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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 권익연대 이성남 대표의 학창시절 14세 소년 이성남은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나 신문 배달을 했다. 중3때는 석간도 돌렸다. 중학교 졸업식 때는 아무도 오지 않아 울면서 보육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긍정적이고 성실한 그는 이런 기억들을 자신의 의지로 사소하게 만들었다.
▲ 고아 권익연대 이성남 대표의 학창시절 14세 소년 이성남은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나 신문 배달을 했다. 중3때는 석간도 돌렸다. 중학교 졸업식 때는 아무도 오지 않아 울면서 보육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긍정적이고 성실한 그는 이런 기억들을 자신의 의지로 사소하게 만들었다.
ⓒ 이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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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원에서 자라며 서러웠던 기억이요? 없습니다."
 

중학교 체육교사로 재직중인 고아권익연대 남부지역 대표 이성남(43세)씨의 말이다. 하지만 인터뷰를 해나가면서 그에게 서러운 기억은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의해 '사소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중학교 졸업식 날 아무도 와주지 않았어요. 다른 아이들이 가족과 사진 찍고 꽃다발 받는데 저는 혼자였어요. 졸업식 끝나고 보육원까지 버스 통학 하던 길을 울면서 걸어갔어요. 한 시간쯤 걸려서 보육원에 돌아왔는데 선배 형이 졸업했다고 짓궂게 계란을 던졌어요. 축하는커녕 날계란을 뒤집어쓴 거죠."
 

반찬이라곤 달랑 김치 하나뿐인 도시락이 부끄러워 점심시간이 싫었고, 학부모 회의나 운동회 때 가족과 함께 지내는 친구들 속에서 소외감을 느꼈다. 당시 보육원에서 용돈을 주지 않아 그는 신문 배달을 했다. 그 돈으로 옷이나 책을 사고 간식도 사 먹었다. 14세 소년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신문을 돌렸다. 중3 때부터는 석간 배달도 했다.
  
"자전거에 신문을 잔뜩 싣고 여자중학교 앞을 지나치는 게 늘 부끄러웠어요. 늦게 하교하는 여학생들을 마주치는 게 싫었죠. 대부분 초등학교 때부터 봤던 애들이었어요. 창피해서 빨리 지나치려는데 그날 하필 자전거가 넘어지며 신문이 쏟아졌어요. 땅바닥에 엎드려 신문을 주워 담는데 무슨 영화의 한 장면도 아니고..."
 

그룹홈, 차선일 뿐 해결책 아냐

이성남씨가 자란 보육원은 오래 전부터 '그룹홈' 형태로 운영되었다. 보육원 안에 독립된 몇 채의 집이 있고 집마다 '엄마'라 불리는 보육사가 상주했다. 한 '엄마'는 대체로 8~10명의 아동을 돌봤다. 많게는 15~16명일 때도 있었다. 그룹홈은 현재 우리 정부의 '포용국가 아동정책'이 내놓은 '집단 아동보호 시설'의 대안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씨는 그룹홈 역시 아동보호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집이 아니라 군대였어요. 아직 자기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집단생활을 하니 혼자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 어렵죠. 또 스스로 일상생활을 해나가지 않았으니 자립하기가 힘든 겁니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밥 먹고 짜인 일정 속에 시키는 일들을 해나가는 생활만 하다 보니, 독립된 개인의 삶을 어떻게 꾸려야 하는지 배울 수 없는 것이 문제라 했다. 그는 입양 편견이 심하고 혈연 중심주의가 팽배해 있는 한국 사회에서 그룹홈은 한시적인 대안일 수는 있지만 결코 답은 아니라 했다. 그러나 당장 없애지 못한다면 개선이라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가 제시한 개선책은 '엄마'라 불리는 보육사 한 명이 맡는 아동 수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과 1인 1실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보육원 출신 학생, SKY 대학생들과 나란히 서다

1981년 이성남은 동생과 함께 보육원 부근 가게 앞에서 발견됐다. 1977년생으로 추정되지만 남아 있는 정보는 거의 없었다. 형제가 돌림자를 쓰기 때문에 이름은 낳은 부모가 지었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었다.

