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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비엔날레는 124년 역사를 가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국제미술제다. 그 자체가 하나의 막강한 문화브랜드이다. 지난 5월 11일 시작해 11월 24일에 그 대장정이 끝난다. 이 행사를 돌아보면서 세계미술 속에서 한국미술의 나아갈 길을 전망해 보고자 한다. 그래서 현장답사를 통해 세계미술제에 두루 다녀온 이은화 미술평론가를 만났다. - 기자말
 
 '이은화' 평론가는 미술작가이기도 하다. 인터뷰 중 2004년 전시 때 만든 도록을 보여주다.
 "이은화" 평론가는 미술작가이기도 하다. 인터뷰 중 2004년 전시 때 만든 도록을 보여주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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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화 평론가는 한국 미술계에서 다양한 역할로 큰 몫을 하죠. 간단히 소개를 부탁합니다.
"저는 미술작가, 평론가, 독립큐레이터, 칼럼니스트, 대학강사, 뮤지엄스토리텔러 등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해요.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저처럼 멀티플레이어가 되지 않으면 치열한 미술 동네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중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역할은 '뮤지엄 스토리텔러', 왜냐면 제가 대한민국 1호 뮤지엄스토리텔러거든요. 작년부터 매주 KBS1 라디오 '문화공감'에 세계의 미술관을 소개하고 동아일보에 미술사 칼럼을 연재해요."

- 선생님은 베를린 자유대학 런던 예술대학 런던 소더비 인스티튜트에서 현대미술, 맨체스터대학원에서 다양한 장르로 다양한 공부를 하셨어요.
"제가 호기심도 많고 부족한 것도 많아요. 그래서 그걸 좀 채워보려고 유학도 간 건데, 공부가 끝이 없어요. 한 분야를 공부하면 또 다른 분야를 공부하고 싶고 결과적으로는 한국과 유럽에서 6개 대학과 대학원을 다녔죠. 회화, 그래픽 디자인, 미술사, 현대미술, 아트비즈니스까지. 큰 틀에서 보면 다 미술이죠. 그 원동력도 결국 미술에 대한 호기심이죠."

- 미에 대한 엑스타시는 인간본능이죠. 그래서 선생님 같은 분이 필요하죠. 저서는 몇 권을 내셨나요?
"지금까지 총 13권을 냈어요. 2017년 4곳에서 동시에 열리는 국제미술제에 맞춰 <그랜드 아트투어>를 냈고요. 가장 알려진 책은 역시 <가고 싶은 유럽의 현대미술관>(2011년)이에요."

베니스비엔날레의 권위에 대해
 
 베니스에서는 바다 위에 다니는 배를 '수상버스'라고 칭한다
 베니스에서는 바다 위에 다니는 배를 "수상버스"라고 칭한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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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니스는 현대 미술가들의 성지라고 하는데 왜일까요? 베니스는 몇 번 정도 다니셨는지?
"정확히 세어 본 적은 없는데, 열 번 정도될 거예요. 저한테 베니스는 미술축제의 섬이죠. 비엔날레 시즌에만 베니스를 갔거든요. 행사마다 50만 명 이상이 찾는 거대한 미술축제의 장이에요. 미술인과 애호가들이 꼭 가보고 싶어 하는 행사죠. 베니스는 100개가 넘는 작은 섬이 400개가 넘는 다리로 이어져 있는 수상 도시고요. 느려터진 '수상버스(위 사진)'로 이동하거나 좁은 다리와 골목을 걸어다녀야 하니 길 찾기도 쉽지 않고 이동에 시간도 많이 걸려요. 하지만 느려도 괜찮고 길을 잃고 헤매도 행복한 곳이 바로 베니스예요."

