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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백원 ‘영보정’ 중 ‘거북선’ 부분
 하백원 ‘영보정’ 중 ‘거북선’ 부분
ⓒ 황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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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남 화순 출신의 규남(圭南) 하백원은 다방면에 재능이 많았던 실학자로 존재(存齋) 위백규(魏伯珪, 1727-1798),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 1729-1791)과 함께 호남의 3대 실학자로 불렸다. 중앙의 학자들과도 교류가 많아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 1731-1783) 등과도 소통을 하였다. 그는 천문, 지리, 산술, 율력 등 실질적인 학문에 몰두하였고, 그림이나 글씨에도 능해 여러 종의 서화첩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는 혼자 힘으로 자승차(양수기)를 발명하였고, 동국지도, 만국지도, 천문도 등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또한 자명종, 계영배(戒盈杯), 방적기 등 많은 새로운 물건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평소에는 자명종을 걸어두고 동네 사람들에게 시간에 맞추어 생활하도록 하는 등 과학 정신을 생활화 한 실질적인 실학자이기도 하였다.
 
 현재의 충남 보령 오천항 ‘영보정’
 현재의 충남 보령 오천항 ‘영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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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백원은 61세 되던 1842년 충남 보령으로 유배를 당한다. 석성(石城) 현감으로 부임하였다 지방 토호들에게 모함을 당하며 겪은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보령은 충청 수영이 있는 군사 지역으로 매우 외진 곳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약 1년 남짓 귀양 생활을 하는데, 그동안 보령 지역 선비들과 가까이 지낸다.

1842년 4월 15일, 하백원은 보령 출신의 이병중(李秉中), 이우명(李遇明), 조순영(趙淳榮), 이우정(李遇正), 심사숙(沈思淑) 등 5명의 선비들과 배를 타고 바다를 유람한다. 이곳은 군사 지역이지만 오랫동안 경치가 좋은 곳으로 유명한 명승지였다. 지금의 충남 보령 오천항 지역이다.

이들은 배를 타고 바닷가의 명승을 감상하며 시를 짓는다. 그림을 잘 그렸던 하백원이 '송호(松湖)', '황학루(黃鶴樓)', '영보정(永保亭)' 등 명승 세 곳을 차례로 그리면, 나머지 여섯 명은 유람하는 동안 느낀 감상을 시로 지었다. 유람을 끝낸 후 이들은 그날 추억을 담은 글들을 모아 모두 여섯 개의 서화첩을 만들어 나누어 갖기로 약속한다.
           
 하백원 ‘해유첩’ 표지와 속지
 하백원 ‘해유첩’ 표지와 속지
ⓒ 황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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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첩은 '해유시화(海遊詩畵)' 또는 '해유첩(海遊帖)'이라 제첨 하였고, 속지에 '서호기관(西湖奇觀)'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이어 하백원과 이우명이 서문을 쓰고, 다음에 하백원의 그림 한 점을 싣고 여섯 명의 시를 차례로 붙였다. 마지막에는 이병중의 발문을 달아 끝을 맺었다.

각자 지은 글은 모두 자신이 직접 썼으며, 그림은 모두 하백원이 그렸다. 이 서화첩은 유람한 이듬해인 1843년 7월 16일에야 완성된다. 6개의 서화첩을 만드는데 꼭 1년 3개월이 걸렸다. 이때 쯤 하백원의 유배가 풀려 고향에 돌아갈 것 같은 분위기가 되자, 회합을 갖고 서화첩을 나누어 갖는다.

이 때 만든 여섯 개의 서화첩 중 현재 두 종이 전한다. 하나는 하백원 후손에게 전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10여 년전부터 간직해오던 필자의 소장품이다. 하백원 집안 소장품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져왔으나, 필자 소장품은 이번에 처음 세상에 공개하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 '해유첩'을 입수한 후 글의 내용을 번역하고 그림과의 연관성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거북선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충청 수영(水營)에 정박해 있는 '거북선(龜船)'의 모습을 보고 그린 이 그림은 그동안 전해 오던 거북선의 구조를 선묘로 그린 것이나, 민화 속 거북선과 달리, 실학자가 실제 거북선을 보고 회화적으로 그린 것이라는데 그 특징이 있다.
 