소년 이성남은 비록 보육원에서 컸지만 긍정 에너지가 넘치는 '악바리'였다. 어려서는 보육사 '엄마'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썼고 그래서 늘 성실했다. 초등학교 때는 주산학원에 다녔다. 덕분에 수학경시대회에 나가기도 했고 학교 다니는 내내 그의 수학 성적은 우수했다. 학창 시절에는 만 단위까지 암산이 가능했다. 지금도 두 자릿수 암산은 할 수 있다는 그는 주산 암산 지도사 자격증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초등학생 이성남이 주산학원에 다닌 이유는 엉뚱했다. 그는 학원까지 왕복 한 시간을 혼자 걸어갔다 돌아왔는데, 그 시간이 좋았다고 했다. 도무지 혼자 있을 수 없는 보육원에서 빠져나와 혼자 걸으며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이 된 이성남은 선교단체 활동을 하면서 신앙을 굳혀갔고 보육원 밖 사람들과 교제를 넓혔다. 그는 신학대학에 들어갔다. 이 시기의 꿈은 '교목(校牧)'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활달하고 다혈질인 성격과 맞지 않았다. 그는 진로를 바꿔 다시 사범대학에 진학했다. 18세가 되면 보육원을 떠나야 하지만 대학에 다니는 동안은 머무를 수 있었다. 
  
공부 잘하고 성실하며 무엇이든 적극적인 이성남은 보육원의 자랑이었다. 그는 현대아산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 그때 전국에서 온 학생들과 함께 장학증서를 받으며 시설 출신이 아닌 다른 대학생들을 만났다. 보육원 출신이 'SKY'라 불리는 명문대생들과 나란히 장학금을 받은 것은 그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그는 더욱 공부를 열심히 했다. 학점도 좋았지만 여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졸업 전에 반드시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싶었다. 살면서 그는 우리 사회에 분명한 계층이 존재함을 뼈저리게 느꼈고, 임용고시 합격은 그에게 '계층이동'의 유일한 길처럼 여겨졌다.

사대도서관 봉사 도우미로 일하면서 '경북학숙'(경상북도에서 만든 학생기숙시설)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다. 결국 그는 바라던 대로 졸업 전에 임용고시에 붙고 체육 교사가 됐다. 현재 그는 세 아이의 아빠이고, 2017년 교육부에서 주는 학교체육수업 내실화 부문 '학교 체육 대상'을 받을 정도로 학교에서 열정 넘치게 일하고 있다.
  
체육교사로 재직 중인 이성남씨 그는 바라던 대로 졸업 전에 임용고시에 합격해 체육교사가 됐다. 지금은 2017년 교육부에서 주는 학교체육수업 내실화 부문 '학교 체육 대상'을 받을 정도로 열정 넘치게 일하고 있다.
▲ 체육교사로 재직 중인 이성남씨 그는 바라던 대로 졸업 전에 임용고시에 합격해 체육교사가 됐다. 지금은 2017년 교육부에서 주는 학교체육수업 내실화 부문 "학교 체육 대상"을 받을 정도로 열정 넘치게 일하고 있다.
ⓒ 이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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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원은 나의 뿌리,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도와야죠
  
그런 그가 잊고 살아도 될 법한 보육원 시절을 기억하며 원장님과 보육사들, 후원자로 만난 어른들, 후배 원아들을 계속 챙기는 데는 이유가 있다.

"뿌리가 없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제겐 보육원이 뿌리인 셈이죠. 그렇게 마음 속으로 정해두었던 겁니다."

그는 최근까지 낳은 부모를 찾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고 했다. 주변 선후배 친구들 가운데는 부모를 찾은 경우도 꽤 많았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90%는 좋지 못했다. 성장기에 자녀를 한 번도 찾지 않았던 부모의 상황이 좋은 경우는 드물었고, 오히려 짐이 되는 일이 훨씬 많았다. 그는 '낳은 부모를 생각하기보다는 지금 곁에서 도움 주는 분들에게 잘하자'고 생각해 왔다. 이씨에게는 '엄마'가 많다. 그래서 그는 자녀들에게 "할머니가 왜 이렇게 많냐?"는 말을 듣는다.