- 왜 미국은 베니스비엔날레 같은 행사를 유치 못하나요?
"미국에도 '아모리쇼'가 있죠. 1913년에 시작된 미국 최초의 국제 현대미술전이에요. 1932년에 설립된 '휘트니비엔날레'도 있고요. 근데 이 행사는 다 유럽에서 베낀 거죠. 얼마 전에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한국영화가 왜 한 번도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적이 없는가?'라는 미국 기자의 질문에 '로컬 시상식이다'라고 답했다죠. 비슷한 것 같아요. 휘트니는 미국의 로컬 행사고, 베니스는 세계 최고의 명성을 가진 글로벌 아트 이벤트인 거죠. 그것도 124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역사와 전통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 비엔날레는 무기고의 해상도시, 무역 전쟁터, 그런데 어떻게 평화의 축제장으로?
"평화의 축제장이라고요? 저는 완전 문화전쟁터 같아요. 아시다시피 비엔날레는 섬의 남동쪽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 두 지역에서 열려요. 행사는 크게 감독이 기획한 본전시와 각 국가가 참여하는 국가관 전시로 나뉘죠(본전시가 열리는 아르세날레는 옛 '국영조선소'와 '무기고'였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해상무역'의 본거지로 유럽에서 제일 부강한 무역도시였다). 이를 지키려고 늘 전쟁이 벌어졌죠. 지금은 비엔날레에서 작가들끼리 국가들끼리 총만 안 들었지 예술을 무기로 치열하게 싸우는 '문화전쟁터', 근데 이 전쟁은 사람을 즐겁게 하죠."
 
 여기 베니스비엔날레 전시장 '아르세날레'는 옛 국영조선소와 무기고가 있었던 곳이다
 여기 베니스비엔날레 전시장 "아르세날레"는 옛 국영조선소와 무기고가 있었던 곳이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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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비엔날레가 이전 행사와 차이점이 있는지? 이번엔 회화작품도 많았죠. 그런데 상업주의를 배격 못했고, 이론적, 상업적, 개념적, 냉소적이었다는 평도 있어요.
"비엔날레에 대한 평가는 항상 다양해요. 어떤 미술작품이나 행사도 모두를 만족시키는 경우는 드물어요. 전문가와 일반인의 의견이 같을 수 없고 전문 미술인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견해가 존재해요. 미술은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니까. 베니스비엔날레는 세계 도처에서 열린 중요하고 의미 있는 전시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서 보여주는 메머드급 미술행사죠.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미술전시다 보니 총감독의 역할이 중요해요. 감독의 성향에 따라 전시 주제나 보여주는 방식, 초대작가나 작품성향도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예를 들면, 2015년에는 나이지리아 아프리카계 출신 총감독 '오쿠이 엔위저'가 모든 세계의 미래라는 주제로 행사를 이끌었어요. 이분이 정치학 전공자라 그런지 사회적 메시지가 들어가는 작품이 유독 많았죠. 그래서 너무 어렵다는 평도 받았고요. 반면 2017년에는 파리 퐁피두센터 수석 큐레이터 출신의 프랑스인 '크리스틴 마셸' 감독이 진두지휘했죠. 이전 행사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서였는지 전시 주제가 '예술 만만세(Viva Arte Viva)였어요. 특정 주제에 맞추는 게 아니라 각 예술가와 예술품 자체에 초점을 맞추었죠. 본전시의 경우는 밝고 심미적인 작품이 많아 그런지 세련되게 기획된 전시라는 평을 받았지만 좀 밋밋하다는 의견도 있었죠. 확실히 시대담론을 제시하는 작품은 '엔위저' 감독 때보다 훨씬 적었죠."

베니스비엔날레 총감독과 주제에 대해
 
 전시장에 우연힌 만난 '랄프 루고프' 총감독. 전시장을 계속 순회한다.
 전시장에 우연힌 만난 "랄프 루고프" 총감독. 전시장을 계속 순회한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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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베니스 '랄프 루고프' 총감독은 런던 '헤이워드갤러리' 관장이고 기호학자라고 들었어요.
"랄프 루고프는 뉴욕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했어요. 2006년부터 런던 헤이워드갤러리 관장을 맡은 베테랑 기획자죠. '헤이워드' 갤러리는 이름과 달리 영국의 중요한 국립미술관 중 하나인데요, 상설 소장품은 없지만,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획기적인 전시를 여는 곳으로 정평이 나 있어요. 특히 루고프가 관장으로 온 이후 관객지향적이고 혁신적인 전시와 교육프로그램을 많이 선봬 런던 시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죠. 작년 개관 50주년 특별전에 이불의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어요. 그런 인연으로 '이불'이 베니스 본전시에 초대받은 거겠죠."

