가정생활을 말해주긴 하나, 그가 그의 딸을 성폭행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이 사실은 가정 내의 은밀한 사생활이기 때문에 결코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이 사건의 진실의 이면에는 돈 몇 푼으로 매수된 목격자들, 그리고 고문에 의한 신뢰할 수 없는 진술들, 판타지, 시적인 상상 등 온갖 것들의 혼합이 있다. 프란체스코 첸치는 거만하고 탐욕스러우며 호색적이고 폭력적인 사람이었다. 한밤중에 왜 그의 머리가 부서져 살해되었는지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자신의 딸에 대한 성폭행이 그 이유 중 하나일 수도 있다. 동시에 전혀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여리고 천사 같은 베아트리체의 전설은 그녀의 미모에 매혹당한 사람들에 의해 발명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 사건 이면에 숨은 복잡하고도 복합적인 배경이라는 문맥을 잃고, 우리에겐 단지 수백 년 전 상처 입은 이탈리아의 한 귀족 소녀에 대한 연민만이 다가올 뿐이다. 심지어 그녀는 사람들에게 당시 악인에 용감하게 항거한 영웅으로까지 여겨졌다. 그녀는 정말 그랬을까? 진실은 무엇인가? 그날 밤 그 성에서 울린 외침과 비명의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현대의 루키즘

이 그림이 말해주는 진실은 현대의 루키즘(Lookism)과 전 세계에서 악명 높은 한국 사회의 유난한 성형 열풍을 떠오르게 한다. 외모지상주의는 우리 사회에서 인종주의, 성 차별, 에이지즘(Ageism)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회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대 사회의 외모지상주의는 인간의 역사 그 어느 시대보다도 강력하게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현대의 대중매체들은 루키즘을 확산시키는 일등공신이다. 매일 인터넷 포털에서 모델들이나 여배우들의 외모를 '여신 미모'란 타이틀로 낸 기사들을 볼 수 있다. 우리는 모델과 같은 팔등신의 마른, 그러면서도 풍만한 젖가슴과 엉덩이의 S라인의 몸매가 이상적이라고 끊임없이 세뇌당하고 있다. 그리고 TV의 상업 광고들, 패션 매거진 등을 포함한 다양한 미디어들에 의해 만약 우리가 노력을 한다면 그러한 멋진 몸을 가질 수 있다고 격려받고 있다.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어찌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수준의 그 공통의 목적, "얼짱", "몸짱"이 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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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속 천문학> 등 두 권의 책 출간을 앞둔 작가. 현재 브런치 작가로 미술에 관한 글과 영화 리뷰, 문화 예술, 역사 이야기를 쓰며, '오마이뉴스'에 연재/특별기획 '뜻밖의 미술사"를 쓰고 있습니다. http://omn.kr/1m0rs https://brunch.co.kr/@sjkim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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