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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6월항쟁군’ 복장을 한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2017년 6월 10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6월항쟁군’ 복장을 한 시민들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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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기관의 '제 식구 감싸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비단 검찰만의 일도 아니다. 그런데 1987년 6월항쟁 이후로는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가 특히 문제가 되고 있다.

검찰은 6월항쟁 이전에는 독재정권의 시녀 역할을 하며 그 간섭을 받았다. 그 시절에는 검찰을 독립시켜야 할 필요성은 인식됐어도, 지금처럼 검찰을 견제해야 할 필요성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그런데 6월항쟁 이후로 법치주의가 강해지면서, 그 법을 다루는 검찰은 누구의 간섭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막강한 권력기관으로 떠올랐다. 검찰 견제보다 검찰 독립의 필요성을 훨씬 더 절감했던 1987년 개헌 당시에는, 검찰을 견제하는 방안을 헌법이나 법률에 규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1987년 헌법이 등장하고 지금까지 32년이란 세월이 흐르다 보니, 공룡처럼 커져 버린 검찰 권력을 법적으로 통제할 길이 없게 된 것이다.

그 누구의 견제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상태에서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행사하다 보니, 검찰은 마음만 먹으면 대통령 최측근이나 정부 장관까지도 위협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이러다 보니, 6월항쟁 이후에는 그 어느 국가기관보다도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가 특히 주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막강해진 권력을 바탕으로 검찰이 검사는 물론 일반 직원들도 감싸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제 식구 감싸기, 봐주기 수사
 
 1998년 11월 24일 자 <동아일보>
 1998년 11월 24일 자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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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에 힘입어 검찰이 강력해진 뒤인 1998년 9월 26일이었다. IMF 외환위기가 발생한 지 1년이 좀 안 되고,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한 지 7개월 된 때다.

토요일인 그날 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수사2과 7급 직원인 김아무개씨가 동료 직원들과 함께 서울 강남에서 술을 마셨다. 공공기관에서 주 5일제 근무제가 실시되기 6년 전이었기 때문에, 토요일 밤중에 연인이나 친구간이 아닌 직원들끼리 술집에 모이는 풍경이 가능했다.

김아무개씨는 39세였다. 나이로 볼 때, 그의 공직생활 대부분은 11년 전인 6월항쟁 이후에 있었을 것이다. 검찰의 위세가 강해지던 무렵에 공직 생활을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다.

만취 상태에서 술자리가 파하자, 김씨는 강남구 도곡동 길거리에서 모범택시를 세웠다. 이때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그가 운전 중인 기사를 폭행하자 참다못한 기사가 차를 도곡동 파출소 앞에 세웠다. 여기서도 김씨는 소란을 피웠다. 경찰관의 멱살을 잡고 난동을 부린 것이다.

당시 이 정도의 공무원 범죄에 대해서는 구속수사에 더해 파면이나 해임 정도의 중징계가 내려지는 게 상식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불구속 상태로 시일을 끌다가 2개월 만인 11월 23일 정직 2개월의 경징계를 내리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제 식구 감싸기, 봐주기 수사를 했던 것이다.

그해 11월 24일 자 <동아일보>는 '검찰 제 식구 감싸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검찰이 김씨를 구속하지 않고 이례적으로 불구속기소한 데 이어, 이번에 파면이나 해임이 아닌 정직 2개월의 비교적 가벼운 징계를 내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관행'으로 굳어진 제 식구 감싸기
 
 1999년 8월 31일 자 <한겨레>
 1999년 8월 31일 자 <한겨레>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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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 발행된 1999년 8월 31일 자 <한겨레> 기사의 제목인 '제 식구 감싸기 관행, 검찰직원 비리 키워'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가 '관행' 차원으로까지 굳어 있었다. 일반 국민에 대해서는 추상같이 엄한 검찰이 재벌과 검찰 식구에 대해서만은 한없이 부드러웠던 것이다. 기자가 그냥 생각만으로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써도 크게 문제 되지 않을 정도였던 것이다.

일반 직원들에 대한 감싸기도 그렇게 심각한 수준이었다면, 검사들에 대한 감싸기가 어떠하리라는 것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2010년의 이른바 '그랜저 검사 사건'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2008년 초, 정인균이라는 검사가 건설업자이자 친구인 김아무개로부터 '내가 고소한 사건을 잘 봐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100억 원대의 아파트 개발사업과 관련해 마찰을 빚고 있던 투자자 4명을 배임죄로 고소했으니, 이들이 처벌받게 해달라는 청탁이었다.

아무리 친구 사이일지라도 이런 청탁을 하게 되면 금품을 제공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건설업자가 금전 출혈이 예상되는 청탁을 하게 된 것은, 투자자들을 처벌받게 하려 했던 시도가 이미 한 차례 실패했기 때문이다.

김아무개는 2007년에 그 4명을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은 무혐의 의견을 달아 서울중앙지검에 사건을 송치했다. 그러자 검찰 수사 단계에서 상황을 역전시킬 목적으로 정인균 검사에게 청탁했던 것이다.

정인균은 담당 검사에게 '기록을 잘 살펴봐 달라'고 부탁했고, 담당 검사는 '혐의 있음'을 전제로 투자자 4명을 불구속기소 했다. 정인균은 청탁을 들어준 대가로 그랜저 승용차를 포함한 4600여 만의 금품을 받았다. 그가 '그랜저 검사'로 불리게 된 이유다.

이 사건은 소송 단계에서 다시 한번 역전됐다. 1심·2심·3심 모두 투자자 4명의 손을 들어줬다. 그들의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검찰이 의욕을 갖고 뛰어든 사건에 대해 법원이 세 번씩이나 무죄를 선고한 것을 보면, 애초의 경찰 수사가 진실에 근접했음을 알 수 있다.

