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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꿈틀리에서 함께 살고 있다. 나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며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친구들, 더불어 행복한 삶을 지향하는 꿈틀리 인생학교이다. '청소년들에게 옆을 볼 자유'를 주고 스스로 선택하여 인생의 즐거움을 누리는 곳, 삶을 숨 가쁘게 달려온 아이들을 향해 "쉬었다 가도 괜찮아, 다른 길로 가도 괜찮아. 지금 이미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외친다. 이 글은 꿈틀리인생학 4기 복실(꿈틀리인생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 모두 별명을 사용한다)이가 예비 신입생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식사당번 시간에  함께 파우치를 만들었다.
 식사당번 시간에 함께 파우치를 만들었다.
ⓒ 꿈틀리인생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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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세상은 가혹했다. 경쟁해야 하고 눈치 봐야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은 마음속에 쌓아 둬야 했다. 말이 많고 세상에 불만이 많던 나는 그것들을 표출할 곳이 필요했다.

하지만 마땅한 곳은 없었다. 힘들다고 말하면 그저 청소년기의 당연한 고통으로 치부됐고,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대학을 들먹이며 가로막았다. 그렇게 곪았다. 상처를 소독할 시간도 주지 않았으면서 말과 눈빛으로, 행동으로 또다시 상처 입혔다.
아픈 나날들의 연속이었지만 죽고 싶으면서도 살고 싶었다. 빛을 보고 싶었고, 나도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세상에 증명하고 싶었다.

내가 틀린 게 아니라 그저 다른 것이라는 걸 전하고 싶었다. 망한 인생이나 틀린 인생이 아니라, 수만 가지의 길들 중 하나를 선택했을 뿐이라고 당당히 외치고 싶었다. 만들어진 체제와 규칙을 지키면서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 무료했고, 이제 이 모든 것을 끝내자고 마음먹은 고등학교 1학년 말, 나는 꿈틀리를 알게 되었다.
세상을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놓을 용기가 없어 꿈틀리인생학교에 가는 것을 망설였다. 대학 진학에 대한 걱정과 새로운 사람들과 만남, 새로운 환경에서의 적응. 그것들은 나를 매료시키기도 했지만 동시에 불안함도 안겨줬다. 그래서 처음에는 안 가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기말고사와 수행평가를 동시에 준비하면서 내 몸과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꿈틀리인생학교에 가기로 마음먹은 건 기말고사를 시작하고 이틀 후였다. 시험기간 동안 중학교 생활 기록부를 떼고 원서 접수 마지막 날 자기소개서를 썼다. 대부분의 고등학교 친구들은 나를 응원해줬고 용기를 줬지만 몇몇은 대학은?, 진로는?, 농사? 그 힘든 걸 왜 굳이 돈 내고? 등의 마음에 와닿지 않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처음엔 그 말들이 나를 걱정하게 만들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내 인생에 지나치게 관심 많은 사람들이었구나'하고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울어도 괜찮아
  
 모듬모임시간에 예쁜 카페에서
 모듬모임시간에 예쁜 카페에서
ⓒ 꿈틀리인생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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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꿈틀리인생학교에 들어오고 나니 고난과 역경이랄 것은 딱히 없었다. 서로 친해지기 위해 노는 것 중심으로 돌아갔던 예비학교 동안 아주 조금 사람들과 학교를 알아갔다.

아프다고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아플 때 쉴 수 있는 것,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공동체의 포근함이었다.

이곳에서는 누가 울면 울지 말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울음이 멈출 때까지 같이 울고, 안아주고 위로해주며 기다린다. 우리는 "울지 마"라는 말에 익숙해진 사람들이어서 별말 없이 기다려준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안전한 갈등
  
 덴마크 이동학교 올러럽에서 규가 찍어준 사진
 덴마크 이동학교 올러럽에서 규가 찍어준 사진
ⓒ 꿈틀리인생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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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리는 다른 사람을 배척하지 않는다. 그저 같이 나아가게 도와줄 뿐,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면박 주지 않는다. 왜 잘못인지 알려주고 스스로 깨닫게 될 때까지 몇 번이고 되풀이해 함께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

