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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현세에 살아가는 것은 발 딛고 서 있는 굳건한 땅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러나 차별이 만연한 속에서 이마저도 골고루 분포되고 있지 못하다. 사회적 갈등으로 표면화된 사건을 천착하는 작가의 전시가 진행 중이다.

세상을 살면서 목도하게 되는 온갖 부조리 중에서도 유독 약자에게만 고통이 전가되는 사건을 놓치지 않고 붓으로 담아내는 작가 노원희. 그의 개인전을 학고재 갤러리(서울 종로구 삼청로)에서 만날 수 있다.

그는 삶과 예술이 인접해야 한다는 소신으로 지난 40여 년의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1980년대 민중미술을 선도했던 ‘현실과 발언’의 동인이었기에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은 여전하다. 그렇기에, 변화되지 않은 현실을 더욱 날카롭게 바라보는 시선이 견지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현실은 얇은 땅입니다. 나는 그 위에서 내 머리 속에 있는 입을 벌려 세상사를 삼킵니다. 그 세상사 중의 일부를 캔버스에 붙들어 놓는 것이지요.” 

본관에서는 2018년과 2019년 사이에 제작된 작가의 최신작이 놓여있다. 작품들은 최근에 발생한 한국의 사회적 사건, 그 중에서도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가 감내하는 고통을 포착한 작품들이다.
 
기념비 자리2 검은 탑은 지난 2012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의 송전탑 고공농성을 떠올리게 한다. 작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참변으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씨의 얼굴도 함께 보인다. - 학고재 갤러리
▲ 기념비 자리2 검은 탑은 지난 2012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의 송전탑 고공농성을 떠올리게 한다. 작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참변으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씨의 얼굴도 함께 보인다. - 학고재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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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 자리2>는 땅을 딛지 못하고 고공에 올라 농성을 진행했던 2012년의 쌍용자동차를 비롯해서 2018년의 파인텍 노동자의 험난한 투쟁을 담았다. 그 아래를 채우는 봉분들은 열악한 환경에 놓인 채 죽음의 행렬에 내몰리는 노동자를 상징하는 것이리라.

우리의 삶이 불안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얇은 땅 위에>라는 작품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싱크홀과 같은 절망의 나락으로 빨려 들어갈 위기에 놓인 민중들은 거대하게 군림하는 자본과 권력 앞에 바짝 엎드려 있다.
 
얇은 땅 위에 민중이 뼈와 살로 일군 척박하고 연약한 땅은 폭력에 의해 쉽사리 부서진다. 공허함이 빈자리를 채운다. 구멍 가장자리에 애처롭게 엎드린 이의 형상이 좌측의 인물 군상과 절묘한 대구를 이룬다. - 학고재 갤러리
▲ 얇은 땅 위에 민중이 뼈와 살로 일군 척박하고 연약한 땅은 폭력에 의해 쉽사리 부서진다. 공허함이 빈자리를 채운다. 구멍 가장자리에 애처롭게 엎드린 이의 형상이 좌측의 인물 군상과 절묘한 대구를 이룬다. - 학고재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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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사람들>은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이다. 집회에 참여한 낱낱의 이름을 그림의 배경으로 수놓았다. 집회 참여가 익명의 자발성이라면 이들에게 실재의 이름을 확인해 줌으로써, 시대의 저항과 지향점을 구체적인 민중으로 실체화하려는 작업이다.

가정폭력을 다루는 <무기를 들고>(2018)는 주방기구들이 잔뜩 쌓여있는 공간에 폭력의 장면이 담겨져 있다. 그 안에서 무심한 듯 일상을 살아가는 남자의 형상은 작게 그리면서 정면에 네 명의 여성을 훨씬 크게 그렸다. 이들은 프라이팬을 세워서 들고 있는 자세로 연대하는 행위처럼 묘사되고 있다.
 
무기를 들고 가정 폭력에 맞서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 무기를 들고 가정 폭력에 맞서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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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거울이 몇 개의 작품에 등장하고 있다. <참전 이야기 2-맏딸이 아파요>, <기습적인 잔소리>, <한 달 후>에서 거울 안에는 피사체가 없이 빈 채로 놓여 있다. 이 작품들은 폭력이나 사고가 벌어지는 현장을 투영하면서 아물지 않은 상처를 일깨우는 오브제로 작동하고 있다.

<지붕 위에 앉고 싶은 사람>에서는 1931년 을밀대의 지붕에 올라 임금삭감에 저항했던 강주룡을 기억하도록 한다. 작가는 집 앞 마당의 나무를 즐겨 타던 친오빠에 대한 기억이 모티브가 되었다지만, 허용된 땅에서 배제된 채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는 현장으로 시선을 향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아닌지.

이렇듯 본관에서는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화두를 붙잡고 있다. 반면 신관에서는 개인적 영역과 일상을 세밀하게 조명하고 있다. 1996년도의 <그림자> 연작부터 2000년대의 작품 약 20여 점을 만나게 된다.

<돼지국밥 30년>, <주머니에서 나온 것들>, <오래된 살림살이>, <생활의 기쁨1> 등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이다. 대체적으로 일상적 삶에서 수없이 부대끼는 갈등과 고통의 근원을 천착하고 있다. 그러면서 희망 없이 굴레가 되고 있는 삶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작가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집 구하러 다니기 땅 위의 집은 투기의 대상이며, 이를 확보하지 못한 민중은 돌처럼 무겁게 집을 찾아 부동할 뿐이다.
▲ 집 구하러 다니기 땅 위의 집은 투기의 대상이며, 이를 확보하지 못한 민중은 돌처럼 무겁게 집을 찾아 부동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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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씨년스런 아파트마저 입주하기가 쉽지 않은 게 선명하게 짚이는 <집 구하러 다니기>(2006). 갑갑한 현실을 반영하듯 돌로 변한 여인의 모습은 현실의 삶처럼 너무도 무거워 보인다. 주택을 소유하지 못한 도시 빈민은 안착을 부여잡고 새로운 거처를 찾아 쉼 없이 유동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시대적 고찰이 두드러진 작품들이 제외되었다. 1986년 작품인 <묻히는 사람들>은 광주 민주화 운동을, <청와대 길목1>은 2014년 세월호 사건을, 2009년 2월의 용산참사를 기억하는 <기념비자리-불타는 망루>가 대표적이다.

작가는 사회적인 폭력으로 희생된 사람을 기억하는 선 굵은 작품을 꾸준하게 제작해왔다. 사고의 현장과 폭력의 잔인성을 무던히도 고발하며 작품이 내재하는 예술적 성취를 추구했던 것이다.

1980년대 이후 한국 현대사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사건들을 응결시키며, 모순의 덩어리를 들춰내되 담담하게, 느긋하되 빈 구석은 허용하지 않고 단호한 자세로 작업에 임해온 작가 정신으로 가능했던 작품 세계이다. 더욱 확장되기를 기원한다.

전시는 오는 12월 1일 까지며, 홈페이지 www.hakgojae.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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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응의 질서를 의문하며, 딜레탕트Dilettante로 시대를 산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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