대법원 선고로 무죄가 확정되자, 투자자 4명은 반격을 개시했다. 건설업자와 검사의 유착을 탐지한 이들은 검찰에 진정서를 내는 한편, 정인균 검사와 담당 검사를 고발했다. 이때가 2009년 4월이다.

검찰에 대한 불신 표출된 '그랜저 검사' 사건
 
구속되는 '그랜저 검사' 건설업자에게 사건 청탁을 받고 대가로 그랜저 승용차와 현금 등 4천6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뢰)로 구속된 정모 전 부장검사(현 변호사)가 7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을 떠나고 있다.
 2010년 12월 7일 건설업자에게 사건 청탁을 받고 대가로 그랜저 승용차와 현금 등 46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뢰)로 구속된 정 전 부장검사가 서울중앙지검을 떠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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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검찰은 사건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검찰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시일을 질질 지연시킬 뿐이었다.

결국 검찰은 1년 3개월이 지난 2010년 7월,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건설업자가 정인균 검사에게 제공한 금전을 뇌물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돈을 빌려준 것에 불과하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었다. 2009년 4월 고발된 정인균이 곧바로 자동차 값을 반환한 것을 근거로 뇌물수수 관계가 아닌 금전대차 관계로 처리했던 것이다.

검찰의 무혐의 처분은 사건을 증폭시키는 후폭풍을 초래했다. 2010년 10월 이 사건이 언론에 제보되고 국정감사에서까지 논의되는 상황으로 번져나갔다. '2010년도 국정감사 법제사법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10월 7일의 서울고등검찰청 국정감사에서는 '제 식구 감싸기'가 도마 위에 올라 감사장을 뜨겁게 달궜다.

이날 질의 중에 '제 식구 감싸기'란 표현을 언급한 의원만 해도 다섯 명이나 된다. 김무성(한나라당), 노철래(미래희망연대) 박지원(민주당), 이춘석(민주당), 정갑윤(한나라당) 의원이다.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을 비롯해 여야 관계없이 검찰의 봐주기 수사를 비판했다. 참고로, 미래희망연대는 2007년 9월 28일 창당됐으며 친박연대로도 불렸다. 2011년 2월 2일 한나라당과 합당했다.

이날 미래희망연대 노철래 의원은 검찰 간부들을 상대로 "우리가 볼 때는 대가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신속하게, 엄정하게 처리해서 국민한테 밝혔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1년 3개월이라는 기간을 결국 내 식구 감싸기 위해서, 어떤 자구책을 논하도록 하기 위해서 시간을 벌어준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제 식구'에 대한 고발인들의 공격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느라고 1년 3개월이나 시간을 끈 게 아니냐고 비판했던 것이다.

결국 검찰은 '제 식구'인 '그랜저 검사'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11월 6일 김준규 검찰총장이 재수사를 지시해서 12월 8일 구속 기소가 이뤄졌다. 이듬해인 2011년 1월 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정인균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벌금 3514만 원과 추징금 4614만 원을 선고했고, 6월 10일의 서울고등법원 2심과 9월 29일의 대법원 3심에서도 원심과 똑같은 형량이 선고됐다.

참고로, 벌금형은 유죄를 전제로 내려지는 데 반해, 추징은 반드시 유죄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형법 제48조·제49조). 유죄가 인정되지 않을 때도 범죄행위에 사용됐거나 사용될 뻔한 물건 또는 범죄행위로 생겼거나 취득한 물건은 국가가 몰수하는 게 원칙이다. 물건으로 몰수하기 힘들 때 하는 것이 금전으로 거두는 추징이다.

그랜저 검사 사건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특히 컸던 것은, 2010년 상반기에 이른바 '스폰서 검사 사건'이라는 검찰 비리가 터져 국민들이 공분을 터트리고 검찰이 제도 개선안을 발표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있은 상태에서 또다시 검찰 비리 사건이 터졌기에 국민들은 검찰에 대한 불신을 노골적으로 표출할 수밖에 없었다.

더는 믿고 지켜볼 수 없다는 것 검찰 스스로 증명

이 같은 제 식구 감싸기가 계속 되풀이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검사들의 인성이 부족해서가 결코 아니다. 문제의 원인은 제도에 있다. 막강한 권한이 검찰에 집중돼 있는 상태에서 검찰을 견제할 마땅한 법적 장치가 없었기에, 이런 일이 양산될 수밖에 없었다.

국정감사에 출석한 검사들은 국회의원들이 문제점을 따지면 "수사 중인 사건이라 언급할 수 없습니다'라며 화제를 돌려버리는 일이 많다. 검찰에 대한 견제 수단이 부실한 현행 법체계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한마디가 바로 그 '수사 중인 사건이라 언급할 수 없다'는 말이다. 수사 중인 사건이라는 장벽만 쳐놓으면 그 어느 외부기관의 견제도 차단한 채 검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은 제도를 바꾸는 것뿐이다. 그것을 위한 개혁적 장치 중 하나가 바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다. 공수처가 설치되면 대통령 같은 선출직 공직자뿐 아니라 검사들의 비리도 검찰이 아닌 공수처에서 다뤄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검사는 물론 검찰 일반 직원들도 좀 더 조심하지 않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들의 비리가 묻히는 일도 생기기 힘들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지난 수십 년간 검사들의 도덕성을 믿고 지켜봤다. 하지만 검찰을 더는 믿고 지켜볼 수 없다는 것을 검찰 스스로 잘 증명해 왔다. 이제는 공수처라는 제도적 장치를 믿고 지켜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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