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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에 전시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에 전시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김보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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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동화같이 예쁜 이 글귀를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것이다. 바로 윤동주 유고 시집의 제목이다.

누가 '윤동주'의 시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것일까? 바로 연희전문학교(현재 연세대학교)에서 만난 글벗, 정병욱 선생이 그 주인공이다.

윤동주는 1941년 연희전문학교 졸업 기념으로 자선시집(自選詩集)을 77부 한정판으로 출판하려 했다. 그러나 1937년부터 실시된 '일본어 상용 정책' 즉, '한국어 말살 정책'에 의해 한국어 시집 출판이 어려워져 무산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출판에는 실패하였으나 윤동주는 육필로 시집 3부를 작성한다. 그리고 1부는 자신이 갖고, 다른 1부는 은사(恩師)이신 이양하 교수님께 드리고, 마지막 1부는 글벗이자 후배인 정병욱에게 준다. 현재, 우리 곁에 온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정병욱 선생에게 준 육필 원고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윤동주와 정병욱의 우애에 대해서는 김응교의 '기획논문 : 우애와 기억의 공간, 윤동주와 정병욱 -윤동주 연구'(<한민족문화연구> Vol.49, 2015)에 소개돼 있다.

1940년 정병욱(1922~1982)은 연희전문학교에 1학년으로 입학을 한다. 그런데 입학하자마자 2년 선배이자 5살 많은 윤동주(1917~1945)가 '찾아 주었다'. 정병욱이 쓴 '동주 형의 편모'에는 자신을 방문해 준 윤동주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다.
 
1940년 4월 어느 날 이른 아침 연전 기숙사 3층, 내가 묵고 있는 다락방에 동주 형이 나를 찾아 주었다. -정병욱(1980) '동주 형의 편모' <바람을 부비고 서있는 말들> 잡문당 中
 
정병욱이 중학교 시절, 윤동주는 <조선일보>에 시 '아우의 인상화'(1938년 10월 17일), 산문 '달을 쏘다'(1939년 1월 23일)를 발표했다. 문학 소년이었던 정병욱은 일찍이 윤동주의 작품을 읽고 그를 동경해 왔던 것이다. 정병욱은 윤동주와의 첫 만남의 설렘을 생생하게 기록으로 남기었다.
 
중학교 때에 이미 그의 글을 읽고 먼발치에서 그를 눈여겨 살피고 있던 나에게는 너무도 뜻밖의 영광이었다. 나는 자랑스레 그를 따라 나섰다. -정병욱(1980) '동주 형의 편모' <바람을 부비고 서있는 말들> 잡문당 中
 
왜 윤동주는 정병욱을 찾아왔을까

그럼, 윤동주는 무슨 연유로 정병욱을 '찾아 준' 것일까? <조선일보> 학생란에 실린 정병욱의 '뻐꾸기의 전설'을 읽고 윤동주가 찾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입생인 나를 3학년이었던 동주 형이 그날 아침 조선일보 학생란에 실린 나의 하치도 않은 글을 먼저 보고 이렇게 찾아준 것이었다. -정병욱(1980) '동주 형의 편모' <바람을 부비고 서있는 말들> 잡문당 中
 
그러나 <조선일보>에 발표된 정병욱의 글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다. 때문에 '뻐꾸기의 전설'은 정병욱의 저작(著作) <인생과 학문의 뒤안길>(신구문화, 1999)에 실린 작품이 연구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이 글(<뻐꾸기의 전설>)의 내용은 대강 이러하다. 옛날 어느 곳에 장정이 된 아들과 노쇠한 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추수철에 적들이 볏섬을 약탈해 가려 한다는 말을 듣고 전쟁터에 끌려간다. 공을 많이 세웠으나 벌떼처럼 달려드는 적군에게 잡힌 농촌 젊은이는 목이 베여 참수되고 넋은 죽어 뻐꾸기가 된다.

그가 목이 베일 때 "아버지, 못자리"라는 외마디로 부르짖고 참수를 창한다. 이리하여 봄철이 되면 늙은 아버지에게 씨 뿌리고 못자리 낼 때가 되었노라고 "아버지, 못자리(뻐꾹! 뻐! 꾸)" 울음 운다는 이야기다. - 김응교(2015)'기획논문 : 우애와 기억의 공간, 윤동주와 정병욱 -윤동주 연구' <한민족문화연구> Vol.49,  p.12
 
'뻐꾸기의 전설'에는 1938년의 국가총동원법으로 인한 일제의 수탈('추수철에 적들이 볏섬을 약탈해 가려 한다')과 머지않아 강제징병('전쟁터에 끌려간다')으로 전쟁터에 끌려갈 한국 청년들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이 담겨 있다. 정병욱의 걱정, 예상대로 1942년에 강제징병이 실시되고 수많은 한국 청년들이 타지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 안타까운 숨결이 안치된 곳이 도쿄의 유텐지이다(관련기사 : "당신의 여행에서 1시간만 마음을 써 주세요").

윤동주와 정병욱의 우애

두 사람은 2년 이상 함께 생활한 '룸메이트'이자 '길벗'이었다. 윤동주가 3학년, 정병욱이 1학년 때는 기숙사에서 함께 지냈다. 윤동주가 4학년, 정병욱이 2학년 때는 함께 하숙집을 전전했다.

그리고 둘은 시를 읽고 쓰며 의견교환도 하는 '글벗'이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시가 '별 헤는 밤'이다. 정병욱은 저작 '잊지 못할 윤동주 형'(<바람을 부비고 서있는 말들> 1980, 잡문당)에 둘의 일화를 생생하게 기록해 두었다.

'별 헤는 밤'의 초고는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가 마지막 줄이었다고 한다. 시를 읽은 정병욱은 '어쩐지 끝이 좀 허한 느낌이 드네요'라는 의견을 말했다. 윤동주는 그 의견을 받아들여 "지난번 정 형이 '별 헤는 밤'의 끝 부분이 허전하다고 하셨지요. 이렇게 끝에다 덧붙여 보았습니다"며 마지막에 넉 줄을 추가하였다.
 
별 헤는 밤 / 윤동주

季節(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별 하나의 追憶(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憧憬(동경)과
별 하나에 詩(시)와
별 하나의 어머니, 어머니,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一九四一.十一.五)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1941년 11월 20일)

그런데 둘의 일화를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윤동주는 정병욱에게 높임말을 썼으며, 심지어는 '형'이라 부르고 있다. 정병욱은 2년 후배이자 5살 어린 동생이다. 윤동주의 유고 시집을 보면 정병욱 형(鄭炳昱兄), 윤동주 드림(尹東柱呈)이라고 적혀 있다. 정(呈)은 '감사나 공로 등에 대한 인사의 표시'이다. 이를 통해 둘 사이가 얼마나 각별하였는지 알 수 있다.

(* '여행 속 역사의 발자취 - 특별편②'로 이어집니다.)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에 전시된 '윤동주 유고 시집'. 원본은 연세대학교에서 보존 중이다. 현재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에 전시된 '윤동주 유고 시집'은 복사본임을 알린다.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에 전시된 "윤동주 유고 시집". 원본은 연세대학교에서 보존 중이다. 현재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에 전시된 "윤동주 유고 시집"은 복사본임을 알린다.
ⓒ 김보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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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광양시민신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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