우리에게는 많은 자유시간이 있다. 우리는 그 시간의 대부분을 친구들과 함께 보낸다. 그 시간들은 포근하고 안전한 순간이 되기도 하지만 가끔은 갈등의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어쩌면 갈등도 안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는 나를 포함해 많은 비건 친구들이 있다. 우리는 소수자이기 때문에 작은 것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고 처음에는 다른 친구들이 비건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했기 때문에 큰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한 달간의 덴마크 이동학교에서 비건 음식을 자연스럽게 접했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전교생 모임을 통해 많은 것이 변화되었다. 이 경험을 통해 갈등은 조금 더 나아가기 위한 또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긴 시간 동안 얽혀있던 고리를 풀 수 있어 뿌듯했다.
  
어른을 믿기 시작했다.
  
 기타 하나에 셋이서 연주
 기타 하나에 셋이서 연주
ⓒ 꿈틀리인생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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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난 이 세상에서 제일 믿을 수 없는 건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이유 없이 힘들 때조차도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어른이 생겼다. 뒷자리에 있는 과자를 먹어도 되냐고 서슴없이 전화할 정도로 편한 선생님이 있다.

어느 날 "오늘 하루는 운동도 세 번 다 하고, 독서 모임의 첫 스타트도 좋았고, 원하는 책을 두 권이나 샀다. 그리고 내 마음을 정리할 수 있어서 최고의 하루였다"라고 말했는데, 선생님이 "그래, 그냥 그렇게 살면 돼"라고 대답하셨다.

지금까지 만나온 많은 어른들은 내가 느끼는 행복에 안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서 좋은 대학에 합격하고 금전적인 여유를 가지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지금 그대로 즐기는 것에 뭐라고 하지 않으셨고, 그렇게 하루하루 만족하는 삶을 살라고 하셨다.

나는 자기 전에 하루를 곱씹고 그날 있었던 일을 정리하고 자는 습관이 있는데 그 날밤은 기분이 너무 좋기도 하고 마음이 울컥해서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한동안 너무 아파서 대부분의 수업에 참여하지 못했을 때는 마음이 힘들어서 몸이 아픈 것 아니냐며 손을 꼭 잡아주셨다. 꿈틀리에서는 마음이 아프면 아프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날 잡아주신 손의 온기가 진심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시고 을 믿을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마웠다. 이런 계기를 통해 마음을 조금씩 열게 된 것 같다.

나는 더이상 삶이 막막하지 않다. 할 것이 없어서 뭘 해야 할지 몰라 주저하지 않는다. 이제 나에게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 출구 없는 터널이었는데 조금씩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둠 속에 있다가 빛을 향해 나아가는 것 역시 처음이라 두렵고 불안한 마음에 터널 끝자락에서 주저하는 나를 마주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순간에 내 손을 잡아줄 사람이 있다. 용기를 줄 사람이 있다. 같이 나아가줄 사람이 있다.
 
 호란아!! 우리 꼭 다시 만나
 호란아!! 우리 꼭 다시 만나
ⓒ 꿈틀리인생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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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리인생학교를 1년 가까이 다니는 동안 나는 알게 모르게 단단해졌다. 누군가를 억압하고 권리를 침해하는 행동을 할 때, 반박할 용기가 생겼다.

그것으로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다. 나의 삶과 이 세상에 한 발자국 가까워졌다. 언젠가 이 세상이 나를 다시 어둠 속에 움츠러들게 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 어둠을 즐기고 내 안의 우울을 충분히 느끼며 또다시 빛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 학교설명회 >
일시 : 2019년 11월 30일(토) 오후 1시 30분
장소 : 서울 '필원' 센터포인트광화문 A룸
문의 : 032-937-7431
블로그: http://blog.naver.com/ggumtlefterskole
설명회 신청: https://forms.gle/TzmHDFZTn8qrrq7K9

< 신입생 전형 안내 >
https://ggumtlefterskole.blog.me/221711065196
원서접수기간 : 11월18일(월)부터 12월13일(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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