- 이번 주제는 <흥미로운 시대를 살아가기를(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인데요. 이 주제는 중국 고전(寧為太平犬, 莫做亂離人(난세에는 인간보다 개로 사는 게 낫다)"에서 나왔다고요.
"개인적으로는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해요. 감독이 쓴 전시 선언서 중 예술은 정치 영역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않지만, 이 난세에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할지에 대한 지침서 역할 정도는 한다고 하던데... '미술은 혁명의 도구다', '미술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뭐 이렇게 주장하는 건 불가능한 시대잖아요. 감독 말처럼 미술이 우리 삶이나 생각에 약간의 지침서 정도죠. 미술이 그 정도 역할만 해도 충분해요. '난세에는 인간보다 개로 사는 게 낫다'는 말은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가는 게 힘들다는 비유죠. 멋지잖아요."

- 이 주제는 다르게 보면 우리 시대의 위험과 불안과 불확실하지만 역설적으로 어느 시기보다 인간의 창조적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호기라는 말도 되죠.
"그런 면도 있죠. 역사적으로 봐도 가장 어렵고 고통스런 시기에 예술가는 명작을 탄생시킨 경우가 참 많거든요. 편안하고 안락하면 작업 동기가 별로 안 생기죠. 하지만 분노, 좌절, 불안, 공포 등 극단적인 상황이나 상태를 겪고 나면 이걸 기록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요. 시인이라면 시를 쓰겠지만 예술가는 그걸 조형의 언어로 표출해 내는 거죠."

올해 베니스 한국관 작가와 주제에 대해
 
 정은영 작가의 영상작품 '섬광, 잔상, 속도와 소음의 공연' 비디오사운드 설치, 5.1 입체음향, 가변크기 2019
 정은영 작가의 영상작품 "섬광, 잔상, 속도와 소음의 공연" 비디오사운드 설치, 5.1 입체음향, 가변크기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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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주제를 약간 의역하면 "남성 중심의 역사가 우리 여성의 삶을 망쳐 놓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로 들려요.
"원래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였죠. 미국에서 뜨고 있는 한국계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에서 왔죠. 비엔날레 주제와 결도 같고, 문학적 표현도 인상적이에요.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의 처절했던 삶과 슬픔, 분노를 담은 소설인데, 본전시 주제와도 상통하죠. 다만 제목이 좀 길어 사람들 머리에 입력이 잘 안 된다고도 해요."

- 이번 주제는 '디아스포라(근대화)'에서 희생된 여성이에요. 그동안 격동기 기록에 나오지 않는 여성의 목소리를 한 번도 제대로 못 냈죠.
"어떤 글이든 글을 쓸 때는 저자의 관점으로 쓰죠. 우리가 배운 역사는 백인, 엘리트, 남성이 쓴 '히스토리'였기에 여성은 늘 배제된 타자였죠. 그래서 '여성이야기(Her story)'가 빠진 반쪽의 역사였죠. 여성뿐 아니라 민중, 유색인, 성소수자 같은 약자는 역사에서 배제됐어요. 미술사도 마찬가지죠. 세계적인 여성 화가 5명 대보라고 하면 사람들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아요. 미술사 책에 기록되지 않았거나 극소수만 기록되었으니까요. 1960년대 페미니즘의 등장과 함께 여성작가의 목소리가 높아지긴 해도, 여전히 남성 작가에 비해 여성 미술은 저평가됐어요. 최근 전 세계적으로 분 '미투운동' 이후 미술계도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졌죠. 그동안 너무 심하게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어요. 지금 균형감 있는 역사로 나가고 있죠."
 