보육원 아동들은 2년마다 '엄마'(보육사)가 바뀌었는데 그중 한 분만이 그에게 '엄마'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다른 보육사들과 어떻게 달랐느냐는 질문에 그는 "별것 없어요, 딱 두 가지입니다"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늘 잔소리를 달고 살았고 원아들은 매일 혼났다. 상처를 가진 아동 여러 명을 동시에 돌보는 일이 쉽지 않았기에 보육사들은 지치고 짜증이 나 있을 때가 많았다. '보육'이 이루어지기보다 '관리'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그런데 이성남씨가 고등학교 1~2 학년 때의 '엄마'는 조금 달랐다. 그 '엄마'는 그를 절대로 혼내지 않았다. 또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 가는 그를 배웅해 주었다. '잘 다녀와'라는 말과 함께. 그는 어찌 보면 평범하기만 한 이 두 가지가 '지금의 이성남'을 만들었다고 했다.
  
또 그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다른 세상의 행복을 알게 한 후원자 '엄마'도 있다. 어린이집 교사였던 그분은 중학생 이성남을 포함, 공부에 의욕을 가진 몇 명의 원아들에게 과외 지도를 해주었다. 그리고 보육원의 일대일 결연 체제를 통해 이씨를 후원했다.

방학이면 대구에 있는 그 후원자의 집에 가서 일주일 동안 지내며 다른 세상을 맛볼 수 있었다. 집 근처에 효목도서관이 있었는데 이씨는 그곳에서 난생처음 많은 책과 공부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식사예절도 배우고, 같이 놀러 갔던 기억들은 그에게 '행복'으로 남아 있다. 그렇게 후원자로 만난 이향화 '엄마'는 대구에서 작은 도서관인 '해봄 도서관' 관장이 됐고 지금도 자주 찾으며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장충동 왕족발 김천점' 사장 김명임씨도 그에겐 '엄마' 같은 분이다. 평생 보육원뿐 아니라 장애인 시설, 교도소 등에서 활발한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는 김씨는 보육원 아동들을 모두 사랑했지만, 그중에서도 밝고 똑똑한 이씨를 아들처럼 여겼다. 지금도 명절 때나 대소사가 있을 때 찾아뵙는 고마운 분이다.

과거를 잊지 않고 돌보는 것은 미래를 가꾸는 가장 건강한 방법이라는 것을 이씨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시간을 쪼개어 고아권익연대 활동을 하면서 보육원에서 퇴소하는 청년들을 위한 상담 활동을 하고 있다. 앞으로는 보육원 아동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강연도 하고 싶다고 했다.

보육원은 아직도 정부 보조금만으로는 운영이 힘들어서 각종 후원을 많이 받는다. 그러다 보니 휴일에도 아동들은 후원자와 함께 하는 축구 경기나 등산, 야유회에 불려나가 '동원' 되다시피 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없기에 아동들이 이를 매우 힘들어하는 것을 이씨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런 행사와는 달리 자신의 강연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이씨의 생각이다.
  
"경제적인 얘기, 사회의 실상을 들려주는 것이 정말 필요해요. 우리는 사회적 약자로 출발하기에 출발선이 다릅니다. 퇴소할 때 많으면 500만 원 정도 받는데 허투루 쓰지 말란 얘기부터 시작해서... 보육원은 모든 게 공동소유이다 보니까 경제교육이 안 된 채 퇴소를 많이 해요. 그래서 그 돈을 쉽게 써버리죠. 아무나 빌려주고 몇 명 모여서 같이 살기도 하는데, 그러면 생활이 방만해지게 되는 경우도 많아요. 다 써버리고 쉽게 돈을 빌렸다가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합니다. 정말 사회에 대한 지식 없이 출발해서 안 좋은 쪽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으니 이런 얘기들을 들려줘야지요."