 하백원 ‘해유첩’ 중 ‘영보정’ 부분.
 하백원 ‘해유첩’ 중 ‘영보정’ 부분.
ⓒ 황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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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백원이 그린 '송호', '황학루', '영보정' 세 곳의 그림은 모두 지도식 산수화이다. 산세나 물에 떠 있는 배 등을 제대로 학습한 화법으로 그리지 못하고 지도식 민화 같은 양식으로 그렸다. 하백원이 전문적인 미술 수업을 하지 못하고 독학하다 보니 더 이상의 솜씨를 내기 어려웠던 듯하다. 이 세 점 중 '영보정'을 그린 그림 속에 거북선의 모습이 나온다.

'영보정'은 충청 수영의 바닷가 쪽에 있는 가장 큰 정자로 경치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서해안 바다가 가장 멀리 보이는 요지이다. 수영 앞에는 항상 이곳을 지키는 배들이 정박해 있거나 수영을 지키느라 바다 위를 떠다니며 활동 중이었다. 그런데 마침 하백원 일행이 이곳을 유람할 때 거북선이 판옥선(板屋船)과 나란히 정박해 있었다. 하백원은 충무공 이순신의 옛 적 일을 생각하며 글을 짓고 그림을 그린다.
 
 하백원 ‘이충무공 거북선’ 부분.
 하백원 ‘이충무공 거북선’ 부분.
ⓒ 황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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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첩 앞부분에 하백원이 시문 형식으로 쓴 서문에도 거북선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나온다.
 
"거북을 숨겨 오묘하게 사용했던 이충무공의 전함은 물가에 가로놓여 있고,
교룡을 절단한 영매한 기풍의 장유격의 그림이 벽에 걸려 있네.
藏龜妙用李忠武之戰艦橫汀, 截蛟英風張游擊之紗籠揭壁"

'해유첩'의 글과 그림이 실학자였던 하백원이 모두 실제 유람을 하고 기록한 것이니, 이 그림은 실제 본 거북선을 정확히 묘사한 것임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현재 전하는 조선시대 그림 중 당대 인물이 실제로 본 거북선을 그린 유일한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서화첩의 다른 부분에서도 거북선에 대한 사실을 증빙할 만한 구절이 또 나온다.

이병중의 시에는 '거북은 한 쌍의 섬을 옮겨 골짜기를 단정히 단장하고(鰲移雙嶼端粧壑 )'라는 구절이 나온다. 곧 이어 나오는 하백원의 시에서도 '거북이 등에 진 섬은 어디서 온 것일까?(何處浮來鰲背島)'라는 구절이 또 나오는 것을 보면 이곳 경치 중 거북선의 모습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백원의 그림 속에 나오는 거북선이 충무공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사용한 바로 그 거북선인지는 명확치 않다. 그러나 하백원이 정조 때부터 살았던 인물이고, 고증학을 바탕으로 한 실학자였던 것을 생각하면, 그의 기록 방식의 신빙성을 믿을 만하다. 그런 면에서 이 그림과 충무공 거북선과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다 할 수 있다.

그동안 거북선 그림으로 남아 있는 것은 1795년 정조 때 출판된 '충무공전서'에 나오는 거북선과 민화 형식의 '해진도(海陣圖)'에 나오는 거북선 등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그림들은 실제 현장을 확인하고 그린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또한 개인 화가의 회화 중에서는 실제 존재하는 거북선을 보고 기록한 그림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하백원의 이 거북선 그림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동안 거북선의 외형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었다. 어떤 이는 독립적인 거북 모양의 철갑선이라 하고, 어떤 이는 판옥선 이층에 거북 모양을 올린 것이라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하백원의 그림을 보면 판옥선 위에 거북 모양을 올린 형태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하백원이 유배당했던 1842년까지도 여전히 거북선이 조선 해군의 유력 전함으로 사용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거북선이 고종 때까지도 사용되고 있었다는 다른 기록과 서로 통하는 면이 있고, 거북선이 임진왜란 이후 지속적으로 조선 수군의 주력 전함이었음을 증명하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하백원이 기록한 거북선의 모습은 비록 통제영 거북선이나 전라좌수영 거북선보다는 후에 기록된 것이나 실제 거북선을 보고 그린 현장성이 강하다는 면에서 역사적가치가 높다고 본다. 그동안 글이나 전승되는 이야기에 의지해 연구해왔던 거북선 연구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을 만한 매우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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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국문학과 석사 과정을 마치고, 고교 국어 교사를 11년간 하였다. 2001년 교사 퇴직 후 줄곧 미술사 연구에 몰두하였다. 저서에 《경매된 서화》 (김상엽 공저, 시공사, 2005)가 있고, 논문에 <소치 허련의 완당 초상에 관한 소견>(《소치연구》 창간호, 2003) 외 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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