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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칼스루에에 위치한 연방일반법원 팔레(Palais) 법정.
 독일 칼스루에에 위치한 연방일반법원 팔레(Palais) 법정.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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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뿐 아니라 검사도 '판관' 역할을 한다. 혐의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해서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형사재판에 넘길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검사 역시 판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현행 형사소송법 제246조는 "공소는 검사가 제기하여 수행한다"고 함으로써 기소권을 검사에게 일임했다(기소독점주의). 공소(公訴)는 기소와 같은 표현이다. 모든 시대, 모든 나라에서 기소독점주의가 시행된 것은 아니다. 고대 게르만족 사회에서는 피해자나 친족이 범죄자를 재판에 넘기는 게 일반적이었다.

현대 독일에서는 검사가 기소권을 갖는 게 원칙이지만, 국가를 대표하는 공인이 아니라 사인(私人)인 피해자가 검사와 함께 공동원고가 돼서 재판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이재상 이화여대 교수가 쓴 <형사소송법>은 "독일 형사소송법은 국가소추주의를 원칙으로 하면서도 주거침입죄나 비밀침해죄 등의 경미한 범죄에 관하여 예외적으로 사인소추를 인정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소추(訴追)는 기소보다 넓은 개념이지만, 기소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검사들은 기소권을 독점할 뿐 아니라 상당한 재량권도 갖는다. 범죄 혐의가 있고 소송 요건이 갖춰지면 무조건 재판에 넘기는 게 아니라, 독자적 재량에 따라 불기소 처분을 내릴 수도 있다(기소편의주의).

형사소송법 제247조는 "검사는 형법 제51조의 사항을 참작하여 공소를 제기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했다. 피의자의 상태, 피의자와 피해자의 관계, 범행 동기 및 과정, 범행 후의 반성 여부 등을 참작하여 '혐의가 있지만 기소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처럼 한국 검사들은 기소독점주의에 더해 기소편의주의에 입각한 막강한 권한을 보유한다. 거기다가 원래 경찰의 몫인 수사권 혹은 수사지휘권까지 '덤'으로 행사한다. 조국 일가 수사에서 활용됐듯이, 압수수색이나 구속 같은 강제수사권도 행사할 수 있다. 피의자의 유·무죄를 실질적으로 판단할 뿐 아니라 수사에 더해 강제수사까지 할 수 있으니, 유무죄만 판단하는 판사에 비해 실질적으로 더 막강한 측면도 없지 않다.

극소수 일부만 그럴 뿐, 대다수는 그렇지 않아?
 
 2012년 11월 23일 자 <한겨레> 기사
 2012년 11월 23일 자 <한겨레> 기사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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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도 아니고 형사사건에서 이처럼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행사한다면, 여타 공직보다 훨씬 더한 도덕성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 국민의 생명과 자유와 신체에 영향을 주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데다가 이를 재량적으로 행사하는 검사들이 도덕성을 갖고 있지 않다면, 국민들이 불안에 떨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이 목격해온 검찰의 현실은 기대 이하일 때가 많다. 높은 도덕성을 견지해야 할 검사들이 돈과 성적 욕망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진 사례들을 숱하게 지켜봐 왔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계속 맡겨도 괜찮을까 하는 우려가 들 정도였다.

일례로, 2012년 11월에는 실무수습 중이던 30세의 남자 검사가 절도 혐의로 입건된 43세의 여성 피의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갖는 일이 서울동부지방검찰청 조사실에서 벌어졌다. '성추문 검사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안에서, 검사는 피의자의 심리적 위축을 이용해 검찰청 조사실뿐 아니라 모텔에서까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

물론 이 사건은 극단적인 경우에 속한다. 평소보다 한적한 토요일이라서, 불미스러운 일이 청사 내에서 벌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막강한 권한을 위임받은 공직자가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통제하지 못할 경우에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이 사안은 잘 보여줬다.

국가기관에 대한 지탄이 쏟아질 때마다 흔히 나오는 말이 있다. "극소수 일부만 그럴 뿐, 나머지 대다수는 그렇지 않아"라는 말이다. 그런데 검사들의 부적절한 처신이 과연 극소수에만 국한된 일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대다수의 선량한 검사들한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확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2010년에 건설업자 정용재에 의해 폭로된 '검사 스폰서 사건'이 그에 대한 대답의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검찰 직원들에게 '월급' 지급한 건설업자

이 사건 주인공 정용재는 경남·부산 지역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대규모 건설업자로서, 2010년까지 20여 년간 10억 원 이상을 들여 검사들에게 술과 성적 향응을 제공했다. 그가 돈을 쓴 시점이 1980년대부터이므로,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10억 원을 훨씬 상회할 것이다.

