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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시정부 환국 기념 촬영 사진.(1945년 11월 3일) 맨 앞줄 백범 김구 왼쪽이 김규식이다.
 임시정부 환국 기념 촬영 사진.(1945년 11월 3일) 맨 앞줄 백범 김구 왼쪽이 김규식이다.
ⓒ 백범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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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요인들은 11월 5일 장개석 정부가 마련해 준 비행기를 타고 5시간 만에 임시정부가 출범했던 상하이로 날라왔다. 그러나 미국이 보내주기로 한 비행기는 좀체로 나타나지 않았다.

임정 요인들은 상하이에 머문 동안 윤봉길 의사가 거사한 홍커우 공원을 비롯 박은식 선생 등 먼저 가신 선열들의 묘소를 참배하고, 귀국 후의 활동을 논의하였다. 상하이의 한 호텔에서 임시국무회의가 열렸다. 김성숙의 회고담이다.  

(귀국을 위해 충칭을 떠나) 상해에서 체류하는 동안 모 호텔 회의실에서 김규식 부주석의 주제 하에 국무위원회를 개최하고, 입국문제와 입국 후 행동방침 문제를 토의하였다.…이 회의에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행동방침 문제를 제출하고, 그 실행을 촉구하였다.

첫째, 임정은 비록 개인 자격으로 입국하기로 되었으나, 미군정이 용인하는 한도 내에서 정치활동을 할 것인데, 국내에서 극좌ㆍ극우파의 대립 항쟁하는 사태에 임하여 임정은 어느 파에도 편향함이 없어 초연한 입장을 취하여 양파의 대립을 해소시키며 다같이 포섭하도록 노력할 것.

둘째, 입국 즉시 전국 각 정당ㆍ사회단체 대표자와 각 지방 반일민주인사를 소집하여, 비상국민대표대회를 가져 임정은 이 대회에서 30여 년간 지켜온 임정헌법과 국호와 연호를 채택하는 조건 하에서 임시의정원의 정원을 확대 개선하는 동시에, 명실상부한 한국 민주정부를 재조직할 것.

셋째, 미ㆍ소에 대해서는 평등한 원칙 하에서 외교관계를 수립할 것. (주석 3)

 
임시정부 요인 환국 기념 사진 1945년 12월 3일, 임시정부요인 귀국 기념사진. 앞줄 가운데가 김구 선생.
▲ 임시정부 요인 환국 기념 사진 1945년 12월 3일, 임시정부요인 귀국 기념사진. 앞줄 가운데가 김구 선생.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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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숙은 '임정 약법3장'으로 불리는 3가지 원칙을 제시하면서 임시정부가 단합하여 수행할 일정한 역할을 강조하였다. 그의 이같은 제안에는 '뿌리'가 있었다.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성립 26주년 기념일이기도 했던 1945년 4월 11일 김성숙은 제38차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중대 제안을 하였다.

나는 먼저 '민주'와 '단결' 4자로 이 날, 임정과 임시의정원 성립 26주년 기념일을 기념하며…우리는 너무 민족 스스로 실망하지 맙시다. 우리는 동방의 어느 나라보다도 낙후하지 않았습니다. 진보된 민주주의를 우리는 접수하여 온 것입니다. 지나간 모든 운동이 다 우수한 진보적인 민주주의의 기초 위에서 된 것입니다.

임시의정원과 정부가 다 민주주의 사상의 기초 위에서 된 것입니다. 그러나 파시스트의 강압에 민주주의가 매몰되어 발양 확대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민주주의가 또 나오게 되었습니다. 우리 자체로 보면 진보입니다.…그러나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움직인 것이 아니고, 남의 홍수에 끌리어 이만큼 발전된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정상적이지 못한 모습입니다.

나는 희망합니다. 지금은 더욱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될 시간입니다. 국제정세는 날로 전진하는데 우리는 서 있다면 정부는 참으로 위기에 처합니다. 그러니 남은 비행기를 타지만, 우리는 달음박질이라도 하자는 것입니다.

일본은 이번에 꼭 망합니다.…이 급박한 시기를 돌파하고 나가자면,…오직 단결이 필요합니다. 단결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단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단결해야 하는가?

과거에는 정부는 상자에 넣어 놓고, 당만 통일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정부로 통일하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지금 정부에 통일ㆍ단결 아니 된 것은 없습니다. 중경에서는 통일이 되었습니다. 오직 화북ㆍ미주와 통일이 되지 않았습니다.…(제가) 희망함은, 이번에는 전체 독립운동자가 다 권리와 의무를 갖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임시정부를 민중의 기초 위에 세우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주석 4)

 
해방 환국 해방 직후, 여의도 비행장에 환국한 임정요인들과 장준하.
▲ 해방 환국 해방 직후, 여의도 비행장에 환국한 임정요인들과 장준하.
ⓒ (출처:복음동지회 20주년 앨범 스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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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요인들은 상하이에 도착한 지 18일 만인 11월 23일에야 미군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그나마 김구 주석 등 1진 15명만 1차로 환국하고, 김원봉ㆍ김성숙 등 2진은 일주일 후인 12월 1일 전북 옥구공항을 통해 환국하였다.

임정 요인들을 두 차례로 나누어 귀국 시킨 것은 먼저 입국한 이승만이 미군정 당국을 움직여 만든 농간이었다는 관측도 있다.

임정 요인들이 환국한 공항에는 환영객 하나 없었다. 국내에는 '임시정부 환영준비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었으나 미군정이 이를 알리지 않은 것이다. 


주석
3> 김성숙, 「오호! 임정 30년 만에 해산하다」, 91~92쪽.
4> 『의정원 문서』, 406~407쪽, 여기서는 한상도, 앞의 책, 125쪽, 재인용.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운암 김성숙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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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