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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문에서
 도문에서
ⓒ 이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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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물자 가져다
 군인들이 지었다는    
 아파트 몇몇 동 낡은 그림같이 걸려 있고
 철교 아래 두만강은 말이 없다
           -이상옥 디카시 <중국 도문 변경에서>


지난 주에는 연길을 다녀왔다. 중국을 여러 곳을 다녀 보았지만 정작 옛 북간도인 연변을 가보지는 못하다가 주도인 연길시와 도문시를 찾아 보았다. 연길은 연변의 중심 도시지만 개혁 개방 이후 한국과 중국이 수교하면서 한국으로 청도로 상해 등지로 많이 이주하여 지금은 조선족 인구가 많이 감소하였다.

연변조선족자치주는 한반도를 확장해 놓은 듯 중국어를 사용할 필요조차 없었다. 모든 상호나 안내판은 한국어로 씌어 있고 중국어는 병기되어 있다. 오늘날 연변조선족자치주는 19세기 중엽부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시까지 경제적이거나 정치적 이유 등으로 한민족이 한반도에서 이주하여 건설한 도시로 민족 정체성을 잃지 않고 언어와 풍속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연변지역은 일제시대에는 독립운동의 근거지이기도 해서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연길에서 연변박물관도 보고, 수상시장도 봤지만, 승용차로 50분 달려 북한 땅 남양과 인접한 도문 변경에서 특히나 감회가 깊었다. 도문과 남양 사이로 흐르는 눈물 젖은 두만강을 보고 어찌 분단의 아픔이 가슴 저미지 않았겠는가.

남양 쪽의 두만강은 제방도 없었다. 경제적 상황이 얼마나 안 좋으면 강둑도 하나 제대로 쌓지 못하는 것인가. 중국의 도문 쪽 두만강변은 제방이 튼튼하게 구축되어 있어서 두만강이 범람하면 남양 지역이 침수될 수밖에 없다. 같이 간 중국 동포는홍수로 침수 피해를 입은 것을 중국 물자로 군인들이 건설한 것이라며 남양 두만강변의 아파트를 가리켰다. 말이 아파트이지 겉모습만 봐도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도문에는 꼭 들러봐야 할 곳 중 하나가 백년부락이라 한다. 백년부락은 19세기 말에 건립한 연변지역 조선족주택의 외형과 평면구조를 현형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조선민속촌이다. 한반도에서 연변으로 와서 정착한 당시 조선주택의 원형을 볼 수 있는 곳이라 방문해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백년부락은 다음 기회에 가보기로 하고 시간에 쫓겨 서둘러 연길로 돌아왔다.    
 
한국에서 중국 왕래도 자유롭게 이뤄지고, 연변의 훈춘에서 한국 여권이면 러시아도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한데, 도문에서 남양을 눈앞에 두고도 갈 수 없는 처지가 남북분단의 현실을 다욱 실감나게 한 것이다. 두만강을 가로지르는 철교로 남양에서 도문으로 갈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덧붙이는 글 |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디지털카메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하여 찍은 영상과 함께 문자를 한 덩어리의 시로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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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로서 계간 '디카시'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