그가 감옥에서 작성한 자필 수기가 구영식 <오마이뉴스> 기자와 정희상 <시사인> 기자가 공저한 <검사와 스폰서 묻어버린 진실>에 실려 있다. 이 책에 있는 '검사들 접대 내역을 생생하게 서술한 자필 수기' 편이 바로 그 기록이다.
   
 <검사와 스폰서 묻어버린 진실>
 <검사와 스폰서 묻어버린 진실>
ⓒ 책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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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재는 검사들의 실명과 휴대폰 번호까지 일일이 언급한 이 수기에서 "장소, 일시, 당시 부장검사 및 평검사분들의 명단과 계산서 및 모든 자료는 제가 보관하고 있고, 관계된 100여 명이 넘는 전·현직 검사들과의 대질신문으로 명명백백하게 밝혀지리라 100퍼센트 확신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1984년부터 1991년까지 진주지청을 거쳐간 검사 중 저의 돈을 안 받아본 검사, 향응(술 및 성 접대) 제공 안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라면서 지청장에게는 매월 200만 원, 평검사 및 사무과장에게는 매월 60만 원씩 제공했다고 진술했다. 국가가 아닌 건설업자가 검찰 직원들에게 '월급'을 꼬박꼬박 지급한 셈이다. 그는 진주지청뿐 아니라 부산지검을 상대로도 비슷한 일을 했다.

"2002년부터 2009년까지 저의 촌지·향응·접대를 받은 검사님이 부산지검 검사 총 60~70명 중 최소 20명 이상은 됩니다."

한번은 검사들 술자리에 불려 갔더니, 자기 말고 다른 스폰서가 더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날은 술값을 지불하지 않아도 됐다고 한다. 그 대신, "밴드비·숙박비·3차(성 접대) 비용은 제가 다 부담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가 자청해서 제공한 경우뿐 아니라 검사들의 요청으로 제공한 일도 많았다고 한다. 심지어는 검사들을 접대할 목적으로 경찰 헬기나 경찰 호송차까지 불러온 적이 있다고 한다. 이 부분은 정용재 자신의 수기가 아니라 두 기자의 취재 결과를 담은 '저자 서문'에서 소개된다.
 
"검사들이 다른 지역으로 떠날 때면 전별금과 함께 순금으로 만든 마고자 단추를 선물했고, 심지어 검사들이 제시간에 비행기를 탈 수 있도록 경찰 헬리콥터를 띄우기도 했다. (중략) 더 놀라운 증언도 나왔다. 부산의 한 모델 에이전시에 소속된 모델들을 불러 원정 접대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서 경찰 호송차의 호위를 받았다는 얘기다."
 
도덕성을 어떻게 바로 세울 것인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집단이 도덕성을 상실했을 때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검사 개인이 아니라 검찰 차원에서라도 도덕성이 발휘된다면, 이런 사건이 일회성으로 끝나고 재발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검찰 차원의 자정 노력마저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은, 수많은 검사가 연루된 이 사건에 대한 수사가 용두사미로 끝난 데서도 잘 드러난다.

우리 사회는 최근 들어 공직자의 도덕성을 더 강렬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도덕성을 가르칠 만한 곳이 별로 없다. 이런 구조에서 배출된 검사들이 국민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검사는 성직자 못지않게 도덕성이 요구되는 위치다. 이런 검사들이 실질적으로 판사 이상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데도 이들의 도덕성을 제고할 시스템이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사법연수원 역시 법조 실무자를 양성하는 기관일 뿐, 신라시대 화랑도나 조선시대 서원처럼 도덕을 가르치는 곳은 아니다.

공직자들의 도덕성을 제고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노력이 앞으로 전개돼야겠지만, 그런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검사들의 권력을 제한하거나 견제하는 것뿐이다.

국회 패스트트랙에 올라 있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나 공수처 설치법안은, 검사들의 도덕성을 보장할 수 없는 현재 상황에서 검찰 권력의 남용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는 현실적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검사와 스폰서, 묻어버린 진실 - 견검에서 떡검 그리고 섹검까지 대한민국 검찰, 굴욕의 빅뱅

정희상, 구영식, 정용재 (지은이),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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