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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의 관전 포인트는 남성들, 특히 '젊은 마초'들에게 제격이다. 이는 "한 명의 남성이라도 더 읽기를 바라기 때문"에 '살살 썼다'는 저자의 집필 의도와 적중한다. 남성들이여,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을 일독하시라. 그리고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의 도도한 물결에 뛰어들기를 간곡히 청한다.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은 남성 페미니스트 박정훈 기자가 쓴 페미니즘 관통기다. 페미니즘 현안에 예민하게 반응한 기록들인데, 저자가 기자라는 직업적 특성이 매개된 듯하다. 2015 년 '몰카 문화'라 일컬어지는 불법촬영 문제부터 최근 일어났던 '대림동 여경 혐오 사건'까지, 저자는 페미니즘에 기반하여 여혐 사건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조곤조곤 써 내려간다.

여성들에겐 첨예한 사안들이기에 저자는 상당히 고심하며 썼을 것이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치열하게 썼을 그의 글은 어쩔 수 없이 여성인 내겐 다소 톡 쏘는 맛이 약하다 싶은 느낌이 들었다. 책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성적으로 차별당한 경험이 없는 남성의 관점은 그가 이 책에 밝힌 대로, '절박함'이 결여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러다 한 번 제대로 탄산 맛을 느꼈는데, '뚱뚱해도 잘 사는 남자들 살아남기 위해 살 빼는 여자들'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살이 찌면서 내 생활은 꼬이기 시작했다. 체육을 못했고, 몸도 둔했고, 언제나 '루저'같은 느낌으로 학교에 다녔다." (178쪽) 대상화된 아픔이 아니라, '뚱뚱한 아이'가 가지는 결여감에 이르러서야, 저자는 소수자로서의 당사자성을 획득한다. 타자화된 페미니즘에 빙의되지 않은 당사자로서 말하는 이 소수자성이야말로 곡진히 다가왔다.

살찐 남성으로서 '루저감'을 느끼는 또 한 사람을 알고 있다. 성소수자의 이야기인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쓴 소설가 박상영이다.

그는 살찐 몸을 혐오당하기에 독한 마음먹고 별별 다이어트와 운동을 시도해보지만, 인생이 어디 그렇게 맘먹은 대로 풀리던가. 밤마다 야식과 사투를 벌이지만 결국 번번이 참패하고 우걱우걱 먹어대는 자신을 거의 증오에 가까울 정도로 비탄한다.

남성인 그가 몸을 혐오당하는 느낌은 비참하다. 하지만 그의 글에서 읽은 그의 몸 굴욕은 여성에게 퍼부어지는 악마적 오물성 비난과는 결이 다르다. 학교 급식을 먹고 바로 화장실로 가 손가락을 넣어 게워내는 여학생이 있다. 거식과 폭식을 오가며 몸을 학대하다, 최악의 경우 사망에 이르게도 되는 게 여성의 몸이다. 이런 것이다.

남성의 몸은 아무리 혐오당해도 여성에 비해 가혹한 현실에 내몰리지는 않는다. 그래서 남성들의 소수자성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 아니다. 남성이 여성과 같은 경험을 한다고 느끼는 어떤 순간마저, 여성의 그것과 결코 같을 수 없는 지점이 있다는 말이다.

남성 페미니스트들이 말한다 "Stop it"

<맨박스>를 쓴 토니 포터는 할아버지답게 시종일관 남성들에게 이렇게 타이른다. 얘들아, 너희들은 본래 착해(성선설을 믿는 모양이다). 너희들은 자라면서 못된 남성다움에 갇혀 버린 거야. 그 질곡을 스스로 벗어나기만 하면 너희는 다시 멋진 남자가 된단다. 하지만 그놈의 맨박스를 걷어차지 못하면, 너는 아주 형편없고 쓸모없는 인간이 될 거야. 그러고 싶니? 그는 무섭게 다그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애들 눈치 보며 당근만 주려고도 하지 않는다.

<마초 패러독스>의 잭슨 카츠는 어리광 부리지 말고 너의 가해자성을 잘 들여다보라고 엄하게 채근한다. 그가 성차별의 현장들에서 목격한 일화에서 공적 사건까지 열람시키며, 너희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똑똑히 보라고 한다. 그는 남성들 편들기 따위는 아예 제쳐두고 너희가 한 일을 너희가 책임지라고 강하게 압박한다.

강준만의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도 생각난다. '진보 연하는 안티 페미 남성들, 도저히 더는 못 봐주겠다'며 나선 게 분명한 어조로, 지질한 남성들의 안티 페미 역사를 막대한 증거로 낱낱이 제시한다. 강준만은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다그치는 대신, 여성 페미니스트들의 증언과 주장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채찍을 휘두른다. 우아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왜 메갈 따위의 짓을 하느냐'는 남성들의 손쉬운 비난에 그가 택한 공감은 이거였다. "그 짓 10년 넘게 했다. 돌아온 거 없다."

