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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감성이 메마르고 자본이 인간의 정신을 잠식한 탓도 있지만 너무 난해한 시어로, 시인 자신만의, 혹은 시인들만의 말잔치 자리여서가 아닐까? 언어를 조탁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조탁해 일상의 언어로 시를 써야 모든이의 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시라는 것은 삶을 읊어주기 위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옴파로스 손귀례 시집
▲ 옴파로스 손귀례 시집
ⓒ 문화공간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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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귀례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옴파로스>(문화공간 시선)는 시인의 일상과 마음 밭을 시로 일군 시집이다. 시인의 일상과 그가 노니는 사색의 정원 안에 자리한 책과 삶과 사색의 실타래들이 시인의 눈길과 마음으로 정돈되어 일흔 여섯 편의 시로 태어났다.

시인은 생명의 원형을 노래할 때도 젖을 먹이는 어머니와 아가의 모습으로 따뜻하게 형상화한다. 생명의 근간인 배꼽인 옴파로스(라틴어로 '배꼽' '세계의 중심' '방패의 중심돌기'라는 의미)는 아가를 품에 안고 젖을 먹이는 엄마의 모습에서 사랑의 구체적인 실체로 형상화된다.
 
아기가 엄마 품에
동그랗게 안겨
고요히 젖을 빤다

동그란 입으로
동그란 젖꼭지를 빤다
완벽한 고요다

엄마는 아가와 동그란 눈을 맞추고
아가는 엄마와 동그란 눈을 맞추고

동그랗게 동그랗게
아가와 엄마가 동그라미가 되었다

우주의 원형을 보았다

사랑은 ㅇ이다
사랑은 동그랗다
사랑은 우주의 배꼽이다

–옴파로스 전문
 
시인은 책을 영혼의 양식으로 삼고 산책을 생명의 물 삼아 그가 만난 옛시인과 철학자, 꽃과 풀을 시 속에 녹여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시킨다. 옛시인 명월(明月) 황진이는 달맞이꽃에서 해어화(解語花)의 혼으로 밤마다 다시 피어나 독자들과 만난다.
 
낮이면 꽃잎
둘둘 말고 잠을 자다

밤이면
한껏 음기를 받아들이기 위해
네 폭 노란 명주치마
활짝 펼친 달맞이꽃

기나긴 밤, 한 허리 베어 내어
이리저리 펼쳐 놓고
서리서리 춤을 추는
달맞이꽃,

그대는
해어화(解語花)의 혼이어라.

-달맞이꽃 전문
  
손자의 탄생에서 시인은 첫사랑의 뜨거운 사랑의 불꽃으로 타오른다. 어머니의 낡은 화장대 위에 늘어가는 약봉지와 세월의 무심함 속에 쇠락해진 어머니에 대한  애잔한 아픔을 토로하는 시인의 눈길은 잔잔한 일상에 감동을 준다. 

시인은 일상의 소중함을 놓치지 않기에 거칠고 보잘 것 없는 일상을 '꽃'으로 피워 올린다. 시인을 할머니로, 중년의 아내로, 친구로 둔 이들의 일상이 환희가 되고 시인이 만나는 산책길의 작은 풀꽃이 보석보다 아름다운 생명의 꽃이 된다.

돌 틈에서도 거적 속에서도 피어나는 모든 생명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고 '시'로 지어내는 시인의 눈길은 더 아름답다. 시가 어려워야 한다는 통념을 깨면서 가볍지 않은 시로 늦가을 삶을 반추해 보려는 독자라면 이 시집을 펼쳐들면 어떨까.
 
꽃 피어야 할 것은 핀다.
꼭 핀다.
거적 속에서도
돌 틈에서도
반드시 피워 올린다.

덧붙이는 글 | 옴파로스/ 손귀례 시집/ 문화공간 시선/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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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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