입양이 최선이지만 전부 갈 수 없다면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예전 보육원 아동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의 아픈 기억을 이성남씨도 가지고 있다. 중학생이 되고부터 형들과 생활하는 '본관 집'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매일 맞았던 기억이다. 막내였을 때는 새벽에 일어나서 지하수 물을 떠다가 1시간 넘게 설거지를 해야 했다. 축구 경기에 졌다거나 분실 사고가 있게 되면 밤을 새워가며 벌쓰고 형들에게 맞았다. 그렇게 아픈 기억은 많지만 그는 그런 기억에 압도되지 않았다.
  
"저는 이런 것들이 마음 한구석에 상처로 남아 있지는 않아요. 무의식에도 없는지 악몽도 꾸지 않습니다. 그 당시 나를 정말로 괴롭히고 성적 유린까지 했던 형들도 지금은 다 용서했어요. '본인 자신들의 상처가 오죽했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그는 많은 아동이 함께 지내다 보니 재미있었던 기억도 많다고 했다. 스무 명이 함께 대중목욕탕 갔던 것도 즐거운 추억이고, 단체 생활을 하니 리더십도 길러졌다. 그런데도 그는 요보호 아동을 위한 가장 좋은 해결책은 '입양'이라고 했다. 퇴소하고 나서 허심탄회하게 믿고 의지할 원가족이 없다는 게 가장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아이를 낳아 길러보니, 지금 보육원에서 자라는 후배들에게 더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는 보육원에서 아기들이 젖병 잡아줄 사람도 없어 매달린 우유병 밑에 누워 있는 것을 보며 자랐다. 그렇게 큰 아동들은 기본적으로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어른을 불신하고, 어려서부터 자기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었기에 간섭이나 조언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 그가 나온 보육원에는 각 그룹홈마다 '엄마'(보육사)들이 2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엄마'는 자주 바뀌지 말아야 하고 한 분이 해주는 게 가장 좋다. 아동에게 안정된 애착 대상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미 교육심리학 이론으로도 증명된 바다.

그런데 2020년부터 주 52시간 근무 제도가 적용되면 '한 엄마'는커녕 4교대로 바뀌어 한 그룹홈에 엄마가 4명이 된다. 게다가 그 '엄마'들은 매일 모든 아동의 생활을 적는 일지를 써야 하는 등 잡무에도 시달린다. 이씨는 "어떤 가정에서 엄마가 자녀 성장 일지를 매일 쓰겠느냐"며 이런 것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한 보육사가 담당해야 하는 아동의 수를 최소한으로 줄여서 업무는 경감하고, 보조교사나 어린이집, 유치원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2교대를 유지하거나 한 명이 상주하는 형태로 가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보육원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실질적인 지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아동 인권'만 강조하다 보니, 보육사들이 엇나가는 아동들을 제어하기 힘들어지는 것도 문제라 했다. 당사자가 빠진 탁상행정의 결과, 상황은 더 나빠질 위기에 처해 있다. 당사자 아동들은 '가정(과 가장 유사한 형태)'을 원하는데, 현실의 '그룹홈'은 가정과 더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가 제안한 1인 1실이나 한 그룹홈 당 아동 수를 일반 가정 수준으로 줄이는 개선책들은 더 많은 아동 복지 예산이 필요하다. 근래에는 '왜 내 동의 없이 내가 낸 세금으로 복지 예산을 낭비하느냐'는 불평의 소리가 사회 일각에서 들려오기도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공화국'이고 모든 국민이 '평등한 주권'을 가졌다면, 우리는 '아동이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게 태어남'에 주목해야 한다. 한참 다른 출발선을 같은 곳으로 맞추려는 노력 없이 '평등'만 외치는 것은 '불평등'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기획 / 편견을 넘어선 사람들]
① "'고아'라는 건 내 자랑거리, 알아줘서 고맙습니다" http://omn.kr/1kmkv
② "이제는 우리도 해외에서 입양해오는 나라가 되어야" http://omn.kr/1ks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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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여 년의 교직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 절망과 섬세한 고민, 대안을 담은<경쟁의 늪에서 학교를 인양하라(지식과감성)>를 썼으며, 공교육, 청소년 독서, 대안 학교, 미혼모 문제, 입양 등의 관심사에 대한 기사를 주로 쓰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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