남성 페미니스트가 전하는 메시지

그는 책 이곳저곳에 페미니즘 세상에 대한 낙관의 흔적들을 감추지 않는다. "페미니즘 지지층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는 남성도 상당수 존재한다"는 믿음이다.

이외수 시인의 여혐 싯구에 대응해 "서효인 시인처럼 혐오를 거부하는 '다른 길'을 선택하는 움직임도 늘어날 것이라 믿"거나, 남성 성 구매 문화를 압박할 때 이에 호응할 보다 나은 환경이 마련돼 있다고 보는 관점들. 독자인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지만, 때로 근거 없는 낙관이 변화를 견인했듯, 젊은 남성 페미니스트들의 분발을 기대해본다.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에서 독자는 곳곳에 그가 숨겨놓은 반성문을 발견하게 된다(줄곧 미안해해서 오히려 독자가 미안해진다). 여성 인디 음악가들의 작업을 '감성 팔이'라 쉽게 단정했던 미안함. 안티 페미니즘 논란을 결국 '남성 문제'로 인식하고, "나도 부끄러우니, 당신도 조금은 부끄러웠으면 좋겠다"는 고백. "적어도" 디지털 성범죄 영상을 공유하는 구조에는 "분노하지 말고 반성하라"는 충고.

이 책에서 저자는 독자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페미니즘 메시지도 발신해주고 있다. 배우 나문희를 자주적 여성 연기자로 탐구하며, 그의 연기 인생을 "순응, 탈주, 재생산, 장애"를 노정한 '페미니즘 텍스트'로 평가하면서, 나문희가 선구적 페미니스트 나혜석의 조카 손녀라는 사실을 귀띔해 준다. 여자 밥을 남자 밥에 비해 적게 주는 한 식당의 성차별을 고발하는 부분에선 따끔히 따져주었으면 싶다. 가격은 똑같이 지불하는데 왜 여자 밥은 적게 준단 말인가.

책은 종반을 향해가며, "이대로 두면 남자아이들은 또 여성 혐오자로 자란다"며 '어린 마초'들을 걱정한다. 이 지점은 <맨박스>나 <마초패러독스> 저자들의 근심과 맥을 같이 한다.

아이들이 부모의 영향권에 있을 거라는 통념과 달리, 특히 남자아이들은 또래 집단과의 사회화를 거치며 정체성을 형성한다. 이때 형성된 정체성은 어른이 되어서의 정체성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 중·고등학교 심지어 초등학교 교실에서 이미 여자 급우를 대상으로 수위 높은 성적 농담이 오가고, 불법촬영물인 '야동' 본 소감을 대놓고 키득대며 나누고 있는 실정이다. 청소년기에 잘못 심어진 여성 혐오적 '보이코드(boy code)'는 좀처럼 근절하기 어렵다.

중등 자녀를 둔 엄마들을 만나면, 한숨 쉬는 일이 잦다. 성차별 관련 말을 입에 올리기라도 하면, "엄마 메갈이에요?"하며 들이댄다고 한다. 아들을 기른 한 페미니스트 엄마는 자신의 아들만큼은 페미니스트로 키우고 싶었는데 실패했다고 자조했다. 아들에게 무슨 소리를 해도 씨알이도 안 먹히는 경험을 하는 엄마들은 이미 안티 페미 논리에선 처참할 정도로 무능하다.

토니 포터나 잭슨 카츠의 제언처럼, 현실은 남성들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와있다. 남자아이들에겐 '페미니스트 선생님'뿐 아니라, '페미니스트 형, 선배, 아빠'가 시급히 필요하다.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도 이 시급함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다.

남성 페미니스트들의 서사는 다분히 여성 편들기일 수밖에 없다. 싸움터에선 단 한 명의 우리 편이라도 절실하기에, 당신들 편이라는 선언은 귀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이랬으면 한다. 최대한 '입장의 동일함'을 견지하려 노력했으면 한다. 미안함보다는 책임감을 가져주길 바란다. 어떤 사안에 대해 느끼는 책임감이야말로 가장 적극적인 개입이라도 믿기에 그렇다.

그래서 "여전히 '한국 남자'이지만, 아니 계속 그저 그런 '한국 남자'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 더 부딪혀 보려 한다"(267쪽)는 저자의 다짐에 공감을 보내는 동시에, "조금 더"가 아니라 '많이' 힘써주기를 요청하고 싶다. 빗속에서 버티며 맞서고 있는 사람에게 우산을 씌워주기 보다, 그 비를 같이 맞으며 싸워주기를 바란다면, 너무 과한 바람일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 - 남성문화에 대한 고백, 페미니즘을 향한 연대

박정훈 (지은이), 내인생의책(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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