 김현진 예술감독과 정은영, 남화연, 제인 진 카이젠 작가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앞에서 사진 포즈를 취하다
 김현진 예술감독과 정은영, 남화연, 제인 진 카이젠 작가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앞에서 사진 포즈를 취하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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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작가 '남화연', '정은영', '제인 진 카이젠'에 대한 짧은 평을 한다면?
"작품을 하나하나 따로 보면 호평을 받을 수밖에 없죠. 역사와 젠더 담론을 다룬 주제도 시의적절했어요. '정은영'은 잊혀진 '국극'부터 현대의 '퀴어담론'까지 다뤘어요. '남화연'은 국제적으로 활약한 뛰어난 무용가였지만 친일, 월북인사로 낙인찍혀 재평가받지 못한 '최승희'를, '제인 진 카이젠'은 '바리설화'를 차용해 한국 여성의 디아스포라 역사를 다뤘죠. 이들 작품은 모두 한국이라는 특정한 지정학적 맥락 속에 있지만, '근대화 반성'이나 '젠더 다양성'이라는 면에서는 비엔날레 주제와 맥을 같이 해요. 3인 모두 국제무대에서의 활약이 기대되는 작가죠."

- 한국관 주제는 좋은데 무겁다. 어렵다는 평도 있었어요.
"참가국 모두 다 수상을 기대하죠. 수상하면 좋겠지만 대다수 국가관이 못 받기 때문에 실망할 필요는 없어요. 상도 운이니까요. 저는 솔직히 이번 한국관 전시 보고 수상을 못 한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한국관 전시는 모두 여성 작가의 영상 매체로 꾸며졌고,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파생한 개인의 희생이나 시련, 아픔을 보여줬죠. 아무래도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으면 소화하기 힘든 주제예요. 게다가 감상 시간을 많이 요하는 영상이었죠. 그러다 보니 외국 심사위원에게 어필하기 쉽지 않았을 거예요.

게다가 안 그래도 좁은 한국관 내부를 갤러리 부스처럼 여러 개로 쪼개고 비슷한 주제의 작품만 보여주니 관객이 보기에 지루하고 답답했을 거예요. 아무리 개별 작품이 좋고 해도, 90개나 되는 국가관이 있는데 주목받기 쉽지 않죠. 관객이 과연 한국관에 와서 시간을 내며 이 무거운 주제의 영상을 볼까요? 공간에 비해 작가가 많았고, 작품 크기도 압도적이었으면 좋았겠죠."

본 국제관 전시 한국 작가에 대해
 
 이불 작가의 '오바드V'(왼쪽), 강서경 작가의 '할머니 탑', 아니카 리의 작가 '기계의 생물화'
 이불 작가의 "오바드V"(왼쪽), 강서경 작가의 "할머니 탑", 아니카 리의 작가 "기계의 생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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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 전시장에서 열린 본전시에 '강서경(땅 모래 지류)·이불(오바드V)·아니카 리(기계의 생물화)' 등 3명 작가가 참여했다.
"한 마디로 존재감이 크지 않았죠. 저는 '이불' 작가를 좋아하는데 이번 출품작 '오바드V'는 좀 실망스러웠어요. 남북문제를 다룬 주제까지는 납득이 가는데,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 좀... DMZ에서 수집한 재료로 구현한 작품의 형식도 좀 식상해 보였어요.

'강서경'이나 '아니카 리' 작품은 환경문제나 생물학 문제를 다루고 있어 분명 의미 있는 작품이긴 하나 최종 전시된 작품 자체는 그냥 무난해 보였죠. 아니카 리 작품은 서정성이 있어 인상적이긴 했지만, 시선을 끌기엔 역부족이었어요. 이런 국제 전시에선 작품 자체가 완전히 차별적이고 독창적이거나 아니면 작품을 좀 더 돋보이게 할 획기적인 연출력이 필요하다고 봐요. 그런 점에서 아쉬운 면이 많았죠."

- 2부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베니스비엔날레 홈페이지 https://www.labiennale.or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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