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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는 일하는 페미니스트들을 위해 '페미노동아카데미' 를 운영합니다. 올 2019년은 페미노동아카데미 '시즌3'를 맞이하여 "독립생존을 준비하다"라는 주제의식을 가지고, 독립된 주체로 지속가능하게 노동하고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한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5회의 연속강의를 마련했습니다. 4강 <혈연을 넘어, 의지와 실천으로 구성하는 가족 (강사: 가족구성권연구소 나영정 연구위원)> 후기를 한국여성노동자회 영영페미 소모임 '페미워커클럽' 엘라의 글로 전합니다.
[편집자말]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 (결혼 안 하는건) 절대 안돼!"
"결혼도 안하고 어떻게 혼자 살려고 그래! 애기는 낳아야지."


내가 비혼의 뜻을 밝혔을 때, 주위에서 나에게 건네는 말이다.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혼인은 당연한 생애주기로 여겨진다. "정상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살지 않는 것을 상상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번 강의에서는 혼인, 혈연, 입양만이 정상가족으로 여겨지는 대한민국에서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고, 여성노동자에게 필요한 사회제도는 무엇일지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 진행하는 페미노동아카데미 시즌3, 4강 <혈연을 넘어, 의지와 실천으로 구성하는 가족>에서 가족구성권을 주제로 가족구성권연구소 나영정 연구위원이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 진행하는 페미노동아카데미 시즌3, 4강 <혈연을 넘어, 의지와 실천으로 구성하는 가족>에서 가족구성권을 주제로 가족구성권연구소 나영정 연구위원이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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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되지 못하는 가족상황차별, 정상가족 기반으로 형성된 사회복지제도

OECD 평균 비혼출산율은 40%가 넘는데 비해, 대한민국은 1.5%에 그친다. 한국에서는 결혼하지 않으면 출산도 하지 않는다고 여겨지고, 법적 가족이 아니면 모든 사회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신혼부부 중심의 주거지원에서 배제, 대출에서 불이익이 발생하며, 동거부부가 출산하면 사실상 한부모 가정으로 전락하게 된다. '정상가족'이 아닐 경우 수술동의권조차 없다.  

모든 사람들이 정상가족을 이루어 산다고 여겨지는 사회에서 제도적-사회적 공백은 반드시 존재하기에 가족상황 및 형태에 따른 사회적 차별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하게 이뤄져야 함을 인지하게 됐다.

나영정 강사는 가족상황 차별은 단일차별이 아니기에 고용차별, 성차별과 함께 고민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여성이 아니어도 차별 받을 수 있고, 혈연이 아닌 사람을 부양하고 있지만 부양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 등 다양한 상황이 있기 때문이다.

해외사례는 어떨까? 캐나다 온타리오 주 인권법에는 가족상황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법에 따르면, 혈연관계를 바탕으로 하지 않더라도 보호와 책임과 헌신을 바탕으로 한 '부모-자식형' 관계라면 모두 인정된다. 예를 들어 늙거나 장애인인 친척을 돌보는 사람, 레즈비언이나 게이 커플 등 가족이 아니더라도 실제로 누군가를 돌보고 책임지고 있을 경우 이에 따른 고용 및 사회적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현재의 한국사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제도다.

그렇다면 "한국의 사회복지제도는 왜 가족 기반으로 만들어 졌을까?"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 한국사회의 평등을 가로막는 요소 중 젠더 불평등은 가족중심적인 사회복지제도와 연관이 있다. 1970년대에 사회복지제도가 생겨나기 전까지 한국은 복지제도라고 불릴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당시 국가는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상품화해 일자리를 제공하며, 경공업을 기반으로 한 산업에 젊은-여성노동자들이 배치했다.

이후 70년대 중화학공업이 확산되면서 남성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사회보험이 설계되었다. 성인 남성이 결혼을 해야 그 배우자와 자녀들이 사회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사회보험은 기업차원에서 진행됐으며, 당시에는 국가적 차원의 복지보다 뛰어났다고 한다. 시장소득이 없는 사람은 소득이 있는 가족구성원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구조는 90년대 후반까지 지속되었다.

여성들이 수행해온 가사노동, 돌봄노동은 사회적 기여도를 인정받지 못하고 여성의 일로만 여겨졌고, 여성은 사회적으로 기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굳어졌다. 가부장제-한국사회는 여성이 남성-가장 중심으로 구성된 정상가족에 편입되지 않으면 빈곤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촘촘히 구성해 온 것이다.

 
 페미노동아카데미 시즌3 4강 <혈연을 넘어, 의지와 실천으로 구성하는 가족>에 참여한 수강생들의 모습.
 페미노동아카데미 시즌3 4강 <혈연을 넘어, 의지와 실천으로 구성하는 가족>에 참여한 수강생들의 모습.
ⓒ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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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독립-생존 자기결정권 : 자율을 기반으로 한 책임과 의무

우리는 지금 누군가와 함께 살더라도 언제든지 혼자가 될 수 있고, 지금 혼자 살더라도 나중에 누군가와 함께 살 수도 있다. 하지만 현 사회는 결혼을 인간관계주기에 있어서 종결점으로 여기며 정책적 기반을 마련해왔고,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결혼관의 변화랍시고 여성의 고학력, 여성의 경제참여를 꼽아냈다.

이러한 '여자탓'을 하는 사회에 나영정 강사는 여성들은 가족을 유지할 이유가 사라졌다고 말하며, 구조적으로 부모를 봉양하거나 자식을 부양하기가 힘들어진 상황에서 각자도생이 합리적인 선택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전에는 월급을 받아 저축을 통해 집을 넓히고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 있었던 반면 취업도 어렵고 집값은 천정부지로 솟는 현재의 삶에서 여성들은 결혼-가족의 본질과 기능을 물을 수밖에 없다. 이제는 가족의 기능과 성역할 고정관념을 갖지 않고, 자율적으로 맺는 책임과 의무를 사회적으로 인정해주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여성의 비혼, 독립은 능력 있는 여성들에게만 한정된 '골드미스' 담론으로 여겨졌으나, 현재 여성의 비혼, 독립은 성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버텨내고 살아남는 여성들의 선택이 담긴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서사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러한 여성들의 수요를 수용하는 정책 수준은 아주 협소하다. 서울시의 경우 귀갓길 도우미, 창문 경보기 지원 등과 같이 물품을 지원하고 여성안전을 위한 방안을 마련했다. 없는 것 보다 낫다고 생각하면서도, 실효성이 있는지 의심되는 대책들을 보면, 삶을 맡기기 어려울 정도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나영정 강사는 독립은 특정한 시기에 벌어지는 사건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고, 독립은 단순히 자취하는 것이나 가족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어떻게 주거-독립-생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발현할 수 있을까' 라는 구체적인 고민과 행위라고 밝혔다. 독립할 능력이라는 건 뭘까? 능력 없는 여성은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가? 이 능력이란 무엇일까. 월세 낼 능력이 있는가, 돈을 벌 능력이 있는가 등의 질문을 쉽게 하고, 받는 사회에서 살아왔다면 자연스레 자신의 능력에 대해 가늠해보게 된다. 하지만 이번 강의에서는 주거권을 능력주의담론과 연결시켜서 바라볼 것이 아닌, 오히려 그 고리를 끊어내고 자신의 주거-독립-생존을 권리의 영역에서 실현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상상력을 제시해주었다.

 
 페미노동아카데미 시즌3 4강 <혈연을 넘어, 의지와 실천으로 구성하는 가족> 질의응답시간에 답변하고 있는 나영정 연구위원.
 페미노동아카데미 시즌3 4강 <혈연을 넘어, 의지와 실천으로 구성하는 가족> 질의응답시간에 답변하고 있는 나영정 연구위원.
ⓒ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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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여성-노동자, 능력주의로 환원되지 않기 위하여

비혼 여성으로서 나는 이러한 사회에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할까? 비혼을 선택한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현재 조직된 노조 중심으로는 남성생계부양자 중심으로 배분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비혼 여성이나 여성 노동자에게 돌아갈 몫이 없다. 따라서 비혼자들의 조직이 절실하다. 그래야 우리의 정책적 요구도 국가에 반영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비혼 여성들은 여전히 경제, 사회, 문화적인 전방위적 차별을 받고 있고, 여성 노동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나영정 강사에게 질문했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일하고 있고, 너무 많이 증명하려 애쓰고 있다. (중략) 자본주의는 돌봄 및 양육 책임이 없는 비혼 여성을 좋아할 것이다. 야근을 시키고 과도한 업무를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답변을 듣고 비혼을 선택하는 것은 분명 유의미한 결정이지만, 자본주의-가부장제가 결탁한 구조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여성을 억압한다는 것을 상기하게 됐고, 어떻게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다.

동시에 '나'의 노동과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행하는 노동의 가치는 어떻게 구성 된 것인지, 각자가 하고 있는 일을 생산노동의 관점으로만, 능력주의 관점으로만 판단하기 보다는 어떻게 해야 각각의 위치에서 각자의 속도로 노동 할 수 있을지까지 고민해야 한다. 노동의 가치를 재판단하고 재구성해야할 필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노동을 저평가하는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 강의를 주최한 한국여성노동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앞으로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 절대 안돼!" 라는 반응에 나는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맞서 나는 비혼 여성으로서, 여성 노동자로서 계속 차별과 싸워 나갈 것이다. 내가 만들어 나갈, 행복한 '비정상' '가족'의 미래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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