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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이 '충정작전'을 통해 전남도청을 다시 장악하면서 5.18은 막을 내렸다. 사진은 '충정작전'으로 체포된 시민군.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이 "충정작전"을 통해 전남도청을 다시 장악하면서 5.18은 막을 내렸다. 사진은 "충정작전"으로 체포된 시민군.
ⓒ 5.18기념재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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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의 권력욕은 그동안 흘린 광주시민들의 피에도 만족하지 않았다.

마지막을 향해 악랄한 준비를 서둘고 있었다. 저들은 처음부터 광주를 희생양으로 삼아 정권을 찬탈한 다음 계산이어서 나날의 작전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있었다.

5월 23일 오전 9시경 신군부가 계엄 사령관실에서 진압작전과 관련 회의를 열고 이미 마련한 「전교사 충정계획」을 보면 저들의 악랄함에 소름이 끼친다.

△ 상황 : 광주지역 난동자 중에는 가발 사용자와 복면한 자 등이 다수 포함되어 있으며, 특히 서울에서 온 대학생이라고 자처하는 자 20여 명이 있는 등 북괴의 침투를 의심케 하는 실태임. 난동자측 대표와의 협상시도는 그들의 시간을 벌자는 술책에 함입하는 결과가 될 것임.

그들은 현재 호를 구축하며 장기 저항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광주시민은 사실상 현재 인질상태로서 일익 폭도측에 가담할 가능성이 증대되고 있어 피해가 극심할 것으로 예상될 뿐 아니라 현사태가 장기화될수록 선량한 시민의 대정부 원성이 심화될 것으로 판단됨. 고로 작전은 조기에 착수되어야 함.

△ 작전의 기본개념 : 광주시에 우선권을 두고 중대단위로 목표를 부여, 야음을 이용, 침투하여 전목표를 동시에 제압한다. 본 작전은 2단계로 구분 실시한다.

1단계 : 광주시를 3개 지역으로 분할하여 2개 통제선을 부여, 지역내를 타격 소탕한다.
2단계 : 1단계 작전 종료 후 공수부대는 책임지역을 제20사단에게 인계 후 집결 보유한다.

건 의 : 기본계획의 승인과 작전개시 시기 결정권을 현지지휘관(전교사 사령관)에게 부여하도록 건의함. (주석 9)

  
 5·18민중항쟁 당시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는 계엄군.<5·18기념재단 제공>
 5·18민중항쟁 당시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는 계엄군.<5·18기념재단 제공>
ⓒ 광주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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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의 '광주시민소탕작전'은 거칠것이 없었지만, 여전히 꺼림칙한 것은 미국이었다. 외견상 '인권'을 내세우는 그 나라가 자칫 어깃장을 놓는 날이면 만사휴이가 되고 만다는 것을 저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5월 23일 작전회의 직전인 오전 6시의 확대계엄회의에서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의 노력에 의거, 미국이 협조적이고도 적극적으로 나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곧이어 미 국방성과 국무성, 그리고 백악관 고위정책조정위원회의 결정사항을 전해듣고 크게 고무되었다.

미국시간으로 22일, 즉 한국시간으로 23일에 미 국방성은 20사단의 광주투입을 '동의'했다고 발표했고 국무성은 "외부세력의 위험한 오판" 가능성을 경고했으며, 고위정책조정위원회 역시 조기경보기와 항공모함을 한국으로 급파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로써 신군부는 휴전선에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고 소탕작전을 전개할 수 있게 되었다. 말하자면 미국 행정부는 신군부가 마음 놓고 항쟁을 진압할 수 있도록 '망을 보아주기로' 한 셈이다. (주석 10)

 
계엄군에 의해 희생된 시민을 도청 앞 분수대로 운구하는 시위대(1980) 계엄군에 의해 희생된 시민을 도청 앞 분수대로 운구하는 시위대(1980)
▲ 계엄군에 의해 희생된 시민을 도청 앞 분수대로 운구하는 시위대(1980) 계엄군에 의해 희생된 시민을 도청 앞 분수대로 운구하는 시위대(1980)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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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는 "27일 00:01 이후 진입작전을 실시한다"는 「상무충정작전 지침」을 이희성 계엄사령관 명의로 전교사에 하달했다. 극비리에 진행된 '소탕작전' 명령이었다.

이러한 지침을 받은 소준열 전교사령관은 26일 오전 10시 30분 3, 7, 11공수여단장과 보병학교, 포병학교, 기갑학교장 등을 불러 소탕작전에 관한 지휘관회의를 열었다. 물론 31사단장 정웅 소장은 회의에 참석시키지 않았다. 

소준열 전교사령관은 정호용 특전사령관으로부터 도청진압의 선봉부대로 3공수여단 특공조를 추천받는 등 공수부대를 주력으로 하는 진압작전을 계획했다.

도청, 전일빌딩, YWCA, 광주공원 등 시민군 주요거점은 모두 공수부대 특공조에게 맡겨졌고, 20사단은 그 뒤를 따라 공수부대 특공조가 목표를 장악하는 즉시 이를 인계받아 시 전역을 점령하는 임무를 맡았다. 전교사 예하 각 학교 병력에게는 시 외곽을 봉쇄하는 임무가, 그리고 31사단에게는 광주시 북부 일부지역을 점령하나는 지시가 내렸다. 3여단 특공조를 비롯한 공수부대 병력은 26일 오후부터 비행장 격납고에서 진압작전 리허설을 시작했다. (주석 11)
 
 계엄군이 시내를 재장악하기 위해 탱크를 몰고 돌고개를 넘고 있다.
 계엄군이 시내를 재장악하기 위해 탱크를 몰고 돌고개를 넘고 있다.
ⓒ 5·18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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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부대 특공조의 진입이 시시각각으로 조여드는 데, 이를 자세히 알 리 없는 시민들은 「전국의 종교인들에게 보내는 글」을 발표하고, 마지막 호소처로 신앙인들에게서 찾고자 했다. 후반부를 소개한다.

국민의 신망과 기대를 5천년 역사 가운데서 끊임없이 모아 온 종교 지도자 여러분,

이 모든 것이 다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조국의 진정한 민주화와 그에 따르는 소수 군부독재의 퇴치, 전국민적 합의에 의한 민간정부의 수립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모든 종교가 특수한 차이를 초월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믿고, 또 모든 국민에게 행복이 고루 돌아가야 한다는 민주주의 정신을 신봉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주검을 이토록 잔인하게 다루는 계엄군들이 과연 이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었던가?
▲ 광주민주화운동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주검을 이토록 잔인하게 다루는 계엄군들이 과연 이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었던가?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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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 여러분!

지난 일주일간의 피어린 투쟁을 통해서도 전두환을 비롯한 군부세력들은 조금도 반성의 여지를 보이지 않으며 끝까지 국민 여러분을 호도함은 물론 광주시민의 식량과 물품보급까지를 통제하여 광주는 커다란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을 감안하여 우리는 모든 종교인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시고 전국적으로 궐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아래와 같은 우리들의 바람을 간절히 바랍니다.

 ㆍ모든 종교인들은 군부독재가 물러서고 민주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총궐기하라.
 ㆍ종교인들은 국민적 신망을 바탕으로 거국 민주내각 구성에 적극 나서라.
 ㆍ모든 종교인들은 광주지역의 질서회복에 앞장서라. (주석 12)


주석
9> 육군본부, 「소요진압과 그 교훈」, 63쪽.
10> 정상용 외, 앞의 책, 295쪽.
11> 정상용, 앞의 책, 296~297쪽.
12> 『광주민주화운동자료총서(2)』, 66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5ㆍ18광